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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갈길 다가도록 (욥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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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갈길 다가도록 (욥 23:10)

 
지난 주간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최용덕 씨의 '오늘 나는' 이라는 복음 성가가 제 입술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이 노래는 용서하고 화해하고 높여주고 세워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회개하면서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결단의 노래입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 /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 왜 내가 먼저 손해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른 채
이렇게 흐느끼며 서 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가만히 보면, 나는 내 스스로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용서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웃음을 주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가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고, 용서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는 나에게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해 주어야 합니다.  이 모순된 나의 모습, 이 거짓된 우리의 모습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서로 끌어내리고 헐뜯고 넘어뜨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여기 이곳은 주님의 몸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서로를 세워주는 곳입니다.  서로를 격려하는 곳입니다.  아픔을 치유하는 곳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서로 붙들어주는 곳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모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대신하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붙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는 서 있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붙들어 주어야 하고, 또 누군가를 내가 붙들어 줄 수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성령 없이 육체를 따라 살게 되면 이웃에 대해서 무관심해 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기심의 포로가 된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은 늘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주님으로 꽉 차게 되어서 주님의 관심이 우리의 관심거리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주변에 넘어진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갖고 이웃을 살펴보면 내 주위에도 상처받아 넘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주님과 교제하지 못하고, 주께서 보여 주시는 영광을 붙잡지 못하고 목표 없이 인생을 낭비하며 표류하고 있는 낙심자들이 있습니다.
 
한 때는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때는 성도의 교제를 나누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와 담을 쌓고 지냅니다.  한때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한때는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버린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 곁에는 어린 신자들도 있고, 어려운 환경 속에 지쳐 쓰러진 이웃들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손을 내밀어 그들을 붙들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먼저 그들을 향해 환한 웃음을 주라고 하십니다.  내가 먼저 따뜻한 가슴으로 그들을 품어주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밖에 못사는 세상입니다.  한 번 태어난 인생입니다.  두 번 못 살고, 두 번 태어나지도 않습니다.  이 소중한 인생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다가 갈까?  무슨 비결이 없을까?  이것은 언제나 우리가 해결해야 할 모든 생명의 공통된 숙제입니다.  해결이 있습니까?  미쳐서 살면 됩니다.  그런데 미치는 것도 좋은 일에 미쳐야 합니다.  아름다운 일에 미쳐야 합니다.  거룩한 일에 미쳐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에 미쳐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행복하고 참된 보람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큰 일을 하시려거든 크고 아름다운 일에 미치십시오.  미쳐야 합니다.  크게 미친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불행입니다.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비극입니다.  미치세요.  미쳐야 자신의 아름다운 삶에 대한 생명을 연소시킬 수 있습니다.  미쳐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할 수가 있습니다.  미쳐야 내 안에 숨겨졌던 열정과 정열이 나옵니다.  미쳐야 상대와 내가 하나가 됩니다.
 
