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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돕는 배필 (창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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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창 2 : 18
제 목 : 돕는 배필

오늘은 부부의 날로 지킵니다.  5월이 가정의 날이다 보니, 가족 구성원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데, 가정 구성원 중에 가장 핵심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를 중심으로, 위로는 부모가 있고, 또 아래로는 자녀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부의 관계가 잘 되어  있어야 부모도 편하고, 자식들도 편한 것입니다.   아멘!!  

“가화만사성” 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될 수 있다.  이 말은 곧, 가정 안에서 부부가 화목해야, 집안의 모든 일이 잘 될 수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성경의 역사도 살펴보면, 그 근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까?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이지요.  그러나 아담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또 누구를 창조 하셨습니까?  하와를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아담과 하와, 이 두 사람을 짝을 지어서, 부부로 만들어 주시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완성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중심도, 바로 이 부부라고 할 수 있고, 또 그 뒤로 이어지는 인류역사의 중심도, 바로 이 부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담과 하와, 이 부부가 잘못 되어지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먼저는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되어졌고, 또 이 부부로 인해 탄생된 생명인, 가인과 아벨의 삶에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 했다는 겁니다.   형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이들 부부는 그들 가정에서, 가화만사성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고의 피조물인 이 두 사람이, 이처럼  창조자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고, 또 자신들로 인해 인류역사를 온통 흐트러 놓고 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 살지를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을 창조하신 목적, 그리고 하와를 창조하신 목적이 있는데,    이 두 사람이 그 목적을 상실하며 살아갔기 때문에, 그들 인생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고, 하와를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이 목적에 대해서는, 창 1 : 27절, 28절에 잘 나타나 있지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이 말씀만 보면, 이 창조명령이, 이들 부부 모두에게 주어진 공동의 명령인 것 같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공동의 명령이 아니라, 먼저 창조되어진  아담에게 주어진 명령인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천지를 몇 일만에 창조하셨지요?   6일 만에...  믿습니까?  
이 땅과 하늘에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에 무엇을 창조하셨습니까?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이었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이 아담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아까 우리가 살펴본, 창 1 : 27, 28절 말씀이었다는 겁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는 일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다는 것입니까?   아담에게 있었다.  아멘!!   아멘을 안 하시네?  
이런 말 하면, 아내 되는 여자 분들이 별로 안 좋아합니다.   기분 나빠합니다. 

“아니, 생육하고 번성하는 게, 어찌 아담 혼자만 해서 되는 일이냐?”  
맞습니다.  정말 잘 지적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아담의 아내 되는, 하와를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일을 공동으로 이루어 가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창조 명령의 주체는, 여전히 남편인 아담에게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아내인 하와를 만든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이 무엇이냐?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는, 돕는 배필, 다시 말해, 아담을 돕는 역할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와가 창조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누구를 위하여?  그를 위하여..  그가 누구입니까?  남편인 아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인 하와는, 남편인 아담을 돕는 배필로서의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어졌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직도 아멘 안하시네?  

자, 보세요.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시고, 뭐라고 표현하셨습니까? “심히 좋았더라.” 경상도 말로 표현하면, “억수로 좋았더라.” “대끼리 좋았더라.”  감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심히 좋았다 말씀하셨지만, 나중에 가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무엇 하는 것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좋지 못하다.  
무슨 말입니까?  불완전하다는 말이지요.  아직 뭔가가 부족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아니, 분명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이제 와서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에게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뭔가가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부족함을, 현대의 사회학적인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2%가 부족하다.”   98%가 채워져 있으면, 그것은 거의 완전치가 아닌가?  그런데 이것은 숫자의 많음으로 해석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2%가 부족함으로 인해, 하나님이 생각하셨던 가정의 모습의, 전체 그림이 완성되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했던 전체 그림에 부족했던 2%,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었던, 마지막 그림 조각이 무엇입니까?  하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여자,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아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라고 하는 자리와 그 역할의 비중은, 단순히 숫자상에 나타난 2% 정도의 미미한 것이 아니라, 전체 가정의 그림을 형성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엑기스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돕는 배필로서의 아내... 
하나님이 여자인 하와를 지으시고, 남자인 아담의 짝을 이루어 주심으로, 비로소 창조 사역의 완성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이 완성은 사람의 완성이요, 나아가 가정의 완성이요, 더 나아가 인류 역사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와!!  가정에서 아내 한 사람의 역할이, 이만큼이나 중요한 줄 몰랐네?”  
너무 아내들을 띠워주는 것 아니냐?   또 남편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 인자를 보게 되면, 글자가 어떻게 구성되어져 있습니까? 
사람 “人”를 보게 되면, 두 막대가 있는데, 왼쪽의 막대는 비스듬이 쓰러져 있고, 오른쪽의 막대는 그 쓰러지는 막대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지요.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할까요?  이 두 막대 중에, 어느 쪽이 남자이고, 어느 쪽이 여자이겠습니까?  왼쪽이 남자이고, 오른쪽이 여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른쪽 막대인 여자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냥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는 원래 어떤 존재인가?  혼자서는 절대 바로 서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자인 아내가 받쳐주지 않으면, 금방 쓰러지고 마는 것이 남자, 곧 남편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가 없이는 못 삽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 없이도 잘 삽니다. 이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여자는 자립심이 참 강하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여자는 참 독하다.  왜?  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데 남자는 뭘로 만들어졌습니까?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물러 터진 것입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 장에서 얼마나 슬피 우는지,  그 모습을 볼 때에 사람들이 다 감동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금술이 좋았으면,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저렇게 슬피 우시는가?”  

