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개구리 재앙의 교훈 (출 8:1~15)

  • 잡초 잡초
  • 442
  • 0

첨부 1


개구리 재앙의 교훈 (출 8:1~15)


[인류가 겪은 대재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창세기 시대의 대재앙들로 공룡의 멸종, 사라진 지중해, 노아의 대홍수, 사하라 사막의 형성,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 등을 인류가 겪었던 큰 재앙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지진, 홍수, 해일, 태풍, 마른번개, 화산폭발, 기타 자연적 충격 등으로 280만 명이 넘게 죽었다고 합니다. 질병의 재앙으로 매년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홍역, 소아마비, 결핵에 걸려 400만 명씩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말라리아만 해도 해마다 2억명이 감염되어 100만 명가량이 사망한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명의 에이즈 보균자가 있다고 합니다. 풍요롭게 사는 나라가 많은 것 같지만 식량 재앙으로 매년 2000만 명이 죽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현재 세계 문명의 많은 중심지들은 종말을 거의 틀림없이 맞이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에 가서 인류 역사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 것은 불일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별은 타고난 수명을 가지고 있는데, 태양도 그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태양의 핵연료가 꺼지기 시작하면서 태양의 중심은 수축되고 그 외각은 팽창하여 최후의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수성과 금성이 폭발에 휘말려 들어갈 것이고, 지구표면은 바삭바삭하게 구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류에게는 수많은 재앙들이 있어왔고 앞으로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재앙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연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창조주도 하나님이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11:36)”

이 사실을 믿습니까? 

오늘부터 다시 출애굽기 말씀을 묵상하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출애굽 시대에 역사 속에 나타난 10가지 재앙도 역사 속에 일어났던 재앙입니다.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지 않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첫 번째 재앙은 나일강 물이 피가 되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신이라고 말하는 강퍅한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일주일이 지난 후 두 번째 재앙을 내립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개구리 재앙입니다. 개구리 재앙은 나일강에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집트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전 주민들이 개구리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였습니다. 전역에 악취가 났습니다(14). 더 광범위하게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바로는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모세를 통하여 기록하게 하였는데 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였겠습니까?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10:11)”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롬 15:4)”
오늘 우리 시대에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우리가 진정 풍요를 누리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1,10).
진정 이 땅을 지배하는 왕은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진정 복을 주시는 분은 애굽 사람이 섬기는 숱한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숱한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개구리 신입니다. ‘헤겟’라는 여신인데 머리는 개구리이고 몸은 사람입니다. 다산과 풍요의 신입니다. 개구리는 나일강의 물이 줄어드는 9월경이면 엄청나게 번식하고 울음소리도 요란하다고 합니다. 개구리는 번식력이 강합니다.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 개구리 신이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 줄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구리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개구리를 신성시하며 요리에도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개구리 재앙을 통하여 개구리 우상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개구리가 축복을 주고 개구리가 풍요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출 8:10)”

이스라엘 사람들은 4백 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이 문화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의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겨야 할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허상에 불과한 개구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 하나님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섬기는 개구리들이 나일강에서 기어 나와 왕궁도, 침실도 침상도 신하의 집도, 백성의 집도, 화덕과 떡반죽 그릇까지 점령해 버립니다. 가장 깨끗해야 할 곳을 더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개구리 우상이 구역질나는 재앙으로 변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축복을 주리라 생각한 개구리 우상이 괴롭게 하는 재앙이 되어 올무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날 우리에게 있어 개구리 우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섬기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풍요로움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따라 가보았더니 결국 더럽힘을 당하고 구역질 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풍요를 준다고 섬겼더니 결국 지배해버리고 노예로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개인마다 매일 개굴개굴 우는 개구리처럼 우리 마음을 붙들고 풍요로움을 가져다 줄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우상들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결 에덴의 풍요를 잃었습니다. 사단은 속삭입니다. 현대인을 향해 물질문명이 과학문명이 부요함과 풍요로움을 가져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지상에 천국을 가져다 줄 것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경제가 세계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노예로 만들고 있습니다. 진리를 전하면 질려 버립니다. 그러나 경제를 말하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과학 문명이 인류에게 편안함을 끝없이 가져다주고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모세처럼 하나님은 물질문명과 과학문명 앞에 초라해져 버린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을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기에는 너무 부담스런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을 제한하고 풍요로움에 시비를 거는 시어머니로 생각합니다. 감정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군으로 생각합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유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믿는 사람들도 풍요를 주는 우상에 사로잡혀 믿음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냉랭해 져가고 있습니다. 냉소적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풍요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은 언젠가 종말이 옵니다. 지금도 많은 부분에 있어 올무가 되고 있지만 언젠가 그것들은 인간을 파멸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바벨론의 문명은 언젠가 다 파괴될 때가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술 문명이라는 우상이 사람들에게 풍요와 행복을 줄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습니다. 계시록을 18장을 보십시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계 18:2)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계 18:3)”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계 18:10)”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계 18:21)”

