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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원하는 자들이 성막을 세웠다 (출 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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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하는 자들이 성막을 세웠다  (출 36:2~7)


I. 성막을 지어라

어느 교회 주일낮예배 목사님의 설교 제목이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이었습니다. 낮예배를 마치고 주일밤예배 목사님의 설교 제목은 「예수님을 찾아라」입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설교 제목 두 개를 비교해 보더니 "낮에 물 위로 걸어오시다 예수님, 물 위로 빠지셨나?" 그러더랍니다. 

지금 물에 빠진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전 세계가 물에 빠진 것처럼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 정치사회가 물에 빠진 것처럼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물에 빠진 것처럼 갈 길을 알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습니다. "큰일났다"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고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눈물 흘려 기도하는 사람들, 대안이 되어보고자 나서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부흥하기만 하던 한국교회가 위기를 만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초 우리교회는 창립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우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아직도 몸부림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한민족을 살리는 우리교회
한국교회를 살리는 우리교회
영혼을 살리는 우리교회가 되고자 몸부림을 해 왔습니다. 

주님의 심장속에 있는 교회는 도대체 어떤 교회일까? 신약성경에 있는 교회는 도대체 어떤 교회일까? 초대교회를 변화시켰던 사도행전적인 교회는 도대체 어떤 교회일까? 마지막 시대 성령께서 우리 시대에 세우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몸부림하는 교회론 가운데 셀교회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셀교회가 온전한 교회는 아닙니다만 신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가장 근접한 교회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가정에서 모이는 작은 교회 즉 셀들이 진정한 교회가 되는 비전입니다. 셀리더들이 주님의 성품을 닮은 진정한 지도자로 살아가는 비전입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하는 교리의 개혁, 우리가 성직자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예배의 개혁,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이 사역자가 되는 만인제사장, 사역의 개혁이었습니다. 

혹자들은 이 셀 교회운동을 일컬어 두 번째 종교개혁이라고도 합니다. 
첫 번째 종교개혁이 성직자들의 손안에서만 머물던 성경책을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듯이 두 번째 종교개혁은 성직자들의 손에만 머물던 사역을 온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는 운동이라고 합니다. 

불신자가 주님 앞에 돌아와서 구원받는, 그리고 비신자를 전도하여 부흥되는 교회 모델을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 것인가? 죽은 예배를 살려내고 예배시간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며 예배의 영광이 회복되기를 열망하는 교회를 우리는 보고 싶었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감히 이기지 못하는 권세있는 능력있는 교회를 맛보기 원했던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우리교회 창립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1년 이상 진행되어온 비전채플이 땅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공동체를 세우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 공동체는 누가 세우는가? 어떻게 세우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애굽기는 단순히 "애굽에서 나온 얘기"만은 아닙니다. 출애굽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책제목으로 "출애굽기"란 말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출애굽기는 예배의 영광을 준비하는 책입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예배를 회복하는데 있었습니다. 출애굽기는 1장부터 40장까지입니다. 

1-18장까지 애굽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19-24장 중간은 시내산 언약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특권이 무엇인가? 구원받은 백성은 이 특권을 어떻게 누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25장-40장 성막을 지어 가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영광스런 교재를 누리는가? 하는 것은 보여줍니다. 

그중 오늘 본문 출애굽기 35장 - 36장 성막 건축을 위해 지도자 모세가 백성들에게 헌신을 요구하고 백성들이 기쁨으로 헌신하여 성막을 세우는 얘기입니다. 

본문을 무대 위에 올려보십시다.
시내산 위가 펼쳐집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성전을 어떻게 지어라. 성전에 들어갈 기구는 이러이러한 것들이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모세가 친구처럼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행복한 교통! 교제가 이루어지는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편 장면이 바뀌어 시내산 아래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금은보화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 절합니다. 그 앞에서 술 취하고 방탕한 짓을 합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애굽세대를 버리시기로 작정하지요. 그 순간 모세가 생명을 걸고 하나님 앞에 중보합니다. 한 팔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다른 한 팔로는 백성들을 붙들고 생명을 걸고 생명책에서 나를 지워버린다 할지라도 이 백성들을 건져달라고 애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공동체 예배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부여해 줍니다.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요. 모세가 백성들에게 성막을 함께 짓자고 요청하게 되고 백성들이 기쁨으로 응답합니다. 조금도 아까와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자원하여 금은보석을 제물을 바치는 얘기로 막이 내려집니다. 

