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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막 1: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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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막 1:29~31)

 
지난 금요일에 어느 부부가 외출을 했는데 앞서 가던 남편이 그만 무단 횡단을 했습니다.  때문에 깜짝 놀란 트럭 운전사가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바보 멍청이, 얼간이 머저리, 쪼다야! 길 좀 똑바로 건너"
이 말을 들은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
"그런데, 당신에 대해서 어쩌면 그렇게도 잘 알아요?"
 
한 번 태어난 인생, 그래서 한번 밖에 못사는 세상입니다.  두 번 태어나지 못하고, 두 번 살지 못합니다.  때문에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다가 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을 행복하고 멋지게 살다가 갈 수 있을까?  이것은 언제나 우리가 해결해야 할 모든 생명의 공통된 숙제입니다.  해결이 있습니까?  미쳐서 살면 됩니다.  큰 일을 하시려거든 크고 아름다운 일에 미치십시오.  작은 일에 미친 사람은 작은 일 밖에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큰 일에 미치십시오.  거룩한 일에 미치십시오.  우리는 미쳐야 합니다.  크게 미친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불행입니다.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비극입니다.  미치십시오.  미쳐야 자기 아름다운 삶에 대한 생명을 연소시킬 수 있습니다.  미쳐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할 수가 있습니다.  미쳐야 숨겨졌던 열정이 나옵니다.  미쳐야 상대와 내가 하나가 됩니다.  사람은 적어도 하나님과의 관계에만은 동일합니다.  누구나 미칠 수 있습니다.  미치십시오.
 
그런데 어디에 미칠 것인가?  거룩한 일에 미치십시오.  보다 큰 일에 미치십시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 미쳐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내 인생의 마지막 남은 그 순간에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그래도 내 삶은 행복했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거룩한 일에 평생을 미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1세기가 되면서 대 혼란의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같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집이 무너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고, 빌딩이 무너지는 것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면 그 시각부터 지옥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것을 막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껏 여러분의 삶 속에, 아니면 지나간 한 주간에 어떤 문제를 가지고 이곳에 나왔다고 할지라도 먼저 하나님 앞에 온 사람들이 처음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너진 마음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살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사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든 심약한 마음으로부터 성령에 취하여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성경 시편 29편 1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하나님이 자기 사랑하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사람이 주는 힘이 아닙니다.  환경이 주는 힘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주는 힘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은 하늘이 주는 힘입니다.  결국 마음의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음을 세우면 그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힘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더하여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내 마음의 무너짐을 막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을 사모하십시오.  나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나로 하여금 평강의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을 붙잡으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위로부터의 능력을 사모하셔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으셔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살리는 강력한 생명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도 내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국 삶의 형태를 좌우하는 것은 여러분 마음의 선택입니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인간의 말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할 것인가?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모든 말들에 대해서는 귀를 막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활짝 열고 오직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고통의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심령에 다시 하나님의 말씀만 들어가면 형제도 모르는 또 다른 일이 그 형제의 삶에 일어날 줄 믿습니다.  심령의 공허는 하나님이 개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마음이 공허하십니까?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여러분의 심령에 불같은 열정이 살아나기를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여러분의 심령에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정복하지 못하시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정복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치료할 수 없는 병도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풀 수 없는 문제도 없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건널 수 없는 바다도 없습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께서 무너뜨릴 수 없는 장벽도 없습니다.  이 땅에 근심의 뿌리가 얼마이든지, 그 앞날이 얼마나 절망적이든지, 매듭이 얼마나 단단하게 꼬였든지, 당한 고난이 얼마나 크든지, 설사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깊든지, 설사 내가 실패한 일들이 얼마나 크든지 상관할 것 없습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그분이 말씀합니다.
"나는 여호와라!"
"나 여호와는 너의 구원자, 너의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라!"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속자이신 하나님은 이루실 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어려울 때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어떤 전략도 써보고 책략도 찾아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야곱처럼 우리의 삶이 곤고하고 어려울 때 어디를 보아야 하느냐?  하늘의 사다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사다리가 내려오거든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무서운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아름다운 무지개는 뜹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무지개가 아직 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주님을 찬송하면서 그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끝없이 변하는 나의 감정이나 환경을 붙잡지 말고, 변치 않는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굳건히 붙잡히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가버나움의 회당과 시몬의 집은 가깝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면 가버나움 회당과 시몬의 집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그 거리가 10∼20M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회당예배가 끝난 다음에 예수님이 피곤하시니까 그것을 알아차린 베드로가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초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셔 갈 생각을 했을 때에는 장모님이 아프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장모의 발병은 돌연할 발병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점심때가 지났으니까 식사대접을 하려고 모셨을 가능성이 있는데, 문제는 집에 들어가 보니까 장모님이 아파 누워있는 겁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이것은 의외의 사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모님을 고쳐달라고 말한 것은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고칠 목적이 있었다면 베드로가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어쩌면 미안해서 베드로는 아무 소리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본문 30절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달라고 요청했던 것은 베드로가 아니라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아닙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이 집에서 예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들어가는 모든 집에서는 항상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항상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는 집마다 항상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언제나 은혜로운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의 집에서 일어났던 이 아름다운 사건이 오늘 우리 집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놀랍고도 은혜로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갔을 때 일어났던 이 놀라운 사건들, 축복의 사건들.  그 동일한 사건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실 때 일어날 수가 있다.  이 사실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는,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다는 것은 문제와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에 문제없는 삶의 현장은 없습니다.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어떤 인생도 문제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 이래로 아무도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까지 문제가 있어 왔고, 지금도 문제가 있고, 앞으로 문제는 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문제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없기를 바라는 인생, 이 사람은 더 피곤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도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제에서 도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문제를 피하는 사람마다 언제나 더 커다란 문제 앞에 서게 됩니다.  그것이 인생의 경험입니다.  인류의 모든 사람들이 겪었던 공통된 경험입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일단은 피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피해 가면 더 커다란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일으킨 그 상대방을 피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을 바꿔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남편도 바꿔 봅니다.  아내도 바꿔 봅니다.  직장을 바꿔 봅니다.  그런데 그것은 진정한 해결이 아닙니다.  피하는 것은 언제나 해결이 아닙니다.  진정한 승리는 피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승리는 부딪혀 극복하는 데 있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은 문제가 없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에는 아직도 여전히 문제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의 해결자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내 곁에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 예수님이 지금 내 가정에 들어와 계신다.  이 사실 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일부러 고난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 문제를 잘 해결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분연히 일어날 것입니다.  이 고난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낙심하고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면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질병의 문제도 하나님이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속상한 문제, 내적인 문제, 마음의 상처들도 우리 주님께서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당하고 있는 환경의 문제도 주님께서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보통 때는 불신자들도 아주 행복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폭풍우를 만나면 저 사람들은 누구에게 호소할까?  대부분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를 믿고 삽니다.  그러나 내가 한계에 부딪힐 때, 내 지성, 내 생각, 내 노력, 내 방법이 통하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 부딪힐 때 누구한테 가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붙들고 호소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답이 없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의 어머님이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혼인잔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 집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이 떨어졌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황해 합니다.
 
