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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하는 삶 (마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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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는 삶 (마 7:13~14)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는 8개의 성문이 있었습니다. 이 성문들은 크고 넓어 출입이 편안합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낮에만 열려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밤에 급한 일이나 피치 못할 일로 출입을 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 비상문 하나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것이 소위 “바늘 문”이라고 하는 문입니다. 

이 문은 다른 성문들과 비교해 볼 때 바늘 귀처럼 작다고 해서 바늘 문이라 불렸습니다. 실제로 이 문은 말을 타거나 짐을 지고는 통과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고개를 숙이고서야 출입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은 드나들기가 힘이 들고 고생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은 이 문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크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작고 비좁은 이 바늘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쉽고 편한 길을 가지 말고 어렵고 힘든 길을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할까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가르치고자 하신 말씀은 무엇일까요?

1. 말씀을 실천하라

우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산상보훈의 한 부분입니다. 산상보훈은 마 5:1-7:27까지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 바로 앞부분 즉 5:1-7:12까지가 본론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바로 이어서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지키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이 힘들고 고생스럽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힘들고 고생스럽더라도 꼭 그 말씀들을 실천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몇 가지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5:21을 보면 형제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살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5:28을 보면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간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39절을 보면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44를 보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 같이 좋은 말씀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 첫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햇살 뜨거운 어느 여름날 오후, 개구리 세 마리가 나뭇잎에 올라탄 채 유유히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뭇잎이 강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그 중 한 마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결심했다는 듯 단호하게 외쳤다.

“너무 더워. 난 물속으로 뛰어들 테야!” 다른 개구리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나뭇잎에는 몇 마리의 개구리가 남았을까? “두 마리요!”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틀렸다. 나뭇잎 위에는 여전히 개구리 세 마리가 남아 있다. 어째서 그럴까? 뛰어들겠다는 ‘결심’과 정말 뛰어드는 ‘실천’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개구리는 뛰어들겠다는 결심만 했을 뿐이다. 녀석이 정말 물속으로 뛰어들지, 또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다시 앉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일과 말씀을 실천하는 일은 다른 일입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에 동의했다고 저절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일은 큰 문으로 들어가는 일과 같다면 말씀을 실천하는 일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 1: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하나님께서 모세가 죽은 뒤에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그 땅에 들어가 자기들의 발바닥으로 밟아야 자기들 차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 땅에는 가나안 7족속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셨지만 그 약속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그 땅을 밟아야 합니다. 죽기 살기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입으로 “아멘”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믿고 실천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유명한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회사상가인 러스킨에 관한 에피소드입니다. 그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하려고 가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고 길이 좋지 않아 흙탕물이 옷에 튀어 곤란을 겪었습니다. 강의실에 도착한 러스킨이 옷을 털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강의실에 오는 길이 좋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학생들은 “그야 당연히 길을 고쳐야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러스킨이 말했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나가서 길을 고칩시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러스킨 교수의 말에 따라 학생들은 모두 나가 길을 고쳤고, 그 후 그 길은 실천을 중요시 한 러스킨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러스킨의 길’이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우리가 어렵지만 말씀을 실천하면 길이 열립니다. 우리들의 길이요, 바로 하나님의 길이 열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깨달았으면 실천해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심정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2. 올바로 선택하라

다음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올바로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두 가지 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크고 넓은 문이고, 다른 하나는 작고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문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다 마치시고 이제는 너희들이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따르는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도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로 선택을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15-20절을 보면 좋은 나무가 될 것이냐 아니면 나쁜 나무가 될 것이냐를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산상보훈의 말씀을 잘 지키면 좋은 나무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쁜 나무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24-27절을 보면 반석 위에 집을 지을 것이냐 아니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을 것이냐를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산상보훈의 말씀을 잘 지키면 반석 위에 집을 짓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래위에 집을 짓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강제로 이끌지는 않으십니다.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 주십니다. 다만 말씀으로 올바른 선택의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분명히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도 우리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신 30:15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두 가지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생과 복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사와 화의 길입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또 그 결과도 우리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그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바로 선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택하는 지금의 상황과 선택의 결과가 나타나는 나중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름에 재미있게 놀 것인가 아니면 고생스럽지만 땀 흘려 일할 것인가?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놀고 싶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겨울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재미있게 놀고 나면 겨울에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지금 땀 흘려 일하고 나면 겨울을 행복하게 날 수가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베짱이처럼 당장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선택하는 것을 “충동적 선택”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개미처럼 미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선택하는 것을 “절제된 선택”이라고 부릅니다. 절제된 선택을 하는 것은 오늘 당장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절제된 선택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선택의 순간에 한 발 물러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본다.

둘째, 나보다 우리를 생각한다.

셋째, 원하는 것보다 필요한 것을 택한다.

넷째,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넓은 문보다 좁은 문을 선택해야 합니다. 

3. 포기하지 말라.

또 하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어렵사리 결단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계속해서 협착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좁은 문으로 들어서 보니 길도 좁은 길이요, 또한 그 좁은 길도 계속해서 이어져 있더란 말입니다. 

힘들고 어렵게 선택했으면 당장 그것에 걸맞은 보상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니면 한 해 두 해 지난 뒤에라도 힘든 선택에 대한 보상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힘겨운 선택을 했지만 여전히 힘이 들어서 선택한 뒤에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후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위협과 집요한 추격을 뿌리치고 모세를 따르기로 선택했습니다. 430년이나 살아오던 땅을 결단하여 떠났습니다.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 지 확실한 보장도 없이 모세의 말만 믿고 따라 나섰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하나의 좁은 문에 대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 출애굽하여 간 곳이 시내 광야입니다. 그 고생스러움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마실 물이 없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40년 동안 그 고생스러움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출애굽 여정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의 행군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렵게 결단하고 예수 믿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참 힘들게 좁은 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선택한 이후에도 길은 여전히 좁아서 걷기가 힘이 듭니다.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안됩니다.

영국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헌신적으로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너무 고생을 하니까 리빙스턴의 친구들이 위로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 안에 리빙스턴을 도울 사람 몇 명을 보내겠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곳까지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달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이렇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사양하겠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을 원해!" 

그렇습니다. 고생스러운 선교현장으로 가겠다고 결단하는 것과 선교현장에서 계속해서 고생을 감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고생스러운 선교현장으로 가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좁은 문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선교현장으로 가서 계속해서 고생해야 하는 것은 좁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좁은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좁은 길을 걷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충동이 한 두 번 드는 것이 아닙니다. 잘 참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히트했던 손목시계가 있었습니다. 티멕스 시계(TM)입니다. 이 시계가 인기를 끌게 된 결정적 동기는 TV 광고였습니다. 시계를 비행기 위에서 떨어뜨립니다. 트럭으로 깔아뭉개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계를 향해서 바윗돌을 던지기도 합니다. 결국 시계는 깨지고 망가졌습니다. 그런데도 그 시계가 가고 있었습니다

광고 마지막 멘트가 이것이다. “티멕스 TM, 그래도 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래야 합니다. 한번 결정한 것은, 한번 선택한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가야 합니다. 작심 3일이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 상황이 어렵다고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건강상 문제가 생겼다고,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중도 하차하면 안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서 좁은 그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좁은 문 뒤에는 계속 좁은 길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오늘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넓은 문으로 들어간다면 결국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우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힘들지만 그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올바로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늘 다가오는 선택의 상황에서 좁은 문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좁은 길을 걷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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