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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연합 (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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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연합 (시 133:1~3)


어제 훈련을 받던 군인 하나가 죽었습니다. 행군 중 탈수 증세로 쓰러졌는데 군의무대로 후송했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였는지는 모르나 불행히도 사망하였습니다. 뜬금없는 소리 같아 보이지만 저는 그 뉴스를 보면서 ‘그 훈련병이 사망한 부대가 마치 우리 교회와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난 주 제법 오래 동안 우리 교회에 출석하던 청년 하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자살을 하였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참 많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많이 죄스러웠습니다. 선한목자는 양을 알고 양의 모든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교회에 몇 년이나 출석하며 다닌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 할 만큼 힘들고 어려웠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스스로를 용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처음부터 우리 높은 뜻 교회는 메스컴의 주목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남들이 언론 플레이를 하는가 의심 할 만큼 메스컴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는 교회입니다. 예배당을 짓지 않고 강당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개척 초기부터 뉴스를 타더니 예배당을 건축하지 않고 그 돈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섬긴다고 텔레비전 9시 뉴스 시간에 보도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주 만해도 메이저급 신문에 우리 교회가 세운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새터민들을 위한 박스 공장이 거의 전면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공장을 세운지 10개월 만에 흑자를 냈다는 내용을 보도하였습니다. 불과 한 달 전 쯤에는 또 다른 메이저급 신문에서 우리 교회가 새터민들을 위하여 두 번째로 세운 메자닌 에코원이라고 하는 공장에 대한 기사가 대문 짝 만하게 나기도 했었습니다.

작년 말로 높은 뜻 숭의교회를 접고 네 교회로 분립한 것도 일종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라는 이름이 없어지게 되자 어느 기자가 저에게 높은 뜻 숭의교회는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지만 벌써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을 뿐 아니라 좋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가 매우 높아졌는데 없어지게 되어 매우 아쉽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참 기분이 좋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에서 젊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해 동안을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활동도 하던 젊은 청년이 자신의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혼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청년의 죽음을 놓고 참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이런저런 많은 사역들을 감당하는 우리 교회에도 치명적인 약점과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하여 참 깊고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군부대는 나라를 지키고 살리기 큰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군부대는 군인들을 강한 군사로 키우기 위하여 엄청난 강도의 훈련을 시킵니다. 그런데 그 부대는 나라는 지켰는데 정작 자신의 부대원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얼마든지 지키고 살려낼 수 있었을 것 같아 보이는 청년을 허무하게 떠나보내고 말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은행과 같은 교회를 표방하는 교회입니다. 한국은행이 한국은행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는 은행이 아닌 것과 같이 우리 높은 뜻 교회도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교계를 위한 교회가 되자는 것이 우리 교회가 표방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그것을 실천 하려고 애쓰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정도 그것이 성공하여 세상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리하여 탈북자와 가난한 이웃에게 아직은 작지만 희망이 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교회를 섬기고 출석하는 교인은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자취방에서 죽어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교회마다 특성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학교 같습니다.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교회는 군대 같습니다. 선교와 사역을 전투하듯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나라와 민족과 세상을 섬기는 일을 위하여 집중하는 교회입니다. 어떤 교회는 병원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일을 잘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어떤 교회는 가정과 같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구역조직이 잘 되어 교인들을 잘 돌보고 섬기는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이와 같은 교회의 특징을 골고루 잘 갖추고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모델이 되는 목회를 하신 분이 돌아가신 한경직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섬기시던 영락교회는 앞에서 이야기한 특징이 정말 골고루 잘 갖추어진 교회였습니다.

영락교회는 좋은 학교 같은 교회였습니다. 제가 영락교회를 섬길 때 부목사가 20여명 정도 되었는데 모든 부교역자는 주일날 자기 나름대로의 성경공부반을 운영해야만 했습니다. 열심있는 교인들은 주일예배를 드리기 전이나 후에 성경공부반에 들어가 공부했습니다. 아주 열심있는 교인들은 성경공부반을 주일날 하나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공부반을 여럿 선택하여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훈련과정들이 있어서 교인들을 참 잘 교육하고 훈련하는 대표적인 교회 중에 하나였습니다.

