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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마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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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마 10:6~7)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마 10:6-7). 

Ⅰ. 본문해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도로 삼으셔서 파송하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좀 이해하기 힘든 예수님의 명령이 등장합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먼저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얼핏 보면 이것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마 28:!9). 그러나 여기서의 말씀은 사도들에게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과 절대로 접촉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지역을 우선적으로 방문하지 말도록 제한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의 저작 의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그들의 혈통으로 하나님의 구약의 약속을 따라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전파하고, 특별히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던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사도로 삼으셔서 전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그들을 보내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Ⅱ. 전도자로 보내신 마음 

예수님이 전도자를 보내신 마음은 교회를 세우신 마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도 삼아 보내시기 전에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고, 백성들의 질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일들을 하신 동기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 

A. 목자 없는 양 

제일 먼저 예수님이 무리들을 보실 때 목자 없는 양처럼 보셨기 때문에 제자들을 사도로 삼아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기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빠른 다리, 날카로운 이빨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양은 그런 것들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약백성들을 양떼로 비유하신 이유는 양이 착하고 온순해서라기보다는 목자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그와 같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 것은 영혼과 정신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혼과 정신이 탁월하기 때문에 인간은 오히려 하나님께 더 많이 의존할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하고 타락할 때 인간 이하가 될 수 있는 것도 인간뿐입니다. 결국 인간의 근본적인 불행은 물질의 부족, 인간관계, 무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인간이 진정 불행한 이유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존하며 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목자들을 주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도 그들 중 한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지 않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B. 민망히 여기시니 

이런 처지를 예수님께서는 “민망히 여기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표현의 본래의 의미는 ‘창자에 이르기까지 감동을 받다’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혼의 자리가 창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을 올바로 번역한다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셨으니” 정도로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보내시면서 “너희들은 나의 제자이고, 네가 큰 능력을 줄 테니 너희만 가면 충분하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늘 아버지께 청하여 더 많은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사도로 파송하셨던 마음을 제자들에게 부어주신 것처럼 교회에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큰 은혜를 받고 나가서 할 사역은 목자 잃은 양 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영혼들을 위해 복음을 들고 나섰던 사도들의 일을 뒤잇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먼저 하셨던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보십시오. 정말 예수님의 마음이 있습니까? 목자이신 예수의 사무치는 마음으로 길 잃은 영혼들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그분의 마음이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것을 가르치기 보다는 교회가 세상과 다를 것 없다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자 합니다. 이것은 크게 더 크게 세를 불리려는 바벨론 나라의 특징일 뿐입니다. 예루살렘의 특징은 크기가 아니라 거룩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도로 삼아 파송하였을 때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목자 잃은 양처럼 유리하는 백성들을 볼 때 가슴이 찢어지는 그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었고 제자들이 바로 이 마음을 나누어 가지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전파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마음을 교회가 충만히 가지지 않으면 형식은 교회이지만 진정한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Ⅲ. 잃은 양을 사랑하심 

이렇게 양떼를 민망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잃어버린 양을 사랑하시는 마음이었습니다. 

A.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와 복음을 먼저 받은 유대인들에게 우선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잃은 양이 되었다는 해설적 의미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스라엘 집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형식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삶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영적인 축복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즉 그렇게 잃어버린 양이 된 비참한 영혼들에게 먼저 다가가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잃은 양으로서의 우선성과 관련됩니다. 

B. 잃은 양의 우선성 

잃은 양의 우선성은 이스라엘의 우선성에 기초합니다. 세계사에서 이스라엘은 하찮은 크기이지만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전개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행동과 계시의 말씀을 통해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이스라엘에 먼저 알리시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고 계시된 바를 터득하는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며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의해 완성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구속의 사실들은 이후에 성령을 통해 계속 적용됩니다. 즉 구원은 종결되었지만 그 적용의 역사는 계속 진전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계시해 주는 계시의 역사는 끝났지만 이루어진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가 적용되는 구원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은 구속의 계시를 완성하는 데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그 계시가 적용되어 구원을 얻은 우리는 구속사가 전개되는 선교적인 시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도구들이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언약적인 면에서도 그들은 언약을 먼저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언약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새 언약이 도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새 언약은 근본적으로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 모든 언약과 형태에 있어서는 달랐지만 본질에 있어서 동일한 하나의 언약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족장들의 역사 속에서 가장 먼저 언약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구속의 유익을 우선적으로 누리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또한 신약의 말씀도 그들에게 먼저 주어졌고, 성령도 먼저 임하여 구속의 완성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부어진 성령의 놀라운 역사는 과거적으로 보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미래적으로는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로 나아가는 관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도 제일 먼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교회 안에서 믿다가 미끄러진 영혼들, 내 골육지친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교회 안에 미끄러진 영혼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없는 사람들이 다른 문화에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만 천하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의 화급한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면서, 먼저 이스라엘 양에게 복음을 전해주라는 말씀에 가슴 깊이 동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의 마음이 가득해서 그 마음으로 영혼들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은혜에 목말라 헐떡이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지니지 않은 사람과 교회는 헤아릴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역시 주님이 당신의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 전 영혼에 갈급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까? 


Ⅳ. 전도자에게 분부하심 

주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복음에 빚진 사람들의 섬김의 손길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때 우리도 똑같이 그 사랑에 압도되어서 사랑을 품고 다른 영혼들을 위해 이바지 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자기 인생 밖에 몰랐는데 우리보다 불행하고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사랑들이 너무 많이 식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한 번 마음에 강하게 사무치는 것보다 늘 십자가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교회가 이 마음을 가질 때 아무리 작더라도 그리스도를 충분히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번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반듯한 신앙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마음이 없다면 어찌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예수님은 세 가지를 분부하셨습니다. 

A. “가라” 

첫째는 “가라”였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문맥에서는 충격적인 것입니다 구약의 선교적인 구조는 “오라”의 구조입니다. 예수살렘, 율법, 이스라엘이 여기 있으니 너희 이방인들은 이리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단의 왕국이 부서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밀려들어오는 “가라”의 선교적인 구조의 예표였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이것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일정한 거처도 없이 당신의 공생애를 나그네처럼 사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일생을 갈릴리로, 사마리아로, 유대 땅을 두루 다니시며 성과 촌에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가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성인신의 원리와도 일치를 이룹니다. 구약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르셨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의 몸을 입고 친히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명령대로 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교회에서 큰 소리로 외칠 때 와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약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진짜 불쌍한 사람들은 자기 발로 하나님 사랑을 찾기 위해 걸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여러분들이 가야만 합니다. 


B. “전파하라” 

두 번째는 “전파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들려주라는 것입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사람들이 진리에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은 회심한 순간 내 인생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을 모른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사랑하는 핏줄, 아내, 남편, 자녀들에게도 그것은 역시 사실입니다. 당장 그 복음의 진리를 들려주십시오. 

C. “거저주어라” 

마지막으로 “거저 주어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그분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전도를 위해 얼마나 많은 물질과, 시간을 쓰고 있는지,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회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은 지금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사랑이고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 물질, 건강, 시간 재능까지 복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Ⅴ. 결론: 영혼을 사랑함 

하나님의 크신 사랑 없이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지와 어둠에 갇혀 버려진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우리처럼 불순종하셨을까요? 아마도 쉴 새 없이 주린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진리의 복음으로 그들의 상처에 싸매주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들을 깊이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랑이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보이십시오. 자기 영혼이 추할 때 남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자신의 영혼을 위한 눈물도 솟아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깊이 끌어안고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받은 것들을 거져 주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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