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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주의 교양과 훈계로 (마 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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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교양과 훈계로 (마 14:1~12)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엄마를 어떻게 하면 도와 드릴 수 있을까? 한번 이야기 해 줄래?" 
이후 아이들은 끙끙대며 대답을 합니다.  
예진이 "저는요..설거지를 도와 드릴 거예요" 
선생님 "참 잘했어요." 
지인인 "전요 방을 닦아 드릴 거예요" 한다. 
선생님 역시 " 지인이도 참 잘했어요. ^^" 
그때 정원 어린이가 손을 들곤 "선생님 저두요" 합니다. 
"그래 정원이가 한번 말해 볼래?" 
정원 어린이가 씩씩하게 "전 가만히 있을래요... " 
선생님은 의문이 나서 "왜 가만히 있어? 엄마 안 도와드리고?" 
정원 어린이 하는 말 "엄마가 그러는데요...전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래요"

어머니의 말 한 마디가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이들은 마치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어머니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말 한 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러기에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격려가 되고 꿈이 되는 그런 말을 항상 들려주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자녀의 마음에 못을 박는 그런 말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정말 못된 그런 어머니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는 분봉왕으로 로마가 인정했던 사람이 바로 헤롯 안디바입니다. 흔히 그를 분봉왕 헤롯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그는 예수께서 그의 앞에 잡혀오자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후에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내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헤롯 안디바가 로마로 가던 도중 이복동생인 헤롯 빌립 1세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안디바는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헤로디아에게 마음을 빼앗긴 빌립은 마침내 자기 아내를 버리고 이복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아 버렸습니다. 

이를 알게 된 세례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고 자기를 비난하는 세례 요한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김으로 무리들을 두려워하여 그냥 잡아다 옥에 가두어 둡니다. 그러던 중 헤롯왕의 생일잔치 때 헤로디아가 자기와 빌립 사이에 낳은 딸 살로메를 시켜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도록 시킵니다. 이에 기뻐하던 헤롯은 사람들 앞에서 네가 무엇을 원하든지 그대로 주겠다 혹 나의 왕국의 절반이라도 그대가 원하기만 하면 주겠다고 큰 소리를 칩니다. 그러자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무엇을 구할지를 상의하였고 이에 헤로디아는 살로메에게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에서 내게 주소서 하고 구하도록 시킵니다. 헤롯은 무리들 앞에서 자기가 큰 소리 친 것이 있어서 어쩌지 못하고 살로메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여 결국 세례 요한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짧은 본문에 등장하는 헤로디아라는 여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이 여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사랑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버리고 시아주버니와 재혼을 했습니다. 그건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남편 빌립은 물론 동서에게도 못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헤롯은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는 왕의 신분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요한이 비난할 때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을 욕보였다고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서서 더 이상 자기를 비난하지 못하도록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어 두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풀어주자니 그렇고 계속해서 가두어두고 있자니 그것도 만만치는 않은 그러한 입장에 있을 때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일 계교를 꾸몄던 것입니다. 우선 헤롯왕의 생일잔치를 베풀 때 자기의 딸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도록 하여 헤롯의 혼을 빼놓도록 만듭니다. 그래 놓고는 왕이 신이 나서 술기운에 무엇이든지 달라고 하는 대로 주겠다고 큰 소리를 치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도록 시킵니다. 그래 그날 요한은 목 베임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헤롯 안디바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 요한을 죽이도록 배후에서 조종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왕은 나중에 반역의 혐의를 받아 결국 헤로디아도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가울(Gaul)로 귀향을 가게 됩니다.
자 여기 이 헤로디아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참으로 많이 저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가 이 시간 특별히 생각하고자 하는 대목은 자기의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딸 살로메까지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라면 설사 자기 딸이 잔지 자리에 사람들 앞에 나아가 춤을 추겠다고 해도 말렸어야 합니다. 한데 이 여인은 거꾸로 자기 딸로 하여금 사람들 앞에 나아가 춤을 추도록 하여 헤롯왕의 정신을 쏙 빼놓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왕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큰 소리 치니까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이 자리에서 달라고 요구하게 하여 결국 요한을 죽이도록 만듭니다. 결국 자기 딸을 음탕한 여인이요 요한을 죽이도록 요구하게 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살인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한 마디 말로 인해서 이 딸은 역사에 길이 남을 부끄러운 이름 즉 요한을 죽이도록 요구한 여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건 어머니가 할 일이 아닙니다. 설사 딸이 그렇게 하겠다고 해도 그걸 말려야 할 어머니가 오히려 딸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키고 있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렇게 자식을 살인자로 만드는 일이 비단 헤로디아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요즘 자살 사이트를 이용한 자살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죽고 싶어도 용기가 안 나니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함께 목숨을 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고 있습니까? 세상에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바로 자살이라고 하는데 그 어떤 경우에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입니다. 자살은 결국 영원히 자기를 멸망의 길로 빠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지옥의 둘째 사망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다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 순간 그는 영원히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영원히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남겨질 뿐입니다. 

