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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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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1~15)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 교과서에 실린 ‘의가 좋은 형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형제가 한 집에 살다가 동생이 결혼하여 분가하게 되었습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형은 동생을 생각하여 밤중에 자기 볏단을 동생의 볏단에 갖다 놓았습니다. 동생은 동생대로 생각했습니다. ‘형님네는 식구도 많은데 얼마나 힘드실까?’ 동생도 자기 볏단을 형님의 볏단에 갖다 놓았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아무리 옮겨 놓아도 서로의 볏단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 날 밤 맞부딪친 형제는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달님은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두 형제를 비추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목을 안고 울며 화해하는 장면입니다.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그의 형들을 향해서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정치, 사회적으로, 또 지역과 계층 간에 여전히 반목하며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직도 남북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서로 미워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체질적으로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우리 민족은 이 시대에 마지막 분단 국가로 남아 있어야 합니까? 이 분열과 대립의 시대에 우리는 그 옛날 요셉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한 청년이 군에 입대했습니다. 얼마 후 여자 친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우리 이제 그만 헤어져. 그러니 내 사진을 돌려 줬으면 좋겠어.” 화가 치밀었지만 군에 있는 몸으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궁리 끝에 동료들에게 여자 친구들 사진을 죄다 모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들과 함께 이런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미안하지만 어떤 것이 네 사진인지 기억이 안 나. 네 사진만 빼고 다른 사진은 빨리 돌려보내 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때로는 억울하고 분해서 보복하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심히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화해의 본을 보인 인물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열일곱 살 나이에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노예로 애굽에 팔려갔습니다. 애굽에서는 보디발 장군의 종으로 들어갔지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비참한 심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 애굽의 총리가 되고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때에 그는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이용해서 얼마든지 형들에게 복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창 45:4) 무슨 말입니까? 그의 마음속에는 골육 의식이 있었습니다. 즉 형제 의식이 그로 하여금 형들을 미워할 수 없게 했으며 오히려 형들을 향해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게 했습니다. 

오늘은 민족 화해 주일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했습니까? 요셉입니다. 골육 의식, 형제 의식을 가진 요셉이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 또 누구의 책임이 크고 적고 일체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남북 간에 그 동안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습니다. 남은 북에, 그리고 북은 남에 서로 괴뢰 정권이니, 미제의 앞잡이니 하며 비방하기 바빴습니다. 이제는 그만 할 때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미워하지 말고 이제는 형제 의식에 바탕을 둔 참 사랑을 회복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요셉은 누구입니까? 누가 요셉이 되어야 합니까? 남북 관계에 있어서 남쪽이 먼저 요셉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의 의식을 가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민족은 주님 안에서 다시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요셉은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8 상반절) 그는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의 인생을 보고 있습니다.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6-7)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복수의 기회로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살리시려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리로 보내시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하셨다는 그의 고백이야말로 참으로 성숙한 신앙인의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셉의 그와 같은 역사 의식은 봉양 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봉양이란 받들어 모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보내사 이렇게 복을 주신 것은 늙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받들어 섬기라는 하나님의 깊은 뜻임을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백할 뿐만 아니라 그는 그대로 실천합니다. 분단의 현실 가운데 있는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가장 시급한 것이 섬김의 실천입니다. 해방 후, 그리고 전쟁을 겪으며 우리도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금 당당히 경제 대국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북의 경제 규모는 남쪽에 비해서 36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올해도 많은 사람이 굶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북에서는 형제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1년에 버리는 음식물이 14조 7천억 원어치나 됩니다.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부를 허락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북의 형제를 섬기라는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형제를 섬겼습니다. 아버지를 봉양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도 변함없이 그 가족들을 돌보지 않았습니까? 마침내 그 형제들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정한 화해를 이루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 누가 누구를 섬겨야 합니까? 남은 북에 대해서 요셉이 되어야 합니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요셉처럼 진정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미움이 녹아내리고 사랑으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가 젊었을 때 순교자 스데반에 대해서 설교하는데 갑자기 한 성도의 질문으로 인해서 설교가 중단되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도대체 무얼 하셨습니까?” 매우 당혹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을 옆으로 치우지도 않으셨고 스데반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지도 않으셨고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변화시키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스펄전 목사는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으로 하여금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지금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우리를 핵무기로 위협할지라도 우리는 바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향한 뜨거운 사람으로 우리가 다시금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은상 님의 ‘고지가 바로 저긴데’라는 시를 읽으며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지고 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핏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환한 달빛 아래 논바닥에서 형제가 서로 끌어안고 울듯이, 요셉과 그 형제들이 목을 안고 울듯이 이 민족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나아갈 때 주님은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형제가 어려울 때 조건없이 도와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형제의 관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먼저 참 사랑으로 형제를 섬김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뜻과 생각이 하나가 되고 마침내 민족이 하나가 되는 평화 통일의 그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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