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이날 (눅 18:15~17)

  • 잡초 잡초
  • 232
  • 0

첨부 1


어린이날 (눅 18:15~17)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15∼17절

어린이는 가정·사회·국가·교회의 미래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자녀를 잘 양육해
어릴 때 예수님 만나고 부모 사랑 받아야

어느 가정이나 사회, 국가의 장래를 알아보려면 그곳의 어린이들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내가 우리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주인 같지만 순식간에 세월은 지나가고 어린이가 내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를 잘 교육시켜 훌륭하게 자라게 하는 일에 가정과 사회, 국가가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까르멜 수도원의 원장은 ‘맨발의 수도사’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린이들을 가르칠 때 늘 모자를 벗고 가르쳤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이 아이들 중에서 국무총리도 생기고 장군도 생기고 학자도 생겨나고 위대한 실업가도 생겨날 것이니 그것을 생각하고 그들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맨발의 수도사’가 가르친 제자 중에서 세계의 영적 흐름을 바꿔 놓은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며 잘 교육시켜 훌륭하게 자라게 하는 일에 우리는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1. 어릴 때 예수님을 만나게 하라

우리는 무엇보다도 어릴 때 예수님을 만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귀가 어린이의 마음에 쓰레기를 갖다 부어서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게 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실히 알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때 마음속에 기초를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2장 6절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 때 가르침을 받으면 나이가 들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습니다. 습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이가 들고 난 다음에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면 마귀가 너무나 상처를 많이 입혀 놓았기 때문에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아름다운 어린이의 마음에 신앙의 아름다운 복음을 전해 놓으면 어린아이는 오랫동안 신앙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신앙을 언제나 모범으로 따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이고 어디 밖에 나가서 다른 가정의 생활을 별로 본 적이 없으니까 부모님의 신앙을 따르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주일을 성수하면 같이 주일을 지키려고 하고, 십일조를 드리면 같이 십일조를 하고, 가정예배를 드리면 같이 가정예배를 드리는 식으로 어린이는 반드시 부모님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지 못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훌륭한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있고 나쁜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훌륭한 말로 다른 사람을 좋게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나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항상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특히 우리 자녀들에게 깊은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청소년 범죄자의 가정 배경을 조사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니 10명 중에 6명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또한 10명 중에 6명의 부모가 자주 싸웠습니다.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부모가 술 취하고 자주 싸우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 부모와 똑같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부부간에 싸우고 가정을 파괴시켰다고 발표했습니다. 부모님들이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 자녀들의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에게 인생의 모델이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어린 자녀들에게 입술로만 교훈하지 말고 행동으로 올바른 삶을 보여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교회에 와서 교회 교육을 받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합니다. 먼저 교회에 와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일반학교 교육을 통하여 무신론과 유물론의 공격을 수없이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신이 없다. 만물은 물질밖에 없다’며 현대 과학은 젊은이의 마음을 공격합니다. 어릴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버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한 것을 확실히 알고 있으면 그것을 들어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넘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신앙이 없으면 학교에서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가르치는데 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믿고 거기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절과 27절에 기록된 대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이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마음속에 확실히 알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아이 때 삶의 가장 기초적인 윤리 도덕인 십계명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가 이렇게 무질서하고 윤리와 도덕이 깨어진 것은 어릴 때 십계명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내가 살아야 될 중심적인 계명이 없습니다. 계명이 없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육체가 원하는 대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대단히 간단하지만 이 십계명을 머릿속에 콱 박아 놓으면 어린아이가 이 세상에서 살 때 언제나 이 십계명을 적용하게 됩니다. 십계명에 비춰서 생각하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 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이 진리를 어린아이들의 마음속에 꽉 박아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다 죄짐을 짊어지고 태어나고 죄의 빚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빚을 갚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이러한 죄의 빚을 대신 갚아 주셨다는 것을 말해줘야 합니다. 또한 사후세계의 실상을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셔서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셨기에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 승천한다는 것을 꼭 가르쳐 줘야 합니다. 우리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린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린아이들에게 예수님 십자가 대속의 의미와 사후 세계에 대하여 확실한 이해를 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2. 사랑받는 어린이

