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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두 공경의 대상 (레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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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경의 대상 (레 19:3)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오늘은 부모님 주일입니다. 5월은 말만 들어도 푸근하고 정답습니다. 어느 시인은 5월은 나머지 11달과 바꾸자 해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가정은 말만 들어도 따뜻하고 포근하고 즐거움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정의 소중함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소그룹이고 단체이고 소 사회입니다. 본문은 모세에게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 살아갈 강령과 삶의 지표를 알리신 내용입니다. 가나안에 가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규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중 본문에서는 두 가지를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공경의 차원을 넘어 한 차원 더 높여 부모를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안식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에게는 가장 기본이 되는 도리가 둘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 경외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은 내 모든 관심과 뜻과 정신과 생각을 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안식일 정신입니다. 적당히 그 자리에 와 앉아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형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형식화를 경계하셨습니다. 형식에는 내용과 정신이 빈약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정신과 뜻을 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을 알고 경외할 때 가치의 극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때 인간의 존귀함이 주어지고 복이 주어지고 은혜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공경의 대상입니다. 사랑의 대상입니다. 기억의 대상이고 섬김의 대상이고 경외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시고 각종 피조물을 창조하신 이유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보면 제 일조가 “인간의 할 일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가정을 주셨습니다. 부모와 자녀를 주셨습니다. 삶을 주셨고 인생을 주셨고 구원을 주셨고 천국을 주셨습니다. 헤어보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하나님께 봉헌하는 삶입니다. 봉헌은 나 자신을 드리는 삶입니다. 시간과 마음과 뜻과 물질을 드리고 내 인생을 아낌없이 드리는 삶이 봉헌의 삶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배의 삶입니다. 예배는 나의 중심을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영광을 드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인간이 가장 찬란해집니다. 고상해집니다. 건강해지고 복을 받게 되고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인간은 인간의 도리를 다할 때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강조하십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경외 

본문은 “네 부모를 경외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경외”라는 말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차원”입니다. 즉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규례는 일반적인 규례가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강력한 규례입니다. 명령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큰 소리를 내어 구음으로 읽었습니다. 율법서를 읽다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소리 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지침서에는 랍비가 아이들을 교육하다가 자녀가 부모에게 공경할 일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지체 없이 배운 대로 대답하였습니다.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거나 부모님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요 부모님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고 살아계실 때는 물론이요 돌아가셨을 때에도 부모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물질적으로 성심껏 보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회에는 이 기초가 든든했습니다. 이 기초가 든든해지니까 그 위에 신앙이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부모관이 땅에 떨어지고 자꾸만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부모들이 거리로 내 몰리고 있습니다. 거리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힘없는 노인들이 거리를 헤매고 갈 곳 없어 눈물짓고 탄식하고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입니다. 심판받을 세상입니다. 그러니 복을 받겠습니까. 심판이 가까운 말세입니다. 

우리는 이 두 공경의 대상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땅에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이고 피조물의 도리이고 가장 기본이 되는 삶입니다. 그리고 땅의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인간의 가치이고 도리이고 가장 기본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 공경과 부모 공경은 함께 할 일이라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인생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자녀 삼으셨습니다. 복을 주셨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들 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더 주시지 못해서 안달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인생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분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염려하셨고 다 주신 분입니다. 마지막에는 자기 몸 안에 있는 모든 영양분까지 다 빼서 주셨습니다. 늙으신 할머니들을 보면 그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습니다. 손은 마디가 형편없이 굵어져 있습니다. 몸매는 한때 아름다웠을 것인데 형편없이 굽고 마모되고 부서져 가고 있습니다. 

10남매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그렇게 흉하게 변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다 빼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부모는 하늘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섬김의 대상이고 사랑의 대상이고 공경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를 노엽게 하는 불효자는 죽이라고 했습니다(레 20:9).  


복을 받는 삶 

부모를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복을 받을 삶입니다. 그리고 그 자손에게 복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성경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몇 주 전에 어느 노 권사께서 여러 봉투뭉치를 가져 오셨습니다. 아들 며느리들이 그동안 때를 따라 준 용돈들과 명절 때 준 용돈들 생일 때 준 용돈들을 다 모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았다가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고 선한 곳에 사용해 달라고 합니다. 참으로 감동스러운 모습이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아들 며느리들이 자랑스럽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순간 생각되기를 그 자식들이 복을 받겠구나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반드시 기억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고 인간의 도리이자 자식의 도리입니다. 또 부모의 도리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향기 나는 삶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섬김도 잘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봉투의 돈을 모두 에덴의 집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에덴의 집에 계신 분들은 누군가 돌보아 주어야 할 분들입니다. 저는 그 분들을 교회가 돌보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 힘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이웃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내 가까운 가족과 친지와 동료와 교우를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삶의 모습에 감동하십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이치입니다. 이 땅에서 감동이 있어야 하늘에서도 감동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매사를 옭아매고 막히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한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일은 이 땅에는 없습니다. 먼저는 내 이웃과 내 옆 사람과 내 가족과 내 가까운 친지들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이 세상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고 이 세상을 감동시키는 일이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나가서 매일 전도하고 피를 흘리고 순교하는 것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의 내용들이 대단한 것이 아니고 먼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며 매일 우리들이 이루고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가장 성숙한 삶이고 건강한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 있다면 어린 아이들이 버림받고 거리를 배회하는 일입니다. 아주 불행한 일입니다. 새 생명은 보살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마땅히 보호를 받고 환영을 받아야 하고 축복을 받아야 할 대상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거리에 버려진 채 배회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이 땅의 생각 없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거리에 버렸기 때문입니다. 

