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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짐 맡은 우리 구주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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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짐 맡은 우리 구주 (마 11:28~30)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 자리까지 오기를 얼마나 망설임을 가졌겠습니까? 그래도 그것을 뿌리치고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이번 노무현 전직 대통령 서거 소식과 장례절차를 보면서 우리 국민 모두가 받은 충격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한 주간 내내 참 비통함을 지울 길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고인이 남긴 유서를 보면 그가 당한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됩니다.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일로 전직 대통령의 비극의 악순환이 종식되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져봅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새삼 인생무상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인생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최고의 권력을 누려도 인생의 짐은 누구에게나 무거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참 우리 인생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강한 것 같지만 내면은 참 약한 존재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자체 발사대를 만들어 우주 로켓을 쏘아 달까지 간다는 프로젝트를 내 놓으니 우리 인간은 참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 수백만, 수억 개의 정보를 조그만 칩에 저장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두뇌는 신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 1세기 전 만해도 평균 수명이 40세도 안 되던 나이를 80세까지 끌어올린 것만 봐도, 거의 하나님에 버금가는 능력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대단한 존재입니다.

반면에 인간에겐 나약하고 작은 모습도 있습니다. 주체하지 못하는 슬픔 앞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서운 고독 앞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심각한 질병 앞에서 하얗게 질려 버리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지푸라기와 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리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가엾을 정도로 나약하다는 사실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인생을 향하여 ‘나그네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그 길 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설 때면 우리는 잘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를 좀 더 잘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복병처럼 나타나 우리의 생각과는 점점 다른 길로 가게 됩니다. 이렇게 예기치 못한 일들 때문에 우리에게는 염려도 있고, 불안감도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면 무거운 짐, 뼈아픈 아픔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다 상처가 있고, 그 어떤 누구에게도 없는 자기만의 상처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인간은 그 누구라도 불구하고 저 전능하신 여호와의 손길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한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 그렇습니다. 다 괜찮은 모습으로 앉아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어느 가정, 어느 개인 할 것 없이, 예외 없이 깊은 탄식과 자기 연약함과 죄의 상처와 자기만의 안고 있는 삶의 특별한 아픔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이런 인생을 향하여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고하고'라는 말과 무거운 짐진자라는 헬라어의 어원은 문법적으로 두 동사 모두 현재 분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분사형은 아직도 동작이 계속됨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수고와 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문법적으로 ‘수고하고’라는 말은 ‘스스로 많은 일들을 계속하여 피곤에 지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무거운 짐진 자'는 '타인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진 채 계속해서 지쳐 있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자의에 의해서든지 아니면 타의에 의해서든지 그 어느 누구 하나 예외없이 세상 짐에 짓눌린 가련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지고 있는 이러한 수고와 짐을 내려놓고 이제는 쉬어보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실패합니다. 내려놓는 것 같지만 또 다른 짐을 짊어지게 되는 것을 많이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왜 안열립니까? 왜 안식이, 쉼이 없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자물통을 여는데 제 열쇠가 아닌 다른 열쇠를 가지고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쉼을 주시는 분은 분명히 예수님 자신이심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이라는 약을 써야 하는데 엉뚱한 약을 쓰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배가 아픈데 혈압 약을 먹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신데,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아니하고 다른 인간적인 방법으로, 다른 무엇으로 안식을, 행복을, 쉼을 찾고 있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연약한 인생들에게 절망하는 인생들을 향해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보세요. 두 팔을 벌리시고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에게는 안식을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감히 이런 절대적인 초청과 약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초청이요 절대적인 약속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은 오라. 많이 배운 사람은 오라. 건강한 사람은 오라 하셨다면 어떤 사람은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다 내게로 오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초청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전 우주에 유일한 신이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가장 권세 있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분이요,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들이 그 발 앞에 엎드려 영원토록 찬송해야 될 영광의 주님, 승리자 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나를 초대하여 나의 인생의 짐과 내가 살면서 버거워하는 수고의 삶을 다 맡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기쁨의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분이 나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도 무덤덤해요. 별로 감동도 받지 않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죄 때문입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 인간을 보시고 구원받아야 될 존재로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이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우리 모두 다 죽습니다. 육신이 죽고 난 다음에 죄의 결과로 따라 오는 것이 있습니다. 심판입니다. 여러분 심판의 무서움을 압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압니까? 여러분 법원에서 판사가 호출을 해도 가슴이 덜렁덜렁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다면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아십니까?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심판을 면하려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아들 독생자 예수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8: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생각과 계획보다 더 멋진 것을 갖고 계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 우리 인생이 안고 있는 짐, 그 수고를 맡아 주시겠다고 여러분을 초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당신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 주십니다. 오늘 2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 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어떤 사람들은 ‘배우라’ 이 말만 들어도 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좋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배우라, 저 같은 사람은 배우라는 이야기만 들으면 심장이 뜁니다. 사실 저도 공부를 그렇게 잘 했던 사람은 아니예요. 그래서 배우라 그러면 스트레스가 생겨요. 제가 워낙 특공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공대는 특별히 공부 못하면서 대가리가 돌인 사람을 특공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게 그냥 배우라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니까 더 스트레스가 생겨요. 혹시 우리가 이런 오해를 할까봐 다음절에서 예수님을 친절하게 이렇게 덧 붙이셨습니다. 30절에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운 것이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내 멍에다.’란 단어는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내 입장에 서서 나를 세워주고, 나를 풍성케 하시기 위해 함께 하시는 멍에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이 안 맞는 고통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요즘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몸살을 앓고 있습니까? 서로 맞지 않아서 오는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 인터넷에 오른 찬반으로 갈린 댓글을 보면서 어떻게 같은 사건을 저렇게 해석이 엇갈리게 보고 있는지... 문제를 보고 통증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갈 수 없을 정도로 원수 같이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이렇게 맞지 않으면 고통이 일어납니다. 부부간에도 맞지 않아서 사네 안사네 고통하지 않습니까?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이혼률이 높은 나라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한국입니다. 이혼사유 1위가 성격차이입니다. 까다로운 성격을 누가 맞추면서 살겠습니까? 안 맞아서 못살겠다는 것이 이혼입니다. 그러니까 70이 다 된 부부가 황혼 이혼을 하겠습니까?