사람은 적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은 동일합니다.  누구나 미칠 수 있습니다.  미치세요.  그러나 우리는 결코 더러운 일에 미치면 안됩니다.  나쁜 일에 미치면 안됩니다.  거짓된 일에 미치면 안됩니다.  그러면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마약에 미쳐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과 정욕에 미쳐서 가정이 깨어지고 무너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에 미쳐서 인격이 무너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하고 소중한 일에 미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살리는 아름답고 귀한 일에 미쳐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전에 맛보지 못했고 누리지 못했던 삶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시간이 갈수록 이 보람된 목회의 삶을 살면 살수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게 되는 고집이 생겼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 속에 아직도 실개천 같은 믿음이라도 붙들고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저는 나이를 먹고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도 더욱 확실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가면 꿈같은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생기의 영만 들어가면 상상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일어
날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주간을 보내면서 저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서 더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하나님 안에 참된 자유가 있는 것을 압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안에 자유 함이 있습니다.  "예수를 알지니 예수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사모하십시오.  자유 함을 사모하십시오.  예배하다가 모든 억눌림과 답답함과 아픈 상처로부터 자유해 지십시오.  무엇보다도 오늘 예배를 드리다가 위로부터 있어지는 신령한 체험을 사모하십시오.  돈으로 경험할 수 없고, 사람으로 경험할 수 없고, 세상으로 경험할 수 없는 내 영혼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정복되는 체험, 내 곤고한 영혼이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체험, 외롭기 짝이 없는 내 영혼이 하나님의 절대 진리에 흡수되는 체험!  오늘 이 체험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깊은 감격, "이것이야!  바로 이 삶이야!"  사모하십시오.  더 깊이, 더 뜨겁게 사모하십시오.  여기에 제가 열쇠고리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열쇠들이 고리에 묶여 있는 한, 이것은 아무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이 열쇠들이 고리에 묶여 있는 한, 이것은 아무런 선택의 자유도 없습니다.  이것은 다만 움직이는 대로 자극에 대한 자동반응이 있을 뿐입니다.  흔들면 흔들려야 됩니다.  무슨 재료가 있습니까?  던지면 골라가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흔들면 그냥 흔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던지면 올라가고, 끌면 끌리고, 꼼짝 못하고 이 열쇠고리가 묶여 있는 것처럼 묶여 있는 사람들이 오늘 우리들 주위에 너무 많습니다.  이것은 기계적으로 사는 길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종살이입니다.  만일 이 열쇠가 자유하기를 원한다고 하면 이 고리에서부터 풀려나야 합니다.  풀려나는 길밖에 다른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저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문자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는 이런 일이 지난날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저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대 탈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나를 속박하는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오늘 내가 풀려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은 '하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하는 일'에 있다고 하면, 보십시오.  똑 같은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얼마나 짜증스럽게 일을 합니까?  똑 같은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사람은 얼마나 짜증스럽게 예배를 드립니까?  기억하십시오.  행복은 '하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그 '하는 일'에 대한 마음의 풀림입니다.  마음이 풀리면 그렇게 살기 싫은 생활도 살아갈 맛이 납니다.  그렇게 하기 싫던 일도 너무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보기 싫던 사람도 그렇게 좋습니다.

21세기가 되면서 대 혼란의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같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멀쩡하던 집이 무너지는 것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빌딩이 무너지는 것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사회적인 명예가 무너지는 것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에서 제일 가슴 아픈 일은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막아야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면 그 시각부터 지옥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내 마음의 무너짐을 막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으십시오.  그래서 마음의 무너짐을 막으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전부가 무너집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생명이 무너집니다.

지나간 산업혁명 시대에는 "바쁘다"는 것이 인간들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와서는 사람들의 입에서 외롭다는 절규가 그 공허한 심령을 흔들고 있습니다.  "아! 외롭다!  고독하다!"  그래서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접속을 하고 채팅을 합니다.  매일 밤을 그렇게 들라날락 들락날락 그래도 결론은 외로워합니다.  마음 속의 허무함, 텅빈 공간, 갈증,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오는 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 뻥 뚫림!
 
현대인들은 대부분 마음 어딘가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실패로부터, 모든 공허함으로부터, 모든 제약으로부터, 모든 억눌림으로부터, 모든 고리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누가 나를 이 억눌림과 실패와 공허감으로부터 자유하게 할 것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제 말을 따라서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그 말씀 앞에 순종하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는 사람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자는 그가 지금 아무리 캄캄한 절망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다시 일어나 희망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형태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자기 마음의 선택입니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인간의 이야기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할 것인가?  사망과 저주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생명과 복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결국 그 선택은 내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고통의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다시 그 심령에 하나님의 불만 들어가면 형제도 모르는 또 다른 일이 형제의 삶에서 일어날 줄 믿습니다.  심령의 공허는 하나님이 개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 마음이 공허하십니까?  어디가 길인지를 몰라서 방황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것, 이것이 인생 최고의 행복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나를 창조하시고, 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지금 실패의 길목에서 쓸데없는 사람처럼 되었다면, 지금 자신의 강퍅한 외로움의 포로가 되었다면 거기에서 벗어나십시오.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지면 안됩니다.  자기 변명의 늪에 빠지면 안됩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정복하지 못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정복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치료할 수 없는 병도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열 수 없는 문제도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건널 수 없는 바다도 없습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이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도 없습니다.
 
