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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요일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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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용서하신다 (요일 1:1~10)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1서 1:1-10

여러분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맥베스를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맥베스의 아내는 남편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남편에게 지금의 왕을 죽이고 왕좌에 앉으라고 부추깁니다. 아내의 말대로 왕을 죽인 맥베스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립니다. 아내 역시 죄책감으로 정신적인 문제를 겪습니다. 자기 죄를 씻는 의미로 끊임없이 손을 씻지만 아무리 손을 씻어도 죄의식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결국 자살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도덕적 제한구역을 넘어서면 바로 양심에 고통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지 않아도 내 안의 양심이 고통스럽고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양심은 나 자신을 스스로 처벌하려고 합니다. 이런 내적인 고통이 죄의식입니다. 무엇이 잘못이며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는 성경에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덕적 제한구역을 알고 그것을 벗어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은 성경뿐 아니라 우리의 양심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내 양심 속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나 성경에 맞지 않는 생각, 말, 행동, 감정 등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단순한 잘못을 하루에 세 번씩만 한다고 합시다. 한 달이면 1백 번, 1년이면 1천2백 번입니다. 10년이면 1만2천 번, 40년이면 4만8천 번입니다. 70년은 계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죄를 까만 점이라 하고 그 점을 흰 종이에 일일이 찍는다면 우리가 70세가 될 때는 7~8만 개의 점으로 흰 종이가 새까맣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잘못을 잘 잊어버립니다. 아마 98%는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크고 작은 잘못을 할 때마다 죄의식은 계속 쌓입니다. 이 죄의식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양심이 굳어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고, 때로는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양심이 마비되면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 큰일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죄 사함과 죄 씻음을 모르는 채 오래 사는 것은 절대 축복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5)라고 했습니다. 70~80년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다면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지불해야 할 심판의 날이 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악을 덮어놓지 않으시고 반드시 정의의 칼을 빼는 날이 옵니다. 

우리가 느끼는 죄의식은 두 종류입니다. 참된 죄의식과 가짜 죄의식입니다. 참된 죄의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느끼는 죄의식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시고, 일주일에 한 번 안식일에는 꼭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 예배를 드리지 않고 야외로 나가 놀면 예수 믿는 사람은 재미가 없고 마음이 어둡습니다. 그러니 나가더라도 아예 예배를 드리고 가세요. 하나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만나자고 하셨으니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과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린 후에 다른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하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는데 부모에게 반항하면 죄의식이 생깁니다. “내가 왜 그랬지? 또 내 입으로 부모님께 나쁜 말을 했어.”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주먹으로 벽을 칩니다. 주먹이 깨지고 아파요. 무엇입니까? 죄의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처벌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살인을 하면 죄의식이 생기지요. 실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네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한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예수 믿으면 힘들어요. 마음으로도 잘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이 살인의 출발이라는 말씀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네 마음으로 간음하면 간음한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남의 물건이나 명예를 훔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속시간에 늦게 나타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시간을 훔치는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과장해서 말하거나 축소해서 말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마음은 죄의식으로 찔립니다. 힘들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과 만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때도 죄의식을 느낍니다.

여러분의 결혼 초기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단칸방에서 살다가 지금은 작지만 내 집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두세 명이 있습니다. 직장이 있어서 그동안 의식주를 해결했습니다. “네가 받은 축복을 세어보아라.”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세어보지 않고 아직 안 받은 것에 대해 불평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 내가 왜 이러지’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오랜 시간 죄의식이 쌓이면 공연히 불안하고 두렵고 어디서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나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죄의식은 제대로 된 죄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니까요. 여러분의 잘못이나 부족함 때문에 미안해하고 죄의식을 느낀다면 여러분의 영혼과 양심이 아직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요, 성령께서 내 안에 계셔서 사사건건 말씀해주시는 것인 줄 알고 감사하십시오.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죄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잘못을 해도 잘못인줄 모르고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영원히 망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짜 죄의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깨끗해야 하는 결벽증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먼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못 참고 죄의식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조금만 어지러 놓아도 마구 야단을 치며 계속 쓸고 닦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집안에 먼지 하나도 남겨 놓지 말라는 말은 없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가지고 느끼는 죄의식은 가짜 죄의식입니다. 말이나 행동이 모두 똑발라야 하고 절대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완벽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앞으로 절대 실수하지 않는 방법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입니다. 완벽주의자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죄의식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말하지 않은 것조차 자기 기준에 맞추어 늘 자책하며 죄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부활 주일 전의 수난 주일에는 전 세계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행사를 엽니다. 필리핀, 아프리카, 브라질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메고 행진을 하면서 채찍으로 자신을 때리지요. 등에서 피가 줄줄 흘러도 계속 채찍질을 하면서 행진합니다. 18세의 어느 아프리카 청년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습니다. 죄의식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가 죄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가짜 죄의식입니다. 