그때 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았던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실의 이유가 무엇이든 그는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은 살인자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자기 부모라면 이는 정말 가슴을 칠 노릇입니다. 물론 우리가 본 것처럼 헤로디아와 같은 어머니도 있을 수 있습니다. 헤롯과 같은 아버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에게 살인하도록 시킬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요즈음 심심찮게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작당을 해서 못된 짓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들어온 이야기들이 보도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거야 정말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할 일입니다. 

문제는 정상적인 부모들입니다. 사실 자기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누군들 없겠습니까? 그래서 자녀들을 힘을 다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데 문제는 그 자녀를 가르치는 태도입니다. 과연 나는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정말 자녀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앞날을 준비하도록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격려하면서 자녀들의 뒤를 밀어주고 있는지 아니면 자녀들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오히려 자녀들의 기만 꺾어버리고 그 마음에 상처만 안겨주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는 다 그렇게 말을 할 겁니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일이야 또는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하지만 그건 자녀들도 그렇게 받아들일까요?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살인자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 자녀들을 이용하는 그런 일은 결국 자녀를 살인자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아 우리 가운데 헤로디아와 같은 부모는 하나도 없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맹모삼천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사회적으로 큰일을 할 수 있는 아들로 키우기 위해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세 번씩이나 이사를 했던 이야기입니다. 결국 맹자가 그토록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로젠탈 박사는 하버드대학에서 ‘학생들과 쥐’를 상대로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세 그룹의 학생들에게 실험용 쥐를 몇 마리씩 나눠주면서 실험성과를 조사하게 했습니다. 쥐의 지능에 따라 상, 중, 하로 구분해 각 그룹에 나눠준다고 했지만 사실은 같은 종류의 평범한 쥐들이었습니다. 6주간 같은 조건 하에서 실험하고 결과를 알아보았는데 실험 결과는 각 그룹에 따라 아주 달랐습니다. 뛰어난 지능의 쥐, 보통 쥐, 열등 쥐라는 분류는 사실이 아니었는데도 학생들의 자세와 기대에 따라 쥐들은 성과를 다르게 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세는 강력한 무언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어떤 기대와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상대의 능력의 틀이 다르게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주는 사람 주위에는 능력 있는 사람만 있게 되고, 부정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의 환경은 늘 어둡기만 합니다. 똑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지만 나의 태도에 따라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도 있고, 거민을 삼키는 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민수기 13장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한 날에 태어난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자란 아들과 격려를 받지 못한 아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우리는 이삭의 가정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 그 둘은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 사이에서 한 날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자랐던 야곱과 아버지의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자란에서 그 둘은 하나같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결국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어머니의 격려와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야곱이 결국에는 아버지의 축복까지 받으면서 큰 인물이 되었던 반면 에서는 나중 아버지의 축복마저도 받지 못한 채 광야를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야곱이 짜고 형에게 축복하고자 했던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채기는 했지만 그건 이미 하나님께서 첫째가 둘째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태중에서 이미 약속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를 축복하는 과정도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했다면 그 형제가 서로 등을 지는 일도 없었을 텐데 나중 하나님께서 그 둘 사이를 다시 화해하도록 중재자가 되어주시기 까지 자그마치 20년간을 형제가 원수처럼 지나지 않습니까? 아마 부모가 하나님께 물었다면 야곱에게는 이렇게 축복하라 그리고 에서에게는 이렇게 축복하라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에서가 야곱이 죽이겠다고도 안 했을 것이고 야곱이 형에게 맞아 죽을까봐 도망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됐다면 세계 역사는 또 달라졌겠지만 말입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자기 태중에 쌍둥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둘의 앞날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새겼기에 더욱 둘째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에게 그런 하나님의 약속을 알려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아버지가 형 에서에게 축복하기 위해서 별미를 만들어오라고 하였을 때 두려워 떨면서도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아버지를 속여 가면서까지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격려와 아버지의 축복이라고 하는 이 둘입니다. 결국 어머니의 격려와 아버지의 축복이 자녀들의 앞길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임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녀들에 대한 끊임없는 격려입니다. 야단만 치려고 하지 말고 항상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마십시오. 조금이라도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자녀들의 마음에 꿈을 심어주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 나가도록 날마다 격려해주십시오. 