내 삶이 고달프다고 그리고 내 삶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아이들을 거리에 버리는 것입니다. 더 불행한 일은 그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함께 죽음을 택하는 일입니다. 누가 불쌍한 존재입니까. 그 보다 더 불행한 일은 노부모들이 자식들로부터 버림받고 거리에 버려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노인들이 갈 곳이 없어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면 그 자손이 복을 받을 것입니까. 그리고 그 사회가 복을 받을 것입니까.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어찌 보시겠습니까. 

오늘 자식들은 노부모들이 거치적거린다고 나가라고 합니다. 오늘 며느리들이 노 시부모를 귀찮다고 나가라고 합니다. 오늘 노부모들은 자식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노년이 되면 자식 눈치 보게 되어 있는데 오늘은 이 현상이 더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때서야 정신이 들고 철이 들어 장례식장에서 통곡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는 분명 불행한 일들입니다. 

세상에는 기회를 놓치면 모두 후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후회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도 믿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가능하면 젊어서 힘이 있을 때 믿어야 합니다. 다 늙고 병들고 시들고 힘이 없을 때 믿으면 후회만 남습니다. 뭘 하고 싶어도 이미 때가 다 지나서 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 공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 공경은 부모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서운하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살아가는 일입니다. 만족스럽게 살아도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면 눈물만 남고 자책감과 후회만 남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후회의 여지를 남기는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후회가 많겠습니까. 

여기 기회를 놓치고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어느 아들의 회한이 있습니다. 이민석이라는 분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서 늙은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 어머니는 너무 가난하여 매일같이 나물을 캐서 밤이면 그 나물을 다듬어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어머니 옷에는 나물 냄새만 풍겼습니다. 낮에는 공사판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그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가지 않고 탈선했습니다. 하루는 도시락을 들고 어머니는 학교에 오셨습니다. 아이들은 그 절뚝거리는 어머니를 보고 병신 어머니라고 놀려댔습니다. 그 아이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안겼습니다. 아이가 더 어머니를 무시하고 탈선의 길을 걸었습니다. 

20여년이 흘렀습니다. 아이는 성장해서 명문 대학의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마침내 암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부잣집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돈 많은 장모가 병원을 차려 주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집 현관 앞에서 가정부와 어느 시골 늙은 할머니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보니까 그 노인은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어머니였습니다. 이 집이 내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우겼지만 가정부는 한사코 이 집에는 그런 아들이 살지 않는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들은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시골의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매달 10만원씩 돈을 보내 주었는데 무엇이 아쉬운지 집까지 찾아왔습니다. 

마침내 그 할머니는 말없이 발걸음을 돌려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마음이 불편했던 아들은 시골의 장터 어머니의 나물 파는 장소로 가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예전과 같이 나물을 팔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들이 유명한 의사라면서 왜 서울로 가지 않습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아들 내외가 서울 집에 와서 살자고 애걸하는데 내가 가지 않는 거야, 나는 여기가 좋아.” 그 소리를 듣고 아들은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시골의 초등학교 옛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갈이 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에게 의미심장한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자네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셨네, 이것은 자네에게 전해 달라고 어머니가 주신 것이네.” 

담임선생님은 이 제자 앞에 뭉치 한 다발을 내 놓았습니다. 그것은 돈다발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장차 아들이 성장해서 사업을 하면 자본으로 주려고 한푼 두푼 모은 돈이라고 합니다. 병이 들었지만 그 돈을 모으느라 한 푼이 아까워 병원에도 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아들이 듣지 못했던 깜짝 놀랄 비밀의 말도 해 주었습니다. 

“자네가 태어나서 아주 어렸을 때 자네 어머니는 처녀였는데 자네를 양육할 수가 없어서 자네를 키워준 노부부 집 문 앞에 놓고 갔다네, 그때부터 그 노부부가 자네를 키워온 거야, 그런데 공사판 철근 더미 아래서 놀고 있던 자네에게 철근 더미가 무너져 내리자 자네 어머니가 달려들어 자네를 구하고 자네 어머니는 그때 다리를 다쳐 불구자가 되었네, 그리고 자네 아버지는 할머니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철근 더미에 깔려 그때 돌아가셨다네.” 

그 소리를 듣고 이 아들이 비로소 깊은 잠으로부터 잠이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던 어머니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아들은 암전문가인 자신이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한 번도 손을 써 보지도 못한 것에 자책하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은 기회가 다 지나간 다음에 비로소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존재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계명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참 많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그 계명들이 모두 구속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신 안내 표지판들 입니다. 그 계명들을 지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는 안전이 있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가장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법과 계명들 중에 가장 두드러진 계명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의 부모를 사랑하고 경외하라는 주문입니다. 그러면 복을 받고 장수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근본에 충실할 때 인간은 빛이 나고 복을 받습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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