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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스라엘의 한 소녀 (왕하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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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한 소녀 (왕하 5:1~4)


몇 해 전, 김신애라고 하는 한 소녀가 [윌렴]이라는 소아암의 일종인 종양으로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초기 같았으면 수술로 90%의 완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이 잘못된 이단 종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병원에서 [윌렴]이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기도로 고칠 수 있다고 고집하며 병원의 치료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4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실이 한 방송을 통하여 전국에 알려 지면서 믿음이 좋은 한 검사의 설득 끝에 수술을 하고 회복되어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방송에서 "살고 싶다"고 소리치던 신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치료를 하면 살 수 있다"고 하는 소식은 그 소녀, 신애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은 다른 말로 하면 기쁜 소식입니다.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은 절망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줍니다. 깊은 상처를 입고 있는 사람에게는 힘과 용기와 위로를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쁜 소식, 즐거운 소식, 기쁜 뉴스를 듣고 싶어 합니다. 
오늘 우리 본문에는 절망 중에 있는 사람에게 큰 기쁨의 소식을 들려준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선교주일에 "이스라엘의 한 소녀"라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 한 소녀, 그녀는 이스라엘의 소녀로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본문 2-4절에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① 본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전쟁 중에 사로 잡혀 온 소녀였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이스라엘은 유일신 하나님을 따르고 섬긴 것이 아니라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되는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과 아세라 신 등 이방 신들을 섬기는 이방 종교가 득세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스라엘은 모압이나 아람 나라로부터 자주 침략을 받았습니다. 애굽이나 유럽으로 진출하고, 또 해상권을 쥘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스라엘을 점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웃 나라들로부터 자주 침략을 받았습니다. 
어느 때 아람은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사람들을 도륙하였습니다. 노약자들은 죽이고 힘을 쓸 만한 사람들은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때 우리 본문에 나오는 이 소녀도 함께 포로로 붙잡혀 갔던 것입니다. 이 소녀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전쟁 중에 사로잡혀 온 불행한 시대를 사는 아이였습니다. 
본문 5장 2절을 보면 그녀는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여주인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수종들더니』라는 말은 나아만의 아내의 얼굴 앞에 있었다는 말로, 우리 번역처럼 나아만의 아내를 위하여 봉사하는 여종 노릇을 하였다는 것과 그녀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사로 잡혀 왔다고 하는 사실이나 원수의 집, 원수의 나라인 아람나라의 대장의 집에서 여종으로 살고 있다고 하는 사실들은 그 소녀가 속했던 조국 이스라엘의 불행인 동시에 그 소녀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불행한 것도 아니지만, 이 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행복할 때도 있으면, 불행한 일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기쁘고 즐거울 때도 있지만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을 만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웃을 때도 있지만 울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한 인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때는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아버지 야곱의 품은 행복했지만 형들에게는 미운 털이 박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들을 먹이는 형들을 찾아 나섰다가 형들에게 붙잡혀 애굽이라는 나라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팔리고 팔리는 과정에 요셉은 애굽의 임금을 경호하는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렸습니다. 보디발을 주인으로 섬기는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소년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청소년기를 이렇게 불행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감옥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한 소녀, 그녀는 이스라엘에서부터 포로로 잡혀와 원수의 나라 대장의 집에서 주인을 섬기는 불우한 소녀였습니다. 

Ⅱ. 그러나 그 소녀는 자기의 조국을 잊지 않았고, 조국에 있는 선지자를 기억하 고 있었습니다. 

3절을 보면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조국 이스라엘이 패전을 했을 때, 이 소녀만 포로가 되었겠습니까? 많은 친구 소년 소녀들이 포로로 잡혀 와서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갔을 것입니다. 아람 나라에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육체적으로 힘들고 아픈 사연들 때문에 자기의 조국을 잊고 있었을 수도 있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소녀는 자기의 조국과 조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기억해 냈습니다. 이것은 마땅한 일이면서 또 귀한 일입니다. 

성경 창세기 39장을 보면, 애굽으로 팔려갔던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주인의 신임을 받아 가정 총무로 재직하였으나 다시 감옥에 갇힌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40장 15절을 보면 요셉은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믿는 신앙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5절에서 요셉은 형들을 만난 후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합니다. 

다니엘서에서는 조국 유다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바벨론에 의해 패망될 때, 포로로 잡혀 갔던 유다의 청년 몇 사람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들은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고 하는 청년들입니다. 이 청년들은 바벨론 왕궁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세운 금신상 앞에 절하라고 하는 명령이 주어졌을 때, 그들은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다니엘은 누구든지 30일 동안 아무 신에게나 또 누구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겠다고 하는 메대와 바사의 다리오 왕의 명령이 반포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시편 137편에는 포로로 잡혀 간 유다의 청년들이 바벨론 강가에 모여 부르던 애통의 노래가 나와 있습니다. 그 노래 중에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신앙의 소년, 소녀, 믿음의 사람들도 온갖 어려움의 현실 앞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 그 조국에서 활약하던 선지자, 주의 종을 잊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소녀는 자기의 삶이 가장 힘들 때에 자기의 조국과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기억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 소녀, 그녀는 신앙 소녀라고 생각합니다. 

