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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네게 속한 자들을 이끌어 내라 (창 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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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속한 자들을 이끌어 내라 (창 19:12~22)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들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지금부터 약 4천여 년 전, 가나안 사해 근처의 한 산지에서 충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녀를 낳은 것입니다.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드려 취하게 한 후에 동침하여 큰 딸은 <모압>이란 아들을 낳았고, 작은 딸은 <벤암미>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부끄러운 아버지의 이름은 <롯>이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조카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 때는 미개해서 그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닙니다. 당시에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참담하고 패륜적인 일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곳에는 두 딸의 배필이 될 만한 남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9장 30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두 딸도 거기 결혼할만한 남자가 있었다면 이런 부끄러운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매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본래 이 두 딸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두 청년은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청년은 왜 죽었습니까? 소돔성과 고모라성의 죄악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서 두 성을 하늘의 유황불로 멸하셨는데, 롯의 두 예비 사위들은 거기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쉬운 것은 롯에게는 예비 사위들을 소돔성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집을 들렀다가 소돔성으로 왔습니다. 성문 입구에 않아 있던 롯은 천사들을 나그네로 여기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 때 천사들은 롯에게 말합니다. 12-13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네게 속한 자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이건 하나님께서 롯에게 주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롯에게 속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우선 그의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두 딸과 결혼하기로 약속한 예비 사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롯은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성밖으로 인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가슴아픈 실패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는 아내와 두 예비 사위를 잃은 채 두 딸만 데리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롯은 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실패했을까요? 천사들이 미리 알려주기까지 했는데, 왜 실패했을까요?

  
첫째, 그는 평소에 인격과 말에 권위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비 사위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에게 들은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롯의 말을 농담처럼 들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롯의 말은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여러분, 장인이 사위에게 가장 힘이 있을 때가 언제입니까? 딸 결혼시키기 전입니다. <내게 잘 보이지 않으면 딸 안 준다>,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롯은 예비 사위들에게 가장 권위가 있어야 할 그 시점에도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는 평소에 롯의 언행과 인격이 사람들에게 권위가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아시지요? 한 마을에 양치기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은 양을 몰고 산으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하루 종일 양을 치려니까 몹시 심심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장난을 했습니다. <큰 일 났어요. 사람 살려요. 늑대가 나타났어요....>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곡괭이와 막대기를 들고 늑대를 쫓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와 보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냥 심심해서요....> 소년은 종종 그런 장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로 늑대가 나왔습니다. 소년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을 사람들은 소년이 또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의 인격과 말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롯은 늑대를 만난 양치기소년의 입장과 흡사합니다. 아무리 예비 사위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소돔성이 곧 멸망할 것이라고 말해도 그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여러분, 평소에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계십니까? 신실하고 권위있는 사람으로, 믿을만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계십니까? 아니면 믿을 수 없고, 괴팍하고,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으로 여겨지고 계십니까? 

성도들은 평상시 언행에 조심해야 합니다. 유쾌하고, 명랑한 것, 남을 웃기기 위한 가벼운 유머는 좋습니다. 그러나 자칫 믿을 수 없는 가벼운 사람으로 보이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4장 6절은 말도 조심하라고 일러줍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로, 롯이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실패한 이유는 롯 자신부터 하나님께 대하여 진지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롯은 예비 사위들에게 성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빨리 성밖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롯 자신부터 성밖으로 나갈 생각이 있었는지 의심이 듭니다. 그 자신도 미적거리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 증거가 15절 이하에 나옵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롯은 천사들이 재촉해도 지체했습니다. 여유를 부리면서 있을 때가 아닌데도 롯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이건 성을 벗어날 마음이 별로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지체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직 성에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두고 가는 많은 재산에 미련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두고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래 천사들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17절을 보세요.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생명을 건지는 일보다 우선되어야 할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달려가야 합니다.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성에 두고 온 것들에 너무 미련이 많아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26절을 보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참담한 일입니까? 이 일은 롯과 그의 아내가 평소에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롯도 그렇고, 그의 아내도 그렇고, 이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미지근한 태도, 세상 욕망을 사랑하는 태도는 이미 그 전에도 드러난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양떼가 많고, 롯도 양떼가 많아지자 목초지가 부족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 때 롯이 어느 곳을 선택했나요? 다름 아닌 소돔성이었습니다. 당시 소돔성은 사람들이 많고 여러 가지 즐기면서 살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그 성이 죄악이 가득하여 멸망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롯은 <어떻게 하면 경건하게 하나님을 잘 믿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기준으로 선택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즐기면서 살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선택했습니다.

