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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 (눅 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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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다시 사셨다 (눅 24:1~7)    
 
 
‘예수님이 다시 사셨습니다.’ 더 이상 기쁨의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사망권세 이기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교회의 생일입니다. 오늘이 성도의 생일입니다. 우리의 기쁨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원한 기쁨, 영원한 생명을 주고,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세세토록 찬양하며 영광 돌려야 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신, 사망권세 이기신, 모든 저주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축복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요 승리의 날입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철학도 어떤 나라도 가질 수 없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그의 나라 백성이 되었고 그 은혜아래 살아가는 생명의 은총을 값없이 받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축복된 성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었고, 사망의 문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 문을 여시므로 우리는 생명의 길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4일 저녁 8시 30분. 일본 천황 ‘히로이토’는 종전 사인을 하고 12시에 녹음을 해서 1945년 8월 15일 정오에 온 세계를 향하여 항복하는 방송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지배아래에서 고통당하던 수많은 사람들, 전쟁터에서, 바다에서, 들에서, 산에서 무참하게 죽어가던 생명들이 자유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모든 나라는 자기의 국기를 꽂고 주권을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온 인류를 사로잡고 있던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유를 얻고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히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의 종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에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모두가 죄인이 되고 사람이 왕 노릇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배했던 것은 사망이었습니다. 죄였습니다. 마귀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의 용서함을 받고 우리를 지배하던 사망권세는 예수님이 무덤에 내려가셔서 사망권세와 싸워 이기심으로 사망은 물러가고 우리가 원래 얻어야 할 모든 축복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1910년 까지는 우리는 독립 국가였지만 1910년에 합병되면서 일본에 의해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언어도 빼앗겼습니다. 성도 빼앗겼습니다. 이름도 빼앗겼습니다. 땅도 주권도 다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 마귀에게 빼앗겼던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두 찾아 주신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므로 우리가 모두를 찾듯이 우리가 찾은 것은 우리 힘이 아닌, 주 예수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보다 더 큰 능력이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요즘 생각해 보십시오. 죄가 얼마나 능력이 있습니까? 아무리 높은 사람도 잡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 있는 사람도 죄 앞에는 전혀 방법이 없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성경을 말씀해 줍니다. 죄는 인류전체를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지옥에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죄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형언도 이상은 없지 않습니까? 죽음이상은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죄는 울어서 또는 선을 행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공로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죄의 능력이 지배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여 앞으로 온 인류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오실 메시야를 준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그들이 죽어야 했지만 양을 잡아 대신 죽임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실 그리스도에게까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용납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이 올 때까지 일시적으로, 임시방편으로 양을 잡아 죽이면서 그 진노에서 사망을 면하게 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집행을 유예하는 것입니다. 죄는 죄지만 잠깐 미루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양을 끌고 나옵니다. 내 대신 죽을 양을 끌고 와서 내 죄를 양에게 인계하고 나 대신 피를 흘리고 죽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삶을 얻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1500년 동안 끊임없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수많은 양을 이스라엘은 대신하여 죽이면서 삶을 얻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은 내 죄를 양에게 인계해 주는 절차를 밟습니다. ‘야훼 하나님, 김삼환 목사가 어제 지은 죄를 이 양으로 대신하오니 용서해주세요.’ 하고 그 자리에서 양을 잡습니다. 