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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가정 (시 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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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시 128 : 1 - 6
제 목 : 행복한 가정 

1852년 4월 10일에, 미국의 한 시민이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사망을 했다. 
그런데 이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어 그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그의 유해가 뉴욕 항에 도착하는 날, 항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곳에 뉴욕 시장만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도 나와 있었고, 수많은 국무위원들이, 그 유해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이처럼 큰 환영을 받았던 것일까?  
이 사람은 위대한 정치가도, 외교가도, 또 군인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한 시민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가, 이와 같이 큰 환영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그가 생전에 작사했던,  한 곡의 노랫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노래는 우리도 익히, 잘 아는 노래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홈 스위트 홈” 이란 노래인데, 미국의 기자 겸 극작가인, 존 하워드 페인이란 사람이 지은 노래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를 지은 페인은, 평생에 가정을 가져 보지 못한 채, 독신으로 타국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고 한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그런 행복한 가정을, 이처럼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노래는, 그 당시 미국인들로 하여금, 가정에 대한 소중함과, 또 가정에 대한 위대한 가치를 일깨우는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로버트 죠지 웰즈는, 가정에 대하여 이렇게 말을 했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가정은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랑받는 곳이다.”  

우리는 굳이 존 하워드 페인의 “홈 스위트 홈”의 노랫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가정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가정의 현실은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의 가정의 모습을 보게 되면, 점점 더 불안한 상태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속한 이 시대를 바라보라.  높아지는 이혼율은, 이미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고, 또 가족 간의 갈등이나, 유아학대, 가정폭력 등, 각종 범죄로 인해 행복해야 할 가정이, 점점 더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적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을 안전하게 지키며, 행복한 가정을 이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이 사회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과 대안들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수가 있다.   

그러면 왜 세상에서는,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가정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멘!! 하나님이 가정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만드셨지 않았는가?   아담과 하와의 가정만 아니라, 그 이후에 탄생  되어진 모든 인류의 가정의 주권도,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세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이 기록한 말씀인 이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할 줄로 믿는다.  이 성경말씀에, 오늘 우리의 가정을 행복하게 세워나갈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도 자세히 기록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나?  성경에 가정의 행복에 대한 여러 가지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오늘 본문의 말씀인, 이 시 128편의 말씀은, 가정해복을 이룰 수 있는 첩경을 소개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가?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행복한 가정의 출발은, 가정이라는 기관을 처음 만드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긴다는 뜻이다.   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가?  
하나님이 그 가정의 창조주시오, 또 가정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른이 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멘!!   마치 권세 있고, 권위 있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과 같다.  부모님은 가정에서 어른이지 않는가?  
그래서 정말 부모님을 공경할 줄 아는 자식들은,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한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줄 안다.   
여러분, 경외한다는 것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라고 했는데, 자식이 그 부모가 두려워서 섬기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사실 뭐가 두려울 게 있는가?  힘으로 따지면 오히려 부모보다 더 세다.   그런데 왜 경외심을 가지고 섬기며, 따르는 것인가?   부모를 향한 존경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그 자녀가,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이삭을 보라.  그가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이 길을 떠난다.   그 길이 무슨 길인가?   자기가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한 죽음의 길이었다.   그런데 아들 이삭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지 않는가?   “아버지, 번제에 쓸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어찌 제물은 보이지 않습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삭에게 아직까지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네가 제물이 될 것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삼일 길 간 뒤에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는데, 그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갑자기 결박하더니, 돌로 만든 제단 위에    그 아들을 제물로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죽이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무엇인가?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그런 행동에 일언반구 대꾸나 대항 없이, 그대로 순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자기 목숨이 달린 일 아닌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죽게 되는 것이다.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빠져 나오려면, 아버지 아브라함을 밀치고 일어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가 결박을 할 때도   가만히 있었고, 또 칼을 들어 자신을 찌르려 할 때도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가?   아버지를 경외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믿습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경외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가정에 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있어야 하는가?   이 경외함의 신앙이 있을 때, 그 가정에 비로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삭이 어떤 축복을 받았는가?  아버지를 경외하는 그 신앙이, 하나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기에, 하나님이 그의 생애를 크게 축복해 주셨는데, 물질의 축복을 백배나 얻게 해 주셨다.    창 26 : 12절, 13절 말씀을 보라.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할렐루야!!!  
물질의 거부가 되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물질의 축복이, 그가 받은 축복의 전부가 아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었는데, 그 축복이 무엇인가?  바로 가정의   행복을 이루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배필 리브가와 함께, 평생을 행복하게 가정생활을 꾸리며 살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은 가정 행복의 원칙을, 일찍이 일부일처제로 두셨다.  그런데 이삭은,  이 하나님이 정하신 가정행복의 원칙을, 잘 순종하며 지켰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 것이냐?  요즘 세상의 관념으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당시 사회상으로서는, 일부일처제가 잘 지켜지지를 아니했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이 짝 지워 주신  사라와 함께 평생을 같이 산 것이 아니라, 첩을 둘이다 더 두고 살았던 것을 보게 되지 않는가?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거느린 처첩이 얼마였는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 할지라도, 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 칭찬을 들었던 다윗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가정에 재정하신 일부일체제의 원칙을 순종하며 따르지 아니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져야 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책임인가?  자신이 임의로 택하여 취한 첩으로부터 난 소생으로 인해,   그 가정에 얼마나 큰 풍파가 휘몰아쳤는가?   가정의 행복이 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보인 믿음으로, 그들 인생에 큰 재물을 얻는 축복을 받았고, 또 큰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축복을 받았을지라도, 가정의 행복을 이룰 수 있는 가정 기본적인 원칙을, 그들이 순종하며 지키지 아니했을 때, 그들은 불행한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성도들의 가정의 불행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되어진  것이다.   불신앙의 가정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 때문에   불행한 가정을 이룰 수밖에 없다.  가정에 주권자가 없고, 그 가정에 영적   어른이 없기 때문에, 사단이 그 가정을 쉽게 침범하고, 그 가정을 쉽게 해코지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가정이 불화와 불행이 연속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앙의 가정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이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줄로 믿는다.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가 인생에 필요한 것을 얻는 축복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범사에 행복하고, 근심 없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순종이 필요한 것이다.  

