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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전하자 (왕하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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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자 (왕하 7:3~9)


교회력에 따르면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지난 목요일 노인대학에 나오신 500여명의 어르신들께, 여러분 가운데 부모님이 살아계신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보시라고 했더니, 손을 드신 분이 채 열 분도 되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그래서 옛 시인은 “어버이 살아 계실 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닲다 어이 하리/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고 탄식을 한 것 같습니다. 

고 이성봉 목사님은 말하기를 천국에는 ‘할렐루야! 아멘!’ 소리로 가득한데, 지옥에는 ‘걸! 걸!’ 하는 소리가 가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옥에서는 내가 부모님께 좀 더 잘 해 드릴 걸, 내가 그 때 예수를 믿을 걸, 하면서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듯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우리가 아무리 후회를 하면서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효도 중에 가장 큰 효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믿지 않는 부모님을 예수님께 인도해서, 구원받고 천국 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시도록 해 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믿고, 그래서 믿지 않는 부모가 지옥에 가리라는 것을 믿는 신자가,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울며 기도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는다면, 어찌 불신자보다, 패륜아보다 더 악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어버이 주일인데 여러분의 부모님 가운데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은 안 계십니까? 그렇다면 다음의 시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꽃 속에 푹 묻히신/엄마의 영정이/환하게 웃고 있습니다./바로 내 옆에서/막내딸인 나를 무척이나 기다리던 어느 해 5월 8일/카네이션을 사려고 해마다 늦게 갔던 날/엄마는 말씀하셨습니다./“카네이션이 무슨 소용이니?/진짜 꽃이 오는데...” 큰딸을 시집보내며/하얀 천에 꼭꼭 싸맨 꽃병을 내 보이시며/나는 이렇게 살지 못했지만/너는 꽃병에 예쁜 꽃 꽂으며/예쁘게 살아라./꽃병에 예쁜 꽃 꽂고 살지 못하셨지만/인생의 가장 마지막에/예수님을 그의 마음에 꽂으셨습니다./엄마의 얼굴은 꽃보다 예쁘게 되었습니다./꽃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영정을 보며/나도 엄마처럼 웃고 싶은데/내 눈에는 자꾸 눈물이 맺힙니다./받기만 한 사랑 때문에/하지만 예수님은 나에게/영원한 이별이 아닌/짧은 이별이란 소망을/엄마의 빈 자리에/채워 주셨습니다./머지않아....몇 년 뒤.../나도 바로 엄마 옆에서/그렇게 환하게/웃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과 부모님도 꼭 이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왜 전도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7가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도를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까? 1)예수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2)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3)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가 되심과 복음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에 4)영혼에 대한 연민 때문에 5)나를 택하신 목적이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6)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7)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총동원 전도주일을 앞두고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면서, 다시 한 번 우리 모두 전도의 결심과 결의를 굳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 해 전 교사 헌신 예배 때, 시내 봉선동의 행복한 교회에 시무하고 있는 김종주 목사님이, 중국에서 4년 동안 선교사역을 하면서 탈북자들로부터 들은 북한의 참상을 이렇게 전해 준 적이 있습니다. ‘초근목피’라는 말이 있는데, 북한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살기 때문에,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북한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낮에 장례식을 치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곳에 시신을 파묻은 것을 보면, 그 송장을 파다 먹기 때문에 밤에 남몰래 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육점에서 고기를 팔 때에도 돼지고기인지 쇠고기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털이 달린 채 팔도록 하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잡아다가 인육을 팔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기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 않는 정말 너무도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북한의 참상과 같은 비극이 이스라엘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북왕국인 이스라엘의 제 9대왕 여호람 때의 일입니다. 그 때에 이웃 나라인 아람왕 벤하닷이 많은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습니다. 벤하닷은 이스라엘의 서울인 사마리아 성을 겹겹으로 완전히 포위하였습니다. 오랫동안 그 포위망을 풀어 주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굶어죽도록 할 작정이었습니다. 모든 물자의 공급이 중단된 사마리아 성은 날마다 물가가 치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식량은 엄청나게 비싸서 보리 한 스아(1말)에 수십만 원씩이나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날마다 이곳저곳에서 굶어 죽어 가는 형편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스라엘 왕이 민정 시찰을 하기 위해 거리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한 여인이 왕에게 찾아와서 긴급한 사정을 말했습니다. 극도의 굶주림에 허덕이던 두 여인이 서로 약속을 했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 한 아들을 잡아먹고, 내일 또 다른 아들을 잡아먹기로 서로 약속하고, 먼저 자기 아들을 잡아먹었는데, 다른 여인이 약속을 어기어 자기 아들을 숨겨 두고 내놓지 아니한다고 왕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너무도 기가 막혔습니다. 옷을 찢고 가슴을 두드리다가 신하를 데리고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그 때 엘리사 선지자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일 이맘때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고 했습니다. 