칼로 찔러 피를 빼서 양은 죽고 양의 피는 하나님 앞에 뿌리면서 용서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일 죄를 지으면 또 양을 잡는 것입니다. 모레 지으면 모레 또 잡는 것입니다. 죽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양의 죽음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온 인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완전히 사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어 주셔서 인간의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감옥에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사업을 하겠습니까? 결혼을 하겠습니까? 돈을 벌겠습니까?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마 백가지를 제해놓고 아들을 건지는 일에 모든 힘을 다 쏟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죄에 빠진 우리 인간을 건지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어 주셔서 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여러분을 축복해 주는 것만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사랑하는 독생자를 보내어 주신 사랑이야 말로 하나님의 참 사랑의 중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유대인만을 위한  양이 아닌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요한복음 1장 3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나아갔는데 이제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나아가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죽지 않는 것은 그의 죽음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또 부활하셔야 했을까요? 만약에 죽기만 하셨다면 그는 훌륭한 분은 틀림없지만 메시야는 못 되십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니까요. 이순신장군이 국가를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하셨지만 죽고 나면 끝나고 맙니다. 예수님은 장군의 죽음이 아닙니다. 의인의 죽음이 아닙니다. 애국자의 죽음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죽는 훌륭한 성인의 죽음도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만왕의 왕으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면서 우리의 나라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다스리십니다. 그전에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고 마귀가 우리를 지배했고, 사망이 우리를 지배했지만 이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아들이 지배하고 생명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로마서 8장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여러분을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죄를 지어 감옥에 가는 것은 죗값으로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제는 죄가 지배하니까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올 수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나올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법으로 들어간 사람도 법위에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해서 내보내면 사형수든지 누구든지 나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죗값으로 죄의 저주를 받았다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살려주셨습니다. 법에 의해서 버림받은 우리를 하나님의 법으로 살려주시고 영생을 얻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정죄하고 세상은 어디에도 여러분을 구원할 자가 없지만 사탄으로 말미암아 모든 범죄,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 노릇한 이 모든 저주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깨끗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이길 수 없는 가장 큰 힘은 죄요, 사망이요, 마귀입니다. 이것을 사탄의 삼위일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가 있는 곳에 사망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같이 갑니다. 문어 다리나 문어 머리가 같이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를 죄를 짓게 합니다. 죄를 지으면 망합니다. 이러한 이 죄의 능력을 이 세상에서 이길 자가 없습니다. 아무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보다 더 크고 죄를 다스리시고 용서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은 죄를 다 사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하리라, 너희 죄를 멀리 버렸다, 내 등 뒤로 던져버렸다, 도말했다, 소멸했다, 우슬초로 정결하게 했다, 깨끗하게 했다.” 그런 용서받는 용어를 수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가 태워지고, 사라지고, 녹아지고, 멀리 보내고, 등 뒤로 돌리고, 깨끗하게 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마귀도 십자가 앞에서 다 멸망을 당했습니다. 세상은 마귀를 섬길 뿐인 것입니다.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옛날 궁궐에 가 보십시오. 임금이 앉아 있는 자리에는 위에나 아래나 용의 그림이 있습니다.  왜 용을 그려놓았을까요? 귀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터키나 유럽, 남미나 세계를 다 다녀보십시오. 용 정도가 아닙니다. 용이 있어도 머리가 열 개인 뱀입니다. 어떤 뱀은 수십 개의 뿔이 난 뱀들로 다 해놓았습니다. 흉측하게 해 놓았습니다. 왜? 가장 큰, 머리 백 개 달린 귀신으로 자기를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항상 권력이 불안한 것입니다. 귀신이 무서운 것입니다. 밖에 있는 군대는 군인이 지켜주지만  귀신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줄 것은 가장 강한 귀신, 머리에 뿔 달린 귀신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귀신을 쫓아낼 때는 더 크고 강한 귀신으로 쫓아냅니다. 

