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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아낌 없이 주시는 사랑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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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 없이 주시는 사랑 (롬 8:31~39)

   
어디에서 읽었던 글입니다.  ‘영어에는 세 개의 엄숙한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Heaven, Mother, Home입니다.  천국은 나그네와 같은 인생들이 향하는 본향이기에 엄숙한 곳이고, 어머니는 자녀를 위한 사랑과 희생과 눈물의 결정체이기 때문이요, 가정은 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길고 험한 나그네 삶을 마치고 돌아오는 자녀들을 기다리는 하나님이 계시고, 가정에는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자녀들을 기다리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평안한 가정은 따스한 어머니의 품과 같고,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평안한 가정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하도록 하는 모형입니다.   어머니가 부재중인 가정은 어쩐지 쓸쓸하고 모든 것이 빈 자리처럼 여겨집니다.   남편에게 아내가 없는 자리는 아무 것도 없는 빈 자리이고, 자녀들에게도 엄마가 없는 자리는 빈 자리일 뿐입니다.  가정에서 엄마의 자리가 이렇게 크고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부모형제가 함께 사는 가정에서 사랑을 배우고, 가정에서 용서를 배우며, 가정에서 천국을 배웁니다.   이처럼 가정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교우들은 내 가정을 말씀과 기도와 찬양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며 화평한 천국이 되게 합시다.   가정의 달, 어버이주일에 교우 여러분 가정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길 바랍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에 읽은 본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씀은 바울이 힘주어 강조했던 성령의 은사, 예정, 선택의 교리 등을 설교함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신 말씀을 따라 ‘아낌 없이 내어주시는 사랑’이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아낌 없이 내어주시는 사랑이라는 이 위대한 작품의 감독은 하나님이시고 그 사랑의 핵심에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공으로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대한 사랑을 받고 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자신의 독생자를 대신 희생시킴으로 가장 소중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성자 예수는 아들을 죽음에 넘김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위대한 사랑을 실현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을 내어주심은 곧 자신을 내어주심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세력으로부터 건져내시려고 아들을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받으신 하나님은 그 아들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맏아들이 되게 하시고 감히 우리 같은 죄인들을 양자의 명부에 올려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자녀로 인정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며 성령께서 친히 그 일의 보증이 되어주십니다.   이렇게 엄청난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자주 실망을 시켜드리기도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우심으로 결국에는 영광스런 자리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자녀로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우리 대신 죽음에 넘기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우리의 연약함으로 무효가 되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 지고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놀라운 사랑입니다.   

