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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주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아들 (렘 31:11~13, 마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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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아들  
말 씀 : 렘 31:11-13, 마 21:28-31 
  
 
서론 

오늘은 우리 교단이 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청년들이 새벽이슬 같은 맑고 밝은 젊음을 가지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지구적 환경을 믿음을 잘 극복하고 모든 청년들의 미래적 삶이 주님 안에서 형통하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은혜로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평안히 들어가는 아들, 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청년들에게 하늘의 지혜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서 똑똑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똑똑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똑똑한 사람은 지위나 명예를 얻습니다. 돈을 많이 법니다. 건강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런 것들이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오래 된 이야기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입구에서 예수님께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장로님이 목사님과 함께 들어가고 있는데 멀리서 예수님이 보시더니 사람들을 헤집고 오시더랍니다. 장로님은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더니 장로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목사님만 껴안고 좋아하시더랍니다. 장로님이 심통이 나서 예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예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목사님은 세상에서도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나라에서까지 목사님을 사랑하시고 저는 쳐다보지도 않으십니까?”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내가 아침부터 이 시간까지 계속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목사는 처음 본다. 그래서 너무 반가워서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앞선 자, 지도자, 먼저 된 자가 하나님의 나라 들어가기가 더 힘듭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율법주의자,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이들이 가장 율법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장 잘 아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먼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두 아들의 비유’가 있습니다. 맏아들은 율법과 의를 강조하였지만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권위를 부인하던 유대 종교지도자와 율법주의자들을 상징합니다. 둘째 아들은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죄 사함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나아온 세리와 창기를 상징합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맏아들은 “가겠나이다”라고 말은 했지만 복종할 생각도 없었고 말로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에 대하여 뉘우칠 마음의 변화도 전혀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면전에서 아버지의 명령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이는 아들이 공공연하게 죄를 짓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포도원에 일하러 갔습니다. 
  
탕자의 비유와 두 아들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다 나쁜 아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큰 아들이 더 나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적극적으로 죄를 짓지만 뉘우치고 돌아올 줄 아는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것 같지만 전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형제 사랑은 더구나 없습니다. 큰 아들이 율법적으로는 완전했지만 사랑이 없이 더 나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에서도 그렇습니다. 큰 아들은 말만 앞세웠지 전혀 아버지에게 순종할 뜻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더 큰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아들은 그 동안 자신의 의지를 실천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뉘우치고 돌아올 때는 아버지의 의지에 자신을 맡기는 자세가 되었습니다. 말은 하지만 실천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말은 무성하지만 실천에는 무성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네가 천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합니다. 실천이 없는 천사의 말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천이 없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실천이 없는 말은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은 글대로 읽고 나는 나대로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아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는 것이 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아는 대로 실천하고 믿는 대로 살아야 진정한 지식이 될 수 있고,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18에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권합니다. 혀로만 사랑하고, 입으로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흔히 ‘립 서비스’(lip service)라고 합니다. 입술로만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봉사는 참 봉사가 아닙니다. 골로새서 3:22에는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아들을 보시고, 자격을 잘 익혀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첫째, 서열보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아들입니다. 

31절에는 “그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큰 아들, 작은 아들을 따지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믿었느냐 라는 서열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아버지의 뜻은 실천해야 합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이냐?”라고 묻습니다. 두 아들 다 잘못했습니다. 두 아들 다 완벽하지 못합니다. 큰 아들은 말로만 순종했고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말로는 거역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뉘우치고 실천하였습니다. 둘 다 잘못은 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한 아들은 둘째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한 아들인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한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서열대로 가지 않습니다. 출애굽은 구원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출애굽은 서열이 없었습니다. 연장자가 먼저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먼저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먼저 나갔습니까? 유월절 음식을 빨리 먹는 자이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었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먼저 온 자가 나중 된 자가 됩니까? 먼저 온 자는 말이 많습니다. 말을 잘합니다. 감사보다 자신의 공을 내세웁니다. 자신에게 주어질 대가에 관심을 가집니다. 반면에 마지막에 온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와서 잠시만 일하고 같은 삯을 받았으므로 감사했습니다. 이런 자세 때문에 칭찬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 가셨을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그랬을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고, 하고 있고, 할 것이므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도 아무 의미도 재미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에서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참 아들다운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승복하는 기도입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바람이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과 바람에 맞추려는 마음이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현장에서 하신 말씀 98개 단어 중에 30개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것입니다.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은 신약에 네 번 나오는데 모두 순교의 문맥에서 나타납니다. 세 번은 예수님께 대한 말씀이며 한번은 바울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알았지만 가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합니다. 바울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하였습니다. 

