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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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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막 4:35~41)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  

이 찬송은 고 김활란 박사(1899-1970)가 1921년에 지은 찬송입니다.  김박사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지도자요, 기독교교육가로 이화여자대학교총장을 지내셨습니다.  김활란은 1899년 인천 배다리라는 동네에서 8남매 중 5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어려서 7살 때에,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세례명을 받았는데, 헬렌(helen)이라고 했는데, 그의 부친이 ‘활란’으로 고쳐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으로 최초의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며, 한국YWCA를 조직하였고, 이화여자전문학교의 7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해방 후에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으로, 헌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라몬 막사이상을 수상하였고, 미국 감리교회가 수여하는 다락방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일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여성교육과 한국복음화를 위하여 헌신하였고, 그는 죽으면서 유언하시기를 “장례식 대신에 더 풍성한 생명의 길로 환송해주는 환송예배를 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거기에 적합하게 모든 승리와 웅장하고 신나는 음악회가 되기를 원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 장례를 모실 때에, 그의 유언에 따라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웅장한 환송음악회를 열어 장례식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그녀의 영전에 대한민국 외교공로상 최고 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김활란박사는 1939년 4월에 제7대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40세였습니다. 정말 어려운 시기에 커다란 책임을 지게 된 그녀는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힘과 능력을 다해 학교를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1940년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들에게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추방령이 내려졌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주던 선교사들이 떠나가자, 이제는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해야 했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다른 기독교 학교들은 하나 둘 폐교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김활란 박사는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이화는 이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고 뜨거운 기도로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갔습니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본은 죄 없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그는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일본에 협력하게 되었고, 바로 그것이 그녀의 일생을 통해 가장 큰 회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친일행각이 없었다면 우리 여성의 어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1921년 그의 나이23세 때에 지은 찬송시를 읽어보면 1919년 기미 독립만세 이후 우리나라는 큰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배로 비유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건져주시고 구해주실 것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들어 있습니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 폭풍이 일어나는 바다 위에 작은 배 한 척이 외로이 떠 있으니,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바로 그런 모습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었습니다.  작은 배의 사공이 고군분투하면서 배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오려고 하지만, 정말 힘이 없음을 실감하면서, 어려움과 역경 중에도 한 가닥 희망이 보이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배안 계심을 믿고, 기도올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이 죄인 굽어보사 성난 풍랑 잔잔케 하시고/ 이 불쌍한 인생을 살리소서/ 오-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기도하던 그는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감격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 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잔잔한 바다, 잔잔한 바다”  마지막 절이 가장 좋습니다. 

태풍의 이름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아시아 태풍위원회에서는 태풍의 이름을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고유한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4개 나라에서 각각 10개씩 제출한 총140개를 가지고 각 조에 28개씩 넣고 5조로 편성하고 1조로부터 5조까지 순차적으로 사용합니다.    태풍이 보통 연간 약 30개 쯤 발생하기에 전체의 이름이 다 사용되려면 4-5년이 걸립니다. 

2003년에 태풍 매미가 경남 일대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습니다.  매미란 이름은 북한에서 제출한 이름이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여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수재의연금이나, 이웃돕기 성금을 모아 보내야 했습니다.   작년에는 큰 태풍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태풍 피해가 없었습니다.   늦더위가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날씨 덕분에 배나 사과 같은 과일의 작황이 좋고, 일조량이 많아서 맛도 좋았고, 생산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참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작년에는 너무나 많은 수확량으로 인하여 가격이 폭락하였습니다. 

