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평안한 교회 (행 9:31)

  • 잡초 잡초
  • 614
  • 0

첨부 1


평안한 교회 (행 9:31)


기독교 역사상 바울이 남긴 업적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13개의 서신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인 사도 바울에 의해 새로운 선교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택한 백성을 찾기 위해 세워진 우리 교회는 교회설립 2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중심하고 우리교회 설립 20년을 회고 하면서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라는 제하로 설교하기 원합니다. 

Ⅰ. 우리교회는 평안한 교회였습니다. 

본문 9장 31절에 『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라고 했습니다. 
여기 『 그리하여 』라는 접속사는 바울이 다소로 피신한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바울이 다소로 피신하므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마찰이 해소되었다는 것을 전해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평안했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교회에 대한 외부의 박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교회가 성장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 칼리굴라(Caligula A.D 37-41)가 자신의 동상을 성전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유대인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A.D 41년 1월 24일 칼리굴라가 피살되었고 따라서 기독교의 박해는 진정국면에 들어갔습니다. 이 무렵에 사도들의 왕래가 자유로웠고 성도들의 왕래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교회 설립 이후에 국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직접적인 박해는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 이단도 없었습니다. 교회 안에 당을 짓는 붕당행위도 없었습니다. 공교한 말로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는 자들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교회는 평안했습니다. 우리교회는 장차 주님 오실 때까지 평안해야 합니다. 

Ⅱ. 우리교회는 든든히 서가는 교회였 습니다. 

본문 9장 31절에 『 …든든히 서가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 『 든든히 서간다 』는 말은 당시에는 건축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교회 성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건축물로 생각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1절에 『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라고 했습니다. 
든든히 서간다는 말은 계속해서 건축물이 세워지듯이 교회가 쉬지 않고 성장한다는 의미입니다. 

1) 신림4동 498-55번지 시대 
개척부터 우리 교회보가 발행되었습니다. 1989년 6월 3일에 주일학교를 조직했습니다. 1990년 3월 5일에는 우리 선교원을 개원했습니다. 그해 6월 20일에는 학생신앙운동(S.F.C)을 조직했습니다. 그해 12월 31일에 여전도회를 조직했습니다. 같은 날 청년회를 조직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밤 삼각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2) 신림4동 500-3번지 시대 
1994년 8월 1일 교회당을 이전했습니다. 1994년 10월 30일 교육관 확장 이전을 했습니다. 설립 5주년 감사 찬양대회를 했습니다. 
1997년 12월 13일에 장로 장립식이 있었고 1998년 1월 24일(토)에 저의 목사 위임식이 있었습니다. 1999년 11월 28일 인터넷을 통한 전도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교회 홈페이지 w.w.w.calvary.or.kr). 선교원 이전 확장을 했습니다. 당회장 목사의 서재를 구입했습니다. 2001년 3월 10일 저의 개혁주의 설교집 1, 2, 3권이 출판되었습니다. 

3) 새 성전 504-2번지 시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1989년 5월 1일에 태동한 우리교회는 2001년에 교회설립 12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는 이제 셋집에서 단독 건물의 교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2년 동안의 세월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강구원 목사와 그 양무리들에게 새 성전 시대를 열게 하셨습니다. 
교회 리모델링은 2002년 4월부터 건물 시공에 들어가 동년 8월 30일까지 마치고 동년 9월 7일 관악구청으로부터 준공 검사와 함께 교회당으로 용도변경 허가가 났습니다(서울시 관악구청 고유번호1162010200-1-05040002-00010).
마침내 2002년 10월 19일(토) 오후 2시에 역사적인 날이 다가왔습니다. 교회개척 13년 만에 이루어진 입당 감사예배였습니다. 교단 지도자와 목회자들과 그리고 우리교회 전 교인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입당 감사 인사를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할렐루야, 
하찮은 야초(野草)에도 가을이 비켜가지 않는 것을 보노라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 중에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소외시키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통치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가 여기 신림동에서 출발한지 13년 만에 소박한 예배처소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입당 예배라는 이 거룩한 명제 앞에 저는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합니다. 입당이라는 이름이 못내 어색하고 사치처럼 느껴지는 솔직한 저의 심정을 애써 다스릴 길이 없습니다. 
예측 가능한 이유를 설명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희들은 이제부터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교회를 신림 4동에 자리 잡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제 와서 깨닫게 됩니다. 