그런데 나중에 그 할아버지, 자신이 우는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그 좋던 감정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왜 우셨는가 하니, 이제 당신 밥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라면도 하나 못 끓이는데, 밥 하는 법도 안 가르쳐 주고, 왜 먼저 가느냐는 것이다.   제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 마음에 다짐하고 다짐을 했다.  최소한 밥하는 것은 배워야겠다.  아니면 나도 저짝 나지 않겠는가?  

여러분, 남자의 정신연령이 몇 살인 줄 아십니까?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남자의 정신연령은, 평균 7세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얼마나 여자가 피곤하겠습니까?   요즘 일곱 살,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옛날에는 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는데, 요세는 훨씬 더 미워져서, 때려죽일 일곱 살이라고 하잖아요?   

한 번은 제 아내가, 어느 집사님에게 우리 집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아이들 돌보느라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애가 넷이나 되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 아내가, 우리 집 애들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는 숫자하고 틀리게 말을 합니다.  “우리 집에는요, 애가 다섯이 있는데, 아들 셋하고,   딸이 둘이예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왜 우리 집에 아들이 셋이야?” 그랬더니, 차근차근 이야기 해 줍니다.  “큰 아들 진영이, 작은 아들 준영이,  그리고 나머지 한 아들은, 누구입니까?  승빈이....”   저는 왕 아들이랍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런 것 같애요.  저는 우리 집 사람 없으면, 못 삽니다.  아내가 한 삼일 집을 비우면, 제 몸 무게도 한 3킬로는 빠집니다. 그래서 집 사람이 집에 돌아오면, 반갑게 말을 하지요. “나는 당신 없인 못살아.” 그러면 집 사람도 저에게 화답을 합니다.  “나도 당신 때문에 못 살아.” 
자기도 나 때문에 못 살겠답니다.   캬~~~  얼마나 금술이 좋은 부부인지...   

여러분, 남자는 참 불쌍한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절대 못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살려줘야 합니다.   여자가 받쳐줘야 사람 될 수 있습니다. 
아내 되신 여러분, 남자인 남편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기 바랍니다.  
“항상 사랑하라.  쉬지 말고 돌봐줘라.  범사에 챙겨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것이 여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돕는 배필... 
그래서 여자를 돕는 배필로, 남자에게 짝을 지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이 말이 잘 쓰이지 않지만, 한참 개그 용어로 유행했던 말이 있습니다.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그런데 여러분, 남자가 진짜 남자답기 위해서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잘 만나면, 그 남자의 인생이 완전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 잘못 만나면, 그냥 인생 망치는 겁니다.  

그런 걸 볼 때에, 저는 참 아내를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아내 자랑하면 푼수라고 하지만, 오늘 특별히 부부의 날이기에, 자랑 좀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없었으면, 지금 이렇게 목사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못 되었을 것입니다.  

