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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부모와 자녀, 서로에 대한 책임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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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자녀와 부모의 서로에 대한 책임
+설교 본문  - 엡 6:1-4

‘즐거운 우리 집’이라는 노래 아시지요? 이 노래 가사 중에 보면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나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세상에 즐거운 곳이 많고 날 오라 하는 곳이 많아도 내가 쉴 곳은 내 집 뿐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세상 모든 것을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마음은 공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모든 것을 걸작으로 만드셔서 사람에게 주셨지만 하나님 마음에 완전한 만족이 안 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아담이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해도 공허하고 행복하지 못했는데 가정을 갖게 되면서 완전한 행복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름답고 광대한 세상을 만드시고도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하셨는데 아담의 가정을 만들어 주신 후에는 모든 것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마침표인 것입니다.

국민들이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게 되면 국가는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국민이 평안하게 살려면 국민들이 권리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를 만드는 것도 성도들이 권리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교회가 건강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인생의 필수요건인 가정을 아름답게 지키려면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부모에 대한 자녀의 책임과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모에 대한 자녀의 책임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합니다. 효도는 자녀가 부모에게 대한 책임을 다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효도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효도는 당연한 도리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한 어머니가 세 아들을 훌륭하게 잘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 덧 세월은 흘러 어머니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늙어버렸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성장한 세 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누가 가장 효자인지 증명해 보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큰아들은 방이 열다섯 개나 되는 큰집을 어머님께 사 드렸습니다. 둘째 아들은 우리나라 최고급 승용차를 선물로 드리면서 운전사까지 딸려 보냈습니다. 막내아들은 15년 동안이나 잘 훈련시킨 끝에 성경책을 모두 외우는 신기한 앵무새를 어머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 앵무새는 "시편 1편" 그러면 시편 1편을 줄줄줄 외웠습니다. 그 신기한 앵무새를 어머님께 선물로 드린 것입니다. 

마침내 세 아들이 모였고, 어머님께서 누구의 선물이 제일 좋은지 결정을 내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아들아, 네 선물은 고맙다마는, 나는 네 선물을 받을 수 없구나. 이 늙은이에게 그 큰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나는 그저 방 한 칸이면 족하단다." 그러면서 큰아들의 선물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둘째 아들에게도 말했습니다. "둘째야, 나는 네 선물도 받을 수 없구나. 눈이 어두워 앞도 못 보는 내가 그 차를 타고 어디를 다니겠느냐?" 그러면서 둘째 아들의 비싼 승용차 선물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셋째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막내야, 나는 네 선물이 제일 좋았단다. 네가 보내 준 닭은 정말 맛있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책임을 본문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 부모님에게 순종하라

1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골 3:20에서는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그랬습니다. 어떤 것은 순종하고 어떤 것은 순종하지 말고 가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해가 되든지 안 되든지 순종해야 합니다. 나하고 맞든지 맞지 않든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부모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가르치는 말씀은 아닙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맹목적인 순종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부모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될 때에는 더 높은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이치에 너무 어긋나거나 불법을 강요하는 일들, 예를 들어서 “신앙생활을 하지 마라.”, “도둑질을 해라.”, “교회에 나가지 마라.”라는 등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명할 때는 부모님보다 더 위에 계신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시어머니 미워하는 며느리에게 생기는 병이 위장병입니다. 구세대라 잘 맞지 않죠. 평안을 못 누리면 병이 오는 것입니다. 신반포에 사는 여자 하나가 위장병이 들어서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는데 알고 보니까 시어머니 미워하다가 위장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대학 동창을 만나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에도 사납게 생긴 시어머니가 있는데, 그 친구는 시어머니와 잘 지내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면 무조건 “예, 알았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위장병에 걸린 친구가 들어보니까 이치에도 안맞고, 논리에도 안맞고, 상식에도 안맞는데 시어머니 말에 “예, 예”하고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시어머니 비위를 잘 맞추니”,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맞춘다.”, “그게 무슨 말이니?”,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순종하고 맞춘다.” 음식 만들 때 시어머니가 옛날식으로 “팍 삶아라.” 그러면 영양가가 파괴되지만 시어머니 드실 것은 팍 삶고 자기가 먹을 것은 살짝 삶아서 먹는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 부모님을 공경하라

2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말합니다. 어버이 주일에 주일학교 학생에게 엡6:1-3 말씀 성경봉독을 하라고 하니까, 이 대목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격하라”고 읽었더랍니다. 공격이 아니라 공경입니다. 