이 성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고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 오고 오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쏟아지는 축복의 집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앞서간 신앙 조부들이 물려준 거룩한 신앙 전통을 계승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시대 시대마다 부끄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이른바 실패한 역사입니다. 이것은 그 누군가에 의해서 복고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역사 발전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원천 고려파 내지는 통괄 고려파 가운데 실패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상황 윤리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고린도전서 6장 1-11절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신구약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 있는 패악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실패했던 교단 역사를 복고하는 반고소(反告訴)운동의 중심에 서야합니다. 그리고 반고소 정신을 신학화, 윤리학화, 목회학화, 교육학화, 선교학화 하는데 진력해 나아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명하는 정신에 따라 개혁주의 신앙노선을 견지(堅持)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아벨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선지와 사도들의 터를 중시하고 이어지는 칼빈, 매첸, 주기철, 손양원, 주남선, 한상동 석원태 목사로 이어지는 거룩한 신앙의 물줄기를 따라 도도(滔滔)히 흐르기를 원합니다. 

2003년 3월 15일(토) 장로, 집사, 권사 임직식을 가졌습니다. 저의 설교집 4, 5, 6, 7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신림 4동 504-13번지 대지 66평의 2층 주택을 매입했습니다. 
새 성전으로 옮긴 후 저는 전도만이 우리의 살길임을 강조했습니다. 2003년 11월 정기 당회(2003. 11. 30, 제 65회 정기당회)때에 교회운동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이 3.1.3.1운동이었습니다. 3.1.3.1운동이란 3년 안에 1,000명의 교인을 모으고 3년마다 1동의 건물을 교회용도로 매입하자라는 내용입니다. 
본격적으로 2004년 새 해가 시작되자 모든 직분자와 성도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준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4개월도 안된 채 먼저 교회는 목사관을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3년 안에 건물 한 동씩을 교회로 매입하는 운동은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우리교회보 2006. 12. 31). 

온 성도가 목사관 기물을 헌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정성을 다하여 본당 강단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05년 5월 1일에는 주차장 용도로 다가구 주택 1동(504-13번지)을 매입했습니다. 
우리교회는 단독으로 파키스탄 킹스웨이 교회를 건축했습니다. 우리교회는 땅을 증여 받았습니다. 미국 라스베가스에 거주하는 재미교포 송은상 씨로부터 강원도 홍천군 서면 대곡리 산 165번지 임야 138,744㎡(4만 2천평) 및 농지(1000평)를 증여 받았습니다. 
당회장 강구원 목사와 평소에 오랜 친분관계를 해왔던 송씨 문중의 대표격인 송은상 씨가 우리교회에 기증했습니다. 

Ⅲ. 우리교회는 성령의 위로로 진행된 교회였습니다. 

본문 9장 31절에 『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라고 했습니다.
교회 성장의 동력은 90%가 성령입니다. 나머지 10%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기 위로(파라클레시스, )는 격려, 권면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보혜사 성령의 사역을 나타내기 위해 이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랐던 20년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했습니다. 

Ⅳ. 우리교회는 숫적으로 증가되는 교회 입니다. 

