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예수 부활의 삶 (고전 15:50~58)

  • 잡초 잡초
  • 251
  • 0

첨부 1


예수 부활의 삶 (고전 15:50~58)


1. 예수 부활은 인간에게 죽음 저 너머에 영원한 세계,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인류에게 가장 복된 소식이며, 모든 인류가 가져야 할 참되고 영원한 소망입니다. 제가 수술 전후 병실에서 느낀 이야기입니다. 수술을 앞두거나 끝낸 환자, 그리고 그의 가족 모두에게 소망이 있다면, 병든 몸이 깨끗이 치유되어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수술 후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면 수술 전후 느꼈던 일말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가족들과 함께 생기(生氣)가 감돌게 됩니다. 잠시 동안의 절망을 뒤로 하고 희망의 나래를 펴며 밝은 내일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런데 수술 후 더욱 심각한 두려움을 안고 절망하며 끝내 회복되지 못하여 영안실로 옮겨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회복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의 줄을 놓지 못하고 애처러울 정도로 몸부림치다 절명(絶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회복되어 희망을 안고 병실문을 나가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하고 영안실로 실려가는 사람이나 그 누구라도 인생은 ‘죽음에 이르는 병’, ‘죽을 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갈(傳喝)을 그 누이들로부터 받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1:4)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예수께서는 나사로 남매를 특히 사랑하셨지만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에도 곧장 달려가시지 아니하시고 이틀이나 지나서 “(요11:11)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동행하던 제자들이 ‘주여 그가 잠들었으면, 일어날 것입니다.’고 하자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그가 잠이 들어 쉰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은 너희에게 도리어 잘된 일이므로, 기쁘게 생각한다.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믿게 될 것이다. 그에게로 가자.” 그러므로 ‘잠들었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잠든 자가 깨어날 때가 되면 깨어 일어나듯이,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병든 나사로를 두고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나사로가 죽었다는 비보(悲報)를 받지 않으셨음에도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아시고 “(요11:11)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말씀하신 것은 결국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나사로의 부활을 염두에 두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죽었던 나사로의 부활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과 생명이 되심을 믿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상가(喪家)를 찾자 마르다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며 나사로의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부활을 세상 종말에 성도들이 부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요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부활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활을 지금 여기서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매장된 무덤을 찾아가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시자 죽었던 그가 손발이 베에 묶인 채 나왔습니다. 그의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 있었는데 예수께서 “풀어서 다니게 하라.” 고 말씀하시자 완벽하게 다시 살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르다의 말대로 예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찾아가셨더라면 죽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을 거기 계셨을지라도 나사로는 죽고 다시 살았을 것입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부활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나사로는 죽고 다시 살았을 것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시므로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는 말씀으로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부활에 이르는 길’임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상가집을 찾아 위문하면 그만인데 무덤까지 찾아가셨다는 것은 나사로의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부활의 전주곡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기 때문에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어떠한 죽을 병에 들었다 해도 부활과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신다면 그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임하는 병은 어떤 병일지라도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부활에 이르는 길임을 깨달으시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나사로의 부활은 ‘혈과 육’의 부활, 다시 말해 병들기 전 상태의 몸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마르다가 고백한 것처럼 ‘마지막 날 부활’,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부활이 아닙니다. 나사로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과 생명이 되심을 믿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혈과 육’의 부활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어도 몸에 전혀 영향이 없는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눅24:41-43)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살과 뼈를 보고 만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눅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있고 닫힌 문을 그대로 두고도 들어갈 수 있는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서울에서 샌프란시스코에 가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고 10시간이나 걸리는 몸, 그래서 피곤해지는 몸이 아니라 10시간이라는 시간과 비행기라는 공간을 초월해 순식간에 샌프란시스코에 나타나기도 하고 서울에 나타나기도 하는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다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아프지 아니하고 늙지 아니하는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아니하는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병과 사망이 결코 이기지 못하는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변화된 몸을 ‘부활체’(復活體)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부활의 몸을 말합니다. 이러한 몸으로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부활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실 때, 그의 재림을 알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어 다시는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몸으로 부활되어 영생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사람들(고전15:3-4)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어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이 인생을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부활과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을 병’을 이긴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예수 믿고 예수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세상의 어떠한 사랑과 미움에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예수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세상의 어떠한 거짓된 세력과 그 유혹에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예수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세상의 어떠한 시련과 악에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활 신앙이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견고하여 사망과 세상을 이기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 물질과 권세, 지식과 명예 등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정복했다 해도 자신의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부활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인생 패배자입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자신의 죽음을 예수 부활로 이긴 사람이 영원한 삶의 승자입니다. 예수 부활의 삶으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예수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만 합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붙여진 권면입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는 것은 썩어져 흙(먼지)으로 돌아갈 혈과 육을 위해 살지 말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주의 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만이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하는 일은 비록 냉수 한 그릇이라도 결코 하나님 나라에서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마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먹든지 마시든지 주를 위하여,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해 사는 삶, 영원한 상급과 영광이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롬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살든지 죽든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존귀하게 되는 생활이 예수 부활의 삶을 사는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것입니다.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예수 부활의 삶을 위해서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바라보고 위엣 것을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썩어질 땅엣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4을 보겠습니다. 

