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충성된 사람 (마 25:14~30)

  • 잡초 잡초
  • 1396
  • 0

첨부 1


충성된 사람 (마 25:14~30)


제가 듣고 읽었던 충성에 관한 이야기 중에 잊지 못할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런던의 켄더베리 교회 니콜라이 집사님은 열일곱 살에 사찰 집사님이 되어 한평생 교회 청소와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했는지 모릅니다. 교회 종을 얼마나 정확하게 치는지 런던 시민들이 시계를 니콜라이 집사님의 종소리에 맞추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충성하면서 기른 그의 두 아들이 다 복을 받아 유명한 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교수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 교수가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 두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일 그만 하세요.”, “아니야, 나는 끝까지 이 일을 해야 해.” 그는 76세까지 종을 치며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보려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종을 칠 시간이 되니 그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 종을 쳤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 직전에도 종칠 시간이 되니 일어나서 종을 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감동을 받고 영국 황실의 묘지를 그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 떠난 날을 런던의 공휴일로 정하여 모든 상점의 문을 닫게 했습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심부름하던 사람이 하나님 앞에 충성하니 그 가족이 귀족처럼 되고 그가 죽은 날이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수많은 목회자들이 죽었으나 황실의 묘지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종치기를 하던 분이 얼마나 충성했는지 황실의 묘지에 묻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분의 충성은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큰 영광으로 돌려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입니다. 구원에 관한 문제만은 믿음만으로 결정되지만 이 땅에서의 축복과 상급은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본문은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한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세 명의 종들을 불러서 그들의 재능대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한 사람은 금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은 금 두 달란트를, 또 한 사람은 금 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을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가 받은 달란트와 남긴 달란트를 주인 앞에 내놓습니다. 주인은 그 두 사람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칭찬하였습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아 묻어두었던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충성과 불충성의 결과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충성과 불충성의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충성한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불충성한 사람은 악한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주인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겼던 충성된 종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면에 받은 달란트를 묻어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착한 사람은 성격이 순해서 다른 사람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 자기에게 좀 손해가 되어도 양보할 줄 아는 사람, 누가 무엇을 요구하면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악한 사람은 남을 괴롭게 하거나 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보시는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일반적인 개념과 좀 다릅니다. 본문에서는 그가 온유한지 그렇지 않은지, 남에게 양보를 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남의 요구를 거절 못하는지 냉정하게 거절을 잘하는지를 보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주인은 착한 종과 악한 종을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와 은사 그리고 맡겨진 일에 대해서 충성하는 사람이라면 주님 보시기에 착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와 은사 그리고 맡겨진 일에 충성하지 못하고 있다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사람입니다.
충성한 사람은 더 받고, 충성하지 못한 사람은 있는 것도 빼앗깁니다. 주인은 불충성한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의 달란트를 빼앗아서 충성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충성한 사람은 받아서 풍족하게 되지만 불충성한 사람은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내게 주어진 것을 더 풍성하게 만들려면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 가진 것에 충성하면 더 받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가진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되는대로 대충대충 살아가면 지금 가진 것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충성한 사람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되고 충성하지 못한 사람은 슬피 울게 됩니다. 충성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맡는 것만 아니라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반대로 불충성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김을 받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이번에 임직자를 피택 할 때 충성되지만 피택 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온 년 수 때문에 피택 되지 못한 분들도 있고, 나이가 젊어서 제외되신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충성스런 사람’입니다. 본문에 나온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충성스런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직한 사람이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분문에서 사용된 ‘충성’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피스티스(pistov")’입니다. 이 단어는 ‘믿음’이라는 말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뜻은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지 않는 한결같음’입니다.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 믿음직스럽다는 말입니다.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변덕을 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믿음직스러운 사람 즉 충성된 사람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업을 하신다면 어떤 사람을 직원으로 두고 싶습니까? ‘한결 같은 사람, 믿음직한 사람’일 것입니다. 언제나 맡겨진 일에 성실하며 변함없이 충성하는 사람이 믿음직스러운 사람입니다. 
하루 이틀 부지런한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부지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두 번 깔끔하게 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깔끔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한두 번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계속 예의바른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결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19절을 보면 주인이 오랜 후에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오랫동안 변함 없이 충성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충성하다가,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후에도 처음처럼 충성하는 사람이 믿음직스러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언제나 충성스러운 믿음직스러움이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처음과 끝이 같은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서부에서는 야생마를 길들일 때 나귀와 같이 묶어 놓습니다. 나귀와 같이 밧줄로 묶어 놓으면 말이 콧방귀를 뀌며 껑충껑충 뛰어다니면서 나귀를 끌고 다닙니다. 먼 산으로 껑충껑충 뛰어다니면서 나귀를 떨쳐버리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밧줄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나귀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말이 지치게 됩니다. 그래서 며칠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 아십니까? 나귀가 말을 끌고 옵니다. 말이 끌려옵니다. 백 마리를 훈련시켜도 똑같답니다. 처음에는 말이 껑충껑충 뛰어다니면서 나귀를 우습게보지만, 나중에는 말이 나귀에게 끌려오는 것입니다. 당나귀는 인내심이 있습니다. 말처럼 충성하면 안 됩니다. 한 때는 혼자 충성을 다하는 것같이 그냥 껑충껑충 뛰어다니다가 나중에는 억지로 끌려 다니지 말고, 변함없이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엡 6:24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짝 충성은 누구든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인 충성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봤고, 처음 헌신 그대로 변함없이 충성하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여러분들은 변함없이 믿음직스럽게 충성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이 충성스런 사람이다.