본문 9장 31절에 『 …수가 더 많아지니라 』고 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성장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순교자 스데반의 설교와 그가 순교할 때 흘린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천재지변이 없는 한 외적으로 숫자가 불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해마다 교회에 등록한 수는 늘어만 갔습니다. 1989년도 86명, 1990년도 94명, 91년도 104명, 92년도 95명, 93년도 88명, 94년도 111명, 95년도 82명, 96년도 86명, 97년도 130명, 98년도 92명, 99년도 93명, 2000년도 64명, 2001년도 68명, 2002년도 71명, 2003년도 81명, 2004년도 86명, 2005년도 238명, 2006년도 235명, 2007년도 188명, 2008년도 114명, 2009년도 현재 51명이 등록하므로 지금까지 총 약 2,546명이 등록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교회에 등록한 숫자는 교회의 자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우리는 두리두리 운동을 자랑스럽게 마쳐야 합니다. 
철학의 창(窓)으로 보면 변함없는 것이 있지만 역사의 창(窓)으로 보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막연한 말을 하기도 하고 "역사는 변하고 만다."라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교회 역사는 그 개념자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20년 역사는 변하는 역사가 아니라 본래를 찾아가는 극복(克復)의 역사였다고 자평합니다. 
우리교회는 20년 동안 실패한 역사에 대하여 극복(克復)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克復)해야 할 일은 오히려 많아졌으니 무엇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물살이 센 곳에서 죽을 힘을 다해 거슬려 헤엄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헤엄하는 자신은 앞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아니하는 이것이 바로 우리교회 역사(歷史)의 선진성(先進性)이라고 생각합니다. 
1989년 이맘때 내 아내와 6살 난 엘림이, 그리고 3살 난 혜빈이와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명일동 선덕여상에서 한사코 나를 따라온 어린 여학생 몇 명과 대학생 몇 명에 장년 몇 명이 고작이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저의 어머니 엄분연 권사님은 이 교회를 위해 사는 날 동안 기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20년의 끈질긴 역사를 반추하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됩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시행착오로 인해 실패한 우리교회 역사에 대한 가책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롬 8:28) 하나님의 역사役事(construction work)를 생각하면서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저에게 잊을만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그 지역에서 옮겨보라는 충언이었습니다. 
교회 자리에 대해서는 주위에서 부정적인 말이 긍정적인 말보다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여기 이렇게 20년 전에 모습과 변함없이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20년 전보다는 제 육신이 많이 쇠하여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늘 같은 줄 알고 착각 속에 사는 것이 인생人生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저 자신의 과거의 사진을 보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리교회라는 말을 사랑합니다. 특별히 우리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울(fence)에서 왔고 울은 울타리라는 뜻입니다. 울타리는 위례(慰禮)에서 왔고 위례라는 말은 성(城, castle)에서 왔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온성과 같은 리교회는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할 것입니다(학 2:9). 
저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교회 신앙공동체(community)를 사랑합니다. 
우리 서로는 출신 지역부터 시작해서 서로 다른 것이 너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앞서간 신앙 조부들이 물려준 거룩한 신앙 전통을 계승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시대 시대마다 부끄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이른바 실패한 역사입니다. 이것은 그 누군가에 의해서 복고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역사발전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논어(論語)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보다는 조선 중기 실학자 박지원이 말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이 더 역동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발전은 창조나 진보적 사고보다는 잃어버린 본래를 찾는 극복의 자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의 신학과 신앙전통은 어거스틴 신학의 부흥이며 바울 신앙의 계승입니다.
우리교회는 아벨에서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선지와 사도들의 터를 중시하고 이어지는 거룩한 신앙의 물줄기를 따라 도도(滔滔)히 흐르기를 원합니다. 반고소 운동이야말로 우리 교단의 설립명분입니다.

20년 동안 그래 왔듯이 앞으로 우리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성경이 명한 실패한 신앙역사를 극복해 가는 것이 우리교회 역사이어야 합니다. 
역사를 대할 때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에 대한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정사는 진실이고 야사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역사관입니다. 정사는 관찬(官撰)이고 야사는 사찬(私撰)이란 점에서 구분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야사가 정사보다 진실한 것이 더 많은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교회 역사는 한국교회사나 교단사에 비해서 단순한 개교회의 기록물에 지나지 않는 이른바 사찬(私撰)의 차원일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 역사는 관찬(官撰)과 사찬(私撰)의 차원을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역사의 거룩하고 참된 방편이라는데 그 독보적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교회 역사는 1989년 5월 1일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바르게 실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사건이 우리교회 20년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