순종이 의지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단어라면, 공경은 정서적 측면이 더욱 강조된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공경'이라는 말은 희랍어에 'timao'라는 단어가 씌어졌는데, '굉장한 가치를 지니는 대상에 대한 부드럽고도 친밀한 반응'을 뜻하는 말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순종이 외적행동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공경은 내적태도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행동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 부모님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경' 이라는 단어는 '무겁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간장'에서 나왔습니다. 히브리인은 사람의 신체 중에 특히 내장 중에서 간장이 제일 무겁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은 체중의 오십분의 일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 간의 중요한 기능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체에 제공되는 물질의 교체가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몸에 들어오는 독물이나, 몸 안에서 발생하는 독물을 해독시키는 작용을 하는 곳입니다. 소화기능에 절대 필요한 담즙이 만들어져 쓸개주머니로 공급되는 작용을 하는 곳입니다. 노폐된 적혈구를 파괴해주고 수분을 어느 정도 간직해서 전체기능의 균형을 조절해 주는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간의 기능은 생명과 직결되며 사람의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부모님을 간과 같이 무겁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부모님의 교훈을 간처럼 귀하게, 무겁게, 내 생명처럼, 필연적으로, 최고로 받들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공경에 대한 낱말의 의미입니다. 부모님을 이처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려면 먼저 부모님을 용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 가장 크고 많은 상처를 받을까요? 부모님에게 가장 크고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내적치유 세미나에 참석하신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니 그 곳에 참석한 분들이 자신들의 아픔과 상처를 내 놓고 나누는데 대부분 부모로부터 받은 큰 상처를 가지고 있더랍니다. 어떤 분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나누더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4-50대의 장년들입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크고 깊어서 수 십 년이 흐른 뒤에도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면 이 시간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용서하지 않고 공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부모님에게 복음을 전하고 부모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기본적인 효도입니다. 여기서는 상식적인 효도 두 가지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방법 한 가지는 함께 있어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인들은 외롭기 때문입니다. 현대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주장 가운데 하나는 '노인들이 가장 참기 어려운 문제가 고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노인들 중 75%가 심각한 고독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노인이 되어서도 부부사이가 좋다면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믿음의 축복도 받았지만 부부의 금슬이 좋은 복도 받았습니다. 

창 26장에 보면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봅니다. 설교 시간에 표현하기가 조금 그렇지만, 어루만지고 뽀뽀하고 애무를 한 것입니다. 그때 이삭의 나이가 백 살에 가까웠습니다. 창 26:34에 보면 이삭의 아들 에서의 나이가 40세입니다. 이삭이 60세에 낳은 아들 에서가 40세가 되었으니 이삭은 100세입니다. 그런데 100세 된 이삭이 100세가 다 되어가는 리브가를 낮에, 왕이 질투할 정도로 그렇게 껴안은 것입니다. 이삭은 나이가 들어서도 아내에 대한 사랑의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좋으면 나이가 들어서도 부부사이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노인들은 대부부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외롭습니다. 더군다나 혼자되신 분들은 더욱 외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은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용돈을 넉넉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지용수 목사님은 아들 결혼하기 직전에 설교를 하시면서 아들과 며느리를 사인을 받아 놓을 것이라고 설교하셨습니다. 주일은 어떻게 지키고, 예배는 어떻게 드리고, 교회는 어떻게 섬기고,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외에 또 십의 일조는 부모님께 드려야 한다는 항목도 넣었답니다. 거기에 사인하면 자녀들을 위해 더 기쁜 마음으로 손들고 기도하며 힘껏 도와주겠지만 사인하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으로 기도할 것이고 잘 도와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설교하셨습니다. 노인이 되면 경제적인 능력을 잃게 됩니다. 노인들도 돈이 필요합니다. 자식들이 용돈을 충분히 드리는 것이 효도하는 일입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복이 됩니다. 외냐하면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니 효도하는 사람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말씀합니다. 효도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에 효심이 지극한 찰스 스윈드라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무거운 가방에 물건을 넣어서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며 소년은 ‘우리 엄마가 저렇게 고생을 하시는구나. 가벼운 가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늘 생각하다가 종이 가방, 쇼핑백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특허 내어 그는 재벌이 되었습니다. 찰스 스윈드가 종이 가방을 만들어 재벌이 된 것은 그의 효성 때문이었습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은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으니 마음이 즐겁고 편안해서 몸의 모든 기능도 활발해지고 면역 기능도 강해진답니다. 사람의 온 몸에는 피의 강이 흐르는데, 그 피의 강에는 500만 개의 백혈구와 적혈구가 둥둥 떠다니면서 노폐물과 찌꺼기를 걸러내고 또 몸에 침입하는 병균을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효도하는 사람은 백혈구와 적혈구가 왕성하게 활동해서 아주 건강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사람의 심장은 1분에 육십 번씩 펌프질을 하는데, 한 번 펌프질을 할 때 2온스의 피를 뿜어냅니다. 그 피가 구석구석에 스며드는데 효도하는 사람은 이 기능도 강해진답니다. 그러나 불효하는 사람은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늘 마음이 괴롭고 복잡하며 기쁘지 않으니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백혈구와 적혈구도 약해지고 심장도 약해져 일찍 죽는답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해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2.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

