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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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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 6:1~3)

    
설교내용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아멘! 

지난 4월 1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해외 고려장’의 실태에 대한 보도를 했습니다. 그 보도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딸의 뒷바라지를 하고 성년이 되어 캐나다로 출가를 시킨 노인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평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영주권을 얻은 두 딸이 노인들끼리 병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캐나다에 와서 함께 살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들과 함께 손자 손녀 보면서 사는 것도 좋다 싶어서 재산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큰딸은 자신이 부모님을 모실 거라며 부모님의 전 재산 8천만 원을 받아갔습니다. 노인 부부는 수속을 마치고 캐나다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공항에 나와 있을 자식들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택시를 타고 큰 딸에 집에 갔지만 연락도 없이 행적을 감췄습니다. 둘째 딸집에 갔지만 냉담합니다. 따로 방을 하나 얻어서 살지만 2006년 이후로는 부모님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현재 낯선 이국 나라 캐나다에서 깡통을 주워 생활비를 마련하고, 한인교회의 도움으로 쪽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재산만 탐하고 모시기는 싫어합니다. 혹시 외국에 있는 자녀들이 같이 살자고 재산 정리해서 들어오라고 하면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대판 해외 고려장입니다. 

이 방송을 본 네티즌들은 ‘보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에게 어쩌면 저럴 수 있는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여러분은 느낌이 어떻습니까? 씁쓸합니까? 못된 놈이라고 생각이드십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제가 지금 이런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지금 부모님을 잘 모시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기 저기 떠 돌아 다니게 하고 있습니까? 지금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않는다면 이 사람들을 비난 하지 마십시오. 나는 뭐가 다릅니까? 두 딸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입니다. 남의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네 부모를 공경 하라 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잘 못 읽는 자식들이 있는 것 같아요. 네 부모를 공격하라 하고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 유치부에 다니는 어린아이가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무엇을 열심히 외우고 있어요. 부모가 뭐를 외우고 있나? 가만 들어보니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제5계명을 외우는"네 부모를 공격하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빠가 "이놈아,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야 공경!" "「공격하라」와 「공경하라」는 어떻게 달라요?" 아이가 묻자 아빠는 대답을 했습니다. "공경은 아빠 말씀을 잘 듣고 사랑하는 거고, 공격은 아빠한테 덤비고 말씀을 안 듣는 것이지." 아빠는 공경하는 거야! 그러자 대뜸 아이가 말을 받습니다. " 그런데 아빠는 왜 할아버지 공경하지 않고 공격해!" 여러분은 부모를 공경합니까? 공격합니까?

충남 보령의 한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는 홀로 노모를 모시고 삽니다. 72세면 자신을 돌보기도 벅찬 나이 이지만 그에겐 홀로된 어머니가 살아계십니다. 72세의 아드님은 무려 107세인 거동조차 불편한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어 더욱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대소변을 못 가리는 노모를 위해 손수 더운 물을 데워 닦아주는 것은 물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끼 따뜻한 밥을 어머니에게 먼저 먹이고 뒤늦게 밥을 챙겨먹습니다. 

초라한 자신의 밥상과 달리 어머니 밥상엔 빼놓지 않고 고기반찬을 올려놓습니다. 이처럼 늙은 아들의 모든 삶은 오로지 어머니를 향해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모습에선 슬픔이나 절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젊은 시절 어머니에게 좀 더 잘하지 못했던 마음이 회한처럼 쌓여있습니다. 어머니가 고기를 잡수실 줄 모른다고 하시기에, 그런 줄만 알았지!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나 혼자만 다 먹었어.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어. 지금 후회되는 것이 그때 고기 한 점이라도 잡숫게 나눠드릴 걸...” 그는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노모가 살아온 힘겨운 삶을 아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결혼 후 남편이 두 번째 부인을 얻자 아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아들에겐 쌀밥에 고기반찬을 먹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젠 아들이 어머니를 향해 자신의 남은 생을 쏟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남에게 빌린 땅에 밤농사를 짓던 자리가 내년엔 도로가 나 생계를 위협 받는데다, 치매로 정신이 온전치 않아 일을 하다가도 어머니를 업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백발이 성성한 아들은 불평은커녕 어렸을 적 어머니가 좋아하던 노래 한 자락을 부릅니다. 노래와 함께 아들은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했습니다. “어머니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사십시오. 항상 제가 옆에서 어머니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사무엘서에는 다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지요. 그 중에서도 제일 잘생기고 영리한 아들이 압살롬입니다. 그런데 그아들이 배신을 합니다. 아버지의 왕좌를 빼앗으려는 야심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예루살렘 성에서 쫓아내고 아버지를 죽이고자 합니다. 아버지의 군대와 아들의 군대가 목숨을 걸고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불행한 싸움이 어디 있습니까? 결국 이 싸움에서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전쟁은 다윗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에 다윗은 왕의 체면도 생각지 않고 성곽에 올라가 얼굴을 가리고 대성통곡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부모는 자기를 배신한 자식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칠순노모의 소원이 있습니다. "카네이션? 그딴 것 원하지도 않아. 그런 거 없이 (아들이) 그냥 옆에서 건강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지..." 칠순의 최 할머니는 중증장애 아들이 있습니다. 열 달 배 아파 낳은 아들이장애를 갖고 태어나서일까요? 아들에 대한 괜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평생 자식의 손발이 되어 살았습니다. 최 할머니는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는 말과 함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소원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 보이십니다."내가 자식보다 오래 사는 게 소원이야. 내가 먼저 죽으면 누가 우리 아들을 제대로 돌봐... 지금도 다른 식구들이 조금씩 보조는 해줘도 전부 맡길 수가 없어. 하루 온종일 붙어있어야 하는데 힘들지..." 최 할머니의 소원은 다만 아들보다 오래 살아 다른 식구들 손에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식하나 생각뿐입니다. 