영락교회는 군대 같은 교회였습니다. 영락교회는 정말 한국은행같은 교회의 모델이었습니다. 전쟁 중에 남편을 잃고 홀로 자녀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을 위하여 모자원을 세우고 경영했습니다. 엄마와 아버지를 모두 잃은 어린이들을 위하여 보육원을 세우고 그것도 정말 최선을 다하여 섬겼습니다. 자녀들 없이 외롭게 늙어가시는 어른들을 위하여 경로원을 섬기고 그 또한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를 세워 세상을 섬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락교회가 잘 한 것 중에 하나는 군선교였습니다. 한국의 군선교는 정말 영락교회와 한경직 목사님의 공이 컸습니다. 영락교회가 건축한 군부대 교회는 아마 그 수를 다 헤아리가 어려울 것입니다. 영락교회는 정말 사역을 잘 감당하는 군대같은 교회였습니다.

교인들은 주일날 성경공부반을 하나 선택하여 들어가듯 자기가 섬길 기관을 선택하여 매월 후원금을 내었습니다. 여유가 있는 분들은 한 곳만이 여러 곳을 선택하여 매달 후원금을 내었고 정말로 여유가 있는 분들은 군부대에 교회를 단독으로 세울 만큼의 헌신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 수가 상당히 많았었습니다.

영락교회는 가정과 같은 교회였습니다. 영락교회는 구역조직이 아주 잘 된 교회였습니다. 영락교회의 구역장과 권찰은 어느 교회의 목회자들보다도 더 목회적이었습니다. 자기 구역을 정말 얼마나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지 몰랐습니다. 때문에 수 만 명이나 되는 교회였지만 교인들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돌보고 섬길 수 있는 아주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친정이 멀리 있는 새댁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친정엄마보다 구역장에게 더 먼저 연락하고 문의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어려운 일을 격으면서 ‘과연 우리 높은뜻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하는 자문을 해 보았습니다. 나름대로의 우리 교회의 장점은 무엇이고 우리 교회의 약점과 단점을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직 장점은 완성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구태여 말하자면 우리 교회도 사역에 보다 집중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단을 세우고, 빈민들의 자활에 관심을 가지고 새터민들을 위하여 공장도 세우고 제법 많은 사역을 후원하고 지원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단점과 약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 우리 교회가 가정과 같은 교회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는 아니지만 정말 대형교회와 같이 수 만 명이 모이는 교회도 아닌데 교인들 하나하나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하고 섬기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행군이 힘들어서 쓰러지는 약한 군인을 제대로 살피고 도와주지 못해 죽어가게 한 부대와 같은 교회입니다.