그러면 죄성을 갖고 죄를 범하며 사는 우리는 어떻게 죄의식에서 해방될 것인가? 본문을 보면 요한1서의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을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1:4)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기쁜 인생, 가슴에 평화를 누리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죄의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신의 죄를 부인하거나 변명하며 은폐합니다. 본문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1:8)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죄가 없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합니다. 제가 어느 분에게 전도를 하면서 ‘죄인’이라는 말 한마디 했다가 혼이 났습니다. 그 분은 마구 화를 내면서 “내가 뭘 잘못했소! 오늘까지 이렇게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나를 죄인이라고 합니까?”라고 따졌어요. 죄인이라는 것은 죄성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 죄성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인간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죄성 때문에 마음으로나 행동으로 죄를 범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은 죄를 범하는 존재”라고 하시는데 사람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둘 중 하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1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성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을 아시고, 우리가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 숨어 범죄해도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다 아십니다. 그런데 “나는 잘못이 없다.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평생 범하는 죄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성경은 그것을 부인하거나 변명하거나 숨기지 말고, 솔직히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씻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평생 가지고 있는 죄성과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범하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어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죄의식에서 해방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도원이나 절에 들어가 세상에 나오지 않고 살면서 어떻게 하든지 죄를 범할 가능성을 줄이려고 매일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그곳에도 죄성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자기의 노력으로 죄의 문제와 죄의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넘겨주면서 “나는 죄 없다. 너희들의 문제다”하고 손을 씻었지만 책임을 전가해도 소용없습니다. 죄는 대가를 지불하든지 용서를 받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이들이 잘못해도 엄마에게 매 한 대를 딱 맞고 나면 웃습니다. 잠깐은 아파서 울지만 대가를 치렀으니 괜찮습니다. 

우리가 평생 범하는 죄의 대가는 어떻게 지불합니까? 자살로 지불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보십시오. 나의 죄성과 죄를 보지 말고 그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예수를 믿으십시오. 나를 위해 돌아가시고 내 죄를 완전히 덮으신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예수를 믿으면 그의 피가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면 우리의 양심이 깨끗해지고 죄 사함을 받아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목욕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시려고 하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께서 제 발을 씻다니 안 됩니다.” “내가 네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하고 상관이 없다.” “그러면 아예 목욕을 시켜주십시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날 위해 돌아가신 것을 믿으면 내 모든 죄가 완전히 씻기는 인생 최고의 목욕을 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목욕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발은 씻어야 됩니다. 들락날락하면 손과 발에 먼지가 묻고 더러워지니까 나갔다 들어오면 손발을 씻으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두 번 용서를 받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그것이 나의 것인 줄 앎으로 완전히 죄 씻음 받아서 한 번 목욕을 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후 손발이 더러워질 때마다 바로 씻어서 깨끗한 양심과 영혼을 유지합니다. 숨기고 변명하며 죄의식을 갖고 살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1:9).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 내 죄를 씻어주시옵소서”하는 그 순간 벌써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하나님 쪽에서는 내 죄가 이미 없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고백한 후에 즉각 따라와야 할 또 한마디의 기도가 있습니다. “죄를 용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용서해달라고 기도를 했으면 용서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할 때 내 죄와 죄의 습관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때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어떻게 되나?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7:19). 우리가 자복한 죄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이미 멀리 떨어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죄를 낚싯대로 건져 올려 또 회개하고 또 회개합니다. 과거의 내 죄가 용서됐는지 확신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 하셨으면 이미 용서하신 것입니다. 

다시 건져내지 마세요. 제가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젊어서 예수 믿을 때 목사님들께서 계속 회개하라고 하셨어요. 이미 다 했는데 또 하라고 하시니 옛날 것을 꺼내어 또 회개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성경을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제 성경을 잘 압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8:12). 하나님은 잊어 버리셨습니다.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셨으니 여러분도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잊으셨으니 여러분도 잊으십시오.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날마다 새 출발을 하십시오. 그러면 죄의 습관들이 점점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우리의 양심이 깨끗해집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도 깨끗한 양심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양심이 깨끗해지고 죄의식이 사라지면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마다 용서해주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우리 마음이 일평생 평화로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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