물질문명과 과학 문명은 종착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선하게 이용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풍요를 줄 것으로 착각하면 그것은 우상이 되고 우상은 축복이 아니라 화근되는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은 10가지 계명을 주십니다. 그 계명을 통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20:2-6)”

우리는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우리는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는 원리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없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또 하나는 공의의 법칙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4)” 왜 그렇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살후1:5)”

개구리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서 바로는 산모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낳으면 산파들을 통하여 죽이라고 했습니다. 산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이들을 살려 주니까 자기 백성들에게 살해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산모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가져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유아들이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산의 신으로 개구리 신을 섬겼습니다. 개구리 우상이 보호하사 아이를 많이 낳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산파인 개구리 여신은 하나님의 말 한 마디에 떼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땅에 악취가 진동하였습니다. 그들이 믿는 다산의 신이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바로의 악행을 하나님이 그대로 방치하고만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을 찌를 듯한 권력으로 무소불위의 능력을 행하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그의 힘은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잔인하게 아이들을 나일강에 집어넣었던 백성은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바로는 그가 부리는 술객들을 통해 나일강에 있는 개구리들이 육지로 올라오게 하는 요술을 부렸지만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고통만 가중시키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인 거대한 초월적 재앙, 심판 앞에서 인간은 아무런 해결책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징계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풀어 주기 전엔 백약이 무효입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철저하게 징계를 당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 한 후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였습니다. 죽을 병에 걸립니다.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풀어주지 않으니까 결국 죽고 맙니다. 아간을 보십시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보십시오. 무섭게 징계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 같고,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을 적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 9:6)”고 했습니다. 풍요를 숭배하는 현대 신앙인들은 너무나 여분신앙을 가지고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가 신앙입니다. 사랑만 강조하며 적당히 신앙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피합니다. 희생 없는 축복만 바랍니다. 적당히 개구리와 하나님 사이에 적당히 양다리를 걸칩니다. 

지난주에 친구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개척하여 장년 교인이 100명이 넘어 장로님과 안수집사님, 권사님을 세우고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기도했답니다. 그러나 장로님이 중심이 되어 모든 직분자들이 반절이 큰 교회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어서 앞으로 한국 교회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열매만 따먹으려고 하고 아무도 심지 않으려 하면 앞으로 어떻게 후손들이 열매를 따먹을 수 있겠습니까? 

여분 신앙이 아니라 우선순위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신앙입니다. 그것이 무지한 것 같고 그것이 지혜 없는 것 같고 그것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8)”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식이 죽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억울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응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20년이 지났습니다. 50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침묵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80년이 지나자 하나님은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10번째 재앙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애굽의 아이들이 죽는 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합니다. 우리가 말 한 마디도 좋은 것으로 심어야 합니다. 언젠가 추수 때가옵니다. 

계시록 14장 14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추수하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때를 맞추어 심어야 합니다. 지나가면 기회는 살아지는 것입니다. 상황에 맞추어 심어야 합니다. 다시는 그런 상황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거두는 것은 시간이 문제입니다. 악한 자가 잘되고 의로운 자가 잘못된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심판의 때가 있습니다.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악이 영원히 승리하고 선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양심대로 사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언젠가 선악이 분명하게 들어나는 심판의 때는 오고야 맙니다. 우리가 봉사하는 것, 우리가 헌금하는 것, 우리가 전도하는 것, 우리가 희생하는 것, 우리가 눈물 흘려 기도하는 것, 우리가 예배에 참여하는 것, 우리가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것, 우리가 자녀 위해 눈물 흘려 노력하는 것, 우리가 세상을 건강하게 위해 힘쓰는 것 다 헛되지 않습니다. 뿌린 씨앗을 언젠가 거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 6:10)”