거기에 더하여 아버지는 자녀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정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자녀를 축복하게 될 때 그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복을 주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성읍이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한다고 했으니 여러분의 자녀를 이와 같이 축복하여야 합니다. 물론 그 전제 조선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너는 해라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먼저 부모가 정직한 모습으로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날마다 자녀들을 축복하고 격려하게 되면 먼저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과 함께 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녀들과 함께 동행하시면서 그들의 길을 가장 아름답게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게 되면 그 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길이라 할지라도 전혀 해를 받지 않을 것이요 항상 주께서 그들이 길을 지켜 주실 것이요 그들의 길이 이윽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길을 가장 아름답게 열어가는 귀한 인도자로서 격려와 축복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로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가르치지 못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신앙만은 반드시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이요 앞선 일로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말씀 앞에서 자녀들이 꿈을 키우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내 생각을 따라 그건 좋고 이건 나쁘고가 아니라 그 어떤 길이라도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길이야말로 가장 형통한 길이 될 것임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시고 또 그렇게 격려해 주십시오. 한 시간 공부를 덜 하더라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관해서는 결코 양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위인전은 읽히지 못해도 좋습니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책들을 읽히지 못해도 좋습니다. 반드시 성경과 친해지도록 만드십시오. 

날마다 성경을 읽어나가도록 이끄십시오. 이를 위해서는 같이 성경을 읽어나가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학원은 보내지 못하더라도 좋습니다. 교회에서 머무는 시간이 그 어떤 시간보다도 복된 시간임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시고 그것을 몸소 자녀들에게 보여 주십시오. 공부 안한다고 야단치지 마시고 예배 안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주 엄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입니다.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 그걸 가지고 야단칩니다. 빨리 가서 공부 안하냐고 합니다. 그건 자녀를 망가뜨리는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수고하여도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시면 그건 헛된 수고입니다. 그건 터진 웅덩이에 불과합니다. 웅덩이를 만들게 하지 마시고 우물을 파도록 가르치십시오.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 앞에 샘물을 터뜨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되어야지 학원은 나의 목자시니 또는 도서관은 나의 목자시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지혜와 지식과 명철과 총명을 주시면 한 시간을 공부해도 다섯 시간 열 시간 공부한 것보다 더 빨리 그리고 깊이 깨우치게 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삽을 들고 열 시간 땅을 파는 것보다 포클레인으로 한 시간 파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의 포클레인이 되시도록 그렇게 가르치시고 그렇게 격려하시고 그렇게 인도하십시오. 날마다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격려하시게 될 때 우리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성읍이 진흥되는 귀한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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