이 땅에는 근심의 뿌리가 얼마이든지, 앞날에 얼마나 절망적이든지, 매듭이 얼마나 단단하게 꼬였든지, 당한 고난이 얼마나 크든지, 설사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깊든지, 설사 내가 실패한 일들이 얼마나 크든지,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여호와라!  하나님은 할 수가 있느니라!  하나님은 할 수가 있느니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사람을 살리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오늘 주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관리능력에 대해서 모두가 다 애타게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재산 관리 능력이나 돈 관리 능력이나 지식 관리 능력이나....  이 관리에 대해서 모두가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제일 급한 능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돈 관리 능력도 중요합니다.  재산 관리 능력도 중요합니다.  무슨 사람 관리 능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 관리 능력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내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마음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제물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자기 마음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슨 사람이 따라옵니까?  무슨 돈이 따라옵니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일어나는 관리 지향성의 뿌리와 창조 지향성의 마음의 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주의 진리로 창조 지향적인 뿌리가 깊어지기 때문에 생명이 삽니다.  그러나 파괴지향성의 뿌리를 내리면 그 심령이 죽습니다.  사람이 죽습니다.  기업도 죽습니다.  나라도 죽습니다.  다 죽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 속에 일어나는 파괴 지향성의 뿌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잘라버려야 됩니다.  끊어버려야 됩니다.  왜 그것을 키우십니까?  왜 그것의 뿌리를 내리십니까?  우리의 심령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 귀한 곳에다가 왜 악하고 더러운 파괴 지향성의 뿌리가 살 수 있는 터전을 허락하십니까?  생명의 밭인 그 심령에 왜 그것을 허락하느냐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착각에서 벗어나십시오.  내가 관리하는 것을 항상 다른 사람이 가져다준다고 하는 그 놀라운 착각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언제나 남편이 준다, 아내가 준다.  착각입니다.  아이들도 매한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부모가 준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준다.  엄청난 착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만 여러분에게 행복과 불행을 초래하는 경로일 뿐입니다.  남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명예가 주는 것도 아닙니다.  물질이나 사업이나 명예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행복은 내 심령이 나에게 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이 나오면 난리법석입니다.  젊은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진을 보면 막 기절을 한다고 합니다.  뛰어난 재능, 그 티없이 맑은 아름다움, 엄청난 부와 명성,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서 세기적인 심벌의 미녀였던 마를린 먼로를 기억하십니까?  그녀가 호텔 방에서 수면제에 중독이 되어서 외롭게 초라하게 발가벗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많은 펜 레터를 받으면서, 그 많은 조명을 받으면서, 그 많은 인기를 누리면서도 그녀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이 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착각에서 벗어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행복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그 심령에 진리를 붙들고 감격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지배 테크닉이라고 그러는데 불행한 사람들은 자꾸 지배 테크닉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배 테크닉으로부터 자유하셔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을 상담해 보면 거의 8-90%는 인간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 때문에, 시누이 때문에, 친구 아무개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사람과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사람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자세히 들어보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내가 남편하고 어렵다.  내가 부인하고 어렵다.  특별히 상담을 하는 여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중요한 기초공식을 모르고 있습니다.  절대로 상대를 소유하려고 들지 마십시오.  내가 나도 소유 못하는 마당에 남까지 소유하려고 합니까?  상대방을 조정하려고 들지 마십시오.  자기 마음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지도 못하면서 왜 남을 조정하려고 하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상대방을 조정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열쇠 고리에다 매 가지고 내가 꿰어서 이곳으로 옮기고, 저곳으로 옮기고...  이것에 자동 반응하는 그런 남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아내도 하나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남편을 출근 시켜놓고 하루종일 집에 앉아서 지배테크닉만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이가 돌아오면 어떻게 할까?  무엇을 할까?  분하고 억울한 것만 엮고 있습니다.  쏘아대야지, 잔소리해 야지, 이것을 따져야지, 이것을 알아 봐야지, 바가지를 긁어야지.  긁지 않으면 녹이 스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상대를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싶다고 하는 어리석은 욕구에서 벗어나십시오.  그 자체가 이미 불행의 시작입니다.  그런 것을 하는 동안에 이미 불행이 시작됩니다.  불행이 막 뻗어 나갑니다.  막 뻗어 나가 가지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겁니다.  모든 관계가 파괴되는 그 원형이 누구일까?  소유욕과 지배욕입니다.  소유는 자기의 것으로 변화를 강요하고, 상대의 저항에 대해서 반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으로 상대방을 해방시켜 주십시오.  남편을 해방시켜 주십시오.  아내를 해방시켜 주십시오.  나도 모든 억눌림과 지배욕으로부터 해방시키십시오.  다 풀어놓으십시오.  예수님께서도 "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붙들고 그냥 열쇠고리에다가 꿰어가지고 "자기 내 말 들리지?"  "자기, 어디 있어?"  그러지 마십시오.  그 '자기'가 어디 있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것을 5분마다 "왜 전화 안 했어?"  이렇게 하지 마십시오.  전화를 안 할 수도 있고,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의 중심에 내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재능보다 귀한 것이 그 마음의 중심입니다.  중심이 바로 된 사람이 큰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중심이 흔들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중심의 심지를 굳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마음이 아닙니다.  감정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십시오.  그가 큰 일을 할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원하는 것은 항상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복의 근원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내 안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그런 영혼의 평화, 심령의 풍요, 여기에 대한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끝없이 놀라운 삶의 사랑과 예의와 질서가 용솟음칠 것입니다.  그러면 돈도 모입니다.  그러면 사람도 모입니다.  그러면 행복도 모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일이 모입니다.