농수산식품부에는 과일 가격의 폭락을 막기 위해 44억 원 어치의 배를 사서 전량 폐기처분한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농사가 잘 되면 서민들에게 행복한 고민인지, 농민들에게 눈물의 탄식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태풍이 오지 않고, 강수량이 적어 논밭이 타들어가고 식수난까지 겪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적은 섬들은 샘이 바닥을 드러내고 비가 오지 않으므로 바닷물이 스며들어 살아갈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저는 자연현상을 깊이 생각하면서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태풍이 와도 걱정이지만, 오지 않아도 걱정입니다.  태풍이라는 것은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보면 태풍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태풍이란 적도 부근의 바다에서 발생하는데, 많은 양의 수증기를 포함한 구름을 몰고 와서 육지에 엄청난 비를 뿌려줍니다.    많은 비가 내리면서 공기를 정화시키고 오염된 공기를 씻어주고 있습니다.   태풍은 바다를 뒤집어놓아 바닷물 속에 산소량을 풍부하게 해주고 적조현상을 막아줍니다.    우리가 적조현상으로 수없는 가두리 양식장에 어패류가 죽어갈 때에, 바다에 황토를 뿌리면서 적조를 막으려고 얼마나 고생합니다.  그런데 태풍이 한번 불어오면 바다의 적조는 일순간에 다 사라지고 맙니다.  언제 넓은 바다에 황토를 뿌리고 다닐 것입니까?  안하는 것 보다는 낫기 때문에 뿌려보지만, 태풍이 불어오면, 바다를 흔들어놓아서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난에 대비하면서 태풍이 불어오는 것도 겁을 내지 말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008년에는 자연현상인 태풍은 불어오지 않았지만, 초특급 경제 태풍이 휘몰아쳐왔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미국 발 금융위기가 강력한 태풍으로 발전하여 전 세계를 강타하는 바람에 거의 모든 나라들이 경제위기에 빠졌습니다.  경제 태풍은 대량 실직으로 이어지고, 서민들의 가정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런 경제 위기는 교회에도 영향을 주어 교회마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개척교회들이 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 보니, 누가 그렇게 열심히 헌금하나요?  그러니 교회들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우리 앞에 다가오는 환난과 역경으로 인하여 우리의 행복이 날아갈 것 같아 두려워할 것입니까?   걱정과 근심으로 밤새우며 염려하고 한숨만 짓고 있을 것입니까?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말씀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습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제자들과 함께 건너편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건너편은 거라사 땅으로 그곳에는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있었고, 그 미친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하면서 소리 지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사건과 거라사인의 광인과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나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훼방하고, 돌아가게 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바다인데, 풍랑이 일어나고 배에 물결이 부딪쳐 들어와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다가 작은 배는 침몰할 수도 있었고, 목숨이 위태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배에도 큰 광풍은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데, 큰 광풍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큰 물결이 넘실거리면서 예수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가끔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해발 -200m 정도로 낮은 지역에 있었고, 바다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관계로 북쪽의 찬바람이 계곡을 타고 불어오면 순식간에 폭풍이 불고, 성난 파도가 일어 혼돈의 바다로 돌변하게 됩니다.   헬몬산에서 가끔 예기치 않은 찬바람이 일어나면서 계곡을 타고 갈릴리바다 쪽으로 불어오면 엄청난 파도가 일어나면서 바다는 미친 듯이 사나운 바다로 변하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배의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는데, 그렇게 아우성치고 죽을 고생인데, 예수님은 평안히 잠들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신 중에 아무 곳에서나 머리를 대시기만 하면 잠에 드셨습니다.  고물이란 말은 한문이 아니라, 순수한 우리말인데, 배의 뒤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선미(船尾)라고 부릅니다.  이물이란 배의 앞쪽을 말하는데, 선두(船頭), 선수(船首)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배의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신다는 일상적인 일을 기록한 것으로 유일한 곳입니다.   예수님이 집에서 주무신다고 할 수 있는데, 배의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배에도 광풍이 불어 닥치고, 파도가 몰아쳐 그 배에 위기가 닥쳤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신앙생활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상관없이 위기와 고통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질병도 없고, 사고도 없고 실패도 없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크고 작은 질병과 사고와 실패가 우리의 그림자처럼 떠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배에도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고 파선하거나 침몰의 위기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풍랑을 미리미리 막아주시면 될 것이 아닙니까?  우리 하나님은 풍랑을 미리미리 막아주시지 않고, 허용하시는 특별하신 뜻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갈릴리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 출신들이었는데, 그들도 이런 큰 풍랑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돌발적인 풍랑에 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였습니다. 제자들 모두가 당황하고, 두려워 어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깨어나시면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하셨습니다.  “잠잠하라”는 말씀은 바람에게 명하신 말씀이고, “고요하라”는 말씀은 성난 바다를 향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수많은 질병을 치료하시고, 이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보면서도 여전히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의지하여 세상을 이기고, 어려운 상활을 타개하고, 믿음으로 이겨나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심히 두려워하면서 서로에게 말하였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풍랑에 놀라고, 성탄 파도에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면서 두려워하였습니다. 이 두려움은 영적인 두려움입니다.  바다를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멸망의 표적이지만, 예수님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구원받은 표적이 됩니다.  

러시아의 속담에는 “전쟁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을 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다에 나갈 때에는 전쟁에 나갈 때보다 더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제주도에 총회가 모였을 때에, 서귀포에서 배를 타고 밤섬이라는 곳을 돌아 서귀포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한 30여명이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가는데, 파도가 치면서 배에 물이 조금씩 들어옵니다.  

