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진정한 행복 (행 18:1~4)

  • 잡초 잡초
  • 323
  • 0

첨부 1


진정한 행복 (행 18:1~4)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막상 행복한 사람을 찾아보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어느 기관에서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대상은 재벌급 부자 100명과 박사급 지식인 100명이었습니다. 질문 내용 중 하나는 “당신은 진짜 행복합니까?”였습니다. 과연 몇 프로가 그렇다고 응답했을까요? 한번 알아맞혀 보십시오. 겨우 13%에 불과했습니다. 무려 87%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다시 말하면 불행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여러분, 이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아닙니까?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나 정말 이상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게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허상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어떤 사람이 행복하다고 합니까? 소유가 많으면, 성공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생각이 맞는다면 행복은 재산 순(順), 지위 순(順), 성공 순(順)이겠죠.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대로 되질 않습니다. 순서가 마구 뒤바뀝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허상’을 갖고 있습니다. 진짜 행복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허상을 따라다니다 보니까, 많은 소유를 갖고도 세상에서 성공을 하고도 행복하지 못한 겁니다. 
그러므로 진짜 행복하려면 먼저 행복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본문을 보니까, 그 그림이 나옵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위대한 사도로 당연히 우리가 따를 모델이지만 어쩐지 멀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 반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우리와 별 차이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이 시간 그들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지극히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 가운데서 가장 이상적인 부부, 진짜 행복한 부부상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도 진짜 행복한 인생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 평범하지만 진짜 행복한 인생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얼마나 평범한 인생이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행복한 인생이었는지 본문을 읽어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3절을 보면 그들의 프로필이 나옵니다.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 ” 사도 바울이 아덴(=아테네)에서 선교여행을 마치고 고린도로 갔습니다. 고린도는 항구도시로 인구도 많고 상업이 발달된 도시였습니다. 거기서 아굴라를 만납니다. 아굴라는 본도라는 도시 출신인데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브리스길라였는데, 브리스길라라는 이름은 ‘브리스가’의 애칭으로 성경에 두 이름이 혼용됩니다. 브리스가는 로마 귀족 가문의 이름입니다. 추측건대 브리스길라가 본래 로마 귀족 출신인데, 아굴라와 결혼하기 전후해서 예수님을 믿고 크리스천이 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본래 로마에 살고 있었죠. 그런데 당시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가 유대인 추방령(A.D. 49~50)을 내려 부득이 고린도로 이주해 왔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자리 잡고 사업하던 사람이 권리금도 받지 못한 채 빈털터리로 갑자기 쫓겨나게 된 셈입니다.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아굴라는 천막제조업자였습니다. 염소 털이나 가죽으로 텐트를 만드는 사업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염소털과 가죽으로 텐트를 만드는 사업이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바울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본래 율법학자였지만 텐트 제조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1인1기를 가르쳐 어떤 상황에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시킵니다. 바울은 당시 선교사였지만 파송교회의 경제적 후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선교지 교회들은 약해서 후원을 기대할 수 없었으므로 생활을 위해 부득이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된 겁니다. 신앙도 같고 사업도 같아 의기투합한 그들은 사업도 선교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후 그들과 바울이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되었는데, 바울은 항상 그들을 그리워합니다. 특별히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순교를 앞둔 시기에 기록한 디모데후서를 보면 그들을 그리워하며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딤후4: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숨질 때까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인정하고 사랑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그랬을 겁니다. 

이처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진짜 행복한 인생이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생의 고난도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선교하고 ... 평범한 것 같지만 이런 게 바로 진짜 행복하고 존귀한 인생인 것입니다. 

[2] 진짜 행복의 3요소 : 생명, 사랑, 사명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3가지가 있었습니다. 생명, 사랑, 그리고 사명입니다. 이 3가지가 바로 진짜 행복의 3요소입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이 행복으로 여기는 것과 다르죠. 그들이 진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보다 소유가 많아서도 아니었고, 세상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진짜 행복의 비밀을 모르고 엉뚱한 것들을 붙잡으려고 동분서주하는 겁니다. 한 마디로 헛다리짚는 것이죠.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헛다리짚지 말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행복한 인생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진짜 행복의 3요소를 하나씩 살펴보시죠. 