자칫했더라면 광야 한복판에서 이스라엘은 출애굽기의 목적이었던 예배공동체를 건설하는 이 사명, 이 소명, 이 직분을 빼앗길 뻔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가 가장 큰 비극이 있다면 게으름과 불충성으로 우리의 사명, 소명, 직분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에게 소명을 빼앗겼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구원 공동체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설계도는 절대 실패한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를 그치고 찬양하기를 멈출 때에 저 돌들이 소리를 지르고 파도가 춤을 춰서라도 하나님께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광야에서 유기될 뻔 했던 이스라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모세의 중보기도, 모세의 요청, 백성들의 자원하는 헌신으로 자칫 송두리째 빼앗길 뻔 했던 직분과 사명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내 목숨이 온 천하보다 귀중하지만 이 목숨 역시 사명을 감당할 때, 직분을 감당할 때만이 소명을 감당할 때만이 존재가치와 삶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II.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백성들의 헌신을 필요로 하는가?

구원공동체, 예배공동체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구약의 성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역대하 6:18)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당당히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그 엄청난 복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약교회 성도들도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고후8:3) 헌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헌신의 복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 앞에 헌신의 문제에 부딪히면 늘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농부의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송아지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두 부부가 의논하기를 한 마리는 키워서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했더랍니다. 어느날 송아지가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었습니다. 남편이 울면서 "여보 큰일났어. 하나님 송아지가 죽었어" 그러더랍니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힘에 지나도록 헌신하는 사람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자원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구원 공동체는 세워져 간다. 자원하는 백성들을 통하여 즐거이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성전 공동체는 세워져 간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온 땅과 하늘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주의 무엇이든지 사용하여 당신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별을 이용하여 동방박사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풍랑을 이용하여 요나를 부르셨는가 하면, 파리 떼와 메뚜기 떼를 동원해서 바로를 굴복시키셨고, 나귀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달과 바람과 우박을 이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공동체, 특히 성전을 짓는 일만은 유독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죄인들을 불러 구원하는 복음전도의 사역만큼은 하늘의 천사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요? 그 상급은 너무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공동체를 건설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이 엄청난 일들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무 소중한 상급이겠기에 그 상급을 당신의 자녀들, 백성들 외에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수고하지 않아도 되게 좀 신비한 방법으로 성전을 짓지 않는 것일까요?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듯이 예배당 건축도 하나님이 신비하게 하시면 안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꿈땅'을 사서 준비만 해 놓으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들을 보내서 하룻밤사이에 뚝딱뚝딱 예배당을 지어놓습니다. 그러면 저는 광고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다음 주일이 우리교회 입당일 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인류 역사상 한 번도 하나님은 그렇게 성전을 지었거나 그런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기독교는 참으로 신비한 종교입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공동체를 건설하는 이 일은 신비한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와 헌신을 통해서 세워지길 원하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상급이 되기를 원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헌신을 요구하신 것은 충성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헌신과 충성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자신들의 왕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내 마음이 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내 심령이 이 땅에 있지 아니하지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전건축에 필요한 물건을 신비하게 준비하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준비토록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때 몸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입술로 섬길 수 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성품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물질로 건설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모든 물질은 애굽을 떠날 때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400년 노예 생활의 퇴직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전리품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나온 모든 물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헌신을 통하여 재물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게 한 것입니다. 이 헌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죄짓는데 쓰던 물질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물질이 거룩하게 구별되는 순간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이었고, 물질이 거룩하게 구별되어져서 드려지는 순간 이스라엘 공동체가 거룩하게 구별되어져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 헌신은 회개의 가장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이는 출애굽 공동체뿐만 아니라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몽골에서 온 한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선교헌금을 받아다가 몽골에 교회를 세우고 무조건 섬겼습니다. 무조건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섬겼더니 1년 2년이 지나 사람들은 많이 모였는데 그들의 믿음이 전혀 성장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가르쳐야 되겠다. 은사도 바치고 몸도 바치고 물질도 바치라고 십일조도 바치라고 가르쳤습니다. "뭘 바칠까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농삿물을 바치고 양을 키우는 사람들은 양에서 나오는 소득을 바치고 월급을 받는 사람은 그것의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그랬더니 어느 주일날 큰 보따리 두 개가 강단 위에 올라왔더랍니다. 

그런데 예배당 안에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더래요. 보따리 두 개를 열어보았더니 소똥 보따리입니다. 몽골에서 소 똥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는데 소똥이 중요하고 풀밭을 가꿔 양을 키우는데도 소똥이 중요하고 추운 겨울날 바람을 막는데 흙으로 지은 집에 소똥을 발라 놓아서 바람이 통하지 않도록 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소똥을 말려서 군불을 때면 방이 뜨뜻하게 난방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소똥 십일조를 갖다 바친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감사함으로 받고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창고 곳간에 흘러 넘치게 해 달라고..." 마음껏 축복을 했습니다. 이 주일 소똥 십일조를 바친 이후에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마을에 있는 이웃 마을에 있는 소들이 산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자기 집으로 들어갈 때 이 집 앞을 지나갈 때 반드시 이 집 앞에서 똥을 싸고 지나가는 겁니다. 양들이 수천마리 지나가다가 전부 이 집 앞에서 똥을 싸는 겁니다. 갑자기 이 집 앞에 소똥 더미가 가득히 차게 된 것입니다. 소똥 곳간이 차고 넘쳤다 하는 얘기입니다. 