하루는 제 아내가 제게 이런 말을 해요. “여보, 당신은 예수 안 믿었으면,   지금 뭐하고 있을 것 같애?”  저도 참 궁금해요.  그것이 알고 싶다.   
내가 예수 안 믿었으면 뭐하고 있었을까?   금방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예수 안 믿었으면, 지금 내가 뭐하고  있을 것 같애?”  그 때 제 아내가 하는 말이, “아마 나이트클럽 지배인하고 있을 것 같애.”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을 것 같애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은 목사지만, 솔직히 저는 과거가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主님을 모시고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옛날에는 酒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생긴 게 벌써 터프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저도 왕년에는요, 주먹께나 썼습니다.  
제가 또 생긴 게 좀 섹시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섹시라고 하는 말은,  “섹까맣고, 시커멓다.” 라는 뜻입니다.  벌써 인상부터 한 수 먹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개과천선하여, 어엿한 목사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먼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그 다음은 제 아내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저 하나 사람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제가 신학교 들어간다고 하니까,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해요.  남들은 다 마다하는 길인데...  왜요?  신학교 가면 술, 담배 안하니까?  

이 길이, 사모의 길이 고생길인 걸 알면서도, 저 하나 사람 만들어 보려고,    다 감내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날도, 이런 돕는 배필로서의 아내가 있는 가정이 많아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의 모습이,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창세기 나타난 이 가정의 모습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날도 이 땅에 수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엄청난 가정에서의 비중을, 아내 되는 여자가,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무너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 3 : 6절을 보세요.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 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남편에게 주매, 그도 먹은 지라.  남편을 세워 주는 것이 아니라, 아내인 하와가 남편을 오히려 넘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돕는 배필이란, 신앙으로 남편을 일으켜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출세를 위해 남편을 세워 주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신앙으로 일어서게 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아멘!! 왜 남편을 신앙으로 먼저 일으켜 세워야 하느냐?  남편이 신앙으로 무너질 때, 그 가정의 모든 것이, 다 무너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육신의 잘 됨보다, 영혼의 잘 됨이 먼저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아담의 아내였던 하와는, 이 성경적인 진리를 무시하고, 남편의 세상  에서의 잘 됨, 남편의 육신적인 잘 됨을, 먼저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창 3 : 5절에 보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와가 솔깃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 눈이 밝아진다.   그래서 누구와 같이 될 것이라?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여기에 솔깃했다는 것입니다.  

하와가 생각할 때에, “남편인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이 있겠는가?”  남편인 아담의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아내인 하와가 신앙을 던져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아내가 신앙을 던져 버리고, 세속적이 되면, 십중팔구 남편도 신앙 버리고 세속적이 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통계가 그렇게 나와 있어요.  
전도도 보면 그렇습니다.  아내가 예수를 믿고,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는 가정은, 70% 이상이, 그 부부가 다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예수를 믿고, 아내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80% 이상이 부부가 다 교회 안 나온다고 합니다.  보세요.  여자의 영향력이 실로 막강하지 않습니까?  

왜 그런 줄 아는가?   남자나 여자나, 다 생겨먹은 대로 놀기 때문인 것입니다.  남자는 뭐로 만들어 졌습니까?  흙이지요.  흙은 그냥 주무르는 대로 모양이 다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지조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여자는 뭘로 만들어 졌습니까?  뼈지요.  뼈는 강합니다. 단단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고집이 센지..  그래서 여자 이기는 남자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옛날 T.V 광고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잖아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아내 되신 여러분, 남편을 잘 무르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잘 주무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신앙 안에서 남편이 바르게 설 수 있도록, 영적 내조를 잘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육적으로도 잘 주물러 주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남편들이 고생을 많이  합니까?  맨 날 피곤해 지쳐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 보랴, 사업을   하면서는 고객들 눈치 보랴, 이런 저런 모습에 육체적으로 늘 피곤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런 남편들, 집에 돌아오면, “여보 수고했어요..  피곤하시죠?”  어께도 주물러 드리고, 남편 발 맛사지도 해 주고 그래 보세요.  
그러면 남편들 뿅 갑니다.  날마다 술 먹고, 집에 늦게 들어오고 그러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고하는 남편 세상에서도 잘 되고, 성공하게 해 달라고,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이것이 아내 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기도하는 아내가 있는 남편은, 결코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는 줄 믿습니다.  

