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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은 바라는 것입니다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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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입니다 (히 11:1~3)

언젠가 저의 아내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싸우면 기분이 꿀꿀해 지죠. 조금 심하게 싸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금방 화해했습니다. 그래도 며칠 갔죠. 목사니까 또 성격 좋게 생겼으니까 안 싸울 거란 생각은 안하시죠? 화해하고 조금 뒤에 제 아내가 귓밥을 파준다고 누우라는 것입니다. 누웠습니다. 화해의 사인이니 기분 좋게 누웠습니다만 갑자기 마음에서 생각이 덤비기 시작했습니다. “싸운 지도 얼마 안 됐고 혹시 앙금이 남아 있으면 어떻게 하지? 기분 나쁘다고 푹 하면?” 여러분은 이런 생각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이발소에 머리를 자르러 가면 면도도 해줍니다. 면도를 전기면도기로 하지 않습니다. 칼로 합니다. 이발사와 잘 모릅니다. 그가 면도를 얼마나 잘하는 지, 면도하다 혹 사고가 났었는지, 또 그가 지금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목을 맡깁니다. 

식당에 갑니다. 갈비탕을 시켜 먹습니다. 먹으면서 우리는 주방장이 누군지 어디에서 얼마나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웠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냥 먹습니다. 혹 주방장이 독을 풀었는지, 침을 뱉었는지도 모르는데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너무나 맛있게 먹습니다.

비행기를 탔습니다. 미국행 비행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행기의 조종사가 누구인지 얼마나 비행기를 운행했는지, 행여 자격증은 있는지 모릅니다. 또 하늘에서 지금 가는 방향이 미국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행여 추락이라도 하면 즉시 사망인데도 우리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의 전 인생을 맡깁니다.

왜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는 걸까요? 그들이 우리를 향해 앙심을 품는다면 우리는 끝장인데 왜 생명 전체를 맡기면서도 궁금해 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전문가라 믿기 때문이죠.
그러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는 어떠하십니까? 한 번도 약속을 어겨 본 일이 없으시고 어길 수도 없으신 하나님, 또한 그분의 말씀 앞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모두 믿으십니까? 인생의 전문가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을 향한 가장 정확한 지침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말씀 하나님, 조금의 의심도 없이 온전히 부여잡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하여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표현합니다. 보이는 것의 실상이 아닌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만약 믿음이 보이는 것의 실상이라고 한다면 눈 좋은 사람은 믿음 좋은 것이고 눈 나쁜 사람은 믿음 나쁜 것입니다. 또 믿음이 보이는 것의 실상이라면 나빴더라도 라식 수술한다면 믿음도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전 눈이 나빠 군대도 면제요, 라식도 아예 불가능한 사람이니 아예 믿음조차도 없는 사람이 될 것 입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보이는 것이 아닌 바라는 것의 실상이 믿음이라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믿음이지 보이는 것이 믿음 아닙니다. 오늘은 이 믿음에 대하여 살펴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믿음은 하나님을 통과한 실상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단지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통과하여 나타난 실상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것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온 그들의 반응은 두개로 갈렸습니다.
그들은 공히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라고 보고 합니다. 
여기에 10명의 정탐꾼은 이런 이야기를 덧붙힙니다.

민수기 13:31~33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에 2명의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민수기 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아멘!!!

이 12명은 같은 곳을 보고 왔습니다. 전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쪽은 그 땅은 우리를 삼키는 땅이야 우리는 메뚜기야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줄 거야 그들은 우리의 먹이야! 말합니다. 

같은 곳, 가나안을 보았지만 한쪽은 보이는 대로 이야기 했고 한쪽은 보이는 것에 하나님을 통과하여 드러난 실상을 선포합니다. 한쪽은 우린 메뚜기, 한쪽은 그쪽이 우리 먹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진정한 믿음은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이야기 하는 것 아닙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 하나님을 끼워 넣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실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하십시오. 선포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렇게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 12명의 정탐꾼의 미래는 그들이 말한대로 그들의 믿음대로 됩니다. 여호와의 귀에 들린 대로 됩니다. 

