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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전 (왕상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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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 (왕상 9:1~9)
 
 
교회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교회적 측면이고(invisible church), 다른 하나는 보이는 교회적 측면 입니다.(visible church)

교회는 처음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말씀이 심령 속에 들어간 후 저들이 새롭게 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보이지 않는 측면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이 모여드니까 모임이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모일 건물을 마련했습니다. 모임의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조직을 갖추고 모임의 형식을 세워갔습니다. 그래서 목사, 장로, 집사와 같은 직제를 세우고, 예배 형식과 신조와 규례를 만들어나갔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보이는 측면입니다.

오늘도 교회 안에는 여전히 이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그리고 그 영적 공동체를 지탱해 갈 모임의 틀이 세워집니다. 즉 건물, 제도, 규정 등과 같은 것들이 든든하게 발전해 갑니다.

20세기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이런 교회의 특성을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사건으로서의 교회적 측면과 다른 하나는 제도로서의 교회적 측면입니다. 우선 사건으로서의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말씀 사건 자체를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 공동체를 세워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적 측면입니다. 다음으로 제도로서의 교회는 말씀 사건으로 형성된 영적 공동체를 든든하게 세워가는 틀을 말합니다. 이것은 교리, 제도, 건물 등과 같이 눈에 보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형식적인 측면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마치 음료수를 담은 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컵은 음료수를 담기 위해 있습니다. 그리고 음료수는 컵이 없으면 있을 수 없습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우선 음료수의 품질이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컵도 좋으면 더 훌륭합니다. 여기서 음료수는 보이지 않는 교회요 사건으로서의 교회와 같습니다. 그리고 컵은 보이는 교회요 제도로서의 교회와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훌륭한 교회가 되려면 우선 보이지 않는 교회 즉 교회의 본질이 훌륭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씀 사건, 신앙 사건이 왕성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 보이지 않는 교회를 보호하고 빛나게 하는 보이는 교회도 훌륭해야 합니다. 할 수 있으면 건물도 기능적으로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도도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결국 교회다운 교회는 교회의 이 두 가지 측면이 다 훌륭해야 하고 나아가 이 두 가지 측면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봉헌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기록해 놓은 말씀입니다. 

1-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성전 봉헌을 받으시고 응답하시려고 솔로몬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상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브온에서 솔로몬에게 첫 번째로 나타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너무 기쁘셔서 그 밤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번 성전 봉헌도 일천 번제 때처럼 기뻐 받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봉헌한 성전을 기뻐 받으시고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성전 봉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이 성전에 있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의 눈길과 하나님의 마음이 항상 이 성전에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성전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을 아주 특별하게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성전 재건축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기도대행진을 통해서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건축위원회에서 추진 일정을 정하고 하나씩 차질 없이 진행해 가고 있습니다. 현재 설계를 위한 절차를 진행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대로 우리 교회가 솔로몬처럼 정말 아름다운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성전을 기뻐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가 지어 봉헌할 성전을 기뻐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본문 4절 이하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태도가 냉정합니다. 일천번제를 기뻐 받으신 이후의 하나님의 태도와는 사뭇 다릅니다. 

일천번제를 기뻐 받으시고 난 후 하나님의 태도는 무척이나 따뜻했습니다. 솔로몬에게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자 지혜 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솔로몬이 봉헌한 성전을 기뻐 받으셨으면서도 태도가 냉정합니다. 무조건 축복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조건을 다셨습니다. 

4-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한 마디로 이 성전에서 신앙생활을 잘해야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6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한 마디로 이 성전 안에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화가 임할 것일 뿐 아니라 이 성전조차도 폐기시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성전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더 강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전 봉헌을 기뻐 받으시면서도 또 다른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보이는 성전을 세우는 일에만 몰두해서는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세우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자칫 보이는 성전 세우는 일에 전념하다가 보이지 않는 성전 세우는 일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성전은 어떻게 세워가야 할까요? 물론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세우면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보이지 않은 교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섬기면 보이지 않는 교회를 제대로 잘 세워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지향하는 마음을 갖자

보이지 않는 교회는 우선 성도들이 하나님을 지향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세워질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처럼 하나님을 지향하는 마음을 갖게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때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도 보지 못했고, 아버지 이새도 보지 못했던 다윗의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삼하 16:7) 그 마음은 바로 철저하게 하나님을 지향하는 마음입니다.

다윗의 그 마음이 왕으로 통치하면서 하나씩 둘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삼하 6장을 보면 다윗이 왕이 돼서 시온성에서 통치하게 됐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마음을 쓴 것이 바로 법궤입니다. 법궤는 오랜 세월 아비나답의 집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아무도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왕이었던 사울도, 당시 제사장들도 이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법궤가 방치돼 있던 것을 늘 마음 아프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왕이 되어 자리를 잡자 제일 먼저 그 법궤를 모셔 오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늘 하나님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늘 그 마음이 하나님을 지향하게 될 때 올바로 세워집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보다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기뻐받으실까에 대해 마음을 써야 합니다. 교회 봉사할 때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유익하며 봉사하는 우리가 보람될까보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까에 대해 마음을 써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지난 5월 3일 한 교회가 절에서 예배를 드렸다 하여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류상태 목사가 시무하는 “예수동아리 교회”는 서울 수유동 화계사 법당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송, 성경봉독, 설교, 축도와 같은 예배순서를 생략한 채 108배만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예배 드린 이유가 있답니다. 그동안 기독교인들이 불교에 대해 무례하게 행한 일을 뉘우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날 다음날인 이날 예배를 부처 앞에서 참회하는 것으로 예배를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종교 간의 화해의 길을 실천했다고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불자들에 대해 마음을 쓴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 대해 마음 쓴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 분들이 하나님께 대해 마음을 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부처 앞에서 드린 것을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해하실까를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니다. 그 마음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지향하지 못한 것입니다.

왕상 11:4를 보면 솔로몬이 후에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왕비들이 하나님 아닌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왕상 15:3을 보면 유다왕 아비얌도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역시 그 이유는 산당과 우상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 앞에 절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다윗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을 지향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아닌 것에는 마음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높이거나,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하거나,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겨서는 안됩니다.




2. 순종하는 삶을 살자

   보이지 않는 교회는 다음으로 성도들이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세워집니다.

   본문 4절을 보면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것처럼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은 간단히 요약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는 과정을 보면 철저하게 하나님께 묻고 그 말씀을 따랐습니다. 삼하를 보면 정말 여러 차례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는 늘 자기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살았습니다.

   물론 다윗의 삶에도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치명적인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이후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삼하 12장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는 치명적인 죄에 대해 회개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비록 저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듣고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대상 21장을 보면 다윗이 인구조사를 통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으나 철저하게 회개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보내셔서 책망하셨습니다. 그 때 그 말씀을 듣고 다윗이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삶 자기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게 될 때 보이지 않는 교회는 아름답게 세워져갑니다.

   마 26:36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할 상황임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십자가를 지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예! 아버지” 이 순종이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게 한 것입니다.

   고후 1:19-20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을 따라 “아멘!”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님을 따라 “아멘” 하는 신앙 곧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교회의 또 하는 소중한 특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보이는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잘 지으려 합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보이지 않는 교회도 지어야 합니다. 할 수 있는대로 잘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교회다운 교회가 될 것이고 주임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성전을 잘 지으려면 우선 우리들의 마음이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을 지향해 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들이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신앙으로 무장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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