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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양육의 성공자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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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양육의 성공자 (엡 6:4)


저는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 가운데 미국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미국도, 한국도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을 빠져나오기
가 쉽지 않았습니다.  감염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기다리면서 검역
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더 민감합니다.  매일 방송마다 특종으로 다루고 있고,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닙니다.  그것을 제외하곤 여전히 미국은 미국입니다.  
매번 미국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지만 미국은 세계의 강대국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경제여파로 많
이 힘들 것으로 여겼지만 그래도 평온하고, 여유 있고, 넉넉하고, 풍요롭습니다.  게다가 기후와 자
연환경까지 뒷받침이 되니 마냥 부러울 뿐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누가보아도 성공한 나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이 조상의 덕분이어도, 그것이 자연의 좋은 환경이 준 것이라고 해도, 미국
은 분명 성공한 나라입니다.

 ‘성공’이라는 것이 이처럼 역사와 삶에 중요합니다.  한 나라의 성공이 국민을 풍요롭고 여유 있
게 합니다.   교회의 성공도 사람들을 오고 싶게 하고, 평화롭게 합니다.  그것은 가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가정도 성공하면 가장 편안한 보금자리가 됩니다.  그러나 가정이 실패하면 얼마나 험악
한지 모릅니다.  이제 5월이 시작되어 가정의 달을 맞이하는데 우리의 가정들이 성공하고 승리하
여 화목하고 아름답기를 기대해 봅니다.  가정의 성공은 자녀가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가정
에서 무엇보다도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  성경은 자녀양육의 성공적인 원리를 제
시합니다.  성공적인 자녀양육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까요?  오늘 어린이주일에 본문을 통해 그것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입니다.  특히 감옥에서 보낸 옥중편지입니다.  모든 편지가 중요하고, 모든 바울의 옥중서신이 중
요하지만 에베소서가 아주 귀한 서신입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서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실
제적인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생활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가정생활에 대해 실천적인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자녀를 양육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합니다.  본문은 먼저 ‘아비들아’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분명
한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가정에서 자녀를 대하는 모든 부모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렇게 
아비들에게 말씀하면서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공적인 자녀양육의 첫 번째 단계요, 중요한 원리라는 것입니다.

여기 ‘노엽게’라는 말의 의미는 ‘괴롭게 하지 말라, 화나게 하지 말라, 흥분시키지 말라‘는 뜻입니
다.  이것을 근거로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을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하나는 부모의 권세나 힘으
로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이나 행동으로 아이들을 무시하지도 말라
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또 물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 상처가 아주 
오래갑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경우는 더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깨끗하고, 순수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부모들이 적
잖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부모는 자기감정이나 의지를 양육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
여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부모라는 권위와 힘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이 아이들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과연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자라
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라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시대 아버지가 가진 절대적인 
‘부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로마시대에는 아버지가 가진 권한이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론 자녀를 노예로 팔기도 하고, 쇠사슬에 묶어 일을 시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일 수도 있었습
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자녀를 아버지가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권한은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아무리 장성한 자식이라도 아버지의 권위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이 법은 로마의 최대의 과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 권위
의 결과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공이 아니라 실패요, 처절한 실패였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바울은 
성공적인 자녀 양육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당시로 보면 가히 충격입니다.  그러나 그
것은 분명 바른 길이고, 성공하는 길이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힘
이나 권위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과 인격으로 대했습니다.   아이도 소중한 사람, 소중한 인격
체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존중히 여기고, 가슴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하고,  무시하지 말
아야 합니다.  아이들도 인격체입니다.  그런데 어른의 눈에는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서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고, 아이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말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나는 유치부 어린아이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하나님, 우리는 어려요, 그렇다고 깔보지 
마세요..’  아이의 마음속에 어른으로부터 받은 무시가 있기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이를 깔
보지 말아야 합니다.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늘 생각하며 말과 행동에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소중한 사람, 소중한 인격체, 소중한 
자녀로 대해야 합니다.  그런 부모와 어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에서 본문은 ‘교양과 훈계’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성공적인 자녀교육의 원
리임을 심어줍니다.  여기 ‘교양’이라는 말은 훈련, 때론 징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훈계’는 말로 
교훈하는 것을 뜻합니다.  잠언의 많은 말씀들이 훈계를 포함합니다.  그래서 여기 ‘교양과 훈계’는 
다른 말이기 보다 서로 연결되어 강조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다시 말해 자녀를 잘 훈련시키되 때
론 징계를 도구로 사용하라는 것이요, 특히 말로서 자녀를 훈련하고, 양육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성공적인 자녀교육에 훈련이 중요하고, 때론 징계가 빠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유대인의 
자녀교육을 성공적인 교육으로 평가합니다.  그들의 교육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반복이
고, 하나는 훈련입니다.  그 훈련에는 물론 징계가 포함됩니다.  그 징계의 원리를 그들은 성경에
서 찾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백성을 다루는 방법에서 찾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당근과 채칙입니다.  잘 하면 칭찬하고, 축복하고, 은혜를 베풀지
만 잘못하면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칙으로 징계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징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
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히12:5-8)