바울을 말리던 사람들이 바울의 결연한 자세를 보고 사도행전 21:14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주님의 뜻이면 절대로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요한의 제자인 폴리갑이 순교할 때의 일화입니다. 병사들이 폴리갑을 잡아 얼굴과 몸을 마구 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폴리갑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소리친 다음 순교하였습니다. 아름다운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한 결 같은 간절한 소망은 주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소망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삶의 초점을 둡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라고 했지만 뒤에 뉘우치고 순종하였습니다. 아무 갈등 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합니다. 순종의 기도는 반드시 갈등과 고민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인간적인 욕구가 누구에게나 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고 했을 때에 “누가 내 친척이며 어머니냐?”라고 하시면서 마태복음 12:50에는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필수적입니다. 로마서 12:2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아들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신분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시로는 엄청난 충격적 발언이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고소하고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수님을 죽이려고 말과 행동을 주목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은 이해하지 못하면 끊임없는 갈등을 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자, 율법적 인물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율법은 결코 완성되지 못합니다. 율법이 필요하지만 율법만 가지고는 결코 온전하게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오신 분입니다. 
  
세리와 창기는 천민 계층입니다. 이들은 죄인들이며 소외계층입니다. 요즘에는 어느 대중적 모임에 ‘대표회장’이 많습니다. 대표회장, 공동회장 등 회장도 왜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세리와 창기는 이스라엘 대표 죄인입니다. 이들은 죄인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인의 대명사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먼저 들어간다고 하니 큰 일 날 말입니다. 
  
세리와 창기가 무조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까? 두 아들의 비유에서 볼 때 뉘우침이 있고 회개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뉘우치다’는 말은 ‘메타멜로마이’입니다. 이 말은 ‘메타노에오’보다 약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감정적 차원의 후회, 뉘우침, 유감(遺憾)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회개는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의지의 실천, 행동으로 자신의 회개를 보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신분을 자랑합니다. 선민임을 자랑합니다. 먼저 믿은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과 긍휼 없이 율법만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신분의 힘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섬김의 도구여야 합니다. 사랑의 도구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신분의 힘은 비난거리가 됩니다. 배척의 대상이 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그릇된 신분의식을 책망하셨습니다. 
  
세탁소에 옷걸이가 많이 있습니다. 헌 옷걸이가 새로 갓 들어온 옷걸이에게 “너는 단지 옷걸이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라고 충고합니다.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 신분인양 우쭐대거나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잠시 가지고 있을 우리의 신분으로 우쭐대거나 이것이 마치 내 자신인양 교만할 때가 많습니다. 
  
탕자 이야기를 보세요. 누가 진짜 아들입니까? 자신의 권리나, 자신의 신분이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행위에 대한 대가를 주장하는 큰 아들이 아니라 빈손 들고 완전히 항복하는 자세로 돌이켜 오는 둘째 아들입니다. 자신의 동생인 형제를 마음으로 받아주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에게로부터 내침을 받습니다. 
  
탕자를 받으신 아버지는 아들의 신분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세를 보셨습니다. 돌아온 자체만으로 신분도 회복하게 됩니다. 신분만 가지고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로 받아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신분이 아니라 회개가 용납의 조건입니다. 진지하고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뜻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줍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엽니다. 
  
미국의 교육가인 부커 T 워싱턴은 ‘불리한 조건으로부터의 유리한 상황’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훌륭한 교육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성공은 우리가 어떠한 지위에 올라가는지에 의해 측정되어서는 안 된다. 성공은우리가 어떠한 장애물을 극복하였는지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디도서 3:9에는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1:4에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족보 이야기, 신분 이야기, 이런 것들은 전혀 유익하지 못한 쓸데없는 이야기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되지 않고는 얘기들이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와서 보석 자랑합니다. 옷 자랑합니다. 자녀들 자랑합니다. 자랑할 만하지만 이런 자랑은 하나님의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논쟁도 많습니다. 중세 때는 공허한 사색을 많이 했습니다. ‘천사가 바늘 위에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나?’, ‘성직자 가운의 길이가 얼마만해야 가장 적절한가?’ ‘가운에 달 술을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가?’ 등의 논쟁들이 교회사에 있었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논쟁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야고보서 4:16에는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허탄한 자랑이 무엇일까요? 인간이 잠시 세상에 살 동안 가지고 있는 신분, 돈, 명예, 건강, 자녀, 남편, 아내 등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감사거리가 되게 해야 합니다. 신분 자랑, 신분 의뢰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가는 비결입니다. 

결론 
  
‘마시멜로 이야기’에는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완벽하게 만들려면 단어 하나를 더 넣어야 합니다. “아는 것을 실천해야 힘이다.” 실천하지 않는 앎은 진정한 배움이 아닙니다. 율법에 사랑의 실천을 담아야 율법이 완성됩니다. 율법이 힘이 됩니다. 
  
율법은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에, 삶에 묻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므로 우리의 삶이 성공적 삶이 되게 합시다. 날마다 회개의 삶을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됩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의 청년들, 하나님의 나라의 아들딸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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