우상숭배 하는 곳에 가 보세요. 문 입구에 흉측하게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못 보셨습니까? 왜 그렇게 해 놓았을까요? 다른 귀신이 들어오지 말라는 겁니다. 나를 보고 무서워서 도망가라는 겁니다. 내가 더 힘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 나라에 가보면 전부 흉측하게 해 놓은 것은 귀신이 다른 귀신이 겁나서 그 귀신만 지배받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다른 귀신 못 오게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뿐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종교도 다 사망의 지배아래 있고 죽습니다. 좋은 일 하다가 죽습니다. 죽음에서 건져낼 자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이 원래 가졌던 이 생명을 주님이 주시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로 원래 행복했던 축복을 주님이 내려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부활의 주님과 함께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주를 믿으면 멸망치 않습니다. 주님은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다른 것은 다 그 아래 것입니다. 다른 것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건져 주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같이 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인 것입니다.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일본 천황이 항복한 것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는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이 항복한 소식을 듣고도 정글에 들어가서 괌에서 30년까지 있었던 분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은 그럴 나라가 아니야, 절대로 망할 나라가 아니야. 성경에는 의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멸했다고 하면 멸한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일본은 우리를 영원히 다스릴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로, 권력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있는 사람만 구원받지 않겠습니까? 없는 사람은 구원을 못 받겠지요.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믿음이라고 하는 이 길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만약에 20년을 믿어야 구원을 얻을 것 같으면 임종을 앞 둔 사람은 구원을 못 받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임종을 앞에 둔 사람도 구원을 받도록, 1분 내에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만 교회에 나와서 구원을 받는다면 장애인은 구원을 받지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차별이 없게 하신다고 로마서 10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차별이 없게 하는 거예요. 남자나 여자나 배웠으나 못 배웠으나 어른이나 아이나 있거나 없거나 건강하거나 장애인이나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믿으면 주님의 백성이 됩니다. 믿으면 무덤에서 나옵니다. 믿으면 죄가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 합니다. 마귀가 여러분에게서 떠납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다스리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전에 생각했던 생각을 다 버리고 주님 없이 사망의 지배를 받고 마귀의 지배를 받던 삶은 다 떠나갑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링컨은 어려서 어머니도 일찍이 돌아가시고 결혼해서는 아이도 죽고 아내도 죽고 선거는 여섯 번이나 떨어져 의회선거도 떨어지고 하원선거도 떨어지고 하는 일마다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링컨의 친구는 링컨이 도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자살하는 줄 알았답니다. 그랬는데 링컨의 얼굴이 밝고 용기백배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친구가 물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되었냐?” “나는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으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주님을 만나러 나옵니다. 어떤 분은 질병 속에서 만납니다. 고쳐주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낙심과 좌절에 있던 엠마오의 제자들같이 죽음으로 허무하게 돌아가다가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주님을 만납니다. 교회에 봉사하다가 주님을 만납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만납니다. 말씀을 듣다가 만납니다. 설교시간에도 주님을 만납니다. 꿈에도 주님을 만납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전쟁터에 가다가 주님을 만나서 로마를 통일했습니다. ‘솔제니친’은 암에 걸려서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다가 주님의 십자가를 그어줄 때 주님을 만나면서 변화 받고 병도 치료받고 러시아에서 나와 자유를 얻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여러분을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수양의 종교가 아닙니다. 만남의 종교입니다. 묵상하고 배우는 교육의 종교가 아닙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도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주님을 만남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주님을 떠나서 부활의 주님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 이 사회를 개혁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이 사회가 얼마나 상처가 깊고 회복할 수 없고 치료할 수 없는 중병에 걸려있지 않습니까? 가정위기, 청소년위기, 교육위기, 경제위기, 정치위기 다 위기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인터넷에 찌들어서 폭력화되고 음란한 곳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 하고 있습니다. 단칸방에서 아무것도 없는데 세 살 난 아이도 컴퓨터에 앉아 놀이를 합니다. 할머니하고 사는 어린아이도 초등학교 5학년인데 하루에 12시간씩 인터넷을 한다고 합니다. 라면만 먹고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인터넷만 한답니다. 이 사회는 하나님을 떠나서 여러 가지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주님을 떠나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길은 주님에게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했습니다.(요 14:6)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생활도 변합니다. 그 전의 생활은 어두움이 지배하던 생활이었습니다. 우리의 언어도 어두움이 지배했습니다. 죄가 지배했습니다. 마귀의 유혹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의 얼굴 모양도, 우리의 표정도 마귀가 지배했습니다. 좋은 가정에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 불만하고 부정적으로 살아 온 저희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잘못된 삶을 무덤에서 나와서, 예수님이 무덤에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제 주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사탄에 의해 잠재되어 있는 나쁜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당뇨병에 걸리면 증상이 있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면 음식을 먹어도 자꾸 배가 고프고 소변은 많이 나오고 피로해지고 권태감이 자꾸 생긴다고 합니다. 몸이 자꾸 말라 들어간다고 합니다. 여위어진다고 합니다. 피부는 부스럼이 자꾸 생기고 습진이나 무좀이 잘 걸리는데 낫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항력이 약해져서 곪아도 잘 낫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력에도 장애가 생긴다고 합니다. 시력이 약해진다는 거예요. 당뇨병의 수 십 가지 그런 증상이 있습니다. 