Ⅲ. 그 소녀는 나아만이 병들어 절망 가운 데 있는 것을 보고 살 수 있는 길, 고침 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본문 3절에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녀가 섬기고 있는 주인 나아만은 아람의 임금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아람 나라 왕의 신임과 총애를 받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총애와 존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본문 5장 1절에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본문 5장 1절 중에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고 하는 말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아만은 나병(癩病)이라고 하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는 나병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지만 나이만의 당시, 지금부터 2,700-2,800년 전, 당시의 의술로는 치유가 불가능한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는 병이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 가운데도 유명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권력을 가진 자도 있고, 부를 가진 자도 있습니다. 명예를 가진 자도 있습니다. 학문적으로 유명한 자도 있고, 자기가 쌓아 온 기술과 연기력 등으로 유명하게 된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학문이나 기술, 재물, 권력, 그 유명하다고 하는 것들이 자기를 구원하는데 능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없는 모든 것들은 인간이 스스로 쌓아 놓는 바벨탑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무너지는 날, 그 인생마저 무너지고 맙니다. 자기 삶에는 유명하여도 자기를 구원하는 일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것이 오늘의 나아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나아만의 집에 이스라엘에서 사로 잡혀 온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그 집에서 주모를 섬기면서 그 주인 나아만이 인간의 힘으로 치유할 수 없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소녀는 자기의 여주인을 찾아가서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이 소식,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일까요? "안 됩니다", "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 해 보지요"라는 말만 듣던 사람에게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칠 수 있으리이다"고 하는 말은 복음이었습니다. 병자에게 있어서 육신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하는 소식은 이처럼 좋고 기쁜 소식입니다. 복된 소식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준 것은 자신을 총애하는 왕도 아니고, 동료도 아니었습니다. 자기를 원수같이 생각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사로 잡혀 온 어린 소녀였습니다. 종이라고 멸시받는 노예 소녀였습니다. 

그 소녀가 전한 말은 복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입니다. 살고자 하는 용기를 불러일으킨 말이고, 행동을 하게 한 말입니다. 그 한마디의 말은 나아만을 이스라엘 땅으로 가게 하였고, 그 말 한마디가 마침내 선지자 앞으로 가게 하였고, 그 말 한마디가 자신을 괴롭혔던 무서운 병에서 자유하게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것을 알게 하였고, 그의 입에서 "여호와"라고 하는 이름을 부르게 하였고, 17절에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고 하는 결심과 고백을 하게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에서 아람으로 전쟁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어린 소녀는 국가의 비운과 함께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 소녀는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였고, 특히 중병에 걸려 있는 자기 주인에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생명의 말을 하므로 희망을 주었습니다. 결국 그 소녀는 그 주인이 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를 만나 공포와 두려움의 존재였던 질병을 고칠 뿐만 아니라 여호와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그 분만이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도록 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분에게만 경배를 드리게 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총회선교주일입니다. 우리 교회 선교회원이 134명입니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총회 내의 모든 교회들은 총회중심의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총회가 선교사를 선발하여 파송하고 지도를 합니다. 
"선교"라고 하는 것은 타문화권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냄을 받은 선교사들은 인생의 죄인됨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 영생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도록 그 복음을 듣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는 일이 선교입니다. 
우리 교단은 1980년 이후, 지금까지 타민족의 영혼 구원을 목표로 선교사를 파송해 왔으며 현장에 파송받은 선교사들은 개인전도와 교회 개척, 그리고 더 효과적인 선교 사역을 위하여 선교 현지에 신학교를 세워 현지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현재 23개국에 222개 처의 교회가 세워지고 약 15,000명의 교세를 얻었습니다.

해외 선교지에 16개의 고려신학교 해외 분교에서 362명의 학생이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신학생들이 자국(自國)에서 일으킬 복음의 역사를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겠습니까? 
금년 여름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지도자로 훈련을 받고 있는 두 명의 강도사를 목사로 임직하여 파송하고자 합니다. 또한 10월에는 베트남장로회독노회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선교는 죄인인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직접 몸으로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선교사도 있지만, 해외에서 일하는 선교사를 위하여 국내에서 기도하며 후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선교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선교를 방해하려는 사탄의 세력들의 끊임없는 방해와 위협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해야 합니다.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더 많이 후원하여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또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위하여 기도하며 후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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