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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벼운 짐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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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짐 (마 11:28~30)
 
 
20세기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여주인공들인 테레사와 사비나는 사랑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랑의 책임과 자유 그리고 영원의 사랑과 순간의 사랑 등 사랑의 상반된 특징을 각각 보여줍니다. 작가는 이 두 사람 중 누가 옳은가를 판단하지 않고 사랑의 모순되고 이중적인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선택은 독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진지하고 무거운 사랑을 하든 순간적이고 가벼운 사랑을 하든 그것은 독자들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문제는 이 작품이 발표되고 난 후로 '존재의 가벼움'이란 쪽으로 세상풍조가 자꾸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존재의 무거움에서 존재의 가벼움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벼움(lightness)'이란 일차적으로는 사물의 무게에 대한 상대적이고도 주관적인 감각이며, 이차적으로는 '개인', '자유', '감성', '우연', '일회성', '유연성' 등과 함께 묶일 수 있는 추상적 관념입니다. '가벼움'은 '무거움'과 일대일로 대응합니다.

가벼움움은 양이 적거나 강도가 약한, 얕은, 쉬운, 희미한, 사소한 의미를 표현하며 사회적으로는 행실이 나쁨을 뜻하기도 합니다. 한자의 輕은 경박, 경솔, 경거 등으로 활용되며 진지하지 못함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가볍다'는 것은 좋은 의미 보다는 나쁜 의미로 많이 사용되어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가벼움이 현대의 확고한 트랜드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의 시대적 흐름이 가벼움입니다. 경량화, 초경량화의 시대입니다. 크고 무거운 워크맨은 작고 가벼운 MP3 플레이어로 대체되었고, 테이프, 레코드는 디지털 기호가 되어 무게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진을 인화하던 필름도 디지털 기호가 되어 무게가 사라졌으며,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운동용품들 운송수단들이 얼마나 가벼워졌습니까? TV 채널수가 많아짐에 따라 한 채널 한 채널의 무게는 그만큼 가벼워졌습니다. 이렇듯, 가볍다는 것은 현대적인 미덕입니다. 가볍다는 것은 현대인들의 즐거움인 것입니다. 복잡하고, 심각하고, 진지한 것이 아닌 단순하고, 감성적이며, 즐거운 것의 추구는 현대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 핵심 가치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제품이 가벼워야 잘 팔리는 시대인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작고 가벼워야 무엇이든지 인정받고 또한 잘 팔릴 수 있다는 사실! 웰빙바람을 타고 부는 체중감량의 광풍은 경량화 시대를 사는 또 하나의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경량화, 초경량화의 사회적 흐름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볍다는 것에는 나쁜 의미도 있지만 일괄적으로 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벼워야 좋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가벼움이란 것이 최고의 선일 수도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무거워할 것은 무거워야 하겠지만 또한 무거워서는 안되는 것은 가볍게 하는 것이 은혜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먼저 가벼워서는 안될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가벼울수록 값이 떨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금덩이나 다이아몬드는 가벼울수록 값이 없습니다. 
존재는 가벼워서는 안됩니다. 그 어떤 종도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됩니다. 존재는 다 귀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존재를 가볍게 하는 것,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하면 하나님 앞에 벌을 받습니다. 사랑도 가볍게 하면 안됩니다. 책임지지도 못할 사랑을 하면 안됩니다. 신중하고 무겁게 사랑을 해야합니다. 
어떤 곳에 속하였을 때 그것이 정치적인 정당이든 어떤 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체든 철새처럼 가벼이 움직이면 안됩니다. 선택은 신중하게 하고 선택했으면 생명 걸고 지켜가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떤 정책이나 법들이 가벼워서 너무 자주 바뀌면 안됩니다.  
기자들이 기사를 가볍게 다루면 안됩니다. 검찰이 인신구속이나 수사를 가볍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입은 가벼우면 절대로 안됩니다. 입은 무거울수록 좋습니다. 
이것들에서는 철저하게 가벼움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한없이 무거울수록 좋은 것입니다.

생활의 편의를 위해서 가벼지는 문명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가벼워지고 인생관이 가벼지고 죄짓는데 가벼진다고 하면 바람에 날리려가는 쭉정이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혼이 풍선처럼 바람만 들어가 있을 뿐이어서 가볍게 너무나도 가볍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옮겨다닙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설교하는 교회보다는 무지개처럼  찬란하고,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설교를 하는 교회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은 것을 생각해 봅시다. 이 세상에는 가벼우면 가벼울 수록 좋은 게 있습니다. 
멍에와 짐은 가벼울수록 좋은 것입니다. 옷이나 신발은 가벼울수록 좋습니다. 여행갈 때 짐은 가벼워야 여행이 즐겁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질병, 세금, 책임, 마음 등은 가벼울수록 좋은 것입니다.  

이 세상은 가벼워야 좋을 것들이 너무 무거워 신음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 모든 인생을 주님께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존재로 보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어떤 사람들은 그 짐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에서의 삶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해서 가벼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은 눈에 보이는 짐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짐들이 더 많습니다. 근심, 걱정, 괴로움, 슬픔, 아픔과 고통, 좌절과 절망, 후회, 원망, 불안과 두려움 등..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줄어들지 않고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무거워지는 짐들이 있습니다.

이런 무거운 짐으로부터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잠시라도 이런 짐들로부터 벗어나려고 어딘가에 기대어보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을 기대었다고 이용당하고 오히려 더 고통을 당합니다. 이리 돌려 막고 저리 돌려 막다가 마지막에는 봇물이 터져버리는 것과 같아서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탈줄구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방법이 있습니다. 주님께 탈출구가 있습니다. 
주께서 오라 하십니다. 주계서 쉬게 하시고 멍에와 짐을 가볍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이용하지 아니하시고 더 쉽고 더 가볍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더 풍성케 해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버리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주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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