자녀교육에 있어서 징계는 필요한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른 징계가 있어야 합니
다.  징계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당근과 채칙이 병행해야 합니다.  잘하는 것에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와 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혹이라도 징계가 필요할 때 부모는 감정으로 하지 말아야 하
고, 흥분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징계는 부모가 감정을 조절하며 하고, 무엇보다도 깊은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분에서 부모가 자기감정에 치우칩니다.  자기한풀이로 매를 듭니다.  
감정에 격분하며 아이들을 대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녀를 노엽게 하고, 상처를 주고, 반감을 갖
게 합니다.  

특히 훈련에 있어서 말로서 훈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매를 들지 않아도 말로서도 설득
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말을 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
냥 툭툭 말하는 것으로는 훈련이 안되고, 약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의 권위와 힘을 잃어버릴 
뿐입니다.  

어떤 엄마가 아이를 기르는데 아이들이 시끄럽고 요란합니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듣지 않습니
다.  매를 들어도 잠시 뿐, 시간이 지나면 또 난리를 칩니다.  결국 안 되겠는지 어머니가 아이들
을 세워놓고 말합니다.  ‘야, 너희 같은 애들 처음 본다, 꼴도 보기 싫으니 내 앞에서 없어져,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마, 나는 엄마가 아냐’하고 한바탕 터트린 후에 내보냈습니다.  조금 있다가 아이
가 들어와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줌마! 밥 주세요’ 

