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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견고한 울타리 (시 128:1~4,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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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울타리 (시 128:1~4, 엡 6:1~4)


옛날 어느 부자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주 값비싼 구슬 하나를 그의 옷 속에 넣고 꿰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꼭 네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또 가졌던 돈이 떨어졌을 때 이 구슬을 꺼내서 팔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거야.”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아들이 성장해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둘러보니까 계획에 없는 곳까지 가게 되었고 많은 노잣돈이 들었습니다. 결국 주머니에 돈이 다 떨어지게 되고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지꼴이 되어서 구걸하며 연명하여 겨우겨우 집까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오자 아버지가 이 아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네 옷 속에는 이렇게 귀한 구슬이 있는데 왜 이걸 모르고 고생하고 돌아왔느냐?” 그리고 옷 속에 있는 구슬을 꺼내 보여주었을 때 그 아들은 그 구슬을 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주 가치 있고 존귀한 것이지만 그것을 잊고 살아갈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것 중의 하나가 가정의 소중함입니다.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줄 모릅니다. 가정이 얼마나 가치 있고 존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가정이 소중하고 존귀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설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만들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가정을 세워주셨습니다. 가정이 건강하게 설 때, 교회도 건강하게 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정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낳고, 그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가정을 통해서 인격을 배우고 삶을 배우고 하나님을 배우고 신앙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아버지들은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정에 돌아왔을 때 진정한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가정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재충전을 갖게 되고 활력을 가지고 내일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소중한 것입니다.

어느 화가가 세상의 가장 평화로운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다 가봤지만 진정한 평화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몇 달 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빠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뛰어나와서 “아빠!” 부르며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와서 정성껏 준비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음식을 먹을 때 화가는 깨달았습니다. ‘이게 진정한 평화구나!’ 하면서 그 가정이 식사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정을 울타리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울타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풀이나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서 그 가정의 경계를 정해놓은 것이 바로 울타리입니다. 예전에 시골에 가면 벽돌담 보다는 이런 울타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울타리 안은 그 가족만을 위한 공간인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 공부도 하고 학교도 가고 직장 생활도 하지만 그 가정의 울타리 안으로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울타리 안에서 쉼을 경험하고 행복은 경험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격려하며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그 가정의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가정이란 울타리가 자꾸 금이 가고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너지기 시작한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이란 울타리가 무너질 때에 우리 자녀들은 보호받을 수가 없습니다. 가정의 울타리가 없다면 동네의 지저분한 개들이 다 몰려들어서 집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정이란 울타리가 너무 소중한 것입니다. 이 가정이란 울타리를 잘 지키고, 무너지지 않는 울타리를 세우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가정의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첫째, 하나님 잘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시편 128편 1-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길을 따르는 가정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잘 섬기는 민족이 복을 받듯이 여호와를 높이고 그를 예배하고 경외하는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복되고 무엇을 하든지 형통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잘 섬기는 가정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이라면 그분이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은 결코 무너지거나 허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고넬료의 가정은 바로 그런 가정입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이웃을 잘 구제하는 가정입니다. 베드로 사도를 모셔 와서 말씀을 들을 때, 온 가족과 종들까지 그 사도 앞에 앉아서 말씀을 청종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그 가정의 울타리는 견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 23장을 보면 여호수아는 백성을 향해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오늘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 자신과 그의 가정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담대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오직 하나님만을 선택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민족은 무너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가정은 허물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가정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가정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이라는 유명한 책이 한국에서도 번역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습니다. 그 책을 기록한 링컨의 전기 작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링컨은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어디로 봐도 대통령이 될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될 재목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가정배경도 좋지 않았고, 모든 것에 그리 능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링컨이 10살 때 어머니 낸시가 세상을 떠납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링컨에게 유산을 주는데 그것이 바로 손에 익은 성경책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성경인데 이것을 너에게 준다. 링컨아! 이 성경을 잘 읽고 이 성경 말씀대로 네가 산다면 넌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단다.” 