몇 주 전에 TV 방송에서 방영한 연어의 일생을 추적한 기록물을 보았습니다.  어미 연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부화된 어린 물고기가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기까지의 일생입니다.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간 연어는 45cm-85cm의 크기로 자신의 몸을 수백 배 늘려 돌아와 자신이 태어난 강에 알을 낳습니다.  암컷 한 마리가 3천 개 정도의 알을 낳는답니다.  그 중에 부화되어 새끼로 자라는 것은 3백 개 정도이며, 그 중에 바다에 나가 다른 물고기에 먹히지 않고 큰 고기로 성장하는 것은 겨우 3,4마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산란하는 연어는 불과 한두 마리입니다.  연어가 태어난 후 3,4년에 걸쳐 성장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동안 무려 7천 km에서 8천km의 대장정을 펼친다고 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는 긴 거리를 여행하다가 강을 만나면 전력을 다해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때로는 폭포와 같은 높은 언덕을 만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류를 향해 거슬러 점프하며 날아오르는 힘과 집중력이 신기할 정도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물이 맑고 얕은 잔잔한 냇가의 자갈 틈에 알을 낳게 됩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연어의 귀소본능, 종족번식 본능이 신비롭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알을 낳은 어미가 기운이 다하여 죽음으로 물속에서 분해된 어미의 몸이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의 영양소가 되는 장면입니다.  연어의 본능적 자식 사랑은 알을 낳고 죽은 어미가 제 몸을 새끼들에게 영양소로 제공함으로 그 극치에 이릅니다.  새끼들에게 모든 것 다 내어주는 어미의 사랑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연어의 종족번식 본능에서 나오는 행동이지만 자신이 죽음에 이르면서까지 새끼들을 남기고 또 영양분을 공급하는 그 모습은 연어의 세계에서는 사랑이라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없습니다.   제 몸을 내어줌으로 일생을 마치는 연어의 삶을 보면서 한낱 미물에 불과한 저 물고기도 저렇게 목적 있는 삶을 사는구나 하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 고향으로 돌아와서 알을 낳은 후, 새끼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 주는 연어에게서 부모님의 사랑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연어의 죽는 모습 속에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짐으로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그 사랑을 몸소 실현하신 분이십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에서 희미하게나마 경험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종류의 사랑이 존재하지만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만큼 거짓이 없고 희생적인 사랑은 없습니다.   그것도 어머니의 사랑이 더 애틋합니다.   물론 아버지도 자녀 사랑하기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지만 그 사랑의 표현에 있어서 어머니의 사랑이 더 섬세하고 따뜻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은혜’라는 노래는 있어도 ‘아버지의 은혜’는 없어 아버지로서는 서운(?)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어깨에 힘이 빠진 아빠들을 위로하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는 아빠 응원가를 들으면서 아빠들이 즐겁고 위로가 될 줄 압니다.   자녀들은 지치고 어깨가 처진 아빠들을 위해 드리고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맙시다.  

아빠들도 자녀들에게 잘하지만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분들이 어머니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은 희생, 헌신, 다 내어줌으로 표현됩니다.   지난 주일 어린이주일 설교에서 언급한 것처럼 간혹 엄마들의 맹목적인 자식 사랑, 빗나간 욕심이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변하여 자식을 망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도 자식에 대한 부모 사랑의 한 방식이기는 합니다.    그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 표현은 어머니가 월등합니다.   이런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 사랑을 생각해봅니다.   예수께서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 사랑 아래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그 사랑의 위대함을 고백합니다.   

‘누가 그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어낼 수 있으랴?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배고픔이나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죽임 당하는 위험과 그런 환경이 우리를 위협하지만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니 그 어떤 환경과 세력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힘이 없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  심지어 죽음도 삶도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바울의 확고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죽음으로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셨고 양자의 명부에 올려 자녀로 인정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할 있을까요?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 받아주셨는데 누가 우리를 아버지의 집에서 끌어내어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고소할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을 실수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옛날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요?   아무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간혹 실수도 있고 후회도 있습니다.   내 감정을 따라 오늘은 펄펄 끓었다가 내일은 또 어떻게 얼음장처럼 냉랭하게 될지 나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감을 자랑하고 간증했지만 오늘은 기운이 빠지고 어깨가 축 처져 세상의 노예로 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그만큼 내 주관적이고 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는 실수도 후회함도 없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은 변함이 없습니다.   자녀로 인정하신 하나님은 나를 버리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잡고 가십니다. 

나를 낳으신 부모가 나를 아들과 딸이라 인정하는데 어느 누가 나를 데려온 자식이라고 흠잡고 부모자식 사이를 갈라놓을 권리가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부모 자식의 관계를 끊어낼 수 있을까요?   오늘날 세상이 험악하여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은 제법 있어도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흔치 않습니다.   속 썩이는 자식에게 당장 호적을 파가라고 소리치는 아버지는 있지만 그런 아버지의 겉은 그럴지라도 속 마음은 자식이 정말 그럴까 봐 속으로 걱정합니다.   

