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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 (요 3: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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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 (요 3:16~18)
 

집을 짓는 데는 기초 또는 토대가 중요합니다. 기초를 무시하면 집을 짓는 도중에 무너질 수도 있고, 다 짓고 나서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아니면 피사의 사탑과 같이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집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려서 사람이 거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건물을 짓기 전에 기초를 다지는 작업을 합니다. 땅속에 커다란 암반이 가로 놓여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강철로 된 파일을 박아서 지반 보강 공사를 한 후에 그 위에 건물을 짓습니다. 

기초는 신앙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집을 짓는 데 비유하셨습니다. “24)…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쁨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그 사람의 믿음이 온전한가, 온전하지 못한가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믿느냐? 그리고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가?” 하는 물음에 바른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와 같으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이 두 물음에 대하여 성경에 근거한 바른 답을 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믿어야 할까요?

올해 미국 해외선교연구센터(OMSC)의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기독교 인구가 약 22억 7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분류하면, 로마 가톨릭이 11억 3458만여 명, 독립교회 및 개신교 8억 1116만여 명, 정교회 2억 5417만여 명, 성공회 8472만여 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계인구 약 68억 3천만 명 가운데 39%가 기독교인인 셈입니다. 열 명 중 네 명꼴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겨우 12명의 제자로 시작하신 기독교가 이처럼 세계 모든 나라와 족속들에게 전파되어 풍성한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 둘 것이 하나있는데, 그것은 이 통계치에 나온 기독교인 모두가 다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실상은 복음의 진리와 거리가 먼 기독교 종파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자들을 ‘다른 복음을 좇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갈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통계치를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참고 자료로 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소위 기독교의 토착화를 내세워서 비 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신학자도 있고, 목회자도 있고,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면서도 예수님을 믿건 부처를 믿건 또 다른 신을 믿건 상관없이 다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또 언젠가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한 신학교수도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기독교인이었다가 타종교 예를 들면, 불교나 이슬람 등으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단의 미혹을 받아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왜 이와 같은 일들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올바로 알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올바로 알지 못하면서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고, 신학 교수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목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비기독교적인 종교 이론에 불과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의 주장을 배척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이들을 마치 지동성을 주장했던 갈릴레오와 같은 자들이라고 칭찬합니다. 그러나 세인들의 칭찬을 의식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혼잡하게 만드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죄가 됨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오직 성경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만이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신구약 성경 66권의 중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 오경을 읽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예언서와 역사서와 시편과 같은 책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을 해석하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이심을 증언한 것입니다. 특히,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애의 활동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 하나 같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복음서의 증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줍니다. 복음서를 차근차근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인생을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느끼고, 주님의 아름다운 인품을 대하고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공생애가 끝나갈 즈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신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사람들에게서 들은 대로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백성들의 평가에 대하여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를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런 위인들 가운데 하나로 생각한 것은 백성들로서는 예수님을 최고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평가를 거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신앙고백과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그리스도 곧 구세주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와 같은 존재는 인류 역사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시고,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인류의 스승으로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보면 예수님을 석가와 공자와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인류의 사대성인 중 한 분으로 가르칩니다. 이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 중 하나로 본 유대인들의 견해와 비슷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성인 중 한 분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크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하나 뿐인 아들 곧 독생자시며,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구원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유일하신 주님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요?

서두에서 말씀한 것처럼, 이 지구상에는 22억 7천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있지만, 그 가운데는 주님의 인정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가 하면,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기독교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에 의해서 이 둘을 나누는 것일까요? 그것은 앞에서 말씀해 드린 대로,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믿느냐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같은 고백을 한다고 해서 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으로 한 신앙고백의 진실함을 실재적인 신앙생활을 통해서 입증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가?’ 라는 물음 앞에서 우리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이적은 사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그 사건이 중요한 성격을 갖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 보면, 단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부스러기를 열 두 광주리에 차게 거둔 것까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에는 그 이튿날에 있었던 일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적의 떡을 얻어먹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에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능력만 행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처럼 적은 떡을 가지고 기적을 행하여 수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시는 것을 보고는 그들은 일심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이튿날에도 벳세다 해변으로 갔다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자, 배들을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반기면서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 하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찾아온 의도를 아시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는 말씀은, 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서 그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말해 주는 표적인 것을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복음서를 읽을 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보여주기 위한 기적 곧 표적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35장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인데, 그 5절 이하에 보면 “5)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 예언에 언급되어 있는 이적을 행하는 분이 곧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고쳐 보게 하시고, 귀머거리를 고쳐 듣게 하시고, 벙어리가 말을 하게 하시고, 저는 자를 고쳐 주신 것은, 단지 그 같은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 예언한 바로 그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표적입니다. 단지 배고픈 사람들에게 떡을 배불리 먹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같은 이적을 행하는 이가 그리스도이신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눈이 어두운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경험하고서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도 떡을 얻어먹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오늘날도 비슷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주님을 위해 열심 내는 것 같지만, 실은 이 땅의 번영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미국에서는 번영신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시는 주님의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인즉, 이 땅에서 번영을 누리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예수 믿는 목적이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얻어먹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저들이 묻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예수님 보다 떡을 더 중요하게 알았으므로 묻기를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이적을 보았고, 어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았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 다른 기적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 한번 우리에게 떡을 주었지만, 모세는 광야생활을 하던 4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우리 조상에게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로 인정받고 싶거든 그만한 기적을 행해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기적을 보여주면 하나님을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핑계에 불과하고 계속해서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감각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에 토대를 두어야 합니다.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11장 1절에 이르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사실은 그가 행하신 일들을 구약의 예언에 비추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예수님께서 행하신다면 그것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믿고 따라야 하는데도 그들은 계속해서 또 다른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저들의 믿음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는 감각적인 것에 토대를 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자들이 만나에 관해서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참 떡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말하기를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 6:)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주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므로 서로 다투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문자적으로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것은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사람이 음식을 먹고 육체의 생명을 누리듯이, 예수님이 믿는 자들에게 영적인 생명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몸은 음식을 먹어야 살지만, 우리의 영혼은 예수님을 믿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양식이요 음료가 되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땅의 양식은 먹어도 결국은 죽고 말지만, 하늘로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간단하게 줄여서 영생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영생을 얻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영혼의 구원은 곧 영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시자, 그들은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므로,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하나 둘 떠나갔습니다. 그리하여 평소에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 다니던 사람들 중에 많이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바른 신앙을 고백한 데 이어 이번에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번영을 누릴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 같은 목적이 달성되는 동안에는 열심히 주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고 예수 믿는 일로 손해를 보게 되면,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이 잘못이었다고 하면서 물러갑니다. 처음부터 예수 믿는 목적이 잘못되었으므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는 목적이 올발라야 합니다. 아무리 예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더라도 그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얼굴을 내고 명예를 얻고 대접 받기 위한 것이었다면, 결코 주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에 이르기를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 고난을 받게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들을 멸망에서 건져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심판을 면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아 누리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는 것이 곧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믿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양식이 되시고 생명의 원천이 되십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로 알고 믿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믿습니까? 이 두 질문에 대하여 시몬 베드로처럼 바른 신앙을 고백하심으로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영생의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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