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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하나님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쳐라 (신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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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쳐라 (신 6:1~9)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간단히 편집된 동영상을 보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 편집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영상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아이가 24개월- 2살 될 때까지는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가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36개월이 되기까지는 규율과 통제를 배워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규율을 가지고 있고, 통제를 받을 때에는 사람이 되지만, 규율이 없다, 통제가 없다면 동물적인 사람이 되고, 자기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일관성을 가지고 말씀으로 훈육해야 하고, 교훈해야 합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날이 되면 어린이날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얼마나 싱그럽고, 활기찬 노래인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1절)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2절)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얼마나 좋습니까? 

10대의 두 아이가 그리스의 장터를 배회하고 있는 한 지혜로운 철학자를 골려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한 소년이 손에 작은 새를 쥐고 노인이 볼 수 없도록 뒤로 감췄습니다. 그는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아테네의 현인이시여, 내 손에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 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말해보시겠습니까?”  노인이 만일에 “죽었다”고 말하면 손을 펴고 새가 날아가게 하여 노인의 잘못을 증명해보일 것입니다.  한편 노인이 “살았다”고 말한다면 그 소년은 그 새를 꽉 쥐어 죽은 새를 보여줄 것이었습니다.  군중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대결을 보려고 모여들었습니다. 노인은 소년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는 알지 못하오. 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소.    그 생명은 당신의 손에 달렸소”   이 얼마나 무서운 책임입니까?  저 피어오르는 적은 아이의 생명에 대하여 살고 죽는 책임이 어머니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일찍부터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고 보니, 나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나쁜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웠습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지도하여 주었던 많은 주일학교의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릴 뿐입니다.  여름 성경학교가 되면 땀 흘리면서 수고하셨던 선생님들, 아동부, 중고등부 담당전도사님들도 정말 귀하신 분들이었습니다.   학교의 선생님만 저에게 소중한 분들이 아니라, 교회의 전도사님들이 정말 좋은 영향을 주신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저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가정에서 먼저 좋은 아들이 되고, 좋은 형제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성장하여 장가들면서 좋은 남편이 되려고 애를 썼으며,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였고, 좋은 이웃이 되려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 좋은 교인이 되고, 좋은 목사가 되고, 모든 일에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힘을 썼습니다. 이것도 저를 지도해주신 목사님들의 좋은 영향을 받은 때문입니다.   저에게 세례를 주시고, 말씀으로 지도해주셨던 목사님은 정말 신사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목사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음성도 닮고 싶을 정도로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내 친구의 아버지였는데, 우리는 목사님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렇게도 좋으신 성품에, 사랑이 많으셨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교회에 가면 목사님 말씀을 잘 듣고,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끝까지 다르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의 말을 들어야 빨리 회복될 수 있습니다. 속담에 “의사의 충고를 따르면 의사에게 돈을 낼 필요가 없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를 조명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자화상을 말하면서 ‘바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내가 제일 바보 같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생각해도 정말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는 “머리로 사랑하지 않고 가슴으로 사랑하신 분”이셨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도 머리로 살지 않고, 가슴으로 살기로 하였습니다.  머리로 살지 말고, 가슴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길입니다.  

5월이 되면, 가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집에도 정말 귀여운 어린 외손자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은 제가 그 애들을 정말 사랑하는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인 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을 알게 되면, 일생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어린 것들은 사랑을 먹고 자라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어린이집에 오는 어린이, 선교원에 오는 유치원생들을 사랑합니다.  어떤 아이가 교회에 오거나, 어린이 집에 올 때에 만나게 되면, 그냥 못 본 척 하지 않고, 먼저 인사해주고, 알아주고, 칭찬해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화장실 앞에서 만날 때에도 먼저 인사해주고 칭찬해주고, 예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꿈과 희망을 안고 성장하는 청소년들, 다음세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참 발랄하게 거리를 활보하며, 학교로 도서관으로, 학원을 달리는 청소년들을 생각합니다.  나는 한 사람의 목사로서 그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 큰 영향력은 없지만 좋은 목사로 좋은 할아버지로 비쳐졌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보아도 웃어주고, 격려해주고 지나갑니다. 

저는 유대인의 역사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유대인이라는 말만 들어가 있으면 많은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마빈 토케어 박사가 탈무드를 발췌한 것을 보았습니다.  마빈 토게이어 박사는 미국계 유대인으로, 현재 일본의 유대교단의 랍비로 있습니다.  그가 쓴 글에 “허리를 구부려 진리를 주워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는 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경건주의 하시디즘의 창시자인 이스라엘의 벤 엘리젤이라는 랍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선생님, 진리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면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갈처럼 흔해빠진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주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줍지를 않는 것입니까?”  그러자 벤 엘리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리라는 돌맹이를 줍기 위해선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진리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벤 엘리젤이란 랍비는 1만 명의 제자를 거느린 랍비로, 가장 영광된 랍비라는 칭호인 “바알 셈 토푸”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진리를 주을 수는 없습니다. 겸비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진리를 주워 담을 수 있습니다. 

