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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믿음의 가정 (신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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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가정 (신 6:1~9)


들어가는 말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했지만 마음은 착잡합니다. 
급속한 사회변동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해체되어 가는 가정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가정 설계자이시며, 가정을 통해 축복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 생각해봅니다. 

1) 가정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이혼율이 1위입니다. 
근래 보건복지부의 보고에 의하면 예전에는 결혼 5년차 이하의 초년부부들이 많이 이혼했는데 요즘에는 결혼한 지 20년 이상 되는 황혼부부의 이혼이 증가한답니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참았는데 이제는 참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남자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더구나 경제위기로 인한 가족 간의 불화와 갈등이 이혼율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IMF때 부도가정의 47%가 이혼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2위입니다. 
최진실, 장자연이라는 탤런트들의 자살은 청소년들에게 무슨 유행처럼 ‘자살’ 바람을 불게 하더니, 인터넷에는 아예 ‘자살사이트’가 있어 동반자살까지 부추깁니다. 
낙태도 많습니다. 
생각 없이 임신을 하고, 생명에 대한 아무런 책임감과 죄책감이 없이 낙태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사회의 가정해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상들입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요? 

2) 신앙이 계대되지 않습니다. 

선교명령을 수평적인 명령과 수직적인 명령으로 구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태28:19-20절의 명령은 수평적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수평적인 선교명령이란 열방으로 계속 복음이 퍼져가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신6:2절의 명령은 수직적인 명령이라고 합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수직적인 선교명령이란 자손 대대로 계속 복음이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수평적인 선교명령은 잘 수행하였지만 수직적인 명령을 잘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계속 서진하여 거의 지구를 한 바퀴 돌았지만 그 복음이 가정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기독교 선교가 이 둘을 병행시키지 못할 경우 미래는 어둡다고 봅니다. 
여러분, 2,000년 전 기독교가 번성했던 소아시아를 가 보세요. 
지금의 터키 땅인데 교회가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있던 자리가 아닙니까? 
유럽교회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교회들도 감소되고 있습니다. 
수직적인 선교명령의 실패현장에 다름 아닙니다. 
한국교회만 하더라도 교우들의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에도 신앙계대가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미션스쿨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통계에 의하면 미션스쿨을 나온 학생의 70~90%가 교회를 떠난다고 합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채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야 학점이 나오니까요. 
그러나 졸업하자마자 신앙도 졸업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학교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있어서 극히 적은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다니던 학생들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50~80%가 교회를 떠난답니다. 
대형교회일수록 그 비율은 더 높습니다. 
학창시절에 교회의 ‘찬양과 경배’ 시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학창시절을 끝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신앙생활도 끝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교회교육도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있어서 극히 적은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의 신앙은 누가 어디에서 책임져야 합니까? 
‘가정’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일주간 시간사용내역을 조사해 봐도, 미션스쿨에서 성경공부 또는 예배드리는 시간은 고작 2시간 정도입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 또는 예배드리는 시간은 고작 2,3시간입니다. 
반면 자녀들의 대부분의 시간은 가정에서 보냅니다. 
어릴수록 더 하지요. 

사정이 이러한데 자녀들의 신앙문제를 가정에서 책임지지 않고, 교회 또는 학교에 맡겨 놓는다는 것은 부모님들의 책임회피입니다. 

1. 그러면 이런 한국사회의 가정해체 현상과 자녀들의 신앙계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손을 놓고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가정예배’에 주목합니다. 
가정예배는 가정회복과 교회회복을 위한 최고의 처방전입니다. 
가정예배는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전통입니다. 
예전에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응당 가정예배를 드려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1) 가정예배는 가정회복을 위한 하나님이 주신 ‘잃어버린 기술’입니다. 

우리는 유태인에게서 그 지혜를 배웁니다. 
지금 미국에 사는 유대인은 650만 명으로 미국 전체인구의 2.2%에 해당합니다. 
미국에서 사는 아시아인은 950만, 히스패닉은 1,700만, 흑인은 3,000만 명에 이릅니다. 
그들에 비하면 유대인의 수는 매우 적으나 미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금융을 거의 장악하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30%가 유대인이며, 전 세계 학생들이 동경하는 미국 아이비(Ivy)리그 대학교의 총장 및 교수진의 40%가 유대인이고, 미국 대도시에 밀집된 법무법인(로펌)에 종사하는 변호사의 50% 이상이 유대인이며, 미국의 대부호 100명 중 22명이 유대인인데 이들 대부분은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고, 미국 대기업의 CEO 중 17.5%가 유대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대인의 가정교육의 힘이라고 합니다. 
소위 ‘쉐마’라고 하는 가정교육입니다. 
신명기 6장 4~9절의 말씀을 철저히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유대인의 가정예배입니다. 
유대인 아버지는 가정예배를 인도하면서 자녀들의 머리 위에 오른손을 올려놓고 축복기도를 합니다. 

3대가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가정예배에서 신앙이 전수됩니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효를 배웁니다. 
가정예배에서 세대차가 극복됩니다. 

2) 가정예배는 교회 부흥의 지름길입니다. 

현재 한국교회 교인들의 가정예배를 드리는 비율은 평균 5.5%라고 하는데 만일 가정예배를 통하여 교우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교인배가부흥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집토끼를 다 놓쳐버리고 온 산천을 헤매며 산토끼를 잡으려고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2. 가정예배의 예 

우리 출판국에서 발행하는 「기독교세계」2006년 5월호에 보면 “가정예배는 가정에 복음을 심는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기고된 성천교회 청년의 글이 나옵니다. 
거기 보면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오빠. 나를 포함하여 모두 네 명입니다. 우리 가족은 4년 전부터 매 월요일 밤 9시가 되면 「하늘양식」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가족이 가정예배를 시작하게 된 건 매 주일 아침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교회에 나아가는 모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와 오빠의 마음을 바꾸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와 오빠는 교회도 모자라 집에서까지 야단이라고 불평 한마디 던지고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처음에 가정예배는 네 식구 중 반쪽 가족 어머니와 딸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자 예배를 준비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한마디 던지셨습니다. 

