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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대한 계획 (요 2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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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한 계획 (요 21:15~23)
  

살아가다보면, 순풍에 돛 단 듯이 순탄하게 잘 풀리는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역풍을 만나 도무지 혼자의 힘으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곤경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말씀들은 거의 순탄할 때에 일어난 사건들보다는 역경 속에서 그것을 극복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들도 보면, 감사와 찬양의 시들도 있지만, 비탄과 탄식의 시들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시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88:3-5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어둠 속에서 신앙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고난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로 인한 진노인 경우도 있고
때로는 너무나 억울하고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그들을 더 귀하게 쓰시기 위해 연단하셨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고난 속에서 신앙인들이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지난 주간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도 하며, 철야도 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려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저 자신을 보고, 우리교회의 과거와 미래를 보았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듣고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오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배경을 잘 살펴보십시오. 

베드로는 본래 고기 잡던 어부로서 본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오셔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부르셨어요.
그는 이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말씀을 통해 양육 받았고, 섬김을 몸으로 보았으며,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시몬은 결국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할 때, 주님은 그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꿔주셨습니다. 
그는 이제 주님께 인정받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서, 언제나 주님 곁에서 함께 했습니다. 
변화산상에도 함께 있었고, 겟세마네 동산에도 함께 했습니다. 
그는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할 정도로 
앞장서서 주님의 수제자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님이 재판을 받고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그는 너무나 나약한 모습으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해 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주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무덤까지 찾아 갔으나 
주님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고기 잡던 옛 생활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다시 원점에 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 베드로에게 오셔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이 물음 속에 담겨진 의미가 무엇일까요? 
저는 이 말씀 속에 담겨진 뜻이 무엇일까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깊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말씀은 저에게 4가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1.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참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오셔서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어요.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난 정말 너에게 실망했다.” 등 하실 만한데
전혀 그런 말씀은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렇게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 속에서 
위대한 신앙고백을 함으로 바꿔주신 베드로가 아니라 
연약함과 부족함을 가진 자연인 시몬의 이름으로 부르심으로 저는 그의 본래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한낱 고기잡이에 불과한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새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가 되었고,
남들 앞에서 큰 소리를 치고 그들을 선동하는 수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주님을 부인하는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참된 현주소는 ‘요한의 아들 시몬’입니다. 어부에서 부름받은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몬이 베드로가 된 것은 순전히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잊고 베드로로 행세하던 그는 결국 다시 시몬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은 저에게 더욱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제가 우리교회의 담임목사이기 이전에 연약한 죄인임을 알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받지 못했다면 지옥에 던져질 존재입니다. 
구원받은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일뿐입니다.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처음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났을 때에도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완중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도 나를 사랑하니?”
저는 주님 앞에 사랑을 고백하였고, 주님께 헌신하기로 작정했었습니다. 
주님은 저에게 그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사이기 이전에,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벧전5:5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약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눅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마저도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자신을 낮추어 사람과 같이 되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복종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셔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더 위대한 자로 쓰시기 위해서 먼저 그를 낮추십니다. 
우리가 온전히 깨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완전히 부서지고 깨질 때, 그 부스러기를 모아서 새로 빚어 만드십니다. 
제 입에서는 어느 새 이 찬양이 흘러 나왔습니다. 

♬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다버리고 다고치고 겸손히 낮아져도 주앞에서 정결타고 자랑치 못할 거예요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를 더 부서뜨려주시옵소서. 저를 더 깨뜨려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로 새로 빚어 만드시기 위해서는 완전히 부서져야 합니다. 완전히 깨져야 합니다. 


사울이 겸손할 때에는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셨지만,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를 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겸손하라 하십니다. 더 낮아지라고 하십니다. 

2. 더 많이 사랑하라 하십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고기잡이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주님이 오셔서 물으신 것은 사랑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으셨어요. 다만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어요.
오늘도 주님의 최고의 관심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최고의 명령도 사랑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주님의 질문과 베드로의 고백을 다시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주님이 물으셨네. 그 때 나는 주께 대답했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께서 내 맘을 아시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그렇듯 하나님도 우리의 사랑에 목말라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짝사랑하시도록 외롭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에는 못 미치겠지만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배상길 목사님이 교우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친필 메시지가 뭔지 아시나요?
저는 책에서 보았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자”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요일4:10-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저도 여러분을 주 안에서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우리 서로 더욱 사랑하십시다. 사랑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부족함이 있어도 서로 덮어 주십시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 사랑으로 더욱 품으십시다. 
사랑하지 않고 서로 견제하고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만큼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어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갈 때 부흥이 임합니다. 
하나 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영입니다.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십니다.


3. 기본에 충실하라고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는 이 질문이 저에게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양을 치고, 양을 먹이는 일에 앞서서 확인해야 하는 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양을 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오늘도 물으십니다. 
사역을 하기 전에, 주님을 더욱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목회를 하기 전에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확인하라 하십니다.
찬양대원이 되기 전에, 교사가 되기 전에 주님을 사랑하는지 물으십니다. 
잔재주 부리지 말고, 자기경험 의지하지 말고 기초를 든든히 하라 하십니다.

신앙의 기본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아는 것이고요.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생활에 힘쓰고, 성도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예수 복음을 전하는 생활입니다. 
말씀과 기도, 교제와 증거의 삶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서 (행6:4)
구제와 봉사를 위한 집사를 선택했던 것을 행6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초가 든든하지 못한 집은 곧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기본에 충실하라. 기초를 든든히 하라. 
더 높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를 더욱 든든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초는 든든합니까? 
예수 십자가의 사랑을 믿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복음증거의 열정이 있습니까? 
누가 전도를 해야 이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습니까? 
나는 안하면서 부흥 안된다고 핑계는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있지는 않나요?

내가 할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혹시 구경꾼이나 방관자는 아닙니까? 
성도들의 기초가 든든해야 하고, 모두가 움직이는 일꾼이 될 때 교회는 큰 부흥을 이룰 수 있습니다. 
먼저 내 가족부터 구원해야 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내 가족으로 인해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 아픔이 없고서는 내가 누구를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전도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사명으로 아는 마음으로 불타올라야 합니다. 
기초를 다시 든든히 하십시오. 

4. 멀리보라고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주님은 이제 그의 미래를 말씀하십니다. 
18-19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장차 그의 죽음에 대해 미리 말씀하십니다. 사실 죽음보다 더 먼 미래는 없습니다. 
죽음으로 우리의 생애는 마치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현재의 일에만 급급하지 말고 멀리 미래를 보라 하십니다. 
비록 베드로 자신이 원하는 곳은 아닐지라도 결국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을 향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원대한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그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21절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베드로는 자신을 인도하시는 주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옆 사람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주님은 대답은 무엇입니까?
2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다른 사람 상관하지 말고 너나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 상관하지 말고 우리나 따르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은 이제 그만 상관하십시오.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십시오. 
내게 주신 사명에만 충실하십시오. 
  
그리고 현재의 모습만 보지 마시고 우리교회의 미래를 보십시오. 
이 성전을 가득 채운 미래의 모습을 꿈꾸십시오.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물어 보십시오. 
서로 함께 협력하십시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시고 멀리 보십시오. 
그리고 차근차근히 그 미래를 향해 달려갑시다.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주님은 실패자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새롭게 하십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다시 사명을 주십니다. 
결국 실패자 시몬은 가장 위대한 제자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순교를 통해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위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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