이렇게 어머니는 링컨에게 유언을 남겨 주었습니다. 링컨이 그 성경을 열심히 읽고 실천할 때에, 미국에서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대통령, 세계인의 존경받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가정이 견고해지는 조건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울타리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무너지지 않는 울타리가 되려면 화목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128편 3절에 보니까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포도열매가 가을에 탐스럽게 맺히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남편의 눈에는 아내가 탐스럽게 맺힌 포도열매처럼 너무 사랑스럽다는 말입니다. 금술도 좋고 화목한 부부라 할 수 있으며 이런 가정이 견고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네 식탁에 둘러앉은 어린 자식들은 마치 감람나무처럼 사랑스럽다고 말합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인데 그것은 관상용으로도 보기 좋고 그늘도 되고 기름으로도 쓸 수 있어서 가정에 유익을 줍니다. 그 어린 자녀들이 식탁에 둘러앉았는데 너무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목한 가정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정이 화목한 가정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될 때에 그 가정은 견고한 울타리가 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선입니다. 시편 133편에 보니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의좋게 지냅니다. 가정에 웃음이 있습니다. 가정에 찬송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가정입니까? 여러분! 많은 물질이나 세상적인 어떤 출세가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15장 17절에서는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채소를 먹고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잠언 17장을 보니까 “마른 떡 한 조각만 놓고도 화목하는 것이 고기가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외적인 조건이 부족하더라도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있고 화목이 있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최고의 가정이라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화목하는 조건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만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를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내 잘못입니다 내 탓입니다.” 이러면 됩니다. 어느 가정 거실에서 누가 물을 먹다가 컵을 바닥에 두었습니다. 다섯 살 된 손자가 그것을 모르고 뛰어가다가 컵을 발로 차서 온 거실이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가정은 정말 화목한 가정입니다. 그것을 보고는 할머니가 나오더니 “아이고 큰일 났다 어떡하냐? 내가 할 일도 없는데 이것 좀 치워 놓을걸. 이건 내 잘못이야. 애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하고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랬더니 며느리가 나와서 “어머니 아니에요! 제가 보살펴야 했는데 이것은 제 잘못이 커요.” 또 물을 먹었던 장본인인 아들이 나와서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물을 먹고 텔레비전을 본다고 옆에 놓았는데 제가 치워야 하는 것을 치우지 않아서 그러니 이것은 제 잘못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손자가 “아니에요 할머니, 그것은 제 잘못이에요 제가 뛰어다니지 않고 걸어 다녀야 했는데 뛰어가다가 발로 찼잖아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 가정은 화목하지 않을래야 화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다 자기의 잘못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러한 일들이 또 다른 가정에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세상에, 며느리는 뭐하느라고 자식새끼하나 살피지 않고 애가 발로 차서 이 난리를 만드냐, 여기가 무슨 축구장이냐! 애새끼는 눈도 없느냐 그것을 왜 발로 차느냐” 이렇게 난리가 나고 그 일 때문에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한 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은 이편도 못 들고 저편도 못 들고 가정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도 있습니다. 잘못한 원인이 내게 있다고 할 때에 가정은 화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마음으로 가정을 섬겨서 여러분의 가정이 화목한 가정이 되고, 견고한 울타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무너지지 않는 울타리는 부모 공경하는 가정입니다.
  
육신의 부모를 잘 공경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 우리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여기에서 순종이란 말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귀담아 잘 청종하는 것입니다. 요즘 부모님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섭섭하게 생각하는 말 중에 첫번째가 어떤 말이냐 하면 “엄마는 몰라도 돼요!”이런 말입니다. 컴퓨터에 대해 아빠가 무엇을 하다가 “이것이 뭐니? 이것 좀 알고 있니?”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세요?” 하고 핀잔을 주는 것입니다. 또 어느 아빠가 가정의 주간도 되고 해서 아이들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아이의 입에서 한마디가 툭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언제는 우리에게 관심도 없더니?” 이것은 부모에게 참 상처가 되는 말입니다. 순종하는 것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귀담아 잘 듣는 것입니다.

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공경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다음으로 부모를 높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고 즐거움을 드리고 물질로 부모님을 봉양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 부모님들께 정기적으로 용돈을 드리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부모님이 밖에 나가서 자장면 한 그릇을 먹으면 “오늘 점심 내가 내지!” 이렇게 큰 소리를 내야지. 점심 드시면 조마조마해서 “아이구, 내가 돈이 없는데 어떡하나?” 이러면 부모에게 잘못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되, 용돈도 충분히 드려서 어디 가서 남에게 대접할 수 있는 그런 자격이 되게 할 때에 자녀로서 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에 하나님은 복을 부어주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화가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약속의 말씀은 신실하셔서 어김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로 자녀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변함이 없습니다.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어머니의 희생, 아버지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유명한 소설가운데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나라가 온통 혼란스럽고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고통당할 때 한 부대가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가에 한 중년 여인이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버려져있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너무 굶주려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상사가 그것을 보고 빵 한 덩어리를 꺼내서 여인에게 건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 지켜봤더니 그 여인이 빵을 세 조각으로 똑같이 나누어서 세 아이에게 하나씩 주어서 먹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사병이 상사에게 묻습니다. “상사님! 그런데 저 여자는 누구일까요? 자기는 먹지도 않고 아이들에게만 빵을 나누어 주네요.” 

