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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이 양육이 곧 신앙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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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양육이 곧 신앙 (엡 6:4)


고전에 속하는 부자 시리즈 중에 하나가 목욕탕 시리즈입니다. 뜨거운 물에 먼저 들어간 아버지가“어어 시원하다. 어서 들어와”하면 그 말만 믿고 뜨거운 물에 들어 선 아들이 놀라서 튀어 나오면서 하는 말이“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몇 년 뒤에 똑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어 시원하네. 너도 들어와라”하는 아버지의 말에 발을 디밀었다가 화들짝 놀라 튀어 나오면서 하는 말이“그놈,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네!”하더랍니다. 왜 이런 시리즈가 유행되는지 생각해 보면 역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반영이라고 여겨집니다. 부모와 지식의 관계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대화를 통하여 일그러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깊이 생각해 봐야합니다.

현대인의 삶에서 죄라고 할 만큼 잘못된 것들이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그 첫째가 공부하지 않는 죄가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학력 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물질문명의 편리한 것들이 생활을 이끌어 주기 때문에 굳이 깊이 공부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알고 싶은 정보라는 것도 컴퓨터를 뒤지면 인터넷을 통해서 금방수집이 됩니다. 그러다보니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인간의 가치를 물어보고 땀 흘리며 수고하는 가운데 지혜를 얻는 그런 공부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실천하지 않는 죄입니다. 아는 것은 있는데 그 아는 만큼 행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득이 하다는 말로, 혹은 약한 인간이라는 변명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지식을 그대로 생활에 옮기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말은 많고, 비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데 비하여 행하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 이것이 죄라고 할 만큼 문제입니다. 

세 번째는 가르치지 않는 것이 큰 죄라고 합니다. 남은 물론이거니와 자기자식들에게도 가르치지 않아서 세상을 이기주의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됩니다. 상식이든, 교양이든, 특별히 신앙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선하게 살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알아서 하겠지 하고 마냥 내버려두는 것은 악하게 살아가도록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 믿음이 좋은 가정일수록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을 잘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독교 교육의 근본은 과연 무엇일까요? 과연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에 대하여 오늘 성경본문이 명쾌하게 답하고 있습니다.“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말씀이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한절입니다만 이 짧은 말씀에 아주 중요한 교육의 지침이 들어 있습니다. 무심히 지나지 말고 가르침에 있어서“무엇을?”.“어떻게?”라는 구체적인 교육방식이 이 말씀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봅시다. 무엇을 가르치라는 것입니까? 주의 교훈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르치라고 합니까? 훈계로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단순한 가르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양육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르친다는 것과 양육한다는 말은 그 의미에 있어서 좀 다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식을 전달하고 나면 끝입니다. 그가 배운 것을 어떻게 사용하든, 그 배움으로 무엇을 하느냐까지는 책임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육이라는 말은 가르친 후에 그가 그 배운 것을 삶에 어떻게 적용해 나가는지 까지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즉 그의 전인격적인 부분까지를 세밀히 살피고 도와주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양육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가르친다는 말보다 양육한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책임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마디 툭 던지는 정도의 교육이 아니라 그의 삶을 돌봐 주며 하시라도 바르게 자라도록 관심을 놓지 않는 그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양육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데 실제적으로 양육이라는 것은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경험만으로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 우리의 경험, 우리의 지식으로 얼마만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금방 끝나버립니다. 양육이라는 데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잘 보살펴 자라게 한다는 계속적인 의미가 있는데 아무리 우리의 자식이지만 우리가 잘 보살피려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부모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식을 잘 보살피려고 하지만 그 사랑만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교훈으로 가르치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먹이는 일이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밖에 하실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라게 하실 텐데 그 전에 우리에게 부탁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이 말하자면 먹이는 일입니다. 한 인격이 온전히 형성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먹이는 일, 가르치는 일이 우리의 할 일이요, 자라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먹이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아무리 줘도 받아먹는 데는 각각입니다. 그래서 고민이요, 힘든 겁니다. 아이들이 각각 다릅니다. 아무리 형제요, 심지어 쌍둥이라도 생긴 것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릅니다. 하지만 부모 된 도리로써 반드시는 먹이는 일, 즉 가르치는 일은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포기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출생 순위에 따라서 그 성격이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어 흥미롭습니다. 출생서열, 즉 맏이나 막내냐에 따라서 성격이 좌우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의[프랭크 셀러웨이]연구원은 성별, 인종, 민족, 계급보다 출생순서가 성격형성에 더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담은<태생적 반항>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에 따르면 맏이는 대체적으로 부모의 권력이나 권위와 동일시하며 독단적이고 지배적인 성향을 보이는 반면 둘째나 셋째는 체제와 권위에 맞서는 혁명적 성격으로 흐르기 쉽고 그 확률은 맏이보다 최고 열다섯 배까지 높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격형성의 배경에 부모의 사랑을 두고 벌이는 경쟁에 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둘째나 셋째 등은 약세로 출발하기 때문에 서열이라는 체제에 이의를 품고 자연히 혁명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대체로 맏이들은 포용력이 강한반면 둘째나 셋째로 갈수록 참지 못하고 괴팍스러운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모든 것이 다르지만 자식이기에 우리는 가르쳐야 하고 먹여야합니다. 