또 어렵게 들어간 직장인데 막상 들어가 생활해 보니까 도저히 맞지가 않아요. 그러니 그 순간부터 일하는 것이 고역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갓 입사했다가도 안 맞으면 금방 나옵니다. 뭐, 교회도 예외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 성도 한 분은 이곳에 이사를 와서 6달 동안 이 주변 교회를 다 다녀보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 인생을 맡기고 또 그곳에서 자신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할 만한 교회에 대한 신중함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교회에서도 은혜가 맞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고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한 인생을 살아가는데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방황'이라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 우리 인생에 있어서 방황, 그것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더 무서운 방황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황입니다. 방황은 눈에 안 보여요. 남자고 여자고 마음 속에 이루어지니까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우리의 한번뿐인 인생을 병들게 하고, 우리를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 방황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채 방황하는 분계십니까? 내가 일하긴 하는데 손을 대긴 대는데 내가 이 정도로 할 사람인가? 하면서 하는 일에 대해서 방황 중에 계신 분계십니까? 또 무엇인가 사업을 추진하다가, 그만 장애물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 한 분들이 계십니까? 그 분은 자신에게 맡겨 준 일 조차도 끝내지 못 한 채 인생을 마칠 사람입니다. 또 10년, 20년을 한 지붕 밑에서 부부가 함께 살면서도 아직도 내가 누구하고 살지가 결정 안된 분이 계십니까? 그 방황 빨리 끝내야 합니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 마져도 꺼뜨리기를 심히 원치 않으시는 그 주님의 가슴에 내 인생을 던지셔야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그렇습니다. 어떤 인생의 짐도 심지어 내가 내 힘으로 벗어 던질 수 없는 죄 짐도 그 분은 당신이 나 대신 짊어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 짐을 대신 져 주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성령으로 오셔서 죄 많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와 범벅이 되어 사는 나로 하여금 그 죄와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할 뿐만 아니라!!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새 삶을 살게 하려고!! 하나님은 나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 직업들 가운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가장 대표적인 직업은 아마 스포츠 프로팀 감독일 겁니다. 시합을 앞두고, 하는 동안, 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겠습니까? 지난 번 WBC 세계야구대회에서 한국 팀을 준우승을 이끈 김인식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주간조선을 보니까 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용인에 있는 교회 안수집사님이라고 합니다. 기자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런 겁니다. “감독님, 승패 갈리는 긴장 속에서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나요?” 그랬더니 김 감독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예배를 통해서죠. 특히 찬송가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 좋아하죠. 이 찬송가를 부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마음이 편해져요. 그래서인지 노래방에 가서까지 꼭 부르게 되죠.”

이 시간! 우리 안에 연약함이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인해 염려가 있습니다. 불안한 우리의 미래를 앞에 놓고 두려움에 갇혀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초대하신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도, 놓치지도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내 인생 한 가운데 계셔서 나를 붙잡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닥쳐오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그 섭리를 믿을 수가 있다면, 그리고 내 삶의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을 수만 있다면, 내 삶의 죄악의 상황 속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나를 지키신다는 이 믿음, 이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우리 인생 가운데 다가오셔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그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겨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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