그런데 당황하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왭니까?  거기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문제의 해결자인 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한테 가서 이야기해 봐라.  그리고 마리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기억하십시오.  그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해결자이십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하면 문제는 극복될 것입니다.  극복되었습니다.  해결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는 있습니다.  더불어 있습니다.  아직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자가 우리와 더불어 함께 있는 한 우리는 문제를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을 문제의 현장에 모시면 즉각적으로 해결됩니다.  어느 한 순간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럴 때도 있습니다.  본문의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을 모시고 기도해도 당장은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오래 갑니다.  그러나 감추어진 어떤 이유 때문에 오래 지속하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수수께끼, 그 삶의 무거운 장벽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길이 보입니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문제도 마침내 해결될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풀렸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간 후에 돌이켜 보았더니 주님의 방법이 더 좋았던 방법인 것을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요구한 그대로 주님께서 응답하셨더라면 나는 더 커다란 인생의 곤고함을 경험했었을 것을.  그래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나보다 내 인생의 형편과 처지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 고난과 시련을 허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여러분 가정에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제의 해결보다도 더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보다도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일회성 문제 해결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무당한테 가는 사람은 무당하고 계속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  푸닥거리하고 그 문제만 해결 받고 오면 됩니다.  이것은 일회성 문제 해결입니다.  사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해결된다고도 합니다만 그것이 정말로 해결 받은 것입니까?  또 다른 푸닥거리를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님 앞으로 오라고 초청하실 때에 그는 일회성 문제 해결을 약속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보다 더 중요한 영원한 관계 속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가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가 아닙니다.  "내게로 오라."  그 분과 관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놀라운 분이고,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구세주요, 주님이신가!  그분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 분인가! 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과 나 사이에 영원한 사랑의 관계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문제 해결보다 훨씬 더 좋은 축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시몬의 장모를 치유하시는 장면을 보면, 대단히 암시적입니다.  본문 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똑같은 사건을 취급하고 있는 마태복음 8장 15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똑같은 사건을 마태는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만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만진다는 말의 희랍어는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만짐을 표현해 주고 있는 단어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녀의 손을 조용히 만지셨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손을 만지실 때 시몬의 장모는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이 분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느낌, 그것은 참으로 좋은 경험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병이 낫는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체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서 기도의 응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나 더 좋은 주님이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나의 구세주라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은 훨씬 더 좋은 사실입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계기가 병 때문에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도하자마자 병 나음을 얻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병 때문에 교회에 나왔고, 병 때문에 기도를 시작했고, 병 때문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병이 낫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예수를 믿습니다.  왜 그렇게 믿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기도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놀라운 분인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병의 문제뿐만 아니라 죄의 문제를 깨닫고, 예수님이 죄에서부터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늘의 소망을 가집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을 이깁니다.  승리합니다.  이것은 더 놀라운 축복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가 있다는 것은 더 위대한 축복입니다.  더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동일한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그가 우리의 가정 속으로 들어오시면,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만져 주시면, 그의 만짐을 경험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그 사랑으로 새로워진 바울.  바울의 한 평생을 지배하던 놀라운 감격의 고백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신다."