내 안에 죄가 있다, 마귀가 있다는 것을 사람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증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워하고 죄를 좋아하고 그런 것은 아직까지 사망이 내 안에 있고 마귀가 내 안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나와야 할 줄 믿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 안에 있는 당뇨병이 문제입니다. 고혈압이라고 하는 것은 자꾸 머리가 아프고 현기증이 나면 그게 혈압이라는 거예요. 혈압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거예요. 

로마서 1장에 죄로 인해 불평 불만하게 하고 남을 미워하게 하고 시기하게 하고 마음이 강퍅해진다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서 3장에도 “너희가 죄로 인하여 강퍅하게 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죄가 나를 강퍅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 이브가 얼마나 좋은 사람, 순종의 사람, 사랑의 사람, 평화의 사람이었습니까? 하지만 범죄하고 나니까 얼마나 강퍅해집니까? 아담을 보고 하나님께서 “아담아! 너 왜 범죄했느냐?” 하니까 아담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했습니까? 내가 먹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여자를 내게 주어서 저 여자가 먹게 해서 나로 범죄하게 합니까?” 

사랑하는 아내에게, 약한 여자에게 다 책임을 넘기지 않습니까? 약한 여자에게 왜 떠넘깁니까? 자기가 회개해야 하는데 마음이 강퍅해서 다 죽고 나 혼자 살겠다는 거예요. 안 맞는 겁니다. 여자는 살리고 내가 죽으려 하고,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 남자다운 것 아닙니까? 원래 경상도는 안 그렇습니다. 진짜 경상도 사나이는 사나이다운 게 있습니다. 경상도 사람 잘 참고 조용하게 지나다가 중요한 때는 책임 질 줄 아는 그런 남자다운 면이 있는데 마누라를 제물로 삼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훌륭한 남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안이 죄를 지으면, 강퍅하면 남을 자꾸 욕하는 거예요. 북한을 보세요. 자꾸 남한을 욕하고 왜 그럽니까? 자기가 죄가 많을수록 남을 공격합니다. 이단들이 교회를 향하여 자꾸 공격하는 것은 자기들의 죄가 너무 많으니까 기성교회를 자꾸 욕하는 겁니다. 남을 공격할수록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향하여 막 공격하면 그건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남편에게 공격하면 그건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브를 보고 “너 왜 먹었느냐?” 하니까 이브가 내 책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랬습니까? 저 뱀이 먹으라고 했지 않습니까?” 뱀한테 책임전가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는 길은 예수 믿고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내 잘못입니다. 주여 용서해 주세요.” 이 이 공식 하나만 알아도 어디에서든지 길이 열립니다. 가정이 위기입니까? 질병입니까? 환난입니까? 무엇입니까? “주님! 내가 주님 앞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문제가 술술 풀립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역사입니다. 성경의 모든 문제들은 인간의 힘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주여! 나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신앙,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앞날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향하여서도 섬기며 사랑하며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선한 손길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전에는 높은 사람, 대단한 사람만 사귀려고 했지만 실상 살아보면 어려운 분들, 약한 분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목사가 좋은 점은, 교인들이 좋을 때는 안 부릅니다. 다 어려울 때, 환난 당하고 수많은 위기 앞에서 주의 종을 찾습니다. 그래서 목회는 굉장히 힘듭니다. 

많은 성도들이 어려울 때 주의 종을 찾습니다. 그러면 기도해 줍니다. 눈물로 기도해 줍니다. 다른 힘은 없지만 기도해 드립니다. 그러면 그렇게 행복합니다. 목회는 바로 이것 때문에 행복합니다. 약한 자를 만납니다. 병든 자를 만납니다. 시험 든 자를 만납니다. 상처 입은 자를 만납니다. 절망한 자를 만납니다. 매일 편지가 날아옵니다. 매일 이런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그러면 같이 기도해주고 눈물 흘릴 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얻지 못하는 행복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어려운 분들을 찾아가서 위로해주고 사랑해주고 만날 때 오는 줄로 믿습니다. 새 사람의 삶,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은 그 전의 삶과 다른 것입니다. 이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여러분 혼자서 이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어두움에 있는, 사망의 권세가 덮고 있는, 악한 세력이 덮고 있는 우리 이웃과 민족을 주님에게로 인도해야 합니다. 나는 마귀하고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증상을 보면 불평불만하고 낙심하고 술로 밤낮을 사는 사람은 그 증상이 당뇨병이라는 거예요. 보면서 아,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거예요. 머지않아 안 되는 병에 걸린다는 거예요.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우리 인류의 적입니다. 마귀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의 왕국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때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합니다. 오늘 성가대에서도 ‘헨델’의 ‘메시야’를 불렀는데 ‘천사의 합창’도 불렀습니다. ‘베토벤’은 원래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기가 위기가 왔습니다. 귀가 멀고 생의 절망에 빠졌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심포니 No 9’ ‘천사의 합창’이 그래서 나온 거예요. 얼마나 좋은 작품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남은 작품, 남은 인생,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를 바랍니다. 먹어도, 살아도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은 전혀 다릅니다. 수박 철이 다가오니까 수박을 잘 먹는 방법을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집이 수박 밭을 했습니다. 참외하고 수박을 해마다 많이 심어서 저도 많이 먹었습니다. 남은 걸 먹고, 오래 된 걸 먹고, 못 파는 걸 먹고 참 많이 먹었는데 수박을 잘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수박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너무 차갑게 해서 먹으면 안 됩니다. 너무 차게 먹어서 맛있는 게 아니에요. 

차가운 물에 수박을 한 통을 넣어서 밤새도록 거기 넣었다가 이른 아침에 칼로 수박을 위에 뚜껑 부분만 딱 자르고 그 다음에는 숟가락으로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맛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칼로 잘라가지고는 맛이 없습니다. 토마토도 잘 먹는 방법은 손으로 잘라야 합니다. 칼을 대면 맛이 없습니다. 손으로 잘라서 거기에 꿀을 조금 발라서 먹으면 기가 막힙니다. 같은 인생을 살아도 멋지게 사는 길은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 구원의 주님, 영생의 주님, 여러분을 완벽하게 지켜주시는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마리아같이 베드로같이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부활하신 이 귀한 생명의 날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려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무덤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사망 권세 멸하시고 우리의 왕의 왕이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우리 주님 부활하신 그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항상 필요한 복의 근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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