특별히 가정 행복의 제일 원칙, 하나님이 배필로 짝 지워 주신 한 남자만을   사랑하고, 한 여자만을 사랑할 때, 그리고 이 부부가, 언제나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 이삭과 같이 근심 없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가정이 되어질 줄로 믿는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가정도, 이삭의 가정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어서, 날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우선주의로, 또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이런 근심 없는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린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가? 
둘째로는, 수고의 떡을 먹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보라.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다시 말해, 땀 흘려 수고한 대가를 누리며 사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경제 원리에 대단히 민감하다.  재태크란 말을 많이 쓰지 않는가?   어떻게든 적게 투자해서 많이 벌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방법으로 얻은 물질을, 축복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은, 땀 흘려 수고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축복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이삭이 누린 백배의 축복은 뭐냐?  그 축복은, 이삭이 땀 흘려 수고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나 분명 다르다. 이삭은 백배의 축복을 목적으로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땅에, 최선을 다해서 농사를 지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백배의 결실을 거두게 하신 것이지, 이삭 자신이 이런 소득을 기대하며 농사를 짓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줄로 믿는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도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무슨 주식투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는데, 이런 축복관은, 전혀 성경적인 축복관이 아닌 것이다.  축복을 목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을, 뭐라고 표현하는가?  기복신앙이라 표현하지 않는가?   복을 비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들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순종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정당하게 수고하고 노력하지를 않는다.  그냥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지, 자기 소원대로 다 이루어질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가, 무슨 도깨비 방망이와 같다.  

그러나 그 분들 인생에,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질 않는다.  착각인 것이다.    성경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이런 속담이 있잖은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아멘!!!  이것이 성경의 진리인 것이다.  자기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절대 축복의 손길을 펼치시지를 않는다.  

그래서 신앙이 좋고, 믿음이 좋은 성도일수록,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이나 사업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시 16 : 6절에 보면,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이, 귀천에 상관없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왜인가?  
그 직업, 그 직장, 그 사업,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기 때문이다.  믿습니까?  그래서 성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에 감사하며,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그 기업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줄로 믿는다.  

가정에 물질의 축복이 있어야, 또한 인생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가정에 물질이 부족함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가?  
자녀들의 교육비가 얼마인가?  또 혹시라도 가족들 가운데 큰 병이라도 들면 그 치료비가 얼마인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게 되지 않는가? 그래서 가정에 근심이 생기게 되고, 그 근심으로 인해 가정이 깨어지고,   붕괴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물질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아멘!!  
그러나 이 물질의 축복은, 오직 땀 흘려 수고하는 신앙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길 바란다.  
심는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 모든 인생의 원리인데, 세상적인 원리를 따르면, 기껏해야 본전이지만, 신앙적인 원리를 따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으로, 또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심게 되면, 30배로, 60배로, 나아가 이삭과 같이 100배로 결실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줄로 믿는다.  그래서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종로 2가에 가면, YMCA 건물이 있다.  그 건물은, 미국의 백화점 왕인 “존 워너메이커” 라는 사람이 헌금해서 지어진 건물이다.  우리가 좋은 물건을 일컬을 때, 메이커라는 말을 쓰는데,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진정으로 우리의 땀의 대가를 누리기 원하는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고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라.  그리하면 우리의 땀의 대가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 줄은 하나님이 쥐고 계신다.  
“은도 내 것이고, 금도 내 것이라.” 했다.  하나님은 만물의 소유주가 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아멘!!!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직업과 직장과 사업장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 분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며, 성실하게 모든 일들을 신앙으로 최선을 다하며 감당해 나가시길 바란다.  

