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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나와 함께 춤추시는 분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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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춤추시는 분 (시 23:1~6)


무심코 한 부모의 말에 자녀들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어린 자녀가 몹시 사랑스러울 때 우리는 이런 표현을 합니다. 
“얘는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아.”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일지라도 어떻게 눈에 넣어서 아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과장된 말에서 어린 자녀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면서도 지나치며 하신 말들이 오늘까지 마음에 아프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님의 말씀임에도 자녀들에게는 아픔과 상처로 남는 말들이 있습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너 때문에 창피해 죽겠다.” 
“너 때문에 아주 내가 미칠 것 같아.” 
“너는 왜 그렇게 하는 짓이 네 아빠(네 엄마)를 꼭 닮았냐?” 
“너도 좀 커서 너 닮은 애를 낳아봐. 그러면 그때 내 심정을 알겠지.” 
“네가 하는 일이 도대체 다 그렇지 뭐.” 
“너는 네 형(아우)처럼 그렇게 못하냐?” 

이런 말들은 일상에서 자녀들이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 부모들이 쉽게 하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이 말들은 자녀들에게 큰 상처를 줍니다. 이 말들이 특별히 의미가 있다거나 의도가 담긴 말은 아닙니다. 그냥 감정에 따라 무심결에 나오는 걱정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자녀들은 낙심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서 자기를 무시하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감정 소통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감정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감정의 소통이 잘 되지 않으면 큰 어려움의 빠집니다. 자녀나 부모가 나쁘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의 감정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서 가정에 불화가 생기거나 상처로 남는 일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할 수가 있습니다. 
불화와 소통의 문제는 각자의 어린 시절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감정은 성장한 후에도 영향을 줍니다. 최근에 나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었던 감정은 무엇입니까? 감정과 연관하여 ‘도로시 로 놀테(Dorothy Law Nolte)’ 라는 사람이 ‘'아이들은 생활에서 배운다’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꾸지람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비난하는 것을 배우고
미움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싸움을 배우고
두려움 속에 자란 아이들은 근심을 배우고
동정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기 연민을 배우고
놀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수줍음을 배우고
질투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시기를 배우고
부끄러워하며 자란 아이들은 죄책감을 배우고
칭찬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감을 배우고
너그러움 속에 자란 아이들은 인내심을 배우고
격려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고마워하는 것을 배우고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고
관심 속에 자란 아이들은 자긍심을 배우고
인정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목표 세우는 것을 배우고
함께 나누며 자란 아이들은 관대함을 배우고
정직함속에 자란 아이들은 진실한 삶을 배우고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정의를 배우고
친절한 속에 자란 아이들은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편안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다정함 속에 자란 아이들은 이 세상이 살기 좋은 곳임을 배운다.

이 글은 감정은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너그럽지 못한 것, 친절하지 못한 것, 남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못한 것은 우리 부모로부터 존중과 사랑을 받지 못했던 까닭입니다. 오늘 내가 겪고 있는 감정적인 어려움은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가슴으로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아마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외운 친숙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편을 많이 읽고 묵상하면서도 이 노래를 하는 사람의 마음에 자주 귀를 기울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다윗이 노래하는 순간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만일 우리가 이 시편 23편의 노래를 직접 부른다면 어떤 마음이 어울릴까요?
프랑스의 수학자면서 철학자였던 파스칼은 “가슴은 머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머리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분석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파스칼의 말처럼 가슴은 머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가슴은 이미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머리’에 해당하는 것들이 중요합니다. IQ, 정보, 소유와 같은 것들은 세상의 지식과 사물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머리보다 가슴이 더 중요합니다. 신앙이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고백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머리’로 음식을 먹듯이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가슴’으로 받아들여 고백해야 그 속에서 신앙이 꽃피기 시작합니다. 가슴까지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신앙이 살아나고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삶을 움직이고 이끌어 가게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과 더불어 있기에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시편 23편은 어떻게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을까요? 본문에는 시인은 하나님을 목자로, 나 자신을 양으로 비유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는 나를 아들과 딸처럼 여기시며 동행하자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볼 수가 있습니다. 목자이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아실뿐만 아니라 이 상황 속에서 나의 감정과 느낌, 애틋한 마음까지도 아시고 다가오십니다. 