한 스아는 한 말쯤 되는데 그러니까 두 말이나 되는 식량이 내일은 불과 몇 천 원씩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장관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면서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비웃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신하에게 “네가 네 눈으로 그러한 일을 볼 것이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때에 사마리아 성문 곁에서는 나병 환자 네 사람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앉아서 중대한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 우리가 성안으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굶어 죽을 것이고, 여기 있다가 아람 사람들에게 붙잡히면 역시 죽임당할 것이 뻔하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이니, 그럴 바엔 아람 군대에게 가서 항복을 해보자. 그래서 혹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고 하는 것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굶어죽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얘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항복할 것을 결심하고, 해질 무렵 네 사람의 나병 환자는 아람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찐 된 일입니까? 천만 뜻밖에도 그 곳에는 아람 군대는커녕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일이 어찌 된 셈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아람 군대에게 무서운 소리가 들리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귀에는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병거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6. 25때 한강교 폭파 사건은, 철수하는 기마병의 말발굽 소리를 적의 탱크 소리로 오인하고 폭파 명령을 내림으로 조기에 단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군 작전상 얼마 동안의 시간을 얻는 유익은 있었으나, 대신 미처 피난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납치, 혹은 죽음을 당하게 되고, ‘도강파’와 ‘비도강파’라는 얄궂은 유행어가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람 군대는 갑자기 들려오는 병거소리와, 말발굽 소리, 큰 군대의 소리를 듣고 생각하기를, 이 소리는 틀림없이 이스라엘이 이웃나라와 동맹해서 자기들을 치러 오는 소리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고 굉장하던지 그들은 그만 혼비백산하여 모두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너무 다급하고 경황이 없어서 몸뚱이만 빠져나가고, 모든 것을 그대로 남겨둔 채 도망을 했습니다. 

아람 군대가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쳐 버린 조금 후에, 네 명의 나병환자들이 그곳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곳에는 장막이며, 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그 동안 무척 굶주렸던 터라 우선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 다음 이 장막 저 장막 돌아다니면서, 금 은 보석과 좋은 의복을 골라서 감추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하다가 나병환자들은 제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안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난 것입니다. 보리 한 톨이 없어서 자식을 잡아먹고, 그래도 견디지 못하여 죽어가는 성안에 있는 동족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 보면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즉시 밤길을 더듬어 왕궁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목격한 사실을 상세하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 천만 뜻밖의 소식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정탐꾼을 보내어 알아보도록 했더니, 과연 나병환자들의 말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에는 모든 백성들에게 알려서 아람 군대가 버리고 간 식량을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귀하던 식량이 성안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과연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 날 아침 사마리아 성에서는 보리 두 말에 불과 몇 천 원씩 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이 사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일로서, 전날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면서 조롱했던 장관은, 성문을 지키다가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었습니다. 그래서 “네가 네 눈으로 그러한 일을 볼 것이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는 예언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은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우리는 나병환자들의 행동에서 실로 귀중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그들은 처음에 아람 진중에 가서 식량을 발견하고는, 너무도 좋아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잠잠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한시바삐 달려가서 굶주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식량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식량이 있다는 것을 전달해야 할 책임을 느꼈습니다. 굶주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반갑고 좋은 소식이 달리 어디 있겠습니까?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보릿고개’ 라는 것이 있어서, 끼니를 잇지 못하는 집이 많았지만,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렇게 어려운 보릿고개 같은 것도 없어졌습니다. 이제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는, 이 광주 도성에는 아직도 굶주려 죽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 굶주림은 어떠한 것입니까? 아모스 8:11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집집마다 육신의 양식은 풍족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러한 양식만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 놓고, 많은 양식을 쌓아 두고, 방안 가득히 값진 가구를 채워 놓았다고 할지라도, 그 집에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그 집은 가난한 집이요, 그 영혼은 굶어 죽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굶주림의 참상은 배가 주려서 자식을 잡아먹는 정도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굶주림의 감각이라도 있었으나, 영적인 기근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은, 굶주림의 감각도 느끼지 못한 지경에서, 지금도 시시각각으로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와 있습니까? 나병환자들이 아람 진영에서 풍족한 양식을 발견한 것처럼,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에서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찾았습니다. 우선 여러분이 먼저 생명의 양식으로 배불리 먹고, 여러분의 영혼을 살찌우게 하며, 기운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한 다음 여러분은 영적 기근으로 시시각각 죽어 가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시급히 아름답고 복된 소식을 전해야만 합니다. 