여러해 전 남서울 교회라는 교회의 교사세미나에 강사로 간적이 있었습니다. 홍정길 목사님이 교회를 섬기실 때였습니다. 당시 홍목사님이 섬기시던 남서울 교회는 전형적인 군대같은 교회였습니다. 예산의 60여%를 밖을 위하여 쓰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극도로 절제하며 사시던 교회였습니다. 교사세미나에 참여하여 교육을 담당하시는 교역자와 장로님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남서울 교회의 교육부 예산이 일 년에 천 만 원 정도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흥분하여 강의 시간에 남서울 교회의 아이들은 독립군 아이들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교회가 밖을 섬기느라고 정작 중요한 교회 안의 어린 아이들을 독립군 아이들처럼 방치하고 있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는데 이 말이 아주 자극적이었는지 두고두고 회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 교회 안에 비극적인 사건을 보면서 우리 높은 뜻 교회의 교인들도 독립군 자녀와 같구나 하는 반성을 스스로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교회가 집중하고 추구하는 일들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방향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래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잘 하고 있는 일들은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열심히 더 잘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추가해야만 합니다. 한국은행과 같은 교회가 지나쳐서 교인들을 독립군 자녀들과 같이 방치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번 기회에 높은 뜻 모든 교회가 구역조직을 강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중요한 역할과 사명 중에 하나는 성도의 교통과 교제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 중에 그래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와 같은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 성도의 교제와 교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중히 여기고 열심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 중에 상당 수는 그냥 주일 예배 한 번만 나오는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조직이나 구역에 속하지 못하고 교회의 돌봄과 살핌을 받지 못하는 사각 지대의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높은뜻 교회를 섬기시는 교역자들은 순조직을 강화하고 교인들을 분석하고 조사하여 어느 순과 조직에도 들지 못하고 교회를 겉도는 교인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있고 교인들이 요청이 있을 때만 심방을 하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정기적으로 돌아보고 살피고 섬기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잠언 27장 23절에 보면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경기도 곤지암에 있는 어느 골프장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회원권 가격이 가장 높은 클럽 중에 하나인데 그 골프 클럽의 직원들과 캐디들은 회원들의 사진을 보고 얼굴과 이름을 외워야만 한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험까지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클럽의 회원들이 골프를 치러 나가면 모든 직원들이 그를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늘 집에서 간단한 음료수와 간식을 파는 여직원들까지도 그런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교회는 좋은 골프장만도 못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우리 교회 목회자들은 그 골프장 직원만 못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교회가 병원같이 교인들을 보살피기만 하고 위로하고 섬기기만 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교인들이 약해빠진 환자처럼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저는 교인들이 군인같기를 바랬습니다. 이왕이면 특전대 군인과 같이 강한 군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물론 거기에도 장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을 특전대처럼 강하게 훈련시키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병들고 약하고 지친 교인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치료해주고 격려해 주는 좋은 병원 같은 교회가 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높은 뜻 교회를 정말 한국은행과 같은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더욱 더 노력하고 힘쓰는 교회가 되십시다. 여러분들도 힘들지만 완전군장을 하고 20km, 40km 행군을 하는 것과 같은 강한 훈련을 받아 강한 군인과 같은 교인들이 되십시다. 그러나 동시에 약한 교인들을 치료해 주는 병원과 같은 교회 지치고 낙심한 교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회복케 해 주는 가정과 같은 교회가 되도록 하십시다. 초대교회와 같이 함께 모이기를 힘쓰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떡을 떼는 아름다운 천국의 공동체를 만드십시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교회를 만드십시다. 그래서 병들고 지친 사람들이 와서 쉬고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십시다.

그리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일 예배에만 참석하는 교우들이 되지 마시고 순이나 어떤 조직에 참여하여 좋은 성도의 교제를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외톨이가 되지 마십시다. 숨어서 부담 없이 교회 생활을 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십시다. 그리고 교회 안에 어떤 모임이나 순에서는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살피는 일만 하십시다.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다.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다. 쓸데없는 논쟁을 피하십시다. 교인들끼리 서로 좋은 친구가 되고, 서로 좋은 가족이 되실 수 있도록 하십시다. 그런 면에서도 으뜸이 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면 노력하십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하나님은 우리 높은 뜻 모든 교회들이 다 시편 133편과 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 형제가 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형제의 사랑으로 연합하고 동거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랑과 연합으로 말미암아 외롭고 지치고 상처받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설교를 높은 뜻 교회를 섬기시는 모든 목회자들과 중직자들이 저를 포함하여 유념해서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듣기만 하지 말고 이 설교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대안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상의 그 어떤 교회보다 가정적이고 따뜻한 교회가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행군 중에 낙오하는 일이 있더라도 적절하고도 따뜻한 보살핌이 있어서 실족하는 일이 없는 좋은 병원 같은 교회, 좋은 가정과 같은 교회를 만들어 주시기를 주님의 마음으로 부탁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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