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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골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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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골 1:9~14)


기도에 대한 특강을 준비하면서, ‘기도의 체험’이란 아무 좋은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태생이지만,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러시아 정교회의 총대주교가 된 안토니 블룸(Anthony Bloom)이란 신부가 쓴 책이었습니다. 정교회는 초대교회를 이은 가톨릭-천주교회와 같은 뿌리인 교회로, 구교의 한 교회입니다.  그는 기도를 정의하면서 하나님과의 만남, 교제로서의 기도를 강조하고 있는데, 침묵의 기도를 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느 늙은 농부가 매일 성당에서 들어와 몇 시간씩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성당의 주임신부인 아르스의 성자인 ‘비안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몇 시간동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분을 쳐다보고 그 분은 나를 쳐다보고 이렇게 우리는 행복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기도라고 하면 이런 깊은 경지에 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이런 영적상태는 우리가 먼저 침묵을 배운 다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선 입을 침묵시키는 것으로 시작해서 감정의 침묵, 마음의 침묵, 몸의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주님과 함께 일어나고, 주님과 함께 잠에 들고 있습니까?    나 혼자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루에 몇 시간이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분, 주님과 함께 하루를 살고 있습니까?  세상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까?  비록 세상 나라에서 살지만, 천국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았는데, 그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았고,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흑암의 권세 아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흑암 권세를 잡은 악한 영이, 이끌어가는 대로 이리 저리 끌려 다녔습니다. 

악한 영이 넣어주는 악한 생각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악한 영이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어, 그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나라, 예수님이 왕이 되신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 나라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육신이라는 장막을 입고서,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영원한 나라, 아들의 나라, 우리 주님이 예비해놓으신 그 나라, 하늘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죽은 다음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하늘나라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롬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경제적인 성장으로 인하여, 사실 부족한 것이 없이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세상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고 싶어 합니다.  부족한 것이 별로 없는데,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무엇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무슨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십니까?  가정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사업이 잘 되라고 기도하십니까?  질병에 걸리지 않게 기도할 것입니까?  가정을 위하여, 사업을 위하여, 혹 거창하게 나라를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지만, 정말 무엇을 놓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와 깊은 대화를 나누시고 교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진정한 기도란 하나님을 ‘그 분’이라든지, ‘전능하신 하나님’, 등의 먼 3인칭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와 마주 대해주시는 ‘당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기도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직도 조심스럽고, 차가운 관계가 계속되고, 예식적인 말과 행동으로 기도한다고 하면, 그는 아직도 깊이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손자들이 7살, 6살이니 한참 예쁩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유치원생입니다.  그 애들이 자기 엄마 아빠에게 반토막 말하는 것처럼 할아버지에게도 반토막 말을 합니다.  “할아버지 장난감 사줘”, “나 인형 살래” “응, 응 사줘”    어떤 때는 자기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야단치며, 달려듭니다.  그 애들이 할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엄하게, 야단치고 나무라고, 쌀쌀맞게 대하였으면 도망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하나님을 ‘당신’이라는 말로 말하기가 참으로 거북합니다.    우리 언어에는 2인칭 대명사에 높여 부르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새로 된 주기도문에서도 원문의 ‘너의’, ‘당신의’(원문, 수) 라는 말을 ‘아버지’라는 말로 의역하고 있습니다.  KJV에서는 너의 이름, 너의 왕국, 너의 뜻(Thy Name, Thy Kingdom, Thy Will)이라고 번역했습니다. NIV 성경에서는 Your Name, Your Kingdom, Your Will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의, 당신의 그런 말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하였으니, 계속해서 “아버지”라고 의역하였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 한 분으로 족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아버지, 저에게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성령의 사람, 성령의 능력,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으로만 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첨단 정보화시대를 살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산다고 해도 인간으로 허전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성의 회복입니다. 

