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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행 1:12~14) - 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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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행 1:12~14)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하신 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고, 부활하신 후 40일째 될 때 승천하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승천 후, 제자들을 비롯한 성도들은 이맘때 무엇을 했을까요? 본문 14절 끝을 보면 그 분들이 한 일을 잘 보여줍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오로지 기도에 힘쓴 것, 그것이 그 분들이 하셨던 일입니다. 

여러분, 모든 다른 일을 멈추고, 오직 기도에만 매달려 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대개 우리는 많은 일로 분주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기도합니다. 잠깐 기도합니다. 혹은 기도하는 것을 아예 잊어버리고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직 기도에만 매달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어떨까요? 오래 전 거제도에 있는 한 기도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 한 장로님이 올라와 계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로님은 매우 어려운 지경에 있었습니다. 사업을 하셨는데, 돈을 빌려간 사람이 갚을 형편이 못되어 그 분의 회사까지 부도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까지 막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급한데 여기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사방으로 돈을 구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랬더니 그 분 말씀이 <다 해 봤습니다. 이젠 아무데도 돈 구할 데가 없습니다. 이젠 인간적인 희망이 없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단 한 가지 기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단 한 가지,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막다른 상태에 이른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 장로님은 내내 성전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오후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이 있었습니다. 돈을 갚지 못하던 그 분이 돈을 가져와서 극적으로 부도를 면했다는 것입니다. 몇 년 후 그 근처에 집회를 갔다가 그 장로님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왕성하게 사업을 잘 하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에만 매달린다고 할 때, 그 절박함, 그 간절함이 느껴지시지요? 저도 제가 병원에서 고칠 수 없다는 병으로 고생할 때, 생후 5개월 된 아들이 머리 수술을 받을 때, 의사 자신이 기도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할 때, 교회 건축 중에 IMF를 만나 공사가 중단되었을 때,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때가 많았습니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는지요!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기도하십시오. 우리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때가 사실은 가장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 위대한 일은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본문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도 절박한 모습으로 기도에만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들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기도에 매달리고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4-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성령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임하시길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님이 임하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방법은 <기도>였습니다. 그분들의 기도의 주제는 분명했습니다. <저희들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옵소서>, 이게 그분들의 기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임재가 중요했습니까? 사실 제자들은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가 되기 전에도 그랬습니다. 제자가 된 후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 없는 제자들>은 무능했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이 그 대표적입니다. 그들로서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게 그들의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생선과 떡을 나눠 주면서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요? 예수님께서 떡과 생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자, 받아서 나누어주는 심부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옛말 그대로 원님 덕에 나팔을 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예수님 없이 자신들만 남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을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때 제자들이 왜 근심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두고 떠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계속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자신들만 남게 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안심시키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정말 이젠 제자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무기력증에 빠졌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이게 예수님 없는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두려움 대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아,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는다고 하시더니, 다시 오셨구나, 이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 있는 것처럼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예수님이 또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하늘 보좌로 승천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또 제자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게 그들의 위기였습니다. 바로 이 때 예수님께서 주신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떠나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너희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누구이시기에 그 분이 오시면 해결되는 것일까요?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요, 동시에 예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일체이십니다. 이제 눈앞에 보이는 예수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함께 계시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성령님이 임하시길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예수님은 승천하실 것이므로, 자신들이 승리자의 삶을 사는 비결은 오직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는 것 외에는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성령님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시면 그들과 함께 계시겠지요. 우리 삶에 있어서 <무엇인가와 함께 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공항을 생각해 보십시오. 공항은 반가운 만남의 장소입니다만, 반대로 눈물겨운 이별의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부모를 떠나 멀리 이민을 떠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공부를 위해 떠나고, 아빠가 기러기아빠로 남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찍어 그 사진이라도 가지고 다니면서 보려고 합니다. 사진만이라도 함께 있으면 위로가 됩니다. 사람은 <함께 있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사진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하물며 성령님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성령님과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성령님과 함께 하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와 함께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성령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성령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눈으로 보아야만 아는 것은 아닙니다. 

