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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아이에게 가르치라 (잠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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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가르치라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Ⅰ. 본문 해설 

아시다시피 자녀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히 성경은 자녀가 어렸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Ⅱ. 자녀교육의 중요성 

인간의 타락 이후, 세상에는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녀들 역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세상과 맞서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아이들을 신앙 안에서 잘 기르고, 언약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보존토록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의 독특성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삶이 되도록 도우시는 역사입니다. 

A. 결정적 두 시기 

그러나 항상 자녀 교육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 때나 교육시키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에게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결정적인 두 시기(two critical periods)가 주어집니다. 

1. 자연적 유아기 

첫 번째는 자연적 유아기입니다. 자연적 유아기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어머니의 품에 있을 때를 일컫습니다. 대개 1살부터 시작하여 5살 정도까지입니다. 엄마의 품은 아이가 만나는 첫 세계입니다. 그 안에서 아이는 외부의 세계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가장 먼저 아이는 선과 악을 배웁니다. 어머니의 활짝 웃는 표정에서는 자기의 행동이 선했음을, 화난 표정에서는 자기의 행동이 악했음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은 어릴 때 질문을 통해 많이 배웁니다. 그런데 그 질문들은 대부분 자연의 사물들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엄마, 정의가 뭐야, 선이 뭐야?”라고 묻는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이 꽃이 뭐야? 저게 뭐야?”라고 묻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에게 자연적 사물을 가르쳐주면서 그것을 매개체로 신령한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미꽃인데, 하나님이 이렇게 아름답게 창조하셨지.” 

자연적인 유아기가 중요한 이유는 그때 아이들의 본성은 악하나, 그 본성이 아직 충분히 발현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진리들을 배우고 터득하는, 수용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을 보십시오. 어른들은 온갖 선입견으로 둘러싸여 있고, 끊임없이 의심하여, 불신앙을 고집합니다. 아이들은 비교적 그것들이 적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종교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오히려 자연적 유아기에 이성으로 파악하기 힘들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를 가르치는 일은 아주 효과적인 것입니다. 

2. 영적 유아기 

두 번째는 영적 유아기입니다. 영적 유아기는 자연적인 나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기독교의 가르침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결정적 시기입니다. 그래서 영적 유아기는 회심과 함께 시작되는 유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심하고 거듭나면 아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죽었던 영혼이 살아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아름다움도 보게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선함이 발하는 광채입니다. 이제 이것을 눈이 아닌 정신으로 직접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이 자연적인 유아기에는 눈에 들어오는 감각적인 사물들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주면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영적인 유아기 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이 먼저 들어옵니다. 그것을 매개로 자연과 도덕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적 유아기에는 자연사물에 대한 인식에서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가고, 영적인 유아기에는 구속주인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아는 데서 자연의 세계로 다시 내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종합적으로 이 이중의 지식, 창조주와 구속주를 아는 지식이 통합되어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 모두가 영적인 유아기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흡수하는 그때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위치에서 살도록 교육하기만을 원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모두 같은 능력을 타고났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차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녀를 위탁하신 것은 아이들을 분재와 같이 키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기도 가운데 자유롭게 성장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발견할 기회를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술가, 학자, 사업가 등과 같이 삶의 양태로 그 사람의 중요성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사람됨의 문제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가 가진 예술적, 학문적, 사업적 재능이 오히려 세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아닙니까?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곧 그 아이의 인간성입니다. 즉 인성의 발달입니다. 

B. 인성 발달의 3요소 

인성 발달에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됩니다. 바로 본성과 환경, 교육입니다. 첫째, 본성은 자연적인 본성과 신령한 본성으로 나뉩니다. 자연적인 본성은 선악과 상관없이 대부분 재능을 따릅니다. 그러나 신령한 본성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자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교육은 이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본성은 놔두고 환경과 교육을 움직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바탕이 되는 본성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신령한 본성은 중생과 회심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됩니다. 물론 악한 본성을 떨쳐내는 데 인간은 매우 무기력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운명과도 같을 정도입니다. 둘째, 환경입니다. 환경은 외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아이가 사람답게 사는 내적인 환경도 포함됩니다. 한 사람이 그 시대에 태어난다는 의미는 마치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환경들을 우리 마음대로 단번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본성의 셋째 요소인, 교육을 통해 이 문제에 도전하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사람답게 기를 수 있는 사명을 일차적으로는 가정에, 이차적으로는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정도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남은 것은 교회인데 교회도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부모들이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예수의 지워도 받고 세상도 품으려 하는데 자녀들에게 피 묻은 진리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이 없는 곳에서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은 절대 바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본성이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상 신앙을 떠나면 이 말은 사실입니다. 

Ⅲ. 운명 같은 본성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운명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때 그 가능성은 오직 둘 박에 없습니다. 바로 그의 본성이 변화되고 변화된 본성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때 은혜를 받고 죄의 길에서 돌이킨 것이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우리가 자녀를 교육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가 아이의 본성에도 기쁜 성향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Ⅳ. 자녀를 위해 할 일 

이렇게 본성을 바꾸기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할 일이 있습니다. 

A. 진리를 가르침 

첫째는 진리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선 부모가 진리를 좋아하고,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기독교 진리의 핵심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곧 세례문답 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정확히 가르쳐 주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알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훌륭한 유아 교육입니다. 구체적으로 부모는 교리를 배우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사고와 조류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아이들을 위협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더울 철저히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배우는 것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그 교리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본을 보여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어려움이 왔을 때 수많은 교리들은 생각이 나지 않을지라도.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를 보았다면 그 인상은 깊이 마음에 남게 됩니다. 만약 이렇게 모본을 보였는데도 자녀가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의 부족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은 부모의 가르침이 자녀에게 흘러가는 아름다운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B. 회심에 이르게 함 

둘째는 자녀를 회심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모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거듭남과 회심이 필요합니다. 나이도 어린데 그럴 필요가 있냐고 말하지 마십시오. 어리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상태로부터 멀어질수록 회심의 기회는 일반적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과연 아이의 회심을 위해 눈물 흘리는 것보다 중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C. 은혜 안에서 살게 함 

또한 아이들을 은혜 안에서 살게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회심했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회심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은 우리가 은혜의 상태에 있다가 미끄러진 사람들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은혜에서 미끄러지면 인간의 전적인 부패와 타락이 얼마나 끔찍한가 하는 것을 거룩한 교회에서 토해놓습니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아이들도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부족하지만 아이들이 주님의 뜻대로 살도록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몸이 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V. 결론 

죄가 많은 이 세상에는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과 도전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이들도 언젠가 그 눈물 골짜기를 지날 것이고, 지금이 그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하나님과 같이 걷는 아이들을 만들어준다면 어떤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들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또한 자녀를 가진 부모의 영광일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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