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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화목한 가정 (잠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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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한 가정 (잠 17:1)
 

이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공동체를 들라면 누구나 가정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정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일 뿐 아니라, 애정과 보호와 의식주의 제공과 안식이 있는 곳입니다. 사람이 어려서는 가정에서 부모의 양육을 받고, 장성하면 독립해서 별도의 가정을 이룹니다. 이는 인종과 종족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인류 보편의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가정은 사람들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안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이같이 증언합니다.

“18)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20)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이 말씀과 같이,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맺어주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이 신성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날 가정의 위기는 사람들이 가정의 신성함을 알지 못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결과, 가정은 단지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성립된 것이므로 이해가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파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가정은 마치 화초를 가꾸는 것과 같아서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지 않으면 활기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정은 화목해야 합니다. 화목한 가정이 곧 행복한 가정이고 건강한 가정입니다. 오늘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비결을 말씀해 드림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온 가족이 믿음으로 하나 될 때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뜻입니다. 이 문구는 가정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줍니다. 그러나 가정의 화목을 이루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가족 구성원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에나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하나가 되고, 부모와 자녀들의 생각이 하나가 될 수만 있다면 쉽게 가정의 화목을 이룰 수 있겠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더구나 과거 가부장적인 시대와 달리, 오늘날은 가장이라고 해서 자기의 주장을 무조건 가족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는 세대차가 나기 마련이고, 부부 간에도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세대차나 개성이나 견해 차이를 초월해서 온 가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을 때, 가족 간에 다양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달라도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안에서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온 가족이 같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 간에 세대차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공통분모가 되기 때문에 화목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족 간에 의견이 나누일 때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 승복하기 때문에 화목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이 때 가장이 믿음을 가지고 가족을 이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것이 없겠지요. 가장이 솔선해서 하나님의 권위 앞에 승복할 때, 가족 구성원 전체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 결과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지식이나 경험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낡아가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이 출현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들 간에 세대차가 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지만, 세대 간의 차이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분이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세대차를 초월해서 일치된 생각과 뜻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수천 년 전에 기록된 것이므로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무식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시대를 초월해서 어느 시대에나 새롭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하다 함은 시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언제나 참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믿음 안에서 하나 됨을 실현하기 위해서 매일 가정예배를 드릴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가족의 마음을 믿음으로 하나 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가정예배를 드릴 때는 각자가 순서를 나누어 맡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 자녀가 돌아가면서 사회도 보고, 기도도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가정예배를 생활화할 때 우리는 주 안에서 가족 간의 모든 이견을 해소하고, 믿음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화목할 때, 비로소 그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고, 가정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가족이 서로를 용납할 때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가정을 사랑의 보금자리라고 일컫는 것은 가족 간에는 약점과 실수가 용납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집밖으로 나가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집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성적 경쟁을 하고,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실적 경쟁을 합니다. 경쟁사회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으며, 실수한 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은 경쟁이 아닌 용납을 우선시합니다. 

인간적인 약점과 허물이 가정 안에서만은 수치로 치부되지 않고 용납되는 것입니다. 가족 가운데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있지만 못나고 어수룩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나고 똑똑한 사람만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못나고 어수룩한 사람이 더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용납하는 마음입니다. 

