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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그리스인의 아름다운 섬김 (잠 2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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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의 아름다운 섬김 (잠 23:22~25)
 

우리는 해마다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지키는데, 이 날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자료에 의하면, ‘어버이 날’은 지난 1955년 “세계만방에 자랑할 만한 한국 어머니들의 자녀 사랑과 희생적 정신을 기리기 위해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973년에는 효와 경로사상을 전 국민에게 고취시키기 위해 ‘어머니 날’을 ‘어버이 날’로 명칭을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가 나서서 부모 공경을 장려하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의미로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효를 등한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무관심하게 지내다가 1년에 한번 어버이날이 되면 의무를 이행하듯이 어버이날 행사를 한다면, 그런 어버이날은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어버이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하는 행사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생전에 항상 부모를 공경하되, 그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슬하에서 지낼 적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부모 공경을 실천해야 합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회에서 부모 공경의 모범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그리스도인의 부모 공경’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부모 공경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인륜에 관한 첫 번째 계명이므로 힘써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은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믿는 자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십계명은 신앙과 윤리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실 때, 두 개의 돌비에 새겨서 주셨습니다. 첫째 돌비에는 첫째 계명으로부터 넷째 계명까지가 기록되어 있었고, 둘째 돌비에는 다섯째 계명으로부터 열째 계명까지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돌비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관련이 있는 계명들이, 둘째 돌비에는 인륜에 대한 계명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둘째 돌비의 맨 처음에 새겨진 계명은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으로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륜에 관한 계명들 중에서 첫 번째로 부모 공경을 명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열 가지 계명은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열 가지 계명 중에서도 먼저 언급된 계명이 나중 계명보다 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5계명인 부모 공경은 인륜 가운데 으뜸가는 계명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명하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부모 공경을 인륜의 첫째 계명으로 명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모 공경이 인륜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은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제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존중할 것을 기대하기란 심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효(孝)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 우리를 낳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선물로 주신 분들이기 때문에 마땅히 공경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간혹, ‘기왕이면 부잣집이나 명문 가문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하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는, 그것은 너무나 철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자로 태어났건, 서민의 아들로 태어났건, 생명은 똑같이 고귀한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낙태 당하는 태아의 수가 신생아 수와 맞먹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태어난 자체만으로도 선택 받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기에 하나님을 믿고 영생의 복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또 다른 큰 이유는 부모님이 우리를 양육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낳아주신 은덕도 크지만, 양육해 주신 은덕도 그에 못지않게 크고 중합니다. 어느 시대나 부모들은 자녀들의 양육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붓지만, 특히 저의 부모님들 시대 사람들은 자녀들의 양육을 위해 더 많은 고생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의 노래에 나오는 가사는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달토록 고생하시네》

오늘날 한국의 노인세대가 가난한 생활을 면치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식들을 기르고 가르치는데 가진 것을 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에 늙고 병들고 가난한 상태로 외로운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이 그토록 애지중지 양육했던 자식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요? 