아내인 하와가, 남편인 아담을 신앙으로 잘 돕지를 못하고,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 다른 방법으로 내조하려고 했을 때, 결국 그 가정을 망하게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에덴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생명도 잃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도 잃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퍼즐이 완벽하게 들어맞으면, 그 그림이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채, 맞춰져 있지 않으면, 나머지 99%의 그림이 아무리 잘 맞춰져 있어도, 결국에는 전체적으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신앙적인 아내가 없음으로, 돕는 배필로서의 아내가 없음으로 실패한 가정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천교회에 속한 가정들은, 한 가정도 이런 실패한 가정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의 아내의 역할을  다하심으로, 여러분의 가정이, 신앙적인 가정이 되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완성되어져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두 번째, 남자인 남편의 창조 목적은 무엇이냐?   설교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생육하고 번성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 신앙인으로서의 힘과 능력을 발휘하고, 내가 속해 있는 모든   환경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역할을 감당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들에게 있어 신앙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에 남편들을 보세요.  신앙이 있습니까?   신앙이 별로 없습니다.  
부부가 다 신앙 생활하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그 신앙이 다 똑같지 않습니다. 아내의 신앙이 70점이라면, 남편의 신앙은 40점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신앙의 가정에서 남편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질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첫 가정, 그 가정이 무너지고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는 아내인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또 그 선악과를   남편에게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그렇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좀 더 깊은 내면적인 이유를 따져보면, 하와의 책임이 아니라, 남편인 아담의 책임이었던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들은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아담이었습니다.  하와는 누구를 통해 말씀을 들었습니까?  남편인 아담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 말씀을, 부부 모두를 불러 놓고 하시지 않으시고, 아담에게만 들려 주셨는가?   그 가정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기 때문입니까?  
남편에게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담에게 들려주신   그 말씀을 가지고, 아내인 하와를 신앙으로 교육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다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이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신앙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사단하고 노닥거리고 있는지,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고 있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하와가 어찌 되겠습니까?  사단의 농간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결국 그 피해를 자신이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신앙으로 잘 다스리질 못한 결과인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란 말이 있습니다.  자기 몸을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릴 줄 알면, 나라를 다스릴 줄 알게 되고, 결국에는 천하가 평안케 될 것이다.  이런 내용 아닙니까?  
남편의 가정에서의 신앙생활의 원리도 똑같은 것입니다.   

먼저는 자기의 신앙을 잘 관리하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일들을, 특별히 신앙적인 결정권을 아내에게 미루지 마세요.  
그것은 하나님 보실 때에, 직무유기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뜻을 정하고, 그 뜻을 실행하기 전에, 아내와 협의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치된 뜻을 가지고,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가 반대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신앙의 가장으로서의 결정권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인데, 그래서 부부가 뜻을 합해 그 일을 하기를 원하는데, 아내가 반대한다.  그때는 아내를 신앙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적인 가정에서의, 남편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정에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세워지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축복이 임하게 하는, 축복의 통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이것이 남편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이렇게 신앙으로 다스리지를 못하는 남편이, 어떻게 세상에 나가 불신자들을 다스리고, 세상을 정복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만이 남편의 역할이 아닙니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아내를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내를 도와줄 수 있는가?  엡 5 : 25절에 보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내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주님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교회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약을 먹어도, 남편 혼자 먹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 몸이 허약해 보약이 필요하면, “아내는 얼마나 더 힘들까?  그래서 내 것보다 더 좋은 약으로 지어야지”  그래서 보약 한 첩을 사가지고, 아내에게 선물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내가 이런 말을 하지요.  “당신 미쳤어요?  돈이 어딨다고?”  
틀림없이 이런 말 합니다.  맞다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자기 비상금을 모으고 모아서, 그 돈으로 사는 겁니다.  빠듯한 생활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욕을 먹지요.  
보약 먹기 전에 욕부터 먼저 먹습니다.  자기 쓸 돈 모아서, 정성껏 아내에게 좋은 것으로 선물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아내의 마음에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왜요?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그러면 그 날 저녁 반찬이 달라집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이 남편에게 주신 하늘의 지혜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이런 걸 남편들이 할 줄을 몰라요.  그저 무뚝뚝한 것이 남자의 매력인 줄 압니다.  그러니 바보 소리 듣는 겁니다.   무슨 바보요?  
여자의 마음도 몰라주는 바보,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또 있지요?   멍충이.....  

남편은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편이 존경받을 수 있고, 아내의 사랑을 또한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럴 때 그 가정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랑으로 세워져 가고, 신앙으로 세워져가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축복의 가정으로 세워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화목한 신앙의 가정 속에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명하신 창조 명령을, 온전하게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이런 귀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루어 드리는 가정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부부의 날을 맞은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부부의 모습을 돌아보시고,   가정의 모습을 돌아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가정으로 새롭게 세워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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