민 14:28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 말씀하시며 20세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한 땅에 대해 원망과 불평한 전부를 광야에서 엎어버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귀에 원망과 불평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땅 차지할 수 있어 믿음의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차지하는 사람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자 되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눈에 하나님이라는 안경을 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통과한 실상을 선포하십시오.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자 될 것입니다.
골리앗 앞의 다윗은 보이는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삼상 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에게는 눈 앞의 골리앗, 구척장수 골리앗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전쟁이 여호와께 속하여 있음이 중요합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해 넘어지는 인생 아닙니다. 하나님을 통과한 실상을 믿음으로 부여잡음으로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절대로 절대로 다윗은 근심하지 않습니다. 온 사방이 대적이요 자신의 아들조차도 배신하여 칼을 들이대는 상황이지만 그는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합니다. 왜요? 하나님을 통과한 실상을 믿음으로 부여잡는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이겨 살길 원하십니까? 이 땅을 다윗과 같이 호령하며 살길 원하십니까? 약속의 땅을 차지하길 원하십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오직 하나님 안경을 쓰고 하나님을 통과한 실상만을 선포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 믿음이 이 땅을 이겨 살며 이 땅을 호령하며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축복이 될것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장부 되어 축복의 역사 이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믿음은 눈의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음의 할례를 말씀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눈의 할례입니다. 눈꺼풀의 할례말구요. 눈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머물러 있는 불평과 원망을 성령의 검, 말씀의 검으로 잘라버려야 합니다. 눈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을 깨끗이 잘라 내야 합니다. 어떤 모양이라도 남아 있지 않도록 완벽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이러한 시술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있습니다. 광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평과 원망을 잘라 내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내모십니다. 광야는 사람이 사는 곳 아닙니다. 그곳은 척박한 땅 입니다. 그저 잠시 통과하여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지나치는 땅입니다. 그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살게 했습니다. 왜 사십년동안이나 살게 했을까요?

신 8:3~4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제 더 이상 떡으로만, 떡을 위해서만 살아 늘 채워지지 않는 만족으로 불평과 원망만을 달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끝이 없는 욕심을 채우려면 늘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물질만 바라는 인생을 광야로 몰아 욕심을 잘라 내십니다. 불평과 원망의 눈에 할례를 행하십니다. 구원 받은 눈으로 오직 하나님만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만 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거침이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고 절망으로 몸부림쳐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 주님은 우리의 눈에 가득 차 있는 불평과 원망에 성령의 검을 대십니다. 그래서 새로움으로 나오게 하십니다.

모나미 153볼펜을 모르시는 분들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 볼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볼펜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 모나미 153볼펜은 1963년 5월 1일에 탄생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46번째 생일이 되겠군요. 
실제로 이 당시 모나미는 제대로 된 볼펜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기술도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사업의 실패로 도산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회장인 송삼석 회장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 내려놓고 기도원에 올라갔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 한 것을 먼저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첫째, 주일을 온전히 성수 하지 않은 것을 회개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심 합니다. “이제부터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주일성수하겠습니다.” 

둘째, 그동안 돈을 많이 벌고도 십일조를 안 한 것을 회개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반드시 십일조를 하겠습니다.” 

셋째, 새벽기도하지 않은 것을 회개케 하셨습니다. “제가 새벽마다 주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제 반드시 새벽기도를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세가지 회개와 세가지 결심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는데, 요한복음 21장 1-14절의 말씀에 영감을 얻게 됩니다. 