국내 교도소에 수감된 어떤 분의 수형생활에 대한 참회의 글이 있습니다. 제목이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작년 겨울 첫 면회를 오신 어머니께서는 창너머로 고개 숙인채 땅만 내려다 보고 있는 이 불효자식에게 한마디의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후 어머니께서는 '춥지?' 이 한마디를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보셨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시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시느라고 어머니의 눈가는 붉어지더니 한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것은 그냥 눈물이 아닌 피눈물 이셨습니다. '춥지' 겨우 그 한마디하시고 접견시간을 다 보내버리신 어머니는 성경책 한 권을 남기시고 떠나가셨습니다." 그후 다시 면회가 없으신 어머니에 대하여 불평하고 있을무렵 형이 면회를 와서 형에게 어머니에 대한 불평을 하자, 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야, 이놈아 아직도 정신 못차리니, 너 어머니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하고 말하더랍니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 그가 다그쳐 묻자 그의 형은 어머니가 며칠 전화를 안받으셔서 찾아가 보니 엄동설한 추운계절에 자식의 죄가 내 죄 때문이라고 방에 불을 끊으시고 나도 감옥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며 자식의 죄와 어미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몸져누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고백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금수만도 못한 내 두눈에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어머니가 남기고 가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눈물이 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죄를 끌어안고 갑니다.

효도가 무엇입니까? 한자어는 이 효도에 대해 퍽 재미있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 시골에는 닷 새 만에 장이 서고는 했습니다. 장날이 되면 아들은 그 동안에 해서 모은 나무 단을 지게에 잔뜩 싣고서 아침 일찍 장에 나가서 그것을 팝니다. 저녁이 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밥상을 준비해 놓고 이제나저제나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립니다.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는 데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서 가만히 집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동구밖까지 나가서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립니다. 드디어 한 사람씩 두 사람씩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서 마을로 되돌아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애틋한 심정이 되어서 좀 더 멀리,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서 동구밖에 서있는 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그 모습을 한자에서는 어버이 친(親)자로 묘사를 했습니다. 

어버이 친자가 어떻게 씁니까? 설 립(立)자 밑에 나무 목(木)자, 그리고 오른쪽에 볼 견(見)자를 씁니다. 나무 위에 올라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바라보는 그 어머니의 애틋한 심정이 바로 어버이 친(親)자입니다. 

한편 아들은 준비해 간 나무를 시장에서 모두 팔고서 그 돈을 가지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도 사고 또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고 동구밖까지 나와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어머님! 왜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다리도 불편하실 텐데, 집에 가만히 계시지 않고요!” 그러면서 아들은 등에 지고 있는 지게를 내려놓습니다.“어머님! 어서 이위에 올라앉으세요. 제가 어머님을 업어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한자에서는 효도 효(孝)자로 표시를 했습니다. 효도 효자는 어떻게 씁니까? 늙을 노(老)자 밑에 아들 자(子)자가 있습니다. 아들이 연로하신 어머님을 등에 업고 가는 모습이 효도 효(孝)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와 같은 친(親)이 있고, 효(孝)가 있는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옛날 어느 곳에 원님이 새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 고을에는 소문난 효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원님이 새로 부임해 오기만 하면 효자는 초청을 받습니다. 그래서 푸짐하게 대접을 받고, 또한 큰상을 받고 온갖 칭찬을 듣고 돌아옵니다. 새로 원님이 부임을 해서 또 이 효자가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 효자는 그런 일로 많이 초청을 받다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갔습니다. 효자가 원님 앞에 섰습니다. 원님이 "자네가 이 고을에 그렇게 소문난 효자가 맞는가?"라고 묻습니다. 효자는 "예, 다른 사람들이 를 보고 효자라고들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원님이 "그럼 자네 부모 형편은 어떤가?"하고 묻습니다. 효자는 "제 어머니는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 한 분이 지금 외롭게 살아가십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외로운가를 생각하고 외롭지 않게 해드리려고 최선을다하고, 불편이 없도록 지극 정성을 다해 온갖 시중을 다 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때 원님이 화를 내면서 "이 놈을 당장에 형틀에 묶고 곤장으로 죽지 않을 만큼만 내리쳐라"고 명합니다. 그러면서 이 원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천하에 이런 고약한 놈이 지금까지 효자라고 칭찬을 받고, 효자라고상을 받고 있었다는 말이냐? 저는 제 마누라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가 15년 동안 혼자 살게 하다니? 진짜 효자라면 아버지를 장가 보내줘야 하지않느냐? 자기는 마누라하고 살면서 아버지는 혼자 내버려두는 고얀 놈이 효자란 말이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대접도 못 받고, 상도 못 받고, 그저 곤장만 죽지 아니할 정도로 맞고 벌벌 기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모두 이야기를 하니까 가만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이제야 제대로 된 속 시원한 원님이 오셨구만."하고 굉장히 만족해하는 웃음을 짓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효도와 아들이 원하는 효도는 전혀 달랐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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