어린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어린이는 아직까지 미숙한 인격자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에게는 참 많은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끌어안고 얼굴도 비벼주고 등이나 허리도 쓰다듬어 주고 뽀뽀도 해주면서 서로 대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14살 때 우리 동래중학교가 인근 학교와 야구시합을 했습니다. 두 학교는 늘 경쟁자였는데 제가 다니던 동래중학교가 그날 야구에서 이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신바람이 나서 우리 집에 왔을 때 아버님이 주위 어른들과 이야기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에 “아버지! 오늘 야구 시합에서 동래중학교 학생들이 이겼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시끄럽다. 어른들이 이야기하는데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하셨습니다. 14살 때 당한 그 충격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그래? 잘됐구나. 참 기쁘다”는 말 한마디만 해주셨어도 제가 정말로 아버지께 감사했을 것인데 저는 그때 완전히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방에 들어가서 울었습니다. ‘나는 인간도 아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그 고통이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는 인정받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도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정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13절로 16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이 안수해 주시고 만져주시기를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애들은 저리 가라! 왜 시끄럽게 하느냐?”하고서 아이들을 밀쳐냈는데 이를 보신 예수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며 일일이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셨습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의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단순한 마음으로 뜨거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받드는 사람이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를 언제나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대화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도 가족의 일원이니까 함께 대화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부모에게 이야기하려는데 피곤하다는 핑계로 듣지 않으려 하거나 듣는 척만 할 때 아이는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반드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부모에게 이야기합니다. 자기에게 굉장히 큰일이니까 학교에서 경험한 것이 굉장히 중대한 일이니까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막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들어주지 않거나 그냥 듣는 척만 하면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날 무시하는구나. 나는 가정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구나’ 이러한 부정적인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린아이가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의 말을 거역해 문제아가 되거나, 침울해하고 불안해하는 소심증을 가진 어린아이로 자라고 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1절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낙심하게 만들면 낙심하고 좌절하고 부정적이 되고 맙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들을 대할 때 늘 따뜻하게 대화하고 안아주며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잘하는 것은 정말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애들에게 징계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애들이 확실히 일을 잘못했을 때는 징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확실히 잘못했을 때에도 그냥 주먹으로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애를 불러 놓고 설득을 시켜야 합니다. “네가 이런 것은 잘못했지? 네가 인정하지? 그러니까 잘못에 대한 벌을 받아야겠지?” 이렇게 이해를 시키고 난 다음에 징계를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29장 15절에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3. 교육이 내일을 만든다