하용조 목사님은 우리 시대의 문제는 가정의 문제라고 말하면서 가정의 문제는 자녀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문제 자녀’는 없습니다. ‘문제부모’가 있을 뿐입니다. 
4절에서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말씀합니다. 

  1)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자녀를 성나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부모가 어떻게 할 때 자녀가 화가 날까요? 
자녀들은 오락가락하는 부모 일관성이 없는 부모 때문에 화가 납니다. 변덕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가 기분이 좋을 때 아이가 팔을 벌리고 달려들면 면 “아이고 내 새끼, 우리 강아지” 하면서 예뻐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기뿐이 나쁠 때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면 “저리 가, 귀찮아” 하면서 매몰차게 뿌리칩니다. 자녀의 나이에 따라서 보여지는 것은 다르지만 이런 식으로 부모가 변덕부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자녀를 화나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는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 부모가 언제는 “아이고 내 새끼, 내 강아지” 하며 예뻐해 놓고, 언제는 “저리 가 귀찮아!” 하면서 뿌리치면 아이가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부모의 변덕은 술 취한 사람의 행동과 같아서 마침내 신뢰성을 상실합니다. 

바르게 살지 못하는 부모 때문에 노엽게 됩니다. 자녀가 어릴 때는 부모가 무서워서 말을 못하지만 그 마음에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사라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바르게 살지 못하면 자녀의 마음속에 부모를 향한 분노가 쌓이는 것입니다. 

부모의 과잉보호나 과도한 기대가 자녀를 화나가 합니다. 화병은 어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도 화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취학 전 아동은 식욕부진이나 대소변을 못 가리거나 짜증이 느는 등의 증상을 보인답니다. 취학 후 아이들은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피로해 하고, 점차 두통, 어지럼증, 복통, 식욕부진이나 식욕과잉, 소화 장애, 변비, 야뇨증,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는 등의 신체 증상을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말을 더듬거나 발음장애, 학습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잘 웃지도 않고, 놀이를 해도 큰 흥미를 보이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부모의 과잉보호와 과도한 기대가 주요 원인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성격이 강해서 자녀를 부모의 뜻대로만 조정하려고할 때 자녀는 화가 나는 것입니다. 자녀도 한 인격체입니다. 생각 할 줄 알고 감정을 느끼고 자기의 의지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부모가 강해서 자기 뜻대로 아이를 조정하려고만 든다면 그 마음에 분노가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표현이 부족하거나 스킨십의 부족도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것입니다. 식물이 햇빛을 보지 못하거나 수분이 공급되지 못하면 말라죽는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적당한 터치를 받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시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의 터치를 당할 때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그럴 기회가 없다면 마음에 화가 쌓여서 정서적인 이상 현상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끼리는 서로를 많이 만져주는 것이 좋습니다. 육아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사랑의 터치, 즉 아기를 만져주고 안아주는 따스한 손길에는 아기를 달래주고 곤히 잠들게 도와주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또 정서적으로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도와주며, 육신적으로도 아기의 소화기능을 도와 건강한 아기로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아기에게 사랑으로 마사지해주면 아기의 체중도 증가하여, 미숙아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터치를 해주지 않은 아기보다 터치해준 아기가 47%이상의 체중증가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준이 감소되어 아기의 감성과 사회성이 증가하며, 면역기능을 강화시켜 주며, 아기에게 유익한 뇌파인 베타파가 증가하고 아기의 정서적 발달과 엄마, 아빠와의 유대감을 강화시켜 주어 두뇌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스킨십의 힘입니다. 