   자식은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 부모를 모른 체 하고 살 수 있어도 부모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혹 자식을 버렸을지라도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흐느끼며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부모입니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섭섭하여 평생 남남처럼 살 수 있어도 부모는 떠나간 자식을 끝내 잊지 못하고 기다립니다.   아무리 못된 자식일지라도 돌아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한때 서운했던 모든 것을 잊고 품어줄 수 있는 분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부모들에게 주신 마음이고 본래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고 육신의 부모님을 주셨으며 특히 어머니를 주셨다는 찬송 가사가 참 은혜가 됩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챙겨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이 상거지 꼴이 되어 돌아왔을 때 아들의 과거를 묻지 않고 돼지 우리 냄새 나는 아들을 덥석 안고 입을 맞추었던 아버지처럼 우리 하늘 아버지가 그런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챙겨 집을 떠난 자식이야말로 천하에 불효자 아닌가요?   멀쩡하게 살아계신 아버지 유산을 챙기는 심보는 아버지를 섭섭하게 하는 행동 아닌가요?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을 용서하고 아무 일 없는 듯이 맞아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저질렀던 과거의 섭섭함을 마음에 묻어두고 있는 분이 아니라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들의 모든 잘못을 잊고 용서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며,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입니다.  

한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가 그렇게 기뻐하듯 하나님께서도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남을 기뻐하십니다.   아기가 태어나기만 하면 다 됩니까?  아직 어린 아기일 때는 밤낮을 가리지 못하고 보채고 울어 아빠 엄마가 긴 잠을 잘 수 없어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아기 돌보느라 지쳤다가도 엄마를 보고 방긋 웃는 아기 얼굴을 보면 피곤은 한 순간에 달아나고 기쁨이 솟아납니다.    믿음의 자녀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요?  

중생 체험했다고 다 되는가요?   하나님 보시기에 여전히 핏덩어리 어린 아기일 뿐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보채고 근심하게 하는 이 녀석이 언제 자라서 사람 노릇 할까 근심스럽기만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조금 자라면 그제서야 엄마 아빠 소리도 할 줄 알고 대소변도 가리면 얼마나 신기하고 대견스럽던가요?   별것도 아닌 데 아기가 종알거리는 소리를 듣고 전에 안 하던 행동을 보면 엄마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합니다.   학교에서 무슨 상장이라도 하나 받아오면 우리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천재라 여기고 즐거워하며 자식 자랑하지 못하여 입이 근질거립니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당연히 보여드려야 할 일 하고서 생색내는 걸 보면서도 부모님들은 대단히 대견스러워 하십니다.   왜 그런가요?  내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도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아들을 희생하는 진통을 겪고 얻은 또 소중한 다른 자녀들이기에 우리가 조금만 예쁜 짓 하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자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깨닫고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부모님 마음을 오래 전까지 잘 모르고 지냈습니다.   내가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비로소 조금씩 부모님의 마음을 배우게 되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어른들 말씀에 ‘철들자 망령 든다’ 하는데 제가 그 꼴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뭔가 해주고 싶은 부모가 되어 그 동안 나를 위해 베푸셨던 부모님, 지금도 여전히 베풀고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께 어떻게 대하는가 돌이켜보니 부족함이 한이 없습니다.   육신의 부모님께 그리고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 대하여 나는 어떤 자녀로 살고 있는가 어버이주일 아침에 우리 각자 자신들을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우리에게 모든 것 내어주시는 부모님이 자녀를 향한 기대가 있다면 그것은 자녀들의 행복한 삶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하나되고 형제자매가 하나되어 평화로운 가정을 세워가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바람입니다.   출가하여 가정을 이룬 자녀들을 향해서는 부부가 화목하고 사랑하며 그 후손들이 평안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연세 드신 어른들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주 안에서 가정을 이룬 우리 교우들도 부부가 서로에게, 부모자녀가 서로에게 이런 행복을 선물하는 사람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내로 인하여 남편이 거룩해지고, 남편으로 인하여 아내가 거룩해지는 믿음의 가정을 세워갑시다.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내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하나님의 용서를 배우며 이웃을 향한 섬김과 나눔의 삶을 배우게 합시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는 것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내 가정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든든히 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우들의 가정이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이름을 높이는 교회와 천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피로 하나가 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서로 사랑하며 더 많은 생명을 낳는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로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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