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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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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옳으니라 (엡 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어느 날 강도가 할머니를 납치해서 인질로 잡아놓고 아들 집에 전화를 하니 며느리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질범 “너의 시어머니 내가 데리고 있다. 천만원을 가져 오면 풀어 주마”
며느리 “어림 없는 소리, 마침 잘됐다 골치 아픈데 네 맘대로 해라.”
인질범 “좋다. 그럼 너의 시어머니를 너희 집에 도로 데려다 놓겠다.”
이때 당황한 며느리 황급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강도님, 은행 계좌 번호가 어떻게 되죠?”

우리의 어버이는 어버이 되셨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자녀된 우리들의 모든 공경과 존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들이십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어려운 시기인, 조선말,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필연적 결과인 인간성의 사라짐 등을 온 몸으로 부대껴 안으신 우리의 어버이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귀하신 분들이십니다.
그런 우리의 부모님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성경은 이렇게 요청하십니다.


1. 부모를 공경하라.

엡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연세가 많아지면 3가지가 없어진다고 하지요.
첫째는 건강, 둘째는 일과 돈이요, 셋째는 친구라고 합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좋을대로"(As you like it) 2막 7장에서 인생을 7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단계 엄마 품에서 울고 보채는 시기.
둘째 단계 달팽이처럼 억지로 학교에 가는 어린 학생기.
셋째 단계 뜨거운 용광로처럼 사랑하는 연인 시기.
넷째 단계 엉뚱한 맹세를 하고 명예욕에 사로 잡혀 싸우기를 잘하는 병정시기.
다섯째 단계 불룩해진 배, 눈빛만 위엄있고 그럴싸한 격언으로 남을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재판관 시대.
여섯째 단계 남자다움, 굵은 목소리와 자신이 사라지고 마음이 떨리는 비실비실 시대.
일곱째 단계 치아가 없어지고 맛도 꿈도 아무 것도 없는 제 2의 유년기.
여러분은 어느 시점에 와 있는 듯 하신지요?

오늘 우리의 어버이들은 자녀들을 향한 열정어린 헌신으로 결국은 볼록해진 배에, 젊은 날의 패기는 사라진지 오래,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삶은 혹시 아니신지요.

어떻게 공경해야 할까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르신들을 어떻게 공경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육신의 힘이 쇠잔해져 가시는 어르신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고쳐야 합니다.
어르신들을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편견을 고쳐야 합니다. 어르신들을 비생산적이고 비활동적이며 비능률적이라고 단정하고 도외시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나는 목사로서 성도에게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목회자의 요구에 가장 적극적으로 따르는 자가 누구인가? 제1·2 남·여선교회 회원입니다. 나는 목사로서 이 분들을 너무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군대로 말하면 이 분들이 장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가장 크게 영향력을 주는 것은 제 어머니의 기도와 1·2남여선교회원들의 기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목사뿐 아니라 오늘 우리교회 젊은 교우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도, 헌금도, 활동도 여러분이 훨씬 많이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여러분들의 배후에서 보이지 않게 기도하시는 이분들의 기도 때문 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또 다른 면에서 우리 제1·2 남·여선교회원 여러분들의 남은 생애는 기도하는 자로서 혹은 기도하는 어머니로 기억에 남는 자가 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결코 어르신들은 비생산적이거나 비활동적인 분들이 아닙니다.
이분들 때문에 결국은 우리 교회의 엔진이 가동되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동일한 문제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부모를 즐겁게 하라.

(잠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옳은 일이에요” 아동부에서 설교하며 말합니다.
그러자 개구쟁이 한 녀석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요. 제가 3-4살 시절. 부모님은 재롱떠는 저를 보고 매일 매일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셨으니 제 할 일은 다 한 셈이에요.”

부모님 얼굴에 환한 웃음과 기쁨이 넘치도록 해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때 유행했던 노래가 있었죠? 광고에서도 많이 나오던 노래.
“아빠. 힘 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사실은 그렇게 노래하는 너희들 때문에 힘이 든거죠. 물론 또 그들 때문에 피로감도 풀리구요.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자녀가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구체적으로 나의 부모님은 무엇을 기뻐하실까?