① 생명 :

첫 번째 요소는 생명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생명은 단순한 육신의 생명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가리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영생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생명이 없으면 정말 그렇죠. 재벌이면 무슨 소용이 있고, 대학자면 무슨 소용이 있고, 대통령이면 무슨 소용이 있고, 유명인사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생명의 문제를 제쳐두고 엉뚱한 것들을 붙잡으려고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프랑스 파리의 근교 어느 수도원 입구에 큰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런 짤막한 글이 적혀져 있습니다. “Après Cela, Après Cela, Après Cela”(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이 글귀의 유래는 이러합니다. 어느 청년이 법대에 다니며 어렵게 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졸업반이 됐는데, 너무 어렵습니다. 이제 한 학기 남았는데 도저히 학비를 조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적은 돈으로 물건을 해 갖고 집집마다 다니며 판매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집 문을 두드리니까 노인이 나왔습니다. 그분은 은퇴한 목회자였습니다. 

그 노인은 청년의 사연을 듣고 흔쾌히 돈을 건네줍니다. 너무 고마워서 인사 하고 돌아서는데 불러 세웁니다. “청년, 잠깐 나하고 얘기 좀 하지.” 그리고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제 곧 졸업을 하겠구먼.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려나?” 청년이 대답합니다. “예, 훌륭한 법률가가 되어서 저처럼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노인이 또 묻습니다. “음, 좋은 일이군. 그 다음에는?” “돈도 벌어야겠죠.” “음, 그것도 좋은 일이지. 그 다음에는 ... ?” “장가도 가야겠죠.” “음, 그것도 좋은 일이군. 그 다음에는 ... ?” 이런 식으로 질문이 계속됩니다. 나중에는 더 이상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질문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 ?” “그 다음에는 ... ?” “그 다음에는 ... ?” 당황한 청년은 결국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다음에는 죽겠죠.” 그래도 노인은 다그치듯 계속 묻습니다. “그 다음에는 ... ?” 마침내 청년은 얼굴이 시뻘개졌습니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는 게 너무 바쁘고 고달파 죽음 이후의 문제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황급히 돌아서는 청년을 향해 노인이 외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라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 천국이 있습니다. 이 세상 살 동안에도 영혼 깊숙이 솟아나는 영생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진짜 행복입니다. 이 생명을 얻기 전에는 세상의 온갖 것을 다 소유하고 성취해도 진짜 행복이 없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그늘입니다.

이와 같은 새 생명이 있으면 고난 많은 인생이지만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랬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도 예수 안의 생명을 누림으로 진짜 행복한 인생 되기를 축원합니다.

② 사랑 :

진짜 행복의 두 번째 요소는 사랑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사랑은 산소와 같은 겁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온갖 것을 소유하고 온갖 재미를 봐도 사랑이 없으면 질식해 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사랑을 추구합니다. 문제는 죄로 인해 눈 먼 인생들은 참 사랑이 아니라 사이비 사랑을 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참 사랑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요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피곤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진짜 행복이 있습니다. 

요일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여기서 사랑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아가페’(ajgavph)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심으로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만이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심지어 가까운 가족들끼리도 친구들끼리도 어떤가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이기적인 사랑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서로 위로하고 서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런 사랑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브리스길라는 로마인, 어쩌면 귀족 출신일지로 모릅니다. 그런데 로마에서 추방되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유대인 남편을 만난 게 원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과 사랑으로 극복합니다. 성경에 보면 흥미롭게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고 되어 있는 구절도 있고, 혹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고 되어 있는 구절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남편의 이름이 먼저 오는데 아마도 브리스길라가 신앙생활에 열심이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고대 시대에 남편의 배려가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의 뜨거운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참 사랑이 있으면 어떤 고난도 이기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③ 사명 :

진짜 행복의 세번째 요소는 사명입니다. 인생에는 사명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있습니다. 돈 버는 것은, 성공하는 것은 인생의 목적도 사명도 아닙니다. 그것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무엇을 위해 돈 벌고, 무엇을 위해 출세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돈만 벌지 않았습니다. 무턱대고 맹목적으로 성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3절~4절.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생활만 하고 폼만 재며 살았던 게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살면서 동업할 뿐 아니라, 선교를 위해 동역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다른 성경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롬16:3~5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 ” 바울은 나중에 그들과 떨어져 있게 되는데, 로마에 가 있는 그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나의 동역자’라고 부릅니다. 이건 대단한 말입니다. 평신도요 평범한 인생인데 사도 바울과 동역자라니!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인생입니까? 사람은 사명을 위해 살아갈 때 아름답고 존귀합니다. 이제 진짜 행복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겁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마지막 남긴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모든 사람에게, 심지어 땅 끝에 잇는 다른 민족에게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 즉 선교하는 것이 예수님이 가장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이 명령이 성경에서 주신 가장 큰 명령입니다. 그래서 지상명령(至上命令 Great Commission)이라 부릅니다.

이런 사명을 위해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행복을 전해줌으로 더 행복한 인생입니다. 