여러분, 아이에게 엄마인데 왜 엄마가 아닙니까, 왜 꼴도 보기 싫다고 말합니까?   왜 없어지라고 
말합니까, 왜 아이가 나의 원수입니까?  분명 엄마도 본래의 의도가 아닌 것을 압니다.  자녀가 너
무도 소중한 것을 압니다.  그런데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입니다.  말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말의 훈계와 훈련이 가장 큰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가진 가장 큰 힘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말로 자녀를 훈련해야 합
니다.  말로 자녀를 감동시켜야 합니다.  말로서 자녀에게 힘과 위로를 주어야 합니다.  꿈과 희망
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양과 훈계가 자녀양육의 성공비결입니다.  훈련과 교훈이 필요
합니다.  특히 말로서 감동과 힘을 주는 자녀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주안에서 양육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하면서 유독 강조하는 것
이 있습니다.  바로 ‘주의 교양과 훈계’입니다.  그냥 교양과 훈계가 아닙니다.  ‘주’라는 중요한 말
이 덧붙여 있습니다.  이 말은 6장 1절에서 명확하게 강조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있어서도 그냥 공경이 아니라 ‘주안에서’라는 말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자녀교육과 부모공경의 성
공이 달려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합니다.  또한 세상에 많은 자녀가 부모를 공
경합니다.  그들과 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같습니다.  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 안에서’와 ‘주 밖에서’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자녀교육의 성공은 자녀들이 주안에 있느냐, 아니면 주 밖에 있느냐에 달려있음을 믿는 
자입니다.  이것이 가장 귀하고 우선적인 원리임을 믿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해도 신앙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녀교육은 실패한 것으로 믿는 자입니다.  그래서 교회교육이 필요하고, 그래서 
신앙교육을 가장 우선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가장 큰 성공으로 믿어야 합니다.  자녀
가 똑똑하지 못해도, 부모의 마음에 썩 들지 않아도, 심지어는 부모의 걱정과 근심이 되더라도, 그 
자녀가 주 안에 있으면 가장 큰 성공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에서 잘 나가도, 똑
똑하여 좋은 대학을 졸업해 세상을 평정하고 떵떵거리며 살더라도 그 자녀가 주 밖에 있으면 그
것은 아직까지는 실패입니다.  그것은 잘 믿는 부모의 평생 기도제목이 됩니다.  다 얻어도 주밖에 
있으면 다 잃은 것이고, 다 잃어도 주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믿음이 부모의 마음 깊
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지금 주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주 밖에 있습니까?  먼저 주안에 있
는 자녀로 인해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나머지는 계속 채워져 가면 됩니다.  앞으로 많은 세
월동안 주안에 있는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기도와 간구 속에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도 주 밖에 있는 자녀가 있다면 이제 부모의 목표는 오직 한가지여야 합니다.  그 자녀들이 
주안으로 들어오도록 부모가 먼저 잘 믿고, 자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
님을 내 아들 딸도 믿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자녀들도 섬겨야 합니다.  나와 내 집은 영원히 하
나님을 섬기는 가정이어야 진정한 신앙과 인생의 성공입니다.  지금 이 순간, 오늘 귀한 주일에 우
리가 깊이 생각하며 감사하고, 결단하며 헌신할 중요한 일입니다.

이번 미국여행에 저와 아내는 아들과 딸을 만나는 시간으로 줄 곳 보냈습니다.  오래전부터 떨어
져 살던 자녀들이라 그저 만나는 것으로도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아들과 딸이 있는 곳으로 번갈
아 달려가며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공항에서 둘 다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만나면 기쁨이지만, 헤어지면 슬픕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이 
몹시 섭섭해 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아서 외로움이 많은 아들입니다.  그래
서 주변에 많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도 다시 만
날 것을 생각하며 늘 씩씩하게 인사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마지막까지 우리를 붙잡는 아들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울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런 아들 앞에서 같이 울 수가 없었습니다.  애써 아들을 뒤로 하고, 마지막순간까지 손을 흔드는 아들을 보내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돌아오는 동안 저는 내내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아들은 1년 만에, 딸은 6개월 만에 만났는데 이번에 보니 아이들이 많이 성숙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에 있어서 성장했습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아직까지 가야 할 길이 있고, 이루어야 할 꿈이 있으며,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서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고 수고하며 살지만, 분명 이들은 ‘주 안에’ 있었습니다.  이것보다 저에게 
더 큰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가 지키려 해도 지키지 못하고, 돌보려고 해도 
돌볼 수 없는 자녀들을 하나님이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젠 이 아이들이 나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
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돌보시고, 키우시고, 머나만 이국땅에서 그들
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그들에게 순간순간 힘을 주시고, 때론 외롭지 않게 하시고, 그들이 눈
물 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성공적인 자녀교육의 가장 우선순위는 자녀가 지금 주안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
안에 있는 자녀로 인해 오늘 깊이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그 자녀를 맡기고, 축복하며, 
기도하십시오.  혹이라도 아직 주안에 있지 않는 자녀로 인해 고민하고 안타까워하는 부모가 있습
니까?  주안으로 돌아오기를 위해 계속 간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이 소원은 하나님이 꼭 응답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자녀를 향한 부모의 이런 소원은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시고 기뻐하시고, 또한 
자녀는 이런 부모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돌아옵니
다.  낙심하지 말고 간구하면 반드시 그 소원만큼은 하나님이 꼭 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자녀양육의 성공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자녀를 노엽게 마시고,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십
시오.  무엇보다도 주님을 알게 하고, 주안에서 평생 살게 하십시오.  이런 믿음으로 한주간도 승
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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