마빈 토케이어의 글에는 “지식보다는 지혜를”라는 글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내려오는 말 중에 “여행 도중에 고향의 마을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 같은 책을 보았다면 반드시 그 책을 사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일 생활이 너무 빈곤하여 물건을 팔아야만 될 경우라면 먼저 금, 보석, 집, 토지 순으로 팔아라.  최후까지 팔아서는 안 될 것은 책이다.”  

“책을 당신의 벗으로 삼고 책꽂이를 당신의 뜰로 삼아라.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즐기고, 열매를 따 먹으며, 꽃을 즐기도록 하여라.”고 했습니다.   지식의 상징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가정에는 침대의 발쪽에 책꽂이를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항상  머리 쪽에다 놓아두어야 한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식만을 얻기 위하여 노력한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지식보다는 지혜를 더 중요시 하였습니다.  지식은 아무리 많이 모우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많은 지식이 좋은 목적에 사용되어지지 않으면 도리어 해가 될 것입니다.  지식이란 지혜를 닦기 위하여 몸에 지니는 것입니다.  무엇을 익힌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생각하기 위한 기초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도 유대인의 어머니 못지않게 자식들을 잘 키우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다 깨우치고 영어를 공부시키고, 한문을 공부시키고, 태권도를 보내고 정말 극성스럽게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학교 공부에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육이 곧 힘이요, 교육만이 사람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지식을 심어주기 위하여 노력하는데, 그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6:4-5에는 정말 귀중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본문은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들으라 이스라엘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이 “쉐마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쉐마”라는 말은 “너는 들으라”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듣다는 말은 “샤마”입니다.  쉐마라는 말은 명령형으로 “너는 들으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늘의 본문 말씀 신명기6:4-9의 말씀을 “쉐마”라고 하여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억하고 암송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것은 어려서부터 영혼에 심겨져야 합니다.  사람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데, 아무리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화려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신명기6:4-5의 말씀은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손목에 매고 기도하였고, 이마에 붙이고 암송하였고, 문설주에 이 말씀을 붙여놓고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그 말씀을 암송하였습니다.   그들은 항상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여호와라고 말하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라고 설교해야 하는 주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린이들을 만져주시고 축복해주시기를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는 말을 듣고,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을 따라 온 것입니다.  아이들이 와서 조용히 있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렇게 조용히 있지 않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꾸짖었습니다.  멀리 가서 놀라고 했든지, 조용히 하지 않으면 혼내준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주님이 그런 제자들을 보시면서 진노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10:14-15)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그들의 머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사실 부형들은 혹시라도 예수님이 자기 아이들을 만져 주실까 하고 데려왔는데,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머리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고, 어린이들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당시에 어린 아이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너무나 노엽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정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주시면서 아비들에게 권면하셨습니다. 엡6:4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습니다.  

잠언22:6절의 말씀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말씀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가르침을 수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 시절입니다.  그 때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잘 배우려고 하고 가르침을 가슴에 담아두려고 합니다. 

유명한 심리학자로서 행동주의 이론을 제창한 B. F 스키너박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체벌은 사회의 원대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목적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데 그다지 이롭지 못한 방식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책망하지 말고, 격려하고 칭찬만하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체벌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인생을 오래 살고 보면서 사람이 진정 사람이 되려면 적당한 책망과 질책이 따라야 한다고 자기의 이론을 수정하였습니다.    그저 칭찬해주고, 매를 들지 말라고 하였던 자기의 교육이론이 사람을 망쳤다고 잘못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좋은 성품과 좋은 인격의 사람이 되려고 하면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6:6-9에 보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집에 앉아 있을 때, 길을 갈 때, 누워 있을 때, 일어날 때라고 하면 우리의 전 삶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늙어도 그 말씀에서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과잉보호하지 말고, 독립심을 길러주고, 자신이 할 일은 자신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져서 일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유대인의 격언에는 “사람은 누구나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가 나이를 먹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른 살을 먹은 아이, 마흔 살을 먹은 아이, 예순 살을 먹은 아이, 조금은 어색한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아이들입니다.  아이가 나이를 먹은 것뿐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을 갑니다.  어렸을 때에 형성된 인격이 그의 인생을 결정하게 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잠언1:7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잠9:10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쉐마를 들으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은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다하는 것은 남겨놓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마라토너가 골인 지점에 돌아와서 운동장을 한 바퀴 정도 더 뛰어다니는 것은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마음이란 지, 정, 의를 포함하는 인간의 내적인 본질을 말합니다.  뜻을 다하라는 말씀은 성품, 생명, 영혼, 호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을 다하라는 말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으로 모든 능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힘을 다하는 것은 “너의 모든 돈을 가지고 - With all your money”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돈이 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물질을 벌어 모아 하나님 사랑하는데 다 바쳐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5)고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은 파종의 시기입니다. 사랑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승리하기 원하면, 어린 아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어린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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