우리 어릴 적에 배탈이 나면 어머니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어머니의 무릎에 자녀를 누인 후, 손으로 배를 천천히 문지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그러면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의 손길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듭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잠이 깨고 나면 배가 아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이유를 아세요? 어머니의 손이 갑자기 요술을 부린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다해 만져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이 놀라운 치유의 효과를 보여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로 터치(Touch)의 힘입니다. 사랑의 터치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의 터치가 아이들에게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에게도 스킨십은 필요한 것입니다. 

  2)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유대인들이 뛰어난 이유는 부모를 통해서 교육을 잘 받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 교육을 학교와 학원에 맡겨 버립니다. 믿음이 있다는 부모들도 교회교육보다 학교나 학원교육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교회에 자주 오게 하는 것은 믿음 있는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시험 철이 되면 교회보다 학교나 학원 때문에 주일도 범하게 만드는 경우가 흔합니다. 

요즘 믿는 부모들의 문제 중에 심각한 문제는 세상적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자녀들의 신앙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세상 교육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보내서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진 부모도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자녀들을 교육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판단기준이 세속적이 되고 늘 승리에만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과 싸워서 이기려고만 합니다. 

히브리교육 방법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과 싸워서 이기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보다 다른 사람을 이기고 죽이는 방법을 배웁니다. 
제가 목사이지만 유대인들의 교육방법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자녀교육을 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유대인의 교육 방법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녀를 교육하는데 양보하지 않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쉐마’교육입니다. 신 6:4-9입니다. 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교육의 기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씀을 철저하게 자녀교육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합니다. 우리는 결혼식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들은 결혼식보다 성인식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것은 13살까지 토라교육을 모두 마치고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겠다는 의식을 치루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녀에게 철저히 교육시키는 또 한 가지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쁜 일이 있으면 부모가 먼저 교회에 출석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교회중심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이 또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거룩’입니다. 왜냐하면 ‘거룩’은 성전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청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또 한 가지 중요한 교육방법은 ‘식탁교육’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가 성경을 교육합니다. 잠언을 보면 ‘내 아들아’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아버지는 다윗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아버지로부터 온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식탁에서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믿음으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이동원 목사님이 여러 해전 미국 플로리다의 어느 미국 침례교회 선교대회에 강사로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한 식당에 가셨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이 식당 주인의 신앙과 생활을 칭찬했습니다. 이 식당 현관에 는 식당 주인 어머니의 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타주에서 플로리다로 이사를 와서 해변가 도시에서 작은 식당을 경영했는데 식당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랜 노력과 계획 끝에 저축한 돈으로 드디어 아름답고 큰 식당을 바닷가에 열 준비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픈 직전에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어 그만 오픈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는데 자기를 돕고 있었던 아들에게 식당을 잘 경영해 달라고 하면서 두 가지 유언을 남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업보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더 귀히 여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 달라. 두 번째는 오픈되는 식당에서는 술은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들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순종했는데 처음에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해서 말썽이 있었답니다. 주류회사의 폭력배 같은 사람들이 위협차 찾아왔을 때 아들은 식당입구에 걸린 어머니의 사진을 가리키며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이라고 했더니 시비안하고 가더랍니다. 

그 어머니의 사진 밑에는 다섯 줄의 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미소는 저의 추억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저의 용기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저의 등불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저의 능력입니다. 어머니의 주님은 저의 주님입니다.” 저는 사진 밑에 쓰여 있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 어머니의 신앙과 삶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분명 믿음으로 살았고 그 믿음의 삶이 아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미소는 저의 추억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저의 용기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저의 등불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저의 능력입니다. 어머니의 주님은 저의 주님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어머니와 같이 믿음과 삶을 자녀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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