자, 그럼 보겠습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먹이라는 것입니까? 주의 교훈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주님의 말씀 혹은 주님에 관한 말씀이 교훈입니다. 내 지식, 내 지혜, 내 마음, 내 경험에서 나오는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근거로 가르치고 먹여야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52절에는 기독교 교육의 기본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말씀입니다. 키가 자라는 것은<체육>입니다. 지혜가 자라는 것은<지육>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워 가는 것은<신앙>입니다.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는 것은<도덕>입니다. 이런 네 가지 측면으로 우리는 자녀들을 가르치고 먹여야 합니다. 

<체육>적인 면을 생각해 봅시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육체적인 것은 중요합니다.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영양을 공급해야 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영향이 될 수 있도록 잘 먹여야 건강합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가 아니라 먹어야 할 것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 육체에 해로운 것, 이로운 것을 잘 선별하여 먹이는 것이 곧 교육이요, 양육입니다. 

<지육>적인 면을 생각해 봅시다. 육체적으로 먹이는 것 못지않게 정신적으로는 많은 지식을 주어야 됩니다. 들어야 될 것은 듣게 하고, 보아야 할 것은 보게 하고, 경험해야할 것은 다각도로 경험하도록 해서 지능이 발달하게 해야 합니다. 반대로 듣지 말아야 할 것은 듣지 않게 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게 하며,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은 자제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야합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수다스러운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아이의 I.Q.가 높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마가 자꾸 말을 하니까 아이의 생각도 많아져서 뇌가 발달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깁니다. 어쨌든 아이들을 유익한 것에는 많이 듣게 하고 보게 하고 경험하게 하고 무익한 것에는 둔감하게 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면을 생각해야합니다. 가장 우선적인 종교적인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부모로서 신앙적인 경건을 보여 줘야 되고 영적인 기도를 가르쳐야 됩니다.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혼자서도 기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도덕>적인 면은 어떻습니까? 사실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사랑스러워지는 정도라면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인정받게 됩니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신앙적인 면은 괜찮은데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봅니다. 가르침에 있어서 도덕적인 면을 너무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과 인격이 균형을 이루도록 잘 가르치고 교육하는 책임이 부모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교훈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께서 자라 가셨던 모습보다 더 훌륭한 교훈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교육의 가장 기본을 눅2장 52의 말씀에서 찾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들의 자녀들을 이렇게 가르치고 먹일 때에 하나님께서 길러주실 것입니다. 

자. 그럼 어떻게 교육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훈계로”하라고 하십니다. 훈계라는 말을 사전에 보면“타일러서 잘못이 없도록 주의를 주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훈계로 하라는 말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이 말은 가르침의 마지막, 교육의 마지막은 반드시 잘못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육의 결말은 잘못되지 않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 말입니다. 가르치면서 잘못되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 배워서 나쁜데 써먹으라고 하는 부모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어려운 것입니까? 그 마지막은 우리가 알지 못할뿐더러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키워가시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양질의 것들을 먹을 수 있도록 하고 하나님이 양육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낳는 것에도 고통은 따르지만 그래도 그것은 어떻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간다고 하는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젭니다. 긴 노력과 수고와 희생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욕심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마지막이 잘못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신앙의 길입니다. 믿음이 그 생의 마지막까지를 책임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앙으로 교육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시렵니까? 부모 된 우리가 먼저 선행의 본을 보여주고, 진실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봉사를 보여주고, 특별히 섬기는 본을 보여줘야 합니다. 섬기는 생활 속에서 기뻐하는 그런 생활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때 이것이 곧 교육이 되는 것이요, 자녀들이 이 모습을 닮아가는 속에 양육되어져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먹고사는 것이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삽니다.“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자녀의 양육이 곧 부모 된 우리의 신앙을 나타낸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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