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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가정 (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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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시 133:1~3) 



5월을 가리켜 가정의 달로 정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약동하는 봄의 기운에 누구라도 한 번쯤은 멀리 있는 가족이 그리워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등지고 뛰쳐 나가보고 싶은 계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교회 강단 한 가운데 있는 나무 이름을 "Happy tree"라고 합니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 이상의 것입니다. 이를 테면 행복 추구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보편적 욕구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은 행복한 가정을 소유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Ⅰ.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남자와 여자 가 연합한 가정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갈빗대로 하와를 지었습니다(창 2:21-22).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창 2:25). 
이것은 하나님이 새 가정을 영광으로 덮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가정을 통하여 번성과 문화적 사명을 명하셨습니다. 

창세가 1장 28-31절에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고 했습니다. 

가정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창설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에 기초하고 성자 예수님의 구속에서 다시 새롭게 창조되어서 성령 안에서 구속을 이루어 가는 시은소(施恩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초로 삼는 것입니다. 가정에 대한 일체의 모든 것을 성경과 함께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시의존사색(啓示依存思索)이라고 합니다. 결코 성경을 사람의 생각 이하에 둔다든지 혹은 성경과 사람의 생각을 동등시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겸손히 성경의 지배를 받는 가정입니다. 
가정은 부모를 떠나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결합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어야 합니다. 

옛말에 문중자왈 혼취이논재 이로지도야(文仲子曰 婚娶而論財 夷虜之道也)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혼인하고 장가드는 데 재물을 논한다는 것은 오랑캐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은 인륜의 도에서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신성해야할 결혼에서 재물을 논한다는 것은 더럽고 비굴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Ⅱ.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가정입니다. 

1) 부모에 대한 공경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고 했습니다. 
부모 공경은 십계명 중에서 제 5계명에 해당됩니다. 『 공경 』이라는 히브리어 '카베드( )'는 '간'(肝), '무거운 것'(heavy), '존경'이란 뜻입니다. 우리 인체의 장기 중에 제일 무거운 것이 '간'이라고 합니다. 부모를 간처럼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체 중에 모든 장기가 다 그렇지만 특별히 간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부모를 간처럼 무겁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장수요 축복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 2-3절에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에 『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부모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7절에 『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4절에 『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7장 10절에 『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9절에 『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고 했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은 무조건 부모의 말에 맹종하라는 말과는 구별되는 말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구체화된 표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거역하면서까지 땅의 부모를 따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주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미 우리는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아니합니다. 자식된 자들에게 공경을 받지 못하면 그 부모는 이 땅에서 공경 받을 곳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부모를 주신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대하는 본보기입니다. 
땅에 있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왜냐하면 땅에 있는 육신의 부모를 섬기는 가운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마태복음 19장 5-6절에 『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떠나서 자립하는 자세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부모를 떠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되는 신비입니다. 둘이 하나되는 신비를 간직하는 것이 가정입니다. 둘이 자녀를 생산합니다. 둘이 하나님의 의를 생산합니다. 둘이 합하여 물질을 생산합니다. 부부의 결합은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적인 인격자로, 세상을 정복하는 문화적인 인격자로, 이웃을 사랑하는 인화협동적인 인격자로 지향합니다. 이것이 부부 연합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주베르라는 사람은 "그 여성이 만약 남자였더라면 반드시 벗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아니거든 아내로 삼지 말라"고 했던가. 
어떤 경우에든지 부부는 일체가 되어야 하고 일체일 수 밖에 없어야 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결국 진정한 부부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구체화된 표본입니다. 예수님은 가나 혼인잔치에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잔치가 끝나기도 전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혼인잔치는 모든 것을 신랑이 주관해야 합니다. 잔치의 모든 책임은 신랑에게 있습니다.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의 흥을 살리는 것은 신랑의 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신랑이라는 사실을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일을 통하여 사람들 앞에 선포하신 것입니다(요 2:1-12).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고 하니 『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라고 했을 때 그 여자에게 이르기를 『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 4:18)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세계적인 문호 세익스피어는 말하기를 "남편은 당신의 주인이요 당신의 생명이요 당신의 수호자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오로지 당신을 편안히 살게 하려는 한 마음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일하고 있습니다. 바다나 육지를 가리지 않고 폭풍우 몰아치는 밤에도 잠자지 않으며 엄동설한도 겁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남자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습니다. 바라는 것은 오직 당신의 애정과 정다운 얼굴과 온순한 마음 그것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2) 부부에 대한 사랑 윤리입니다.
(1) 일부일처의 원리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4-6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2절에도 『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엄격히 일부일처의 원리입니다. 구약은 일부다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다처의 가정이 모두 온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연합의 원리입니다. 
마태복음 19장 5절에 『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31절에 『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5절에 『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3) 자녀에 대한 양육 윤리입니다.
신명기 6장 2절에 『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고 했습니다. 
신명기 6장 6-9절에 『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에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도 주의 교양과 훈계라는 틀 속에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부모의 자녀 훈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성을 구체화시킨 본보기입니다. 

Ⅲ. 가정의 최소한의 역할입니다. 

1) 가정은 사회성을 배양하는 훈련장입니다. 
가정은 윤리적, 도덕적인 교육도장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보고, 듣고, 인지한 것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것만큼 중요한 것도 다시 없을 것입니다. 가정교육이 잘 된 사람은 사회적 기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2) 가정은 민주시민을 양육하는 최소단위의 훈련장입니다. 
가정에서부터 바른 가치관이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학부모들은 전인교육을 시키는 학교를 선호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진학과목에만 주력하는 학교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망국(亡國)으로 치닫는 가치관의 오류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기독교인들의 대대적인 각성과 가정교육의 전폭적인 가치관 정립이 시급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가정의 사회적 기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3) 가정의 영적 기능입니다. 
(1) 가정은 신앙훈련의 최초기지입니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기도하는 법, 찬송하는 법, 봉사와 헌신, 희생하는 것을 배웁니다. 금세의 한계를 배우는 곳입니다. 하늘나라의 영원을 배우는 곳입니다. 
(2) 가정은 교회의 최초기지입니다. 
가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빌립보 루디아의 집이 그러했습니다(행 16:40). 
『 빌레몬과 압비아와 아킵보, 네 집에 있는 교회 』라고 했습니다(몬 1:2).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집이 그러했습니다(행 12:12). 에베소에 있는 아굴라의 집이 그러했습니다(고전 16:19). 라오디게아에 있는 눔바의 집이 그러했습니다(골 4:15). 교회의 최소단위는 가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중요함은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가정은 역기능의 가정입니다. 구원관이 잘못된 가정역시 역기능의 가정입니다. 교회관이 잘못된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역기능의 가정은 불행한 가정입니다. 
순기능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행복(幸福)의 사전적 의미가 심신의 욕구가 충족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란 사실을 감안할 때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행복추구권(幸福追求權)이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7-18절에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옛말에 '가화빈야호 불의부여하 단존일자효 하용자손다'(家和貧也好 不義富如何 但存一子孝 何用子孫多)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정이 화목하면 가난해도 좋다. 의롭지 않다면 부자인들 무엇하리. 다만 한 아들이라도 효도한다면 자손이 많은들 무엇하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우리는 이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33장 29절에 『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4장 9절에 『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우리의 가정은 이미 행복한 가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창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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