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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속사와 부모공경 (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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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와 부모공경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Ⅰ. 본문해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 중 하나입니다. 이 계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실 때 부모공경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셨는지 알게 됩니다. 


Ⅱ. 부모공경의 계명 

즉 부모공경의 계명은 단순히 가정의 행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 세상을 구원하셔서 창조의 목적으로 돌이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공경의 계명이 구속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요? 우선 이 계명이 십계명 안에 등장한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히 우리를 구속사와 십계명의 관계에 대한 이해로 데려갑니다. 

A. 구속사와 십계명 

인간의 타락 후에 하나님은 아담과도, 노아와도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지만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실질적인 조상은 아브라함으로 생각됩니다. 신약의 첫머리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로 시작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하나님을 모르는 메소포타미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택하셔서 모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의 우두머리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본질적으로 모두 은총의 약속이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은총을 베풀겠고, 후손에게 복을 주어 만민이 그들로 인하여 나를 알고 복을 받게 될 것이라.”라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에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준수할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일방적으로 은총을 베푸시겠다는 약속이 큰 것입니다. 이 약속의 실현을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의 민족으로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디어 역사 가운데 그들을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허락하시는 계획을 실현하셨는데 그 역시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열매였습니다. 

십계명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던 도중에 시내산 아래서 머무르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배워가던 때에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중보자로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으로 볼 수 있는 십계명에는 앞서 아브라함의 언약과는 다른 측면이 있었습니다. 즉 본질상 계약인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의 표준을 제시하셨는데, 그 가운데 그래서 만일 하나님을 잘 믿고 순종의 삶을 살면 복을 주겠지만, 반대로 순종치 아니하면 계약을 파기한 자로 여겨, 준엄한 심판을 하시겠다고 뚜렷이 밝히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에게는 한없는 축복이 주였지만, 모세와 맺으신 언약에는 백성들의 신앙적인 성숙을 전재로 축복과 저주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능력대로 모든 율법을 지킬 것이라고 여기시고 십계명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율법을 따라 살 수 있도록 돕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또한 모세와 같은 지도자, 선지자, 제사장, 여러 제도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힘을 주셨고, 죄를 범하였을 때는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제사의 기회도 주셨습니다. 이것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질 성령의 은혜에는 미치지 못하였지만 율법을 지킬 은혜의 수단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른 민족들과는 구별되어 거룩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알고, 그들이 구원받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부모공경의 계명 역시 그 뜻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B. 십계명과 부모공경 

그렇다면 십계명과 부모공경의 계명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먼저 계명의 위치를 살펴봅시다. 부모공경의 계명은 “너는 나 위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라는 첫째 계명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의 다음에, 그리고 “살인하지 말지니라”부터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라는 계명의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의무와 인간을 향한 의무를 가르치고 있는 계명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계명 역시 사람인 부모를 향한 계명일 뿐인데 왜 양쪽의 연결고리로까지 격상시켜야 하느냐고 물을지 모릅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이 계명은 대인적인 계명입니다. 그러나 미묘하게도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제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전체 사이에 맺어진 언약관계를 표상하고 있습니다. 즉 이 언약의 핵심에 “나는 너의 하나님으로서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나의 백성으로서 자녀가 될 것이니, 부모가 자녀를 사랑과 정의로 대하는 것처럼 나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를 한없는 자비와 의로움으로 돌보겠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십시오. 당시의 땅의 개념은 오늘날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땅은 물질로 환원될 수 있는 물질보다는 차라리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땅을 기초로 계급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로 살았던 것도 허락된 땅이 없어서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 약속은 상상할 수도 없는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축복인 “네 생명이 길리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확정한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전쟁과 질병 속에서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축복으로서 장수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끄는 최고의 축복 둘을 제시하시면서 부모를 공경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공경의 계명이 하나님께서 창조목적을 구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본받는 거룩한 백성이 되고 그 부모를 자녀들이 진실하게 공경함으로써 자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고, 부모는 자녀에게 공경을 받기에 합당한 거룩한 부모가 되어가는 세대의 연결을 하나님께서 경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질서와 사랑의 연합으로 구별된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보고 이방의 민족들은 자신들에게는 없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이 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이키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구속사를 이어가시는 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시는 방법입니다. 


Ⅲ. 공경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부모공경이 무엇입니까? 

