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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인도하심 (행 10: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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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인도하심 (행 10:44~48)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개선 장군처럼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환영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연회 석상에서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는 식으로 그를 공격했습니다. 배를 다만 서쪽으로 몰아가다가 우연히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 것 아니냐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러자 컬럼버스가 대답했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나는 별로 자랑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제일 먼저 그런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긴 것이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책상 위에 달걀 한 개를 놓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달걀을 세워 보십시오."
사람들은 저마다 달걀을 세워 보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이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 보십시오. 내가 세워 보겠습니다."
그리고 책상 모서리에 달걀 끝을 쳐서 끝을 납작하게 만든 후 책상 위에 세웠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투덜댔습니다.
"그런 식으로 누구는 못할까?"
컬럼버스가 다시 말했습니다.
"물론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나만 이 방법을 착안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신대륙 발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물꼬를 튼다'는 말이 있습니다. 논이나 밭에 물을 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농수로에 아무리 많은 물이 흐르고 있어도 물꼬를 트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물꼬를 트고 물을 공급하지 않으면 논이나 밭에 있는 작물은 말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엄청나게 큰 힘을 필요로 하거나 대단히 놀라운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물꼬를 트지 않으면 논이나 밭에 물은 공급될 수 없고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논이나 밭에 있는 작물은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햇빛이나 단비와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나 악인을 구분하시지 않고 햇빛과 단비를 골고루 주십니다. 그러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명의 복음은 컬럼버스의 달걀처럼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전해야만 합니다. 생명의 복음은 물꼬를 터서 논이나 밭에 물을 공급해야 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전파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전하지 않으면 아무리 귀한 복음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을 부탁하셨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제자들이 주님의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까? 웬일인지 몰라도 그들은 제대로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땅끝까지 이르기 위해서 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부터 4절 말씀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제자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권능을 받지 못했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권능을 받았기 때문에 놀라운 역사가 제자들을 통해서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날 때부터 못 걷게 된 거지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 밖에도 제자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째서 땅끝까지 이르러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유대인들의 선민 의식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인 제자들로서는 비록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지라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제자들에게 있어서 땅끝이란 고작해야 갈릴리 지방이나 사마리아 지방까지가 한계였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있어서 사람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흩어졌을 때 제자들도 그들과 같이 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성령이 친히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물꼬를 트는 작업을 성령이 친히 시작하셨습니다. 먼저 가이사랴에 있는 이달리아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이 베드로에게 고넬료에게 가서 구원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깨끗하지 않은 것은 결코 먹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면서... 성령이 친히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놀라면서 그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도행전 10장 34절, 35절 말씀입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이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간략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바로 그 때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세례를 베푼 것도 아니요 안수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구원의 복음, 생명의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고넬료의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단순히 구원받은 그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온 세상 만민을 위한 복음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들뿐 아니라 온 세상 만민이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로마로, 이어서 유럽으로, 또 대서양을 건너서 아메리카로, 마침내 태평양을 건너서 우리가 사는 이 아시아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이 복음 전파는 사람들의 계획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개종도 베드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 같이 보이지만 성령이 친히 택하시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오직 주님만이 생명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복음의 역사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4~26)

고넬료의 집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는 복음이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이 공평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복음이 처음 전해졌을 때의 사회는 양반과 의 차별이 있는 계급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복음을 통해서 그 계급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때문에 한국 교회가 이토록 놀라운 부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로 하여금 이 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과연 무엇입니까? 과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 생명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을 막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더 이상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물꼬를 터야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수를 마실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때문에 성령은 우리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죽도록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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