우리 사람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0 상)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인간에게만 배부름으로 채울 수 없고, 지식으로 채울 수 없고, 성적인 쾌락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솔제니친이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반체제 지성인으로 서방 세계로 추방된 사람이었습니다. 이분이 1978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강연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희망을 정치적, 사회적인 개혁에 두어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영적인 생활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정치를 개혁하고 사회를 개혁하여 경제를 살린다고 하였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생활”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수녀로 노벨상을 수상하신 마데 테레사는 그의 "일일 묵상집"에 이런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방세계의 정신적 빈곤은 우리 인도 국민의 물질적인 빈곤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서방세계에는 지독한 고립감과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수 백 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아무도 사랑해줄 사람이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물질적인 의미로 굶주리고 있는 것 아니라 또 다른 의미로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실제로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입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영력 있는 사람의 지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면서, 아버지와 살아 있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는 아버지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영적인 성숙을 가져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전3:6에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졌습니다.  이제 물주고,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시고, 바람을 주시고, 토양을 부드럽게 하시면서 식물을 자라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좋던지, 싫던지, 원하든, 원치 않든지 자라나게 하십니다. 자라나지 않으면, 죽습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영혼이 자라나야 합니다.  

엡4:13, 15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한 자리에 나아가야겠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지옥과 같은 나라에 살 것입니까? 
 천국에서, 그 아들의 나라에서 살 것입니까?  

1.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는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9절 하반절에“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10절에서도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롬12:2 말씀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게 여기시는 당신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요, 피조물들이 가장 행복하게, 가장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뜻입니다. 

우리 육체의 남은 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욕심, 나의 욕망, 나의 의지 가지고는 사실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벧전4:2에서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벧전4:3에서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공간에는 비워둘 수 없습니다.  비워둘 수 없고, 결코 빈공간으로 남을 수 없는 영혼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2.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곳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찬양이기에 찬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사랑이니, 사랑하며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서로 섬기는 일이기에 우리도 섬기며, 살고, 하나님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기뻐하시니, 우리도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시니, 사람들을 우리를 몰라주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으니,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유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우리는 덩달아 기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기뻐하시니, 기도하고, 하나님이 한 생명을 사랑하시니, 우리도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구원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이 교회이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기뻐합니다. 

우리에게는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룩한 목적이 있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목적이 없다면, 정말 무가치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우리의 선하고, 옳고 높은 목적이 우리를 이끌어 올려 세워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의미 있게 살아가게 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글을 읽다가 가슴 아픈 글을 보았습니다.  

어느 가정에 실직을 당한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실직 후 몇 달이 지나자 가족을 위해서 아무데나 들어가서 일을 해야 되겠다고 조바심을 내다가 어느 회사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 회사에서 판매원을 시켰던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거리를 헤매면서 무언가를 파는 세일즈맨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딸, 4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근심이 서린 눈으로 아빠를 바라봅니다. 아빠는 집에 들어와서 절대 티를 내지 않고 명랑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눈 여겨 보면 매일 구두가 엉망인 채 집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구두에 먼지가 가득 앉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 달도 안 되어 구두 앞창이 덜렁덜렁 떨어졌습니다. 

이것을 본 자녀들이 매일같이 아빠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지를 물어도, 아빠는 설명을 안 합니다. “나 일이 많아 열심히 뛰어서 이래.” 이 정도로 대꾸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구두가 자꾸 망가져 한두 켤레 사다가 나중에는 돈이 없어 운동화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운동화도 한 달을 못 버티고 자꾸 낡아서 바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 큰 딸의 소원이 “어떻게 하면 아버지 구두 한 켤레 사드릴까? 그래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까?”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그래서 밤을 새워 가며 고민한 결과, 학교 갈 때 버스를 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먼 길인데도 부모 몰래 걸어서 학교를 다니면서 몇 백 원씩 저금통에 계속 넣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버스를 탈 수 없다는 생각에 덥고 힘든 것을 견디면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자기 동생도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 너 왜 버스 타지 않고 걸어가니?” 동생이 고개를 푹 숙이고 “나, 아빠 구두 사주고 싶어서 요즘 걸어 다녀. 누나도 그렇게 하는 거야?”  “그래. 너 얼마 모았어?” 동생이 “나 이제 2000원 모았어. 누나는?” “나는 이제 5000원 됐어. 우리 조금만 더 모으면 아빠 구두 사줄 수 있을 꺼야?” 실제로 자기를 낳고 키워주며 사랑해주는 아빠를 기쁘게 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타지 않고 힘겹게 학교에 걸어 다니며 푼돈을 모으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정말 사랑하신 나머지 오늘도 예수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보실 때마다 큰 꿈을 가지고 바라보시며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를 바랍니까?  언제나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나의 기쁨이 되는 것인지를 판단하여야 합니다. 