(골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 뜻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항상 주의 일을 생각하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오직 복음 전도뿐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이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 전도만이 “주의 일”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가복음 1:38, 누가복음4:43을 보겠습니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그리고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에게 ‘전도인의 일을 하며 그 직무를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디모데 후서 4:5입니다.

(딤후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 교회에서 믿음이 좋고 충성된 사람으로 목사를 도와 교인들을 살피고 돌보는 일을 맡아서 봉사하는 영수(領袖)라는 직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의 영수(領袖) 한 사람이 믿은 지 오래건만 재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합니다. 어느 날 깨어 보니 곁에 누워 자던 자기 부인이 별안간 간 곳 없고 누웠던 자리에는 성경이 펴져 있는데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는 마태복음 24:40-44에 빨간 줄이 그어 있더랍니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아들 며느리  자는 방을 가서 보리라 하고 가서 본즉, 그들도 역시 그 성경 구절에 빨간 줄을 그어 놓고 간 곳이 없었습니다. 

이 영수는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나서 이거 우리 식구는 다들 어디로 나가 버리고 나만 빠졌구나, 야단이로구나, 에라 지금이라도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의논해 보리라 하고 곧 달려가 본즉, 온 교회 신자들이 모여들어서 그 목사님을 가운데 세워 놓고 달라붙어 잡아 뜯으면서 하는 말이 “글쎄, 이놈의 목사야, 다른 교회 신자는 다 들려 올라갔는데, 우리 교회 교인만 들려 올라가지 못 했으니 이거 어쩌잔 말이오? 목사가 재림이 있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었더라면, 우리가 준비하여 들려 올라갔을 터인데 재림을 분명히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들려 올라가지 못했으니 이거 어쩌란 말이냐?”고 아우성을 치며 난리를 치는데, 곁에서 자던 자기 부인이 흔들어 깨워 주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한바탕 꿈이었습니다. 

이 영수는 꿈을 깨고 나서 자기의 과거 신앙을 반성하고 그때부터 재림을 확신했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약속하신 것’을 달리 받아드려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줄곧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독립과 회복을 통하여 실현되어질 하나님 나라를  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면 자신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약속하신 것”을 나라 민족의 해방과 자신들의 출세와 성공으로 해석하고 그렇게 질문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그러한 것은 너희가 알 바 아니라며 “그러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니라.” 며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행1:7-11) 

주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영광가운데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부활의 삶으로 언제 주님 다시 오실지라도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영광 중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시어 결코 헛되지 아니하는 삶으로 승리하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