고구려 사람들은 부모가 노쇠해 지면 내다버리는 좋지 못한 습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위 고려장이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70세 된 노인을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는데, 따라왔던 어린 아들이 지게를 지고 오는지라, 지게를 왜 지고 오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어린 아들이 대답하기를 ‘아버지도 나이가 차면 이 지게에 지고 와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그 사람은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에 모시고 가서 잘 봉양했고, 그 후로 고려장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하는 대로 자식들이 보고 배워서 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율법을 주시면서 부모 공경을 인륜의 첫째 계명으로 명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들의 차이점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자손은 고려장 같은 악습을 거치지 않고서 부모 공경을 실천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민족들 가운데는 고려장과 비슷한 악습을 가진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에는 이르기를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9)고 하였고, 잠언 30장 17절에 보니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불효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일깨워 줍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던 우리 조상들도 말하기를 “罪莫大於不孝”라 “불효보다 더 큰 죄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서 일륜의 첫째가는 부모 공경의 계명을 힘써 실천함으로써 우리를 낳아서 양육해 주신 부모님의 은덕에 보답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성경이 명하신 부모 공경의 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정작 좋은 방법을 몰라서 실천하지 못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내 딴에는 부모님을 위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누를 끼쳐드리는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잠언 23장 22절에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너를 낳아 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늙은 어머니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자녀들이 부모의 말에 순종할 때입니다. 부모가 무슨 말씀을 할 때 자녀들이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보일 때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모님은 구시대 사람이니까 통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갖고서 아예 부모님의 말을 경청할 생각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고 선물을 사 드리는 것으로 자식 노릇을 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그릇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은 용돈이나 선물이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귀담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순종은 곧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연로한 부모일지라도 집안에서는 어른으로서의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권위는 자녀들이 부모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순종할 때 실현되지, 그렇지 않으면 무위로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늙으신 어머니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머니로서의 권위를 인정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사울 왕을 책망하기를 “22)…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제물을 바친다고 해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물은 우리가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순종은 곧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주장과 생각을 내려놓고 “아멘!”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한 기꺼이 순종해서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할 일은, 의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23장에 이르기를 “23)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효도를 하려면 입신양명(立身揚名) 곧 출세하여 이름을 떨쳐야 할 줄로 알았습니다. 과거 봉건사회에서는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로 나가는 것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과거에 급제할 수 있으며, 벼슬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그 같은 기준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좋아하고 의롭게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과거 급제를 못한 사람이라도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의 기준이 훨씬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이 진실하고 선량하게 살므로 사람들의 칭찬을 듣는다면 부모에게는 그 보다 더한 영예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자녀 교육에서 시정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오직 성공하라고 세뇌시켜 온 것입니다. 자식을 성공시켜야겠다는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이제 겨우 “엄마, 아빠”를 하기 시작한 아기에게 영재교육을 시킨다고 영어를 가르치는 부모들도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식을 성공만 아는 기계처럼 만들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같은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녀들을 혹사시키지 말고, 어려서부터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할 줄 압니다.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한 빌라도는 로마 황제에 의해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만큼 빌라도는 유능하고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는 것을 알고서 무죄 방면하려고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발해서 그를 로마 황제에게 고소할 것을 겁내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허락했습니다. 빌라도에게도 정의감이 있었지만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불의와 타협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과 주고받은 대화가 나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묻기를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묻기를 “진리가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평생을 성공만을 좇아 살아온 빌라도의 입에서 “진리가 무엇이냐?”는 말이 나온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자녀들을 사랑하시거든 성공제일주의로 키우지 마시고 진리를 사랑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자녀들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도님들을 위해서도 좋고 자녀들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치고 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잠언 23장 25절에 이르기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일상생활 속에서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부모님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볼 때 기뻐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주 부모님을 찾아 뵐 때 기뻐하십니다. 노년은 외로운 시절입니다. 자식들은 출가하고, 늙은 부부만 남아있거나, 그나마 한쪽이 먼저 별세한 경우에는 혼자 남게 됩니다. 몸은 늙고, 쇠약하고, 사람들이 곁에서 떠나가니 점점 외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자주 찾아가서 부모의 적적함을 덜어드려야 합니다. 이 때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가서 문안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한 가지 공통점이 생기는데 그것은 손자, 손녀를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춘추시대 초(楚)나라에 노래자(老來子)라는 효자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칠십이 넘은 나이에 백살 가까운 노부모를 모시고 살며 효성을 바쳤습니다. 노래자는 항상 부모 앞에서는 어린아이 시늉을 하며, 가끔씩 양친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색동옷을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늙으신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한 노래자의 효성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자식들은 부모님이 언제나 살아 계실 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효도를 할 마음이 생겨도 내일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나무는 고요하려 하나 바람이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려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나이 드신 부모님은 언제 우리 곁을 떠날는지 알 수 없습니다. 때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오늘 부모님께 효를 행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부모님을 공경할 때 성경에 약속하신 복을 받아누리게 됩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십계명이 나옵니다. 거기 보면, 둘째 돌비에 새겨진 내용은 이렇습니다. “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살인하지 말찌니라 14)간음하지 말찌니라 15)도적질하지 말찌니라 16)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17)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살인하지 말라” 하셨지, 살인하지 않으면 무슨 상을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지, 무슨 상을 약속하신 것이 없습니다. “도적질하지 말라”고 하셨지, 도적질하지 않은 대가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나머지 두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부모 공경의 계명은 예외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5장 16절에 보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을 누리면서 오래 살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이 약속되어 있는 계명은 부모 공경의 계명인 다섯째 계명 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부모 공경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어서부터 노후대책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노후대책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보고서, 또는 노후대책을 미흡하게 하는 부모 세대를 보고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나는 늙어서 조부모와 부모 세대처럼 되지 않아야지” 그래서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노후 대책을 세워나갑니다. 얼마나 지혜로운지 모릅니다. 그만큼 머리가 깼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 효과적인 노후대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자기의 전 생애를 맡기고 계명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계명을 힘써 순종해 보십시오.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하신 대로, 이 땅에서 오래오래 살면서 복을 누리게 되실 것입니다. 그 좋은 예로서, 성경의 인물 가운데 요셉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으나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아버지 야곱을 모셔오기 위해 바로의 버금수레를 보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혼자 누리지 아니하고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를 애굽에 팔아먹은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아버지의 낯을 보아 다 용서해 주고 기름진 고센 땅을 바로에게서 얻어 형제들로 하여금 거주하며 살게 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이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효도를 행했더니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일백 십 세까지 장수하면서 복을 누리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룻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방 모압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룻은 모압 땅에 이주해 온 이스라엘 사람 나오미의 며느리가 되어 살던 중, 졸지에 남편을 여의고 맙니다. 과부 시어머니에, 과부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서 유다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당장 먹을 양식이 없자 밀을 추수하는 남의 밭에 가서 땅에 떨어진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그랬더니 룻의 효행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드디어 남편 집안과 가까운 친척인 보아스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보아스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 사람 됨됨이가 되었는지라 자기의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룻은 부유한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면서 시어머니 나오미를 계속해서 봉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이 이새를 낳았고 이새가 다윗을 낳음으로써 룻은 다윗 왕의 고조모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룻의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룻의 효성에 영 육 간에 넘치는 복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가 잘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부모가 그 자녀를 위해 매일 같이 복을 빌어주기 때문입니다. 복은 아무에게나 빌어준다고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복을 빌어줄 때 그 자녀가 받을만한 그릇이 되어야 그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지,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는 사람은 아무리 복을 빌어주어도 절대로 복을 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시간 지금까지 우리 각자가 부모님을 얼마나 공경했는지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버이날에만 하루 반짝 효도 흉내를 내는 것으로 부모를 공경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부모 공경은 연중행사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덕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명으로 부모 공경을 명하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계명으로 명하신 것은 부모 공경이 너무나 당연한 인륜에 속하기 때문에 구차스러운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 공경은 자식 된 사람들이 취사선택할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부모 공경의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부모 공경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뿐 아니라, 효사상이 퇴색되어 가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나타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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