몇 달 전에 위장 내시경 검사를 했습니다. 저도 제 몸 속에도 장기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화면을 통해서 제 배속을 보았습니다. 흔히 배속이 시커멓다고 말합니다만, 붉은 색이 많았습니다. 카메라가 들락거리면서 보여주는데, 참 놀라웠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배를 만지며 생각했습니다. <아, 이 속에 다 있다니...> 여러분, 저뿐입니까? 지금 피부로 덮이고 옷으로 덮어서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 속에도 다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 몸 속에 장기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속에는 <영혼>도 있습니다. 영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보이지는 않지만 위장이 배속에 있듯이, 보이지 않지만 모든 사람 안에 영혼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사람의 건강은 그 위장 속에 뭐가 들어 있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위장 속에 좋은 음식이 들어 있으면 영양분을 얻어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위장 속에 독극물이 있다면 그 사람은 죽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혼 속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독극물이 위장 벽을 갉아먹고 세포를 죽여 사람이 죽게 되듯이, 영혼에 들어 있는 더러운 것들도 우리를 죽게 만듭니다.

우리 영혼에 들어오려고 하는 독극물 같은 존재가 무엇일까요? 그게 바로 악령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영혼 속에 귀신들이 들어와 그 사람을 망가뜨리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귀신들은 우리 영혼을 마치 호텔방처럼 생각하고 들어옵니다. 

사람의 영혼의 방에 귀신들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되면 사람의 생각이 악해지고, 욕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뜻대로 안 되면 절망하여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귀신들은 사단의 부하들입니다. 사단과 귀신들의 목적은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먹을 때 상한 음식이 아닌가, 유효기간이 지난 것은 아닌가를 살피는 것처럼, 우리는 영혼에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는 귀신들은 아닌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귀신들은 사방에 있습니다. 저질 드라마, 음란한 문화, 쾌락적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의 방식에 귀신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귀신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마치 좋은 음식을 골라서 위장에 넣듯이, 우리 영혼에도 선하고 아름다운 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영이 바로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방에 성령님을 모셔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영혼의 안방에 오시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도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도 <성령님이시여 저희 영혼에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영혼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설령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더라도 성령님이 늘 함께 계시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어떤 사람이 이제부터 더러운 것들과 끊고 바르게 살아야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나쁜 습관, 온갖 죄악들을 끊습니다. <귀신아 나가라> 명령했습니다. 그 순간 그의 영혼에 살던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것들을 내버리고 영혼의 방을 비우기는 했는데, 빈 채로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나갔던 귀신이 다시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다른 귀신들을 일곱이나 데리고 왔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인생이 전보다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영혼을 귀신으로 채워도 안 되고, 빈 채로 놔두어도 안 됩니다. 반드시 성령님께서 우리 영혼에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기름부음 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 뜻입니다. 

우리 영혼에 언제나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속에 계시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제자들이 이맘때 한 일은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일을 우리도 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우리도 <주여, 저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옵소서. 제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저희 가정과 교회에 성령의 충만함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전심으로, 간절함으로 기도에 매달리십시오. 이를 위해 금주간에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렇다면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입니다. 본문 13-14절을 보시면 제자들 모두, 그리고 심지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까지도 힘써 기도했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성령님 없이 인생을 아름답게 살고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님의 임재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는 나의 일이요, 너의 일이요,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의 일입니다. 

본문 8절은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권능의 사람, 힘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습니다. 사단의 유혹을 이깁니다.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어제 우리에게 전해진 노 전 대통령의 소식을 들으면서, 그 분이 그런 극한적 충동을 이기고 삶을 지켜 나가게 하시는 성령님을 모시고 살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게 이맘때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의 사람이 되어 어떤 여건, 어떤 상황에서도 삶과 인생과 신앙을 지키게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인생과 가정과 직장의 모든 일들, 교회의 모든 일들, 신앙과 삶 모두를 성령님의 인도와 능력주심에 따라 감당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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