배가 밤섬을 향해 나가는데, 점점 물이 더 부딪쳐 들어옵니다.  배는 흔들리지요. 파도를 타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요, 정신이 없어집니다.  왜 내가 이 배를 탔는지 후회가 막급합니다.  배는 요동하지요. 물결은 심하게 들어오지요.  다급해집니다.  “주여”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래서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밤섬을 돌아 서귀포를 바라보고 멈추었는데, 이제는 정 반대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바다가 잔잔합니까?   섬을 등지고 서귀포를 바라보는데 정말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조금 전까지 바다에 나온 것을 후회하고 다급하게 기도하였는데, 이제 찬송이 저절로 나옵니다.  “주 하나님 지은신 모든 세계”, “참 아름다워라”  함께 가신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야외예배 지정곡’을 힘차게 불렀습니다. 

예수 잘 믿는 청년이었는데, 군에 갔을 때에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힘들게 살고, 경제적으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훈련에 또 훈련으로 저녁이 되면 온 몸이 쑤시고 녹초가 됩니다.  좁은 내무반에서 40명이 생활하다보니, 병에 취약해지고 쉽게 전염됩니다. 활동성 폐결핵으로 진단받고, 마산통합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병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았습니다.  

이사야55:6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55:8에는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하시는 것은 저의 좁은 생각과는 분명히 다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았습니다.  하나님이 때로 질병을 허용하시고, 고통에 두시는 것은 사람 노릇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3월 초부터 11월 말까지 병원신세 지면서 아침 먹고 쉬고, 점심 먹고 쉬고, 저녁 먹고 자고, 무조건 쉬라고 하니, 쉬는 동안에 틈틈이 책을 읽었는데, 적십자사에서 비치한 문고가 있었는데, 한 300권 책을 두루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성경을 정독하였습니다.  수시로 예배당에 나가서 기도하는데, 정말 주님과의 사귐이 밀월기간처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전도사로 시무하다가 군에 갔는데, 군목이 3월에 군목이 제대하므로, 3월 중순부터 10월까지 대신 강단을 지키며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참고할 책이 어디에 있습니까?  순수하게 성경 본문 중심의 설교였습니다.   이등병이 주일 강단을 지키는데, 잘 지켰습니다.  

장교들과 일반 병사들만이 아니라, 간호장교후보생들도 들어와 있었기에 성가연습을 시켜서 성가대도 세웠습니다.  형제교회라는 이단이 들어와 교회를 허물려고 할 때에, 강력하게 싸워 물리쳤습니다.  그 형제교회에 다니던 사람은 병장이었는데, 이등병이 신학을 하고 전도사로 봉사하였느니, 저를 당해내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일찍 결혼하고 군에 들어갔는데, 전 병사들이 100원 200원 용돈을 모아서 저의 큰 아이가 돌이 되었다고 해서, 정말 예쁜 옷 한 벌을 사서 소포로 보내 줄 정도로 사랑을 받으면서 목회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질병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건강도 회복시키시고, 군복무 시간도 무려 1년 반이나 단축하게 하셔서 일찍 목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군에 있을 때 성경 말씀 중에 두 말씀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고전10:13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씀을 암송하면서 은혜 받았습니다. 

롬8:28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전화위복이 되게 하신다고 보았습니다.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 되고, 한 사람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생사를 놓고 결단하고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질병을 통하여 부르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질병까지도 전용하시고 선용하시고 있었습니다.  

위기도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융위기는 자동차산업의 기회라는 말을 합니다.  위기는 망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망하지 말라고 주시는 또 다른 기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시편23:4-5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50:15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의 무기가 있습니다.  환난 날이 찾아왔습니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한 중년 부부가 있었는데 아내의 시력이 너무 나빠서 눈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이 잘못되어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남편은 매일 같이 아내의 직장까지 아내를 출근시켜주고 하루 일과가 끝난 후에는 집까지 데려다 주었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아내에게 서로 직장이 너무 머니 혼자 출근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아내는 남편에게 너무나 섭섭해 했고, 사랑하는 남편이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리곤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그 다음 날부터 혼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고 하면서 많이 넘어지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혼자 다니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2년…, 버스운전 기사가 어느 날 이 부인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줌마는 참 복도 많소. 매일 남편이 버스에 함께 앉아 있어 주고, 부인이 직장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지켜보다가, 등 뒤에 손을 흔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격려를 해주니까요."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남편은 2년 동안 아내 몰래 그녀를 지켜주기 위하여 동행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이 남편처럼 그의 신부된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사41:10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시46:1-3을 봅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힘들게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 뒤에서 격려하시고 지켜보시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겨나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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