19세기 말 영국 출신 중국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크리스천은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의 부모 형제 자매, 심지어 기르고 있는 개나 고양이까지 크리스천인 당신을 통해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당신이 정말 크리스천인가 의문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장 행복하게 해 주는 방법은 복음을 전해 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선교죠. 선교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 주지만, 나도 더욱 더 행복해지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은 복음을 위해 살 때, 선교를 위해 살 때 행복해집니다. 지난 번 파키스탄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파키스탄인 데이빗 선교사의 장인(현지인 목사)이 대화 중에 제게 대뜸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Are you happy to be here in Pakistan?” 파키스탄에 와서 행복(해피)하냐 이겁니까? 날씨도 덥고, 음식도 안 맞고, 위험하다가 활보도 못하고 ... 해피하지 못한 것 같아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못 알아들은 물 알고 계속 질문합니다. 아니라고 하면 미안하고 거짓말 할 수도 없어서 망설이는데 잠시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 내 주제에 선교 일 때문에 파키스탄에 와 보지, 그게 아니면 어디 이곳에 와 보겠냐? 다시 생각해 보니 해피하네.”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Yes, I am!” 이렇게 대답했더니 좋아하면서 다시 확인 질문을 합니다. “Really?” 그래서 저도 확인 대답을 해줬습니다. “Sure!”

물론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모든 크리스천이 선교지에 나가야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참여입니다. 가든지 보내든지(Go or Send) 둘 중이 하나여야 합니다. 

선교는 단체 경기와 같아서 가는 선교와 보내는 선교가 한데 어우러져야 합니다. 가는 선교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목사나 신학을 한 선교사나 가능한 게 아닙니다. 평생을 드려야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21세기는 평신도 선교의 시대입니다. 평신도들이 선교사로 많이 나가야 합니다. 전 세계 국가 중 70~80%가 목사나 선교사 신분으로 입국이 안 됩니다. 대개 이슬람권이나 공산권인데 그런 지역은 제한지역입니다. 그래서 창의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하여 ‘창의적 접근 지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평신도들이 자신의 전문적 지식이니 기술을 갖고 선교할 경우 전문인 선교사라 부릅니다. 자신의 생활비를 스스로 조달하며 선교하는 경우에는 자비량 선교사라 부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만 아니라 요즘에는 시니어 세대가 은퇴 후 선교사로 나가는 경우 시니어 선교사라 부릅니다. 

수년 전 중국의 모처에서 만난 젊은 치과 의사가 생각납니다. 그곳에 온 지 6년차였는데, 겉보기에는 잠바 차림에 덥수룩 수염을 기르고 있어 중국인인지 한국인이니 구분도 못할 정도였는데, 그 얼굴이 얼마나 해맑고 기쁨에 가득한 모습인지 감동을 받았습니다. 얼른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국에 있으면 얼마나 돈을 많이 벌 텐데, 얼마나 비까번쩍하게 살 텐데 하고. 사명을 위해 사는 인생이 그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겁니다.

우리교회에서도 이미 10여년 전부터 시니어 선교사가 여러 가정 배출되었습니다. 의료 사역, 교수 사역, 기타 여러 사역 등으로 1년 2년 3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현지에 계신 가정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집사님은 3년 가까이 사역하다 오셨는데, 힘들지 않았냐고 여쭈었더니 전혀 불편한 것 없었다고, 가면 다 적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선교지에서의 3년이 지나온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고백하는데 얼굴에 화색이 도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시니어선교한국 대회를 통해 우리교회에 이런 분들이 계속 배출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보내는 선교도 중요합니다. 아니, 우리들로서는 더 중요할지도 모르죠. 가는 선교사가 아무리 많아도 받쳐주는 보내는 선교사들이 없으면 곤란합니다. 보내는 선교는 어떻게 할까요? ‘편.물.기. 선교’입니다. ‘편’은 편지 보내기입니다. 이메일이나 편지 혹은 전화 등으로 선교사들을 격려하는 겁니다. ‘물’은 물질을 드리는 겁니다. ‘기’는 기도하는 겁니다. 

이렇게 가든지 보내든지 선교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을 가리켜 세계를 품은 크리스천, 즉 월드 크리스천(World Christian)이라 부릅니다. 만일 이와 같이 선교 사명을 우해 살지 않으면 아무리 크리스천이라도 세속적인 삶으로 전락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세상에 얽매여 사는 세속적인 크리스천(Worldly Christian)으로 머물게 되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진짜 행복입니까? 소유? 성공? 아닙니다. 그것은 지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게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부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처럼 이 세 가지를 붙들고 살아감으로 진짜 행복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