한 생명이 가장 행복한 시간, 삶의 가장 선한 절정의 시간이 언제일까?  하나님에게 몰두할 때입니다.  한 인간이 최고의 삶의 경지에 이를 때가 언제일까?  한 인간이 최고의 행복의 경지에 이를 때가 언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에게 몰두할 때입니다.  그 영혼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몰두해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행복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몰두해 보십시오.  세상도 간 곳 없이 오직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만 존재하는 그런 시간에 한 번 빠져보십시오.

한 생명이 이 땅에서 한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일까요?  내가 어느 날인가 이 땅을 떠날 때, 지난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 해야 할 제일 위대한 일, 내가 한 일 중에서 제일 위대한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입니다.
한 생명이 이 땅에 와서 크고 작은 많은 지식들을 얻는데 제일 귀한 지식, 제일 보람된 지식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깊게 들어가 보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미쳐 보십시오.  귀하게 미쳐 보십시오.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에 모두 한번 뜨겁게 미쳐 보십시오.  반드시 여러분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운명은 그 인간의 성격이 만든 것입니다.  저는 옛날 신학대학교를 다니던 전도사 시절에 마음이 약해지면, 너무너무 힘들어서 의욕과 삶의 의지를 상실할 때면 바닷가를 거닐면서 순례자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는 새로운 힘과 의욕이 생깁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 밤을 세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 주 복음 전하리"♬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어차피 순례자의 인생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는 정한 때가 되면 영원한 본향, 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인생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가 당당하고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삶의 여정에서 고난과 시련 앞에 섰을 때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늠름하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과 역경 앞에서 나는 무너지고, 나는 항복하고, 나는 쓰러지고 싶지만 나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쓰러질 수 없는 사람, 넘어질 수 없는 사람,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누군가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  누가 역경을 당하고 있다.  누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해도 욥 보다 더 심한 고난과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욥 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당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어떻게 이겼을까요?  하지만 그도 넘어졌습니다.  그도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넘어질 때마다 그 내면 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힘을 붙들었습니다.  무너질 때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그 잔잔한 파도를 붙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 여러분의 영혼 속에 이 잔잔한 영적 파도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이 영적 불꽃이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갈길 다가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내가 만난 모든 고난과 고통을 보다 성숙된 신앙을 가지고 그 고난은 삶의 목적의 연단인 줄을 고백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고통이 나의 범죄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크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고 길잡이 인 줄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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