A. ‘카베드’ 

공경은 ‘카베드’라는 상태동사로부터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정신적인 의미에서 사용될 경우에는 남이 없는 중요한 특성들이 있기 때문에 존중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카베드’라는 단어에서 영광이란 단어 ‘카보드’가 등장합니다. 영광과 공경은 그래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영광은 한 사람이 남이 가지지 못한 무게-물질, 명예, 정신적인 특징들-로 인하여 함부로 취급받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 함부로 하지 않고, 그를 무게를 가진 영광스러운 존재로 생각하여 자기를 낮춘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도 ‘공경하다’라는 단어는 똑같이 하나님께도 사용됩니다. 그러면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이 돈, 명예, 땅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성경이 말하는 참된 구원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공경하는 이유는 당신 자신의 특성들 때문입니다. 즉 시간과 관련해 영원하시고, 장소와 관련해 어디든지 계시고, 속성에 있어서는 우리를 향하여 자비롭고, 의로우시고, 신실하시고, 긍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참된 지식 안에서만 하나님을 향한 공경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부모가 하나님과 같을 수는 없지만 만약에 그분처럼 의롭고, 진실하고, 긍휼에 넘치며, 자녀가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고귀한 성품을 지녔다면 공경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죄가 들어온 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경륜은 이러했습니다.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자녀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로부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우고, 자기가 접하는 자연의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배웠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개별적인 교제를 통해서도 주님의 무한한 성품과 거룩함을 배워나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자연적인 지성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충만하게 알아간 부모의 하나님의 아는 지식을 능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부모는 자녀에게 스승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자녀는 부모를 통해서, 부모는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상승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이 일치되는 가정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모든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공경하고 그분의 속성을 배우는 사람이 될 수 없었고, 설령 그랬다고 할지라도 자식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싫어하고 그분과 원수 맺었기 때문에 참된 부모를 통해 비치는 진리의 빛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부모와 자식이 모두 타락함으로 부모는 참된 부모가 될 수 없고, 자녀는 참된 자녀가 될 수 없어 가정은 파괴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속성과 공경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B. 속성과 공경 

하나님과 관련하여 우리가 배워야할 지식은 하나님의 속성과 그 속성이 우리의 삶 속에서 행사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속성을 배우면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고, 미약하나마 그 속성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속성이 공경의 원인이 되고, 공경하면 속성을 닮게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 이후로 이것은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더 이상 아무리 가정의 회복을 노래하고, 그 정당성을 정치적 구호로 외쳐도 가정은 급속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거스르는 인간의 이기적인 죄악과 욕망은 산업화 사회라는 훌륭한 배경을 갖게 되었습니다. 

경쟁사회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해 가정마저 자기실현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공동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그렇지 못할 경우 폐지해도 된다는 암시를 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일회용품과 규모 없는 소비생활은 어떻습니까? 그 가운데서 인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들은 더욱 현실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가상의 공간으로 빠져나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위협들을 등지고 참다운 창조의 질서로 돌아오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Ⅳ. 먼저 네 부모와 화해하라 

그 일을 위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공경하는 것처럼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데 실상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부모들이 현실적으로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명하신 화해의 길은 무엇입니까? 

A. 이해와 용서 

부모와 화해하는 길은 먼저 이해와 용서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인생을 살다보면 부모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가 완전하고 위대한 존재라는 환상을 갖거나, 그렇지 못한 장면들을 발견하고는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점차 성장하면서 어른 속에도 자기조차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이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인간적으로 부모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히 화해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의 연약함이 무엇인지 깨닫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은혜의 경험으로부터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고통을 준 많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된 자들이었는데 주님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고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나면 죄인이 얼마나 무력한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 역시 주님을 잘 믿고, 은혜 아래 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의 부모가 주님을 모른다면 더 많이 용서하고 이해하십시오. 여러분도 주님을 몰랐었더라면 다른 이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믿는 부모 역시 의무 하나 때문에 늘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없는 힘없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신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모를 상처받아서 하나님 앞에 안겨있는 어린양으로 보아 깊이 공경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B. 사랑과 공경 

우리는 섭리를 믿는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은 겉으로는 가장 아파 보이는 일들을 통해 가장 큰 기쁨을 주시기도 하시고, 가장 큰 슬픔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와 자비를 베풀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날 받은 상처들을 통해서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의 시인의 고백을 떠올려 보십시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이전에 가슴을 저미는 수많은 일이 있었어도 그 상처 때문에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큰 섭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에 우리가 이토록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없이 살았던 날들도 하나님이 친히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크신 섭리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크신 사랑을 가슴에 안고, 부모를 불쌍히 여겨 사랑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Ⅴ. 결론: 별처럼 빛나라 

그래서 남은 날들이라도 부모를 공경하고 오랫동안 부모는 우리의 상처가 되었지만, 우리의 이름은 그분들의 위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정의 아픔을 끊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면서 사는 가운데, 당신을 경외하고 십자가 사랑을 아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정으로서 어두운 세상에 별처럼 빛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사실을 꼭 붙들고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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