시편 23편은 특히 1인칭으로 ‘나’의 고백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온전히 묵상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을 고백하고 노래한다는 마음으로 공동번역본으로 묵상해봅시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 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한 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공동번역의 ‘야훼’ 라는 명칭은 여호와와 같은 단어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시편 23:1)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아쉬울 것이 없다는 말은 다윗의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시편 23편에서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편안하다.” 
“만족하고 있다.” 
“친밀하다.” 
“행복하다.” 
“충만하다.” 
“푸근하다.” 
“활기차다.” 
“정겹다.” 
“넉넉하다.”
“당당하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힘 있게 만드는 모든 정서적인 충만함이 시편 23편에 가득 차 있습니다. 시편 23편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하나님과 더불어 있기에 당당함과 만족감을 누리고 있습니다. 행복한 그리스도인, 만족하는 그리스도인, 기뻐하는 그리스도인, 평안으로 가득 찬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신앙이란 주님과 함께 춤추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영상적인 이미지로 바꾼다면 어떨까요? 푸르게 펼쳐진 언덕 위에 사랑하는 아버지와 내가 한가로이 앉아서 때로는 누워서, 평화로움을 누리는 장면입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벌여 놓으신 풍요로운 음식과 향기로운 축배가 있습니다. 상쾌한 바람이 나의 노래를 실어 나르고, 하나님은 나의 노래에 응답해주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이 아름다운 성경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는데,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이 오직 둘 뿐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나’ 단 둘이서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만을 위해 식탁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잔이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큰 기쁨이 나의 마음속에 솟구쳐 온몸을 휘감습니다. 이제 이 시인은 용기와 담대한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신앙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오늘 본문과 연관해볼 때 신앙이란 주님과 함께 춤추는 것입니다. 시인은 일생동안 주님과 함께 춤추기를 원합니다. 예배드리는 시간만큼은 주님과 함께 뛰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푸른 초장에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춤추자고 요청하십니다. 

“얘야, 내 손을 붙잡아라. 나와 함께 춤추자.” 

우리가 주님의 이 부르심에 응답하며 주님과 어우러져 춤추는 것이 신앙입니다. 다윗은 주님과 춤추는 기쁨을 경험하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나를 괴롭히던 모든 슬픔과 분노, 인생의 많은 아픔과 결핍들이 주님과 함께함으로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정신적인 갈증도 해결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육체적인 부족함과 갈증까지도 채워주십니다. 

시인은 고난과 슬픔을 넘어선 만족을 표현합니다. 
다윗은 고난과 슬픔이 없었기 때문에 춤출 수 있었을까요? 그에게는 허전하고 참담한 슬픔이 없었을까요? 자포자기의 위기가 없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풍요롭고 충만한 삶만을 살았던 인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에게 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기쁨이 충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성경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23:4) 

그에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었고, 원수도 있었습니다. 대적자들과 조롱하는 자들과 핍박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한 가운데에서 시인은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슬퍼서 울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스스로 ‘사망이라고 하는 어둠의 골자기’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절망스러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기쁨과 만족과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시인의 평안은 슬픔을 넘어선 기쁨입니다. 절망을 꿰뚫고 난 행복감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시인은 어린아이가 부모가 옆에 있기만 해도 만족하는 자녀된 기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춤추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처럼 자녀들을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놀라운 은총을 부모된 우리가 자녀들에게 얼마나 보여주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어린 시절에 자녀들을 격려하고 북돋아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더 자신감에 차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어린 자녀, 사춘기 시절을 보내는 자녀, 대학생, 청년 그리고 결혼한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나누어 주십시오. 자녀들과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리고 자녀들을 가슴으로 껴안아 주며 말해주십시오. 

“네가 내 아들이여서 참 고맙다.” 
“네가 내 딸이어서 참 감사하다.”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한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짧게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귀한 자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마음껏 쓰시는 귀한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자녀를 낳고 나서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녀된 우리를 부둥켜안고 함께 춤추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자녀들을 감싸 안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처럼 우리의 자녀들과도 더불어 춤추기를 기도하는 하나님의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주님의 아들과 딸로 껴안으시고 함께 놀며 춤추시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주님만으로 만족합니다. 부모된 우리도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격려하고 사랑하여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녀들로 양육하게 하옵소서. 우리와 자녀들이 일생을 주님과 더불어 춤추며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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