III. 자원하는 자들과 함께

구원공동체 즉 장막을 건설하는 하나님의 큰 원칙은 자원하는 자들을 통하여 장막공동체를 건설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원하는 심령들을 통하여 구원공동체를 건설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방관자 구경꾼들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간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원칙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이란 마음에 이미 하나님이 자리 잡고 계셔서 자신의 심령이 하나님의 처소, 장막이 된 사람들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은 즐거이 드리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금이나 은, 목재나 쇠붙이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원하며 헌신하는 마음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원하여 드릴 때 헌물이 차고 넘쳐습니다.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출36:5) 

이 얼마나 즐거운 비명입니까? 자원하는 마음이 있는 공동체엔 언제나 즐거운 비명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행복한 비명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마다, 여러분의 하는 일터마다 여러분의 모든 심령 자손대대에 행복하고 즐거운 비명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장막을 짓는데 백성들이 모세의 명을 따르지 않고 비협조적이고 방관적이었더라면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러나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버림받을 자신들에게 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가져왔습니다. 출애굽 장막 공동체는 지도자 모세의 비전과 백성들의 자원하는 마음과 헌신으로 지어졌습니다. 

35장부터 자원의 예물을 드리고 성막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출애굽기 저자는 여인들의 헌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여인들이 앞장 서 예물을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팔찌, 귀고리, 가락지, 목걸이, 청색 자색 홍색실, 가는 베실, 염소털, 숫양의 가죽, 모두 여인들의 헌신 목록입니다. 

특히 성막뜰에 물두멍이란 게 있습니다. 물두멍은 놋으로 그릇처럼 둥글게 만들어 물을 담아 두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제사장들이 제사하기 전에 손발을 씻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이 쓰던 거울을 녹여서 물두멍을 만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거울은 놋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인들의 얼굴을 비춰주는 것이 거울입니다. 화장 거울을 녹여 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자기를 가꾸던 물품을 녹여 하나님을 보여주는 제물로 삼았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애굽 여인들의 풍속을 따라 멋을 내고 자기를 가꾸는데 사용하던 물건을 바쳐서 성막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멋을 내던 놋거울을 녹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나만을 위해 쓰임받던 것이 하나님을 위해 쓰임받았습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쓰임받았습니다. 예배를 위해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인들은 범죄한 백성들이 양을 끌고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죄 용서 받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 영광스런 사역을 위해서 자신들도 쓰임받고 싶은 거룩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예배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쓰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의 영광이다. 구원 공동체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쓰임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의 절대적인 영광이다. 이것이 출애굽 여인들의 고백 신앙이었습니다. 

마침 이 설교를 준비하는 주말에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한 부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목사님 지금 막 건축헌금으로 5천만원을 온라인 송금했습니다. 사연인즉 얼마전 남편이 별세를 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조그만 보험 하나를 든 모양입니다. 보험금이 5천만원쯤 나왔다고 합니다. 이 돈이 너무 소중해서 그냥 자신을 위해 쓸 수 없는 것입니다. 봉투를 들고 기도하는데 교회 비전채플 한켠에 사랑하는 남편의 마음, 흔적을 남기고 싶더랍니다. 자녀교육을 위해서도 쓸 일이 많지만, 아버지가 없는 그 자식의 장래마저 하나님께 맡기고 돈이 아니라 기도로 양육할 때 어떻게 하나님께서 양육하시는가 보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남편의 생명 값으로 얻는 이 돈이 교인들이 예배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민족을 살리는 작은 일의 씨앗 한 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말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돈을 제게 준 것이라면 다시 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천상의 헌신이라 돌려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마리아처럼 향유옥합을 송두리째 깨서 드리는 예물인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하나님 앞에 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이런 마음들이 비전채플을 지어 가는 것이겠지. 
그래 이런 마음들이 구원공동체를 건설하는 거야. 
그래 이런 자원하는 심령들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이겠지.
하나님께서 구원공동체, 예배공동체, 이 땅에 쓰임받는 비전공동체를 만들어 가시는 큰 원리가 있습니다. 나는 자원하는 심령들을 불러서 그들을 통하여 내 나라를 만들어 갈 것이고 그들에게 내 나라의 영광을 줄 것이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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