이게 롯의 가족들이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평소에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로 살았다면, 소돔성에 살지도 않았을 것이고, 설령 소돔성에 살았다고 하더라도 천사들이 재촉하는데 지체한다거나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롯 자기 자신부터 그렇게 미지근하게 살면서 예비 사위들에게 어서 빨리 성밖으로 나가자고 말했으니, 무슨 진정성이 느껴졌겠습니까? 장인의 얼굴에서부터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는데, 사위들이 어떻게 그 말을 신뢰하겠습니까? 참 아쉽습니다. 만약 그가 사위들을 데리고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딸들과 사위들을 짝지어주고, 태어나는 손자 손녀를 보면서 행복한 여생을 살았을 게 아닙니까?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한 결과가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롯과 그의 아내처럼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난 집에서 나오지를 않고 물건을 챙기는 모습으로 삽니다. 언제 집이 무너질지 모르는데, 엉뚱한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 생각대로 삽니다. 신앙보다는 육신의 일에 우선권을 둡니다. 먼저 세상일을 하고, 남는 시간이 있으면 예배에 옵니다. 불과 몇 십 년이면 끝날 세상일은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영원한 천국에 대해서는 마음이 적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한 일에는 한 푼을 아깝게 생각합니다. 사람들과의 약속에는 신실하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립니다. 그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욕망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나와 함께 교회에 갑시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읍시다. 이 세상은 잠깐이지만, 천국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그 사람 자신이 하나님보다는 세상에 중심을 두고 산다면 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선생이나 잘 믿으시지요, 아주머니나 제대로 믿으세요>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엄마나 잘 믿어!, 당신이나 잘 믿어> 이럴 것입니다. 또 교회에 가자고 하는 그 태도가 간절하지도 않고 <오고 싶으면 오라. 싫으면 말고> 식으로 대충 말한다면 어떻게 그들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이끌어내는 일에 성공하고 계십니까? 

이 세상은 거대한 소돔성입니다. 언젠가 이 죄악된 세상은 멸망합니다. 그 멸망의 와중에서 믿음의 사람들만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엊그제 국민일보에는 현대 영적 거성 중의 한 분인 <리차드 포스터> 의 글이 실렸습니다. 그 분은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가 1912년 죽기 직전에 했던 말을 인용했습니다. <회개 없는 용서, 중생 없는 구원, 지옥 없는 천국이 교회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계속 말합니다. <만인구원론자들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사랑의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 더 강력하게 가르쳤던 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예수님은 모든 설교에서 인간의 운명에 대해 단 두 가지만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없는 데서 영원한 고통을 받느냐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소돔성 같은 세상에 사랑하는 분들을 방치해 두면 지옥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냥 놔두면 안 됩니다. 반드시 성밖으로 이끌어 내야 합니다. 이 일에 실패하면 비극입니다.

제 아버님은 올해 94세입니다. 그 분의 마음에는 평생의 한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자책입니다. 6.25 전쟁 때 아버님은 가족들을 데리고 오지 못하셨습니다. 북한에 제 형님 세 분과 누님 네 분이 남아 있습니다. 그 빈곤의 땅, 억압의 땅, 주체사상의 독재의 땅,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 그 땅에 남겨두고 온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생사를 알 수도 없습니다. 데리고 오셨다면 지금 얼마나 다복할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 아픔은 이 세상 있는 동안만 겪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소돔성, 죄악의 소돔성에 남겨 두고 온 비극은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영원한 멸망입니다. 지옥불에 떨어지는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분들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되십시오. 아브라함은 천사들이 소돔성의 멸망을 예고할 때, 여섯 번이나 소돔성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조카를 위한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나마 롯을 건지신 것은 아브라함을 생각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29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에게 속한 분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강권하십시오. 작정한 분들을 구역으로 초청하시고, 교회로 초청하십시오. 아브라함 덕분에 롯이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수고와 눈물의 기도와 전도를 통해 우리에게 속한 분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되길 기원합니다.  

<네게 속한 자들을 이끌어 내라>, 저는 이 말씀이 너무도 두렵습니다. 목사인 제게는 여러분 모두가 제게 속한 분들입니다. 우리 교회 교우 모두를 천국으로 인도해야 하는데, 그 일을 제대로 못하여 하나님 앞에 너무도 죄송스럽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계셔야 할 분들 중에서 세상의 즐거움을 따르느라 이 자리에 없는 분들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들에게 속한 분들은 누구입니까? 먼저 아버님과 어머님입니다. 부모님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은 모든 효도 중의 으뜸입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 자녀들입니다.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을 지키면서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사랑하는 가족들, 우리에게 속한 이들을 소돔성 안에 남겨두지 마십시오. 반드시 이끌어 내십시오. 천국으로 가는 길에 가족 중 누구도 소금기둥이 되면 안 됩니다. 온 가족을 주님께로 인도하십시오. 이게 참 가족 사랑이요, 효도가 될 것입니다. <네게 속한 자들을 이끌어 내라>, 이 말씀을 실천하여 온 가족이 함께 <주의 발자취를 따르는 기쁨>을 누리게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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