청지기 정신은 어떤 정신입니까?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라는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14절에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자기의 소유를 맡겼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아주 준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타국에 다녀올 동안 맡긴 것입니다. 
인류역사상 하나님께 물질을 가장 많이 드렸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금 5000달란트, 금 1만 다릭, 은 만 달란트, 놋 1만8000달란트, 철이 10만 달란트 등 수많은 보석, 금속, 목재 등을 드렸습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25조원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액수를 하나님께 드렸던 다윗이 대상 29:14에서 그 모든 것을 즐겁게 드리면서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고백하며 주님에게 기꺼이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내게 하나님의 영광과 선한 일을 위하여 쓰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이것을 확신하고 사는 것이 청지기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은 주인의 것이지만 내 것처럼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록펠러는 어마어마한 부자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최고 부자는 ‘빌 게이츠’라고 하는데 빌 게이츠가 번 돈을 다 합쳐도 록펠러가 번 돈의 반도 안 된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록펠러가 가장 신임했던 사람 중에 하나인 아치볼드(Archibald)는 본래 Standard Oil의 말단 직원이었습니다. 그는 일에 대한 성실과 열정으로 자기가 일하는 회사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며 일했습니다. 아치볼드는 출장 가서 호텔에 묵을 때면 숙박부에 자기 이름을 적고 그 옆에 ‘한 통에 4달러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문구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동료들이 그의 이런 행동을 조롱했지만 그는 자신의 작은 이 일이 반드시 회사에 큰 도움을 주리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로 출장을 간 아치볼드는 밤이 늦어서야 방에 들어왔는데 숙박부에 이름만 쓰고 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려가 종업원에게 숙박부를 달라고 해서 ‘한 통에 4 달러 스탠더드 오일’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때 한 신사가 유심히 그의 행동을 보고는 물었습니다. “왜 그런 문구를 넣지요?”, “저희 회사를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한 달쯤 지나 아치볼드는 자신의 회사 회장에게 특별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 회장이 바로 호텔에서 만났던 록펠러였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록펠러는 그의 열정을 칭찬하며 본사로 불러들였고, 아치볼드는 스탠더드 오일을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사장이 회사의 중요한 일을 맡길 때 어떤 사람에게 맡기겠습니까? 회사는 어떻게 되든 자기 살길만 챙기는 사람에게 회사의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회사를 자기 회사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것입니다. 목사도 교회의 일을 맡길 때 교회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교회의 중직자들은 반드시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주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24절에 보면 한 달란트를 묻어두었던 종이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굳은 사람이라는 말은 ‘a hard man’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냉혹한 사람’, ‘인색한 사람’, ‘구두쇠’라는 뜻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인색한 구두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주인이 준 것이 적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았는데 자신은 한 달란트를 받은 것이 못 마땅했습니다. 
주인이 각자의 재능에 맞게 구별하여 달란트를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남들을 비교하다보니 자신의 한 달란트가 초라하고 하찮아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주인을 인색한 사람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한 달란트는 큰 돈입니다. 금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니까 약 8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니, 6천 데나리온은 4억 8천만 원 종도 되는 돈입니다. 5억 원이 작은 돈입니까? 절대 작은 돈이 아닙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받고서 주인을 구두쇠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다면 그 돈이 큰 돈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가진 것을 한국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니까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외국을 나가보면 우리가 가진 것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받았습니다.