그때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가정에 물질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채워  주시며, 오히려 넉넉한 물질의 축복을 더하여 주셔서, 여러분의 가정이 물질로 인하여 불편함이 없도록, 근심 없이, 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줄 믿는다.  이런 귀한 축복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가정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린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가? 
셋째로는, 사랑의 관계가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라.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다시 말해, 부부와의 관계가 포도 열매가 풍성함과 같이 아름답고, 부모와 자식들과의 관계도, 감람나무와 같이 자녀들이 잘 자랄 것을 기대하고, 또 자녀들도 그 기대에 부응하여 이렇게 귀하게 자라가는, 아름다운 관계가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다.  비단 아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부부를 말할 때, 아내 따로, 남편 따로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 않는가?  
서로가 결실한 포도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멘!!!  
서로가 기쁨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실한 포도열매로, 무엇을 만들게 되는가?  포도주를 만들게 된다.  
이 포도주는 고대 근동사회에 있어, 중요한 음료수였다.  술로서의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료수로서의 기능도 있었다.  그래서 잔치 집에서는 이 포도주가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포도주를 매일 같이 마실 수 있다면, 그 집은 그야말로 매일 같이 잔치집이 되는 것이다.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다.  이런 기쁨이, 부부간의 관계 속에서 매일 같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인생이 얼마나 기쁘겠는가?  
남편이 아내를 볼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으며, 아내가 남편을 볼 때에 얼마나  믿음직스럽겠는가?   그러니 매일이 신혼인 것이다.  속된 말로 깨가 쏟아지는 것이다.  노년에 이르기까지, 아니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이 지속되어진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이런 축복된 부부관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린다.  

그러면 부모와 자식들 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요즘 부모들, 자식들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가?  그래서 자녀들이 인생이 잘 되기 위해서 그야말로 아낌없이 쏟아 붇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부모의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 되고 성공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이 이런 말을 한다.   
“자식농사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다.”  부모의 기대대로 잘 자라는 자녀들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가정은 다를 수 있다.  자녀들이 부모와 같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가정이라면, 얼마든지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네 상에 둘린 자식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단순히 음식을 먹고 마시는 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언제나 영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할 줄로 믿는다.  
단순한 음식을 먹는 상이 아닌, 영적인 음식, 곧 하나님 말씀을 함께 나누는  예배의 자리라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멘!!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예배의 자리에 함께 참여하는 모습 속에서의 부모와 자녀들 간의 관계, 이런 신앙적인 관계가 잘 형성되어져 있을 때, 그 자녀들은 부모의 기대대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잘 자라나게 되어진다는 것이다.   믿습니까?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를 말한다.  오늘날 올리브기름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가?   인체에 해가 없고, 유익한 성분만 있기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열매라고 일컫는 열매가, 바로 올리브이다.  그런데 이런 열매가 열리는 감람나무와 같은 인생이 되어진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자녀들을 어린 감람나무라고 했는데, 어리다고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내포하고 있는 말 아니겠는가?  자녀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자랄 것인가를 암시하는 말씀이라고 볼 수가 있다.  장차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인재로 쓰임 받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신앙의 가정에서는, 이런 부모의 기대대로 자녀들이 잘 자라게 되어진다는 것이다.  왜인가?  그 자녀들도 부모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의 신앙을 가로막는 부모들이 되지 마시기를 바란다.   자녀들로 하여금 예배의 자리로 나올 수   있도록 이끄시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그럴 때 부모와 자녀들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다.  자녀들의 영혼이 먼저 잘 되니까, 자녀들의 육신도 잘 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들에 대한 염려가 없고, 그래서 모든 가정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가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잠 17 : 1절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다.  

부부 간에 서로 사랑하고 신뢰함으로 늘 화목하시고, 또 자녀들과의 관계도,  신앙 안에서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가운데 잘 이끌어 주면서, 장차 감람나무와 같이 장차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자녀들을 배출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린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가? 
네 번째로는, 교회를 통해 신령한 은혜를 공급받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 6절에도 보면,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지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  또 네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라는 말씀은,     곧,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공급되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고, 교회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해 나가는 성도, 이런 성도들의 가정은 하나님이 친히 복을 주시는데, 어찌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신앙의 가정은, 하나님이 낮에 해와, 밤의 달이 상치 못하고, 해치 못하도록, 친히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는 줄로 믿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시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길 바란다.  또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봉사나 헌신을, 인색한 즐거운 마음으로 하시길 바란다.  이런 성도들을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줄 믿는다.  

교회의 손님이나 구경꾼이 되지 마라.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란다.  교회가 바로 세워져야, 교회를 통하여 흐르는 은혜의 물줄기가, 바르게 내 삶 속에 흘러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화광교회, 여러분이 섬기시고 계신 우리 화광교회를,  세상의 무엇보다도 사랑하시고 아끼시면서, 교회를 은혜 가운데 바르게 세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방법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성경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늘 살펴본 이 시편 128편에 소개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잘 새기시면서, 하나님이 교훈하신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수고의 떡을 먹으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신앙으로 아름답게 맺어가면서, 특별히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며, 교회를 통해 온갖 은혜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복한 가정, 주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된 가정, 다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린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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