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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라 (시 82:6, 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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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이 되어라 (시 82:6, 요 14:6)


인생의 삶에는 사람의 근원이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 그리고 사람으로서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있다. 인간은 사람과 인간의 물음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하여 지음 받았다. 
그런데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사람의 존재만 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람은 하늘에서 온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땅에서 살아 본향으로 가게 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세계인 땅으로 오셔서 사람의 삶을 살아 존재의 의미를 보여 주셨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일치 되어야 하고 하나님과 사람이 일치해야 한다. 그 일치는 사랑의 관계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알게 한다. 시편에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다. '너희는 모두 신들이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 들이다'라 했고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한 요한일서에서도 말씀하심에 주목한다. 요즘 우리의 신앙에는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인간을 피조물로만 가르치어 죄악의 사람인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심판의 대상으로 알게 하여 죄인의 모습으로 만 머물러서 가까이 하기에는 하나님과 너무 먼 관계로 전락시킴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이다. 

물론 죄인의 당면한 문제로 회개 없는 구원은 없다. 그러나 그 구원은 십자가의 찐한 희생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아가페)의 삶이 아니고서는 삶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율법과 교리나 제도로 묶어진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고 감동과 희열의 사랑의 대가만이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만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율법과 전통에 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지극하신 사랑에 있음을 알게 하고 그 사랑을 위해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 없는 삶은 아주 먼 이해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권세적이고 통치적인 대상으로만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이 세상죄악과의 싸움에서 승리만을 우선하여 세상 것을 얻음으로 인간의 욕구충족의 인간 소원풀이 대상으로만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그 신분이 하나님과 같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내림사랑을 보여주심에 주목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아버지 하나님의 '이처럼 사랑'(요한3:16)을 인간도 전수받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이후 창조된 모든 것은 지금도 창조질서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일하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이는 질서유지를 위해 우주와 세상만사에 질서의 유지를 위한 약속이 있음에 유의하는 것이다. 그것이 옛 약속으로 구약이고 예수오심 이후의 새 약속으로 신약성서로 신약을 이름 하는 것이다. 인간세계는 질서를 통해 사회생활과 인생의 본분을 알기위해 인간에게 이름으로 알게 한다. 

이름으로 '사람'을 사람이라 하고 '인간'을 인간이라 하여 곧 인(人)에는 두 가지로 사회생활의 법인과 자연인의 이름으로 인생살이의 이름으로 알게 한다. 그리하여 법인으로서 사람(person)은 사회과학적으로 보아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지칭하여 이름 한다. 법률관계에서 나타나는 권리. 의무에는 반드시 귀속자로서 주체가 있어야 하며 그 주체가 '사람'으로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하여 성(性), 연령, 종교, 직업, 마음과 몸(心身) 등이 어떠한 것에서도 차별 없이 평등하게 권리능력을 가진 것이 되었다. 
또한 자연인은 살아 있어야 하므로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생존하는 동안만 사람으로 인정되고 출생 전의 태아와 사망 후의 사체는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간(human being)은 사회일반의 삶으로 쓰인다. 이 인간은 동물의 일원이지만 다른 동물에서 볼 수 없는 고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조직사회를 이루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면서 생활을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생물로서의 특성에 바탕을 두어 성립된 생활기술은 생물로서 진화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세계는 생태계의 과정만이 아닌 원리와 원칙 그리고 삶의 이치가 곁들어 있어 한 세계의 변화와 인간이 발전해 가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사람이 인간이 된다는 말은 적어도 두 가지 뜻이 있다. 인간이기에 짐승보다는 더 인정 있고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인간이기에 짐승보다도 더 존귀하게 인간답게 그 처신을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경제적인 수치로의 판단기준이 아니고 인간을 대우하는데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인간을 천하게 숫자의 놀이의 대상으로 인간을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의 현실에는 정치나 경제 그리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다량의 논리로 인간이하의 취급을 취급함에 대한 현실을 보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인간을 자기가 사용하는 이용물로 그리고 필요 하는 소유대상으로만 이용하고 인간의 귀중함과 인간의 존엄이나 생명에 대해서는 경건할 줄 아는 인간의 삶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여기에 인간생활의 향상과 삶의 질이 무엇이어야 함을 알게 한다. 이리하여 사람이 인간의 사회공동체의 삶을 통하여 사회전반으로 말하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짐승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그 생활에서 느껴 보는 것이다. 