어떤 부모님은 인정해주는 것을 좋아하시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을 칭찬해 드리십시오. 부모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엄마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아버지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부모님을 인정해드리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정해 드림으로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어떤 부모님은 함께 있음으로 기쁨을 누리시는 분이 계십니다. 자식들과 함께 있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끊임없이 해바라기처럼 자식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기다리고 눈이 빠져라 기다리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부친 모친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친(親)자를 붙이는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며 나무 위에 올라가 서서 밖을 내다보는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친 모친 친부모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 기쁨을 드리는 믿음의 식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부모님은 선물을 통해 기쁨을 누리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선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 부모님께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드림으로 기쁘시게 해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선물에는 기쁨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섬겨 드리는 것을 통해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수발을 든다고 하는 표현이 여기에 어울립니다. 붙잡아 드리고 세탁해 드리고 씻겨 드리고 먹여 드리는 일을 통해 기쁨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한 없이 베푸시며 그것으로 만족을 누리시는 어머니.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소학(小學)의 가르침입니다.
“자식이 집에서 나갈 때에 부모에게 반드시 고할 것이요
돌아와서도 부모에게 대면하여 알게 하라
자식으로서 부모의 사랑을 받거든 기뻐하여 잊지 말 것이요
부모가 미워하면 두려워만하고 원망하지는 말 것이며
부모가 과오를 범하거든 거스리지는 말고 간하라.
즉 자세를 낮추고 즐거운 얼굴을 하고 음성을 부드럽게 해서 간할 것이요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더욱 공경하여 그의 마음을 얻도록 하여 또다시 간할 것이요,
세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울면서 따라 다니라.”

그만큼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애를 쓰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르침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효의 종교라고 일컫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오죽하겠습니까?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부모에게 순종하라.

(골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엡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지금 우리들의 자녀는 기성세대들과 상이한 가치관을 갖고 사는 세대들입니다.

큰 녀석을 꾸중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저를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인석아. 어른에게 혼 날 때는 두 눈을 내려 깔아야 하는 거야.”
그러자 인석이 하는 말.
“어른 말씀을 듣는데 눈을 쳐다보아야 하지. 어떻게 외면할 수 있어요.”
이렇게 상이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순종이라는 단어 앞에서도 상이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식에게는 철저하면서 부모에게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핑계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이런 모습을 노래한 가사가 있습니다. 팔반가(八反歌)라고 합니다.
아이가 욕하면 기쁘게 받고 부모가 노하면 도리어 불쾌감을 가지니 아이와 부모를 대하는 마음이 어찌 그리 다른고.
아이들이 천 마디 말을 지껄여도 듣기 싫다 아니하고 부모는 한번 말해도 잔소리 많다 하니 아이 부모 대하는 마음이 어찌 이리도 다른고.
아이의 오줌똥은 싫지 않은데 늙은 부모의 침 뱉는 것조차 싫어하니 여섯 자 네 몸이 부모의 정혈로 이룩된 것이 아니냐. 부모는 너를 위해 애쓰다가 이제 늙고 시들었다.
아침 일찍 나가 장터에서 떡 사오기에 부모공양인줄 알았더니 아이는 배부른데 부모는 맛도 못 보았구나. 자식의 마음이 어찌 그리 부모의 사랑만 못한고.
부모는 두 분이나 형제들이 안 모신다 서로 다투지만 아이는 열이라도 남 주기를 싫어한다.
아이는 배불러도 배고픈가 묻고 부모는 배고프고 추워도 걱정 하나 안 한다.
부모의 십분 사랑은 그 은혜 생각하지 않고 아들의 일분 효도는 자랑한다.
부모 대함에는 어둡고 아이 생각함에는 밝으니 누가 부모의 자식 기르는 사랑을 알리요.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어버이 주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을 따라 결단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명한 기독교인인 맥아더 장군, 그의 ‘아들을 위한 기도’라고 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기도문이라서 이 시간에 다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Build me a son” - “내게 이런 아들을 주십시오.”라는 말로 시작된 긴 기도문인데 오늘 제 관심은 맨 마지막 말입니다.

“그리하여 나, 그의 아버지는, ‘내가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라고 속삭이게 하여 주십시오.” - “Then I, his father, will dare to whisper, ‘I have not lived in vain”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늘 이게 기억이 됩니다.
“그리하여 나로 ‘한 생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게 해 주십시오.”

보람과 의미가 바로 그 자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것만이 어쩌면 남는 일이기 때문 에, 그가 세계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많이 했지만은 그건 그렇고 내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고 나는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그렇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어버이의 마음이다.

이 간절한 소망으로 이루어진 결정체가 한 부모님의 자녀들이 아닌지요.
그리고 그 자녀들이 오늘 저와 여러분 아니신지요.

1년에 한차례 또 연례행사처럼 지나갑니다.

그리고 생색을 낸 듯한 모습으로 어버이 날을, 혹은 어버이 주일을 치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하루, 혹은 한 주간의 행사가 아니라, 내 모든 날들이 그 육신의 부모를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삶을 얻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의 최선의 공양과 존경을 받게 해 드립시다.
그리함으로 우리 힘 없어진 우리의 부모님들이 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생각을 누리도록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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