 “나 내일 중요한 일이 있는데 기도 좀 해 줘.” 
그 후 아버지는 기도제목이 생길 때마다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예배드리는 걸 구경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같이 자리에 않더니 하루는 “성경책을 하나 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날 어머니와 딸은 너무나 기뻐 하나님께 감사를 되풀이 했습니다. 
가정예배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열어주신 하나님께서 머지않아 오빠의 마음도 열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가면서 가정예배 때 자주 불렀던 ‘참 아름다워라’ 찬송을 흥얼거렸습니다. 
무의식이 무섭다더니…. 
자기가 지금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조차 모르던 이 오빠의 마음도 이미 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6개월 지난 어느 날 이 집은 생전 처음 네 식구가 다함께 둘러 앉아 가정예배를 드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날은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기념으로 예배 후 광고시간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이 가족은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잘 몰랐던 일, 아버지가 요즘 왜 힘들어하시는지, 어머니가 무슨 일로 새벽기도회에 나가 그 오랜 시간 기도하는지, 오빠가 무슨 고민이 있어 웃지 않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더 많은 걸 나누고,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게 되니 가족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답니다. 

진정으로 가족이 되어갑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아버지와 오빠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랍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주일 아침, 모녀가 예배당에 도착했는데 거기에 아버지가 이미 와 앉아계셨습니다. 
아침부터 안 계셔서 ‘오늘 일이 생겨 회사에 가셨나 보구나.’ 생각했던 모녀는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확실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내가 내 손으로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그 교회 모범교인으로 집사가 되어 매주 주차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가정예배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두 내외가 가정예배를 드리지만 선교지에서는 네 식구가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5살짜리, 7살짜리 두 아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드렸던 가정예배는 지금도 돌이켜보아도 행복감으로 젖게 합니다. 
잠언을 읽었습니다. 
생활의 지혜로 가득 찬 잠언의 말씀은 가정교육의 최고의 지침서입니다. 
31장으로 된 잠언은 꼭 한 달분입니다. 

30일인 달에는 마지막 날에 두 장을 읽었습니다. 
국한문 혼용성경을 사용했는데 천자문을 막 떼고 선교지에 따라간 큰 아들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아니 배려라기보다는 한문을 잊지 않게 하려는 부모의 욕심이었습니다. 
아내의 무릎에 앉아서 엄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성경을 따라 읽던 작은 아이는 별다른 도움 없이 한글을 깨쳤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리다가 받은 축복 중의 하나였습니다. 
예배 마지막 순서에 저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할 때는 가슴 가득 차오르는 그 무엇을 느꼈습니다. 
하루 동안의 일들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정돈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것은 척박한 땅에서 사역했던 우리에게 둘도 없는 영적 자양분이었습니다. 
가정예배가 너무 좋았습니다. 

3. 가정예배를 통하여 얻는 구체적인 유익들을 소개합니다. 

1) 가정의 제사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가 회복됩니다. 
근래 한국사회는 권위주의가 와해됨과 동시에 권위가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의 권위가 와해되었습니다. 
스승의 권위가 와해되었습니다. 
윗사람의 권위가 와해되었습니다. 
급기야 아버지의 권위가 와해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예배를 드리면 아버지의 제사장적인 권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경제력이 약화되고, 건강이 약화된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야곱처럼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아버지는 권위를 갖게 됩니다. 

2) 가족 간의 대화를 하게 됩니다. 
현대인의 생활은 너무도 복잡하여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부모는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됩니다. 
자녀들은 밤낮으로 공부에 매여 있습니다. 
방마다 있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는 가족을 더욱 멀어지게 합니다. 
가정은 가정이 아니라 여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이 다 다릅니다. 
가족들의 삶의 시간, 장소, 내용이 다른데 어떻게 대화를 기대하겠습니까? 
이런 가족들을 엮어주는 것이 바로 가정예배입니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비로소 가족들은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3) 거룩한 삶을 살게 합니다.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죄를 정리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절망을 정리하고 소망의 아침을 기대하게 됩니다. 
특별히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었을 때 가정예배를 통하여 그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 그들은 금방 세상길로 나가고 맙니다. 
세상에는 유혹이 손길이 넘쳐납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타락하지 않게 하려면 매일 가정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4) 가족을 밤 문화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골칫거리는 밤 문화 입니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직장인들의 음주문화. 
밤을 지새우며 매어달리는 컴퓨터 게임, 인터넷 채팅 등 젊은이들의 미디어 문화. 
거리의 뒷골목에 불야성을 이루는 음란 퇴폐 문화....... 
모두 다 밤 문화의 사생아에 다름 아닙니다. 
이 밤 문화 때문에 개인의 삶이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기풍이 저상됩니다. 
가정예배시간을 정해서 우리가족을 이 퇴폐적인 밤 문화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조엘 비키 박사는 만일 자녀들 중에 고집스러운 아이가 있다면 간단한 규칙을 정해놓으라고 권면합니다. 
즉 ‘가정예배가 없으면 밥도 없다.’  

5) 가족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믿음이 계대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자식은 두 번 낳는다. 한번은 배로 육신을 낳고, 한번은 눈물로 영혼을 낳는다. 눈물로 자식의 영혼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부모의 자격이 없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이 달에 가정예배를 시작해보십시오. 
가정예배가 숨겨진 보화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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