3.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나라입니다. 

12절에서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아들의 나라는 감사만 있는 나라요, 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감사하며 삽니다. 

골1:3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설립된 교회를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골로새교회를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마다 감사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직접 개척한 교회도 아니고 그의 제자가 가서 설립한 교회인데 이 골로새교회가 믿음, 사랑, 소망을 가지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생각하던지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당신이 설립하였던지, 그의 제자들이 나가서 설립한 교회라도 빼놓지 않고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교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 말세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교회가 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적어도 교회는 천국의 지점이 되어야 하고,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감사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중에 우리는 우리에게 교회라는 신앙공동체가 있음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교회는 곧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곧 교회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들이 소속된 교회가 있고, 우리의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으로 함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나 혼자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믿는 성도들이 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많은 감사의 제목 중에 함께 믿음 생활하시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성숙한 사람이라는 표시입니다. 어린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숙한 사람으로 감사의 신앙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제목 중에는 교회를 위한 기도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는 다른 분을 위한 기도와 교회를 위한 기도, 목회자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기도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 중보기도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목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기도동역자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정말 전에 느껴보지 못하였던 은혜를 맛보게 되실 것입니다.  목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분들은 더욱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존 맥스웰이란 유명한 목사님은 당신이 시무하는 스카이라인 웨슬리안 교회를 성공적으로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동역자 ‘빌 클라센’을 만난 후였다고 합니다.   저는 제자훈련을 하면서 “기도동역자”라는 책을 읽은 바 있습니다.  

이 책을 쓰신 존 맥스웰 박사는 리더십에 관한 새로운 학문적인 체계를 수립한 학자요, 세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영적 지도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를 통하여 목회를 견고히 하면서 중보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동역자를 세우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목회자이신 맥스 루카도 목사님도 존 맥스웰 목사님을 만나서 그 교회의 중보기도회를 보고 돌아가서 본 교회에서 기도 팀을 가동시키므로 놀라운 부흥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존 맥스웰 목사님은 어느 날 우연찮게 ‘빌 클라센’이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분을 만나면서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을 보내셨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빌 클라센은 같은 교회의 성도도 아니었는데, 그는 지난 18개월 동안 자신이 기도해줄 수 있는 목사님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로 존 맥스웰과 그의 스카이라인 웨슬리안 교회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는데, 중보 기도 팀이 조직되었고, 목회자를 위한 기도가 꾸준히 이어지게 되었으며, 120명의 기도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하나님은 항상 큰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신다.”라고 하였다.  스펄전 목사가 그렇게 훌륭한 설교자로, 목회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설교할 때에는 강단 밑 기도실에 수많은 성도들이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존 맥스웰 목사님이 그의 기도동역자들을 자랑하면서 소개하는 것은 그분들도 인하여 목사님의 사역이 달라졌고, 메시지가 달라졌고, 위대한 영향력을 주는 교회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도 중보기도회로 인하여 영력있는 사역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아들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말씀이 있습니다.  정말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말씀들입니다.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는 나라입니다.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곳입니다.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나라입니다.  우리 죄를 속량하시고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신실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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