인간은 죽지 아니하려고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꼬박꼬박 밥을 잘 챙겨 먹어도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하늘에서 내리는 신비한 양식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고, 예수님 당시의 군중들은 5병 2어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떡을 먹었어도 모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생명의 떡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 몸이 찢기고 상하시고, 물과 피를 다 흘리시며 죽으신 후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영원히 삽니다.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인 기갈과 기근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복된 소식이 달리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곧 생명의 떡이십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곧 복음입니다. 이 생명의 양식을 우리만 먹고 왔다 갔다 하게 되면, 오늘 우리들의 행위는 나병환자들보다 훨씬 못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다음 9절에 보면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치리니” 라고 했습니다. 만일 나병환자들이 양식을 발견하고서 자기들만 먹고 마시며, 여러 날을 지냈더라면, 그 동안에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후일에 그렇게 불의한 행동을 한 것이 드러났더라면 틀림없이 큰 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샛별’ 곧 “새벽별” 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밝은 아침이 오듯이, 죄악으로 캄캄해진 이 세상이 다하면, 의의 태양이신 예수께서 광명한 새벽별처럼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밝히 비취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때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고, 그래서 많은 영혼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해 굶주려 죽는다면, 우리가 받을 벌이 얼마나 중하겠습니까?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겔 3:17에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깨우쳐 주어도 듣지 아니하면 별 수 없습니다.  나병환자들이 양식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말이 믿겨지지 않아서 굶어 죽었다면, 나병환자들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영안이 열려지고, 전도의 사명을 새롭게 자각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여러분의 영안이 열려져서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시시각각으로 죽어 가는 불쌍한 영혼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풍성한 생명의 양식을 찾았습니다. 우선 여러분이 먼저 배불리 먹고, 힘을 얻고, 기운을 차리시기 바랍니다. 만일 요셉의 창고 안에서 굶어 죽는 쥐가 있다면, 그 쥐는 병든 쥐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생명의 양식을 배불리 먹고, 그런 다음 복음을 전해서 여러분의 책임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전도가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도의 열심과 구령의 열정이 있고, 그리고 성령께서 도와주시면 누구든지 다 전도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미국 소매상 협회에서 세일즈맨들이 물건을 판매할 때 손님들에게 몇 번씩 권유하는가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단 한번 권유한다’가 전체의 48%를 차지했습니다. ‘두 번 권유한다’고 응답한 세일즈맨이 25%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 이상 권유한다’는 세일즈맨이 나머지 12%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세일즈맨의 판매 실적과 판매 권유의 상관관계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네 번 이상 권유한다’는 12%의 세일즈맨이 전체 판매량의 80%이상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88%의 세일즈맨이 판매한 상품은 고작 20%에 불과했습니다. 한 물건을 팔기 위해 네 번 이상 권유하는 12%에 해당하는 세일즈맨을 프로 세일즈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을 파는 데에도 네 번 이상 권유하는 집념이 필요하듯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번 전도 해보고 ‘안 믿으면 저만 손해지 뭐’  ‘아무래도 구원받을 영혼이 아닌 모양이지’하고 물러선다면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꼭 교회의 성장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연민 때문에 전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을 이미 들었고, 때로는 매스컴을 통하여 기근으로 죽어가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모습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이 멀리 북한이나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위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 이웃 중에 아니 바로 우리 곁에 먹지를 못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 보면서도, 혼자서만 배불리 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기에게는 충분히 도와 줄 힘이 있고 풍족한 양식이 있는데도, 눈앞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인생을 보고도 모른 체 한다면, 그러한 사람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저와 여러분이 그와 같이 악독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떡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삽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비참하게 죽어가는 인생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시급히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스펄전은 “전도란 거지가 다른 거지에게 빵을 얻어먹을 수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이미 빵을 얻었고, 그 빵을 제공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병환자들이 바로 그렇게 했지 않아요? 그들은 양식을 발견하고 지체 없이 굶어 죽어가는 사마리아성 사람들에게 양식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혼자서만 예수를 믿고 교회에 왔다 갔다 한다면, 그는 분명히 나병환자들보다 훨씬 더 못한 신자들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성도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도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면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은 혼자 오셨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면, 두 번째 질문은 더욱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당신은 혼자 올 수 있었던 말입니까?”라는 질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후일에 죽어 천국의 문에서 이런 추궁을 당하기 전, 이 땅에 있을 때 열심히 전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당신은 천국에 혼자 들어갈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총동원 전도 주일을 앞두고 많은 성도들이 전도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는데 “어떻게 당신은 총동원 전도주일에 혼자 올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만일 우리가 이 봄에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우리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나병환자들보다 더 악한 성도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총동원 전도 주일을 맞이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도해서 전성도 전도인들이 다 되시기 바라고, 그리하여 하늘나라에서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과 상급을 다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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