3. 부지런한 사람이 충성스런 사람이다.

26절에 보면 불충성한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고 말합니다. 충성스러운 종은 부지런합니다. 16절에 보면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달란트를 받고 바로 가서 장사를 합니다. 17절에 보니 두 달란트 받은 종도 그 같이 했다고 말합니다. 불충성한 종은 게을렀고, 충성한 종들은 부지런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고를 치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는 것이 돕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합니다. 

어떤 대 사업가가 자식이 없어서 양자를 맞으려고 했는데 가까운 친구가 한 청년을 소개하면서 훌륭한 양자감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업가는 우선 청년을 사원으로 채용하고 얼마 동안 관찰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루는 청년을 불러 1만 달러를 내놓으며 “이걸 자네 마음대로 쓰게”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얼떨떨했지만 마음속으로 ‘아하! 이건 나를 테스트하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그 돈을 받았습니다. 그 후 얼마 동안 사업가는 청년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1년쯤 지난 뒤 사업가는 불쑥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자네에게 준 돈을 어떻게 썼나?” 청년은 이제야 때가 왔구나 하고 기뻐하며 곧 집으로 달려가 1만 달러뭉치를 가지고 왔습니다. “사장님,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여기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자 사업가는 그 청년을 양자로 맞을 것을 포기하며 소개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돈은 쓰기 위한 것이 아닌가? 사업상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교제비로써도 좋을 것이고, 어떤 투자를 해서 사업 공부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돈을 손에 쥐고도 가만히 있는 그런 사람에게 나의 큰 사업을 맡길 수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선한 일에 부지런히 사용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달란트를 묻어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일한 증거는 그들이 남긴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인에게 받은 것의 갑절을 남겼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으면 갑절을 남겼겠습니까? 여기 장사하는 사람, 사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묻겠습니다. 갑절을 남기기가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갑절을 남겼다면 대단히 열심히 일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맡긴 것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남기셨다고 생각합니까? 그 것을 지금 열심히 사용하고 있습니까? 묻어두고 있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부지런히 사용하고 있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4. 적은 일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충성스런 사람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적은 일에 불충성하면서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눅 16:10에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우리가 보기에 하찮아 보이는 일이 큰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때문에 적은 일에 충성하면 많은 일을 맡게 되고, 작은 일에 충성하면 큰 일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1947년 미국의 시카고 근교의 위스칸신 주에 있는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천체물리학자 닥터 첸드리스카 박사는 시카고대학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박사님 겨울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와서 고급물리학에 관한 특별강의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몇 주후에 다시 대학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사님 아무래도 강의를 취소해야만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클래스가 너무 작아서요.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강의를 하죠” 그래서 첸드리스카 박사는 그 겨울동안, 눈보라와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시카고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는 일주일에 이틀 동안 한 번도 빠짐이 없이 두 학생을 상대로 강의를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십년이 흘러갑니다. 이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첸넝 양 박사라는 분이고 또 한 분은 충도 리라는 중국계의 미국 과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상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이 상을 수상하게 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 때문이었습니다” 동양계 두 사람을 앞에 놓고 열정을 다한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가 노벨상으로 열매가 맺혀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적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충성한다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5. 주인과 주인의 뜻을 알고 행하는 사람이 충성스런 사람이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을 오해했습니다. 24절에 보면 그는 주인을 향하여 말합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굳은 사람이란 말은 완악한, 혹독한, 엄한, 잔인한, 고집센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종은 주인을 완악하고 고집이 센 잔인한 수전노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그 책임을 돌립니다. 그는 처음부터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끝까지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약에 장사를 하여 이를 남기면 주인이 빼앗아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실패하는 날에는 일생동안 그 보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감추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고약한 마음입니까?