이 용납하는 마음은 부부 간에도 필요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부족함을 용납하고, 아내는 남편의 부족함을 용납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 보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와는 아담을 위한 돕는 배필로 지음 받았습니다. 아담이 먼저 지음 받았고, 그 후에 하와가 지음 받았으므로 이 같은 표현을 쓴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은 하와를 위한 돕는 배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위한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아내의 도움이 없이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내는 남편의 도움이 없이 온전하게 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결혼제도를 허락하신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부부간에 서로의 약점을 용납하고 보충해 주는 배필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용납의 정신은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도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부족함을 용납하고, 자녀들은 부모의 부족함을 용납할 때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더러 자기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 용납할 줄 모르는 기질로 인해 가족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실제로는 결점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나 그 자신만 모를 뿐입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에 이르기를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천국의 시민이 된 것은 전적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용서해 주신 덕분입니다. 이제 우리가 말로 다할 수 없이 큰 용서를 받았으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용납해 주어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용납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잘못을 용납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가족 중 누군가 잘못을 범하면 진심으로 그 사람을 생각해서 결함을 지적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가족의 부족함을 용납하는 마음으로 권면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약점을 꼬집고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어서 오히려 가족 간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가족 간에도 상대방의 잘못을 고쳐주는 데는 책망보다는 칭찬이 더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 퇴근하고 곧장 귀가 하지 않고 매일 늦게 돌아온다고 합시다. 그럴 때 “왜 당신은 매일 늦게 들어오느냐?”고 따지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내가 어디 놀러 다니느냐, 가족을 위해서 고생하는데 알아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항의할 것입니다. 그럴 때는 직접 대면해서 비난하지 말고, 모처럼 일찍 들어올 때에 반갑게 맞아주고 저녁 반찬도 평소보다 맛나게 준비해서 대접하면서 “당신이 일찍 집에 들어오니까 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그렇게 대하면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무언가 깨닫고 행동에 변화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칭찬은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변화시키는 데도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매일 같이 부모에게서 책망을 듣고 자라는 자녀들은 매사에 자신감을 잃고 소극적이 됩니다. “나는 할 수 없어” 하면서 자포자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녀들이라도 칭찬을 많이 해 주고 격려해 주면 용기를 얻고 자기의 잘못을 고치는데 적극성을 나타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가족은 가장 가깝기 때문에 자칫하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며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없고, 가정이 사랑의 보금자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서로를 용납하면 그 시로부터 모든 불화가 사라지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재물과 상관없이 사랑과 신뢰로써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은 지극히 극빈한 상태를 의미하고, 육선 곧 진수성찬이 가득한 것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면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재산 때문에 부모 형제간에 다투고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차라리 재산이 없었더라면 싸울 일도 없이 다정하게 혈육의 정을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물질적인 부요가 화목의 필수조건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것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가난해도 가족이 서로 위로하고 사랑을 나눈다면 얼마든지 화목한 가정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남녀가 맨 손으로 만나서 단칸 사글세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새벽이면 부부가 청가시장에 가서 채소를 떼어다가 수레에 실고 남편이 앞에서 끌고 아내가 뒤에서 밀면서 부지런히 장사를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부부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이겨냈습니다. 저녁에 지친 몸으로 돌아와서는 된장찌개를 놓고서 마주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반찬이 없어도 꿀맛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서로 사랑했기에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에 이 부부는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점포를 마련했습니다. 장사가 잘 되어서 큰돈을 벌자, 남편은 채소가게를 그만 두고 다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잘 되어 큰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좋은 집도 마련하고, 고급승용차도 굴리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갖추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고 나자 가정의 단란함이 사라졌습니다. 남편은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매일같이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옵니다. 언제 한번 단 둘이서 식탁을 마주 대할 기회가 없습니다. 남편의 입에서는 사업 이야기, 돈 이야기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제야 이 부인은 부자로 사는 지금보다 가난했으나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살았던 지난날이 더 행복했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물질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결부시켜서 돈이 있는 사람이면 대접하고 돈이 없는 사람이면 무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돈이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줄로 생각하고, 자나 깨나 돈을 추구합니다. 돈이 있으면 의기양양하고 돈이 없으면 의기소침합니다. 

심지어는 결혼도 사람의 됨됨이 보다는 돈을 보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결혼정보회사가 내놓은 통계자료에 의하면, 남성의 31%, 여성의 38%가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대인들이 경제적인 문제를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그러나 그처럼 행동하는 것은 현대인들의 정신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말세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합니다.

“1)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본문에 보면, 말세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돈을 사랑하는 것을 맨 먼저 언급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돈 때문에 화목한 가정은 돈이 떨어지면 화목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은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 된 것이 아니라 돈으로 하나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가정의 화목이 돈에 의해서 좌우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화목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대한 이 같은 세속적인 태도를 버리고 성경적인 물질관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지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7)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하신 대로, 자족을 배워서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재물은 날개를 가진 새와 같아서, 언제라도 나에게서 떠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 재물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재물은 정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함이 없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데도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는 재물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족 간의 사랑은 억만금을 주고서도 바꿀 수 없습니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신뢰한다면 가난과 실패와 질병에도 불구하고 화목한 가정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우리는 가정의 화목을 지키는 데 관심을 갖고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는 우리에게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화평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로서 역할을 감당할 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화목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 전부가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한 마음이 되어 힘써야 합니다. 

가장에게는 가정의 화목을 유지해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도 가정의 화목을 유지해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자녀들도 가정의 화목을 지속해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의 화목을 유지하는 일에서 제외된 사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라면 나의 욕구와 주장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들 가정의 화목을 위해 힘쓰니까, 나는 내 좋은 대로 행동해도 되겠지, 그러면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크게 성공했으나 가정적으로 볼 때 실패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가정을 소홀히 여긴 결과입니다. 그 사람은 가정보다 성공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성공해서 명예와 부와 권력을 얻었을지라도 사랑의 보금자리인 가정을 상실했다면 무엇이 그리 행복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돈벌이를 위해서 가정을 등한히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도 가정이 소중한 것을 압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가정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먼저 돈을 벌어야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과연, 맞는 말일까요? 안타깝게도 그들이 이제 웬만큼 돈을 벌었으니까 가정을 보살펴야지 할 때는, 이미 그들의 가정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정원을 방치해 두면 잡초가 무성한 풀밭이 되고 말듯이, 가정도 방치해 두면 망가지고 맙니다. 나중에 후회해도 때가 늦기 쉽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가정을 건강한 사랑의 공동체로 가꾸어 나가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발라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할 때, 가족 간에도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화목한 가정을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 화목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온 가족이 믿음 안에서 살아갈 때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과의 화목을 도외시하고 가족 간의 화목에만 치중한다면, 언뜻 보기에는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 이유는, 가족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5장 7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온 가족이 서로 격려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가정이 화목하기를 원하지만, 그 방법을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오늘 말씀해 드린 대로, 온 가족이 믿음으로 하나 되고, 서로를 용납하고, 서로 사랑과 신뢰로써 대하며, 온 가족이 가정의 화목을 지키는 데 관심을 갖고 힘씀으로써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가정을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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