자연인으로서 인간은 살아 있어야 하므로 태어나서 죽음까지 생활하는 동안이 그 인간의 한계를 두는 것으로 인정함에 대한 유한한 인간의 종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러시아 톨스토이의 작품으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온 이야기를 생각한다. 미하엘이라는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로 그 벌을 땅에서 사는 구두 직공이 되어 일을 하게 된다. 미하엘은 일하면서 그에게 부과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인간이 되어 인간에게 베풀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신사가 찾아와 구두 수선을 부탁한다. 구두직공이 천사인줄 모르고 그에게 신사는 요구한다. 

일 년 동안 튼튼하게 신을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미하엘의 눈으로 보니 그 신사 옆에 죽음의 천사가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곧 자기 앞에 닥칠 죽음도 모르고 일 년 동안 신고 다닐 수 있는 신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을 본 미하엘은 '인간이 인간에게 베풀어 있지 않는 것'이 곧 현실의 인간의 문제임을 아는 것이다. 미하엘은 죽음의 날짜가 임박했음을 알고 한번 씽 하니 웃는다. 
이 이야기는 잠언 27:1에서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이다. 인간은 삶에서 소유하는 것의 한계를 통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존재로서 혼자 고독하게 살아나갈 수 없어 사회집단을 이루어 살고 서로 소통관계로 화해하고 유무상통하여 서로의 편의를 이루며 서로를 보호하고 안녕을 가지며 사랑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존재의 이유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명을 가진 생명체로 태어나서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를 가진 존재임도 알게 한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죽겠다는 사람도 있고, 죽을 때까지 살겠다는 사람도 있고, 죽어도 살겠다는 사람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죽음에도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을 어김으로 사는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고 말한다. 이 의미는 삶의 겉 보다는 삶의 바탕인 속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이다. 영원히 멸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삶을 사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맞으면 가장 인간다워진다는 말이 있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고 자기에게 가면을 씌울 필요도 없어진다. 유한한 존재의 인간은 평생 삶을 사는 것이 아니지만 죽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것만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이 겉 인간의 삶이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닥쳐올지 어느 누구도 모른다. 벼랑 끝에 도달해서야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존 칼빈은 인간이 알아야 할 중요한 지식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람에 대한 지식을 가질 것을 일러준다. 사람의 존재는 몸과 그 생명과 인격인 혼(魂)으로 구성되어 성서가 말한 속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생명으로 갖고 있는 우리의 거듭난 영(靈)을 말함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고(요3:6), 하나님의 영이 내주(內住)하시며(롬8:11,16)하나님의 영과 연합된 (고전6:17)우리의 영을 알게 한다. 하나님의 충만함에 이르도록 그리스도를 체험하려면 속사람으로 강건케 함을 알게 하는 것이다. 곧 이것이 우리가 영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영 안에서 성령(聖靈)을 통하여 강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의 존재는 영 들이 아니라 혼 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개성이나 인격은 이 혼 안에 있는 것이다. 

몸과 영은 모두 혼 안에 의해 사용되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을 때 주님은 우리 속에 들어 오셔서 우리의 생명이신 그 분 자신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은 더 이상 그릇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우리의 인격이 되신 것이다. 
그렇다면 혼 안에 있는 사람의 생명과 옛 인격은 즉 사람의 생명을 가진 혼은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인 그로 인한 새 인격은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되는 하나님의 영인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된 우리의 영을 가리켜 속사람이 되는 것이다. 겉은 우리의 육신(생각, 의지, 감정)을 말 하는 것이고 속은 혼을 골격으로 하고 거듭난 영을 그 내용으로 하는 영적, 믿음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겉사람은 시간이 지나 늙어 먼지가 되지만 속사람은 부활생명이 계속 안에서 자라나기에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며 소망이 넘치게 됨을 알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겉사람의 모습으로 다양한 욕구와 감정을 지닌 존재로의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온 것임을 아는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뜻을 실현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존재의 물음에 대한 해답이 들여온다.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의 사랑의 죽음과 부활은 한 생명의 삶으로 영원한 생명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며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열린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되고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 되고 사람과 사람이 하나 되어 인간의 모든 물음이 벗겨져 거기에 영혼의 꽃이 피고 영혼의 평화가 하늘에서 별이 반짝이듯이 천지만물 우주공간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물음에서 해결을 보는 창조질서의 약속의 이치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가는 길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인가? 악인가? 하는 물음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야 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사랑의 소망이 우리의 믿음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너희는 모두 신들이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인간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라' 라는 말을 실현하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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