우리가 이 사랑을 체험하고, 이 사랑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보다 놀라운 체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정에,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체험이 일어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됩니다.

본문 31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낫고 나니까 얼마나 감사와 감격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들을 수종했다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저희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8장 15절에 보면 '예수께 수종들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 질병을 고쳐 주신 주님이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주님, 제가 섬기겠습니다."

열심히 밥도 하고, 식사도 준비하고 또 예수님과 함께 한 사람들을 섬기고…  그 때만 했겠습니까?  희랍어 원문에 보면 여기서 "수종들더라"는 말이 미완료 과거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섬겼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사건 이후에도 이 여인이 주님을 계속해서 섬겼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은혜 받은 자의 증거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 구원받은 사람은 마음속에 감사가 있습니다.  감격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주님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위하여 섬기는 자가 되고야 말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한 평생 주님을 섬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주님의 넘치는 사랑을 뜨겁게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헌신자로, 섬기는 자로 세움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분들 가운데는 두 종류의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분은 은혜 받지 못하고 그냥 교회에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에 익숙해져서 봉사는 합니다.  그런데 구원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모릅니다.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을 모릅니다.  그냥 봉사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봉사는 반드시 오래가지 못합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집어치웁니다.

그러나 교회에도 봉사하다 보면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끝까지 봉사의 자리에 서는 사람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평생 변함없이 주님을 섬깁니다.  끝까지 주님을 섬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의 장모가 인생 황혼의 마무리가 가까왔을 때 그는 자기 사위에게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어느 날 자기 집에 예수님을 초청했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의 병들었던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의 손길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구원을 체험했던 베드로의 장모는 얼마나 사위에게 감사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부모님을 위해서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많이 있습니다.  가정 주일, 어버이날.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들 얼마나 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분들 곁에서 함께 동행해 드린들 어디까지 가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부모님들이 죽음의 다리를 건너갈 때 아무도 같이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사랑하는 어머니,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 우리의 부모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면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 죽음의 다리를 건너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줄 믿습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효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부모님 여러분,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어느 부모인들 자식에게 최선을 다해서 해 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자식들에게 아무리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도 끝까지 자녀들을 붙들어 둘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결국 부모의 곁을 떠나갑니다.  걱정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해 준다면 부모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때, 부모가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을 때 그들은 내가 소개해 준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승리의 길을 걸어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해 드릴 수 있는 최대의 효도가 있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 부모의 손을 잡고 인생의 황혼을 평안과 여유와 안식 속에 사시다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시고, 우리는 내 사랑하는 부모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그 주님 앞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를 다시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집에 들어오시면 이런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구원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들어오셔서 날마다 놀라운 삶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특별한 사람들을 통하여 그 시대와 역사 속에 당신의 새로운 비상구들을 놓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요셉을 통해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상구가 열렸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증거하는 저는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복의 역사를 철저하게 믿습니다.  복음의 불길들이 타올랐던 나라의 선대들이 이루어 놓았던 그 아름다운 역사들,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던 조상들이 허락 받은 그 위대한 유산들.
 
사랑하는 여러분, 기왕 믿을 바에는 우리도 한 번 우리 시대에, 우리 자손의 후대에 신명기 28장의 복을 이루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예수의 계절, 성령의 푸른 계절, 하나님의 복의 비상구를 열 믿음의 조상들이 한사코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여러분의 가정에 주인으로 모심으로써,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고, 온전히 섬김으로 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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