그런데 실제로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남긴 것을 빼앗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인은 더 많은 것을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의 뜻을 오해했습니다. 
[백금율]이라고 하는 책이 있다고 합니다. 황금율이라는 것은 들어봤지만 백금율은 못 들어 보았지요? 황금율은 무엇입니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칭찬 받기를 원하면 남을 칭찬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지 않기를 바라거든 너도 남을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 황금율입니다. 

백금율은 황금율과 조금 다릅니다. 상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왜요? 기본적으로 사람의 욕구와 성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입맛이 다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가치관도 이상도 다르기 때문에 부득불 우리는 내 생각을 버리고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그를 대하라는 것이 백금율입니다. 
자기 수준에서, 자기 성향으로 남을 대하지 말고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 수준과 그 입장, 그 욕구를 따라서 그 방법대로 그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기대하는 것과 상관없이 자기 방식으로 주인을 이해하고 일처리를 해 놓고는 잘 했다고 떠듭니다. 주인이 그 큰 금을 맡길 때는 그거 도둑맞지 않게 잘 지키라고 맡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장사해서 이를 많이 남기라고 맡긴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공연히 관리하기도 복잡하게 이런 걸 왜 맡겨’ 하고 땅을 파고 묻어 두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생각대로 믿고는 잘 믿었다고 떠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사는 사람만이 칭찬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기준으로 멋대로 판단하고 엉뚱하게 살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과 성령의 인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멀리 사는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종에게 들려보냈습니다. 종이 열심히 달려서 편지를 전하기는 했는데 엉뚱한 사람에게 전달했다면 그 종은 충성된 종이 아닙니다. 주인이 원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해야 충성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충성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화 하나 들려드리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은퇴하여 농촌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젖소를 사서 기렸던 한 사람의 실패담입니다. 이 사람은 소를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젖소의 젖이 마르자 이웃 농부에게 그간의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농부로부터 젖소의 젖이 마른 이유를 듣고 놀랐습니다. 그는 날마다 자기에게 그날 필요한 만큼의 젖만을 짰습니다. 한 병이 필요하면 한 병만 짜 마셨고 별로 우유 생각이 나지 않으면 짜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만 짜는 것이 젖을 마르게 하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젖소는 젖을 짤 수 있는 만큼 최대한도로 짜내야 계속 더 많은 신선한 젖을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충성은 마치 그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다 짜내는 것, 다 쓰는 것이 충성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다음에 늙어서 힘드니까 아껴서 그 때 써야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아꼈던 힘 쓸 수 있을까요? 못씁니다. 슬 수 있을 때 써야 합니다. 지금 건강한 것, 지금 돈 있는 것, 지금 능력 있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지금 안 쓰면 나중까지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은 지금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모든 것을 짜내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일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그 달란트를 가지고 바로 가서 일하십시오. 오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이 내게 명하시는 일을 발견했다면 즉시 움직이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가서 일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마귀는 속삭입니다. “그래, 기도생활에 힘써라. 성경도 많이 읽어라. 전도도 열심히 해야지, 교회 봉사도 잘하고, 성경공부도 해라. 헌금도 많이 드리고 새벽기도도 시작해라. 그러나 바쁠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 바쁜 일이 많으니까 나중에 천천히 해라” 
충성된 성도가 되어서 잘했다 칭찬 듣는 신앙생활 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