그래서 상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넨 그걸 모르나? 보나마나 저분은 아이들의 어머니라네” 자기는 먹을 것이 없어도 아이들에게 먼저 나누어 주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가끔 저의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가 있습니다. 삼겹살을 보면 부위에 따라서 조금 딱딱한 뼈가 들어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대개 가족이 먹으면 집사람이 아이들에게는 부드러운 부위나 살을 먹이고 자기는 뼈가 들어있는 딱딱한 부위를 주로 골라 먹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오도독 씹는 이 부위가 더 좋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왔는데 아이들이 다 커서 엄마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엄마는 살코기는 별로 싫어하고 뼈가 있는 부분만 좋아하는 줄 알았답니다. 그것이 자식들입니다. 또한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정말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알아드리고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생활 능력이 없을 때 그 부모님의 생활을 보살펴드리는 것이 자녀들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또한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부모에게 효를 다할 때에 내가 네게 복을 줄 것이고 네가 땅에서 장수하고 네가 잘 될 것이라”고 축복의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효도했던 인물들은 모두 다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팔 형제 중에 막내이지만 늘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누가 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부모의 말씀에 순종해서 형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감당해 냈습니다. 양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늑대가 찾아오기도 하고 맹수들이 달려올 때마다 그는 무섭지만 도망가지 않고 물맷돌을 던지는 연습을 해서 돌맹이를 가지고 맹수들을 내쫒으면서 양들을 잘 보살폈습니다. 부모에게 효를 다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를 들어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만이 아닙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지만, 그가 후에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에 그의 아버지 야곱을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우리 아버지가 제대로 드시기나 하는 걸까?’ 걱정이 되어 바로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좋은 수레를 보내어 아버지와 그의 일가족을 모두 모셔 와서 가까이 모셔두고 아버지께 효도를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셉의 마음을 아시고 그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며느리 중에 가장 훌륭한 며느리는 역시 룻기서의 룻입니다. 이 여인은 이방여인이었지만 베들레헴에서 이주해온 나오미와 엘리멜렉 가정에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자신의 남편과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이제 두 며느리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데 큰 며느리 오르바는 모압 지역에 남습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갑니다. 연로한 시어머니를 공경해드립니다. 그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쬐는 밖에 나가서 남자들이 추수하고 나면 떨어진 이삭들을 주어 그것으로 양식을 만들어서 어머니를 대접했습니다. 친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를 정성스레 대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룻을 축복 안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룻은 그의 친족 보아스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이 바로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되는 축복을 입은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복의 자리에 앉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마지막 고통스러운 순간에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그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요한아! 네 어머니라” 그 순간부터 요한이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로 모셨습니다. 성경에 소개된 인물들이 하나같이 부모공경, 효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진정한 효도란 부모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모가 나쁜 부모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라고해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도 허물이 있을 수 있고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내 생명의 근원인 것입니다. 부모가 있기에 내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손에 의해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그 감사가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부모의 도리를 모르면 까마귀보다 못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까마귀를 보면 어미 새와 새끼 새가 있는데 나무에 앉아도 어미 새는 늘 위에 앉고 새끼 새는 늘 아래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가 새끼 새에게 먹이를 먹여주지만 한참 후에는 이것이 바뀐다고 합니다. 어미 새가 나이가 들어 날지 못하면 새끼 새가 날아가서 먹이를 물어다가 엄마와 아빠의 입에 물어다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반포보은(反哺報恩)’이라고 말합니다. 까마귀도 부모의 은혜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나아주고 길러준 부모의 은혜를 모르면 까마귀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허물도 덮어줄 수 있습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노아는 경건한 인물이지만 하루는 포도농사를 짓고 나서 포도주를 짰는데, 그것을 과하게 많이 먹어서 취하여 대낮에 벌거벗고 누워있었습니다. 둘째 아들 함이 그것을 보고 동네방네 다니며 소문을 내고 자기 형제들에게 가서 흉을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아들 셈과 야벳과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치며 들어가서 아버지의 겉옷을 덮어드렸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노아는 함에 대해서 축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해서 그 민족을 더 부강하고 번성한 민족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허물을 덮어주는 그것이야말로 큰 효도 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잠언 19장 26절에 보면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쫒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 22절에 보면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특별히 우리 청년들도 같이 예배드리지만 부모님을 잘 모시고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인 것을 여러분이 믿으시기 바랍니다.

2부 예배에서는 교회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예배드렸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가 어느 날 철수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철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철수야 너 크면 장가 갈 꺼지?” 철수가 “당연히 가야죠.”라고 대답합니다. 엄마가 “철수야 네가 장가가면 엄마하고 같이 살면 안되겠니?”라고 물었더니 철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하다가 문제가 있다는 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참 후에 철수가 들어와서 하는 말이 “엄마!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왜 안되겠니? 왜?” “옆집 영희가요, 안된대요.”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영특하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교회 젊은이들은 내 육신의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입니다.

공동번역 집회서에는 아주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자기 죄를 벗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내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모 공경은 보화를 쌓아 올리는 것 즉 재물을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아비가 늙었을 때에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말아라 그가 설령 노망을 부린다해도 잘 참아내고 네가 젊고 힘 있다고해서 그를 업신여기지 말라 자기 아비를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어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주님의 저주를 부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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