어린아이들의 교육이 내일을 만듭니다. 내일은 오늘의 교육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부모 욕심의 희생물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요사이 부모들은 어린아이를 자기들이 원하는 우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억척같이 교육을 시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태권도 보내고, 태권도 끝나면 피아노 교실 보내고, 피아노 교실에서 나오면 그림 그리는 데 보내고, 그림 그리는 데서 나오면 또 뭐 하는 데 보내고. 이런 식으로 애들이 정신이 없어서 눈이 빙글빙글 돌 정도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어린아이를 부모 욕심의 희생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라 자식들은 야훼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아이들은 야훼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녀를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을 마음도 건강하고 육체도 건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잠언 4장 20절로 22절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린아이도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육체의 건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건강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 강행군을 시켜서 건강을 잃어버리면 그 아이가 나중에 아무리 교육을 잘 받았어도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에게 훌륭하게 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강제로 쥐어박으면서 “공부해라. 공부해라. 이 바보천치야. 너 그러다간 나중에 굶어죽을 것이다” 그러면 자녀는 점점 더 반발하고 공부를 안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뭘 좋아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자녀가 좋아하고 취미가 있어 보이는 것을 도와주고 밀어줘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좋아하고 또 잘하니까 크게 발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위인전도 많이 사다줘야 합니다. 그 위인전을 읽고 ‘나도 훌륭한 위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방문 체험도 좋습니다. 포스코(포항제철) 같은 산업단지에도 가보고 ‘이런 일을 이룩한 사람이 얼마나 큰일을 했을까?’하면서 마음에 꿈을 꾸고 용기와 힘을 얻도록 해주는 것도 좋은 일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특기를 발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는 김연아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디라도 김연아가 나오면 사람들이 다 관심을 가지고 봅니다. 그런데 그가 오늘이 있기까지는 어려운 훈련 과정이 있었습니다. 점프 하나를 익히기 위해 3000번을 넘어졌다니 입이 안 다물어집니다. 3000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렇게 고통스러운 운동을 왜 합니까? 자기가 원하니까 자기가 소질이 있으니까 하는 것입니다. 원하지도 않고 소질도 없는데 부모가 강압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3000번이 아니라 6000번 실패를 해도 일어날 수 있을 만큼 원하는 것이 있고 소질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해서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부모의 소원대로 부모의 계획대로 틀을 만들어서 억지로 집어넣으면 얼마 안 가서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울 신동초등학교 1학년 7반에서는 ‘좋은 말과 나쁜 말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에 대해 양파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한쪽 유리컵에는 ‘좋아’, ‘사랑해’라는 말을 붙이고 양파를 넣어 놓고 다른 유리컵에는 ‘미워’, ‘바보’라는 말을 붙여서 양파를 넣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애들이 양파를 볼 때마다 유리컵에 적힌 대로 한쪽은 “사랑해” “좋아” 다른 것은 “미워” “바보”라고 말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에 “좋아” “사랑해”라는 말을 쓴 양파는 파란 싹이 트고 물도 깨끗했으나 “미워” “바보”라고 쓴 양파는 물이 썩고 고약한 냄새가 나고 싹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말이 우리 환경에 그만큼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실험 결과를 보며 1학년 7반 어린이들은 “우리들에게도 힘을 줄 수 있는 좋은 말을 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보고 “너는 잘해. 훌륭해. 기대가 된다”라고 말하면 그런 말들이 그들에게 굉장한 생명력을 갖다 줍니다. 그러나 “네까짓 게 뭘 하겠어? 너는 아버지를 닮아서 아무것도 안 되겠다”라는 말을 들은 어린아이는 완전히 좌절하고 절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특별한 사람이야. 너는 훌륭해. 나는 너를 믿어” 이렇게 격려해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가진 특기를 발견해 칭찬하고 격려하고 개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자랄 때에는 자녀들이 완전히 버림받은 상태였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 먹고 살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자식들은 그냥 거추장스러운 부속품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교육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뭘 먹고 뭘 입고 뭘 마시는가’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당시의 어린이들은 공부하려고 무섭게 애를 썼습니다. 산에서도 공부하고 들에서도 공부하면서 애를 쓰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 교육이 오늘 한국을 만든 것입니다. 만일 그때 그런 교육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런 급속한 발전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필리핀에 가보십시오. 필리핀은 기후도 좋고 국토도 좋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훨씬 못삽니다. 왜 그러느냐, 필리핀 사람들이 교육에 열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육이 있어야 발전하는데 교육에 집중하지 못했으니 발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육은 백년대계를 세우는 기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교육에 힘을 써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진흙이요 교육은 토기장이인 것입니다. 진흙인 어린아이를 훌륭한 토기로 만드는 것은 토기장이인 부모들의 몫인 것입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이 맡겨준 선물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훌륭한 토기로 만들어 세상에 내어주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다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어린이를 기르는 부모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습니다. 어린아이들을 참으로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키워서 영광스럽고 가치 있는 귀한 존재로 만들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조용기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