“마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다니엘 웹스터라는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요 학자가 있었습니다. 이분이 한번은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뉴욕의 어떤 호텔에서 저명인사 약 20명과 같이 저녁을 먹었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웹스터 씨, 당신의 일생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생각 가운데 제일 중요한 생각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답니다. 이 때 그는 대답하기를 "나에게 제일 엄숙하고 중요한 생각은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을 이다음에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 질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에 내 마음이 제일 엄숙해 집니다."하고 말했답니다. 어거스틴은 "심판은 그릇된 역사를 교정하는 하나님의 손길이다."이라고 말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됩니다. 매일 매일 좋은 것, 선한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심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진정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는 재앙으로 바로의 자존심은 순식간에 짓밟혀졌습니다. 자신의 힘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구리 재앙을 통해 회개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바로는 이 징벌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모세와 아론에게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진정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람을 존경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목회자들이 존경을 받는 자리, 대접받는 자리에 갈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위대해서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목회자가 섬기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나 하나님의 사람들, 신앙인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자신을 신이라고 한 바로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자 어떻게 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모세와 아론을 불렀습니다. 여호와께 구하여 개구리를 나와 내 백성에게서 떠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인정합니다. 자신이 부리는 요술사 정도로 생각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지배하는 힘없는 포로 중의 한 사람 정도로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의 효력을 인정합니다. 자신이 부리는 요술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재앙은 하나님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재앙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재앙은 문제의 해결의 열쇠가 무엇이가를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내린 재앙도 바로와 그의 백성들에게도 은혜가 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의 기도부탁을 받고 무엇을 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그 자리에서 바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바로를 떠나 나옵니다. 개구리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모세의 말대로 개구리가 다 죽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할렐루야. 아멘” 찬양이 나오고 전 국민에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주고 나아가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말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문제가 해결되자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숨을 통할 수 있음을 볼 때에 그 마음을 완강케 하여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8:15)” 숨통이 조금 열리니까 다시 마음이 완강하여 집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다는 말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건강이 어려워지니까 교만한 마음이 녹기 시작하여 교회에 나옵니다. 사업이 위태로워지자 혼자 잘나서 나간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접고 겸손히 하나님께 머리 숙입니다. 그러나 조금 숨통이 열리면 다시 강퍅해져 버립니다. 교만해져 버립니다.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 차례 기적을 체험했는데도 왜 이렇게 다시 강퍅해져 버립니까? 

성경은 그 답을 우리에게 아주 단순하게 이렇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19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마음이 완악하고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4장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출 4:21)”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계속 나옵니다.(출7:3, 13, 22; 9:12; 10:20, 27; 11:10; 14:4, 8, 17)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니까 강퍅한 마음대로 그대로 놓아두었다는 말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유기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 1장 28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롬 1:28-32)“ 

은혜를 받지 못하면 마음은 이렇게 강퍅해져 버립니다.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개구리가 무엇을 말하는가 계16장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계 16:13)“ 

계속 보십시오. 10가지 재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개구리를 용의 영, 짐승의 영, 거짓 선지자의 영으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사단의 영에 사로잡히면 인간은 더럽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은혜가 떨어지니까 강퍅하여 정죄하고 시기하고 수군거리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사탄의 영을 개구리 영으로 비유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고 개구리 영이 들어오면 밤중에 몰래 개굴개굴하는 개구리처럼 남몰래 사람들 흉이나 보고 다닙니다. 한 마리의 개구리가 울면 다 함께 울듯이 은혜가 떨어지면 세속에 어울려 부화뇌동하며 비판하고 비난하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고 추한 말을 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니까 빅 마우스 우먼(bmw)이 되어 자신이 무엇을 하여야 할 때인지도 구분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선동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모두가 바로처럼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은혜를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고 고백하게 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은혜를 받아야 양심이 선한 양심으로 살아납니다. 은혜를 받아야 선의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세속에 물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은혜를 받았고 노아도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구제도 할 수 있고 선교도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남을 불쌍히 여길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교회 일을 내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일도 내 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노아가 은혜를 받으니까 그 타락한 세상과 어울리지 않고 방주를 예비하였습니다. 요셉이 은혜를 받으니까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 고통스런 환경 속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의 포로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까 저주하며 배신한 베드로가 회복되어 3000명을 회개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니까 이방인이 룻이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갔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니까 기생인 라합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것입니다. 

살인 방조자 바울이 은혜를 받으니까 1세기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 15:10)”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은혜를 풍성히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도 살아나고 우리의 신앙도 냉랭하지 않고 뜨거워지고 우리의 생활도 우리의 기업도 우리의 삶의 질도 회복됩니다. 우리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곧 충만케 하옵소서 이 주리고 목마른 나의 맘에 주 성령을 부으소서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486장 1절)
주 예수여 죄에서 풀어주사 날 정결케 하옵소서 이 세상의 유혹이 나의 맘에 틈 못타게 하옵소서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486장 2절)
옛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그 믿음을 주옵소서 이 세상의 물결이 흉흉해도 날 평안케 하옵소서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486장 3절)
주 예수여 완전한 주의 사랑 나 받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이 내 맘에 충만하여 날 기쁘게 하옵소서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486장 4절)
내 마음에 임하신 주의 성령 늘 계실 줄 믿습니다 큰 은사를 나에게 부어 주사 주 섬기게 하옵소서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486장 5절)}
(김필곤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