요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아멘!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백쉰세마리 ‘153’이라는 볼펜을 만들겠습니다. 하나님, 이 볼펜이 우리나라 모든 사람의 손, 아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손에 다 들려지길 원합니다.” 기도하고 난 후 그는 목표를 크게 잡고 “50억 자루가 팔리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마쳤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50억 자루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위기의 순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불평과 원망의 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검 앞에 우리의 눈을 맡겨,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물질만을 바라며 물질에만 이끌려 다니는 인생되지 마십시오. 오직 말씀으로 성령으로 눈의 할례를 받아 진리를 따름으로 불평과 원망의 인생이 153의 기적의 인생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3. 믿음은 말씀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오토바이를 탄 적이 있습니다. 제 것이 아니라 친구 뒤에서 허리 춤 잡고 탔습니다. 시속 100km 정도의 속도로 달렸습니다. 총알 탄 사나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눈 앞의 사물이 옆으로 휙휙 지나갑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고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바람을 가르며 스피드에 몸을 맡기는 쾌감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래서 폭주족이 생기는 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 지역의 오토바이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계십니다. 그분 가게에 1700CC급, 2000CC급 오토바이가 있습니다. 그런 놈들은 200km 넘게 속도가 난다고 합니다. 당기면 당기는 대로 나갑니다. 곧게 뻗은 길이 없어 더 이상 속도를 못 내봤답니다. 100km 오토바이를 타도 총알 탄 것 같았는데 200km를 달린다면 정말 상상만 해도 짜릿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은퇴하고 저의 생명이, 정말 남은 시간이 적다. 

이젠 하나님께로 갈 날밖에 안 남았다 라고 느낄 때 오토바이를 사려고 합니다. 그리고 폭주족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이름도 정했습니다. “실버호크!!” 백발을 휘날리며 달려보고 싶습니다.

20살에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습니다. 선배의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가입한 합창단에서 여름 합숙훈련을 제주도에서 했었습니다. 선배님도 그것으로 저를 유혹했었고, 솔직히 저도 제주도가 욕심이나 합창단에 들어간 것 사실입니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3부 예배 사회를 시작하면서 집사님 중 몇분이 저를 위해 작정 기도 시작했었답니다. 저의 찬송 부르는 소리가 너무나 거슬렸답니다. 그렇게 이제 일년 기도하니 기도 응답 받은 것 같다고 좋아라 하십니다. 조금 나아졌나 봅니다. 제가 만약 합창단을 제주도 욕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순수한 동기로 들어가 쭉 있었다면 이런 기도제목 안주었을 텐데 속상합니다.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 비행거리는 446km입니다. 우리 나라에 있는 일반적인 보잉747, 보잉 777의 순항속력은 둘 다 시속 850~880km 정도입니다. 대충 30~40분이면 도착합니다. 비행기를 처음 탔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비행기는 그냥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시속 800km를 넘기고 있었는데 오토바이는 커녕 자전거 달리는 속도정도 밖에 안 느껴졌습니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도 놀이동산의 회전목마타서 보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정말 오토바이가 비행기보다 빠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행기가 오토바이보다 8배나 더 빨랐습니다. 느낌이라는 것 또 눈으로 본다는 것은 이렇게 믿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조종사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계기비행” 훈련 입니다. 특별히 곡예 비행을 하는 경우에 있어 몇바퀴 빙글빙글 돌면 위가 땅인지 하늘인지 모른답니다. 그래서 하는 훈련입니다. 아무리 느낌이 위쪽이 하늘이고 아래쪽이 땅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눈을 그대로 믿지 말고 계기판을 믿고 비행기를 바로 잡는 훈련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하늘이 땅으로 땅이 하늘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내 눈 믿으면 큰일입니다. 계기를 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계기를 보아야 하고 믿음의 계기를 보아야 합니다. 말씀의 계기 믿음의 계기에 대해 본문은 믿음은 보이는 것의 실상이 아니라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조종사와 같은 훈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말씀으로 바라는 것을 부여 잡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내 삶에 기준으로 삼기 위해 훈련해야 합니다. 그럴 때 멋지게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승리가 우리의 것 될 수 있습니다. 눈을 의지 하지 마십시오. 흔들리지 않는 계기, 말씀만 부여잡으십시오.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영원하지 않은 흔들리는 모든 것 내려 놓으십시오. 우리 생각에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십시오. 명예가, 지위가, 물질이, 건강이 우리의 계기가 될 수 없습니다. 상황과 환경과 조건이 절대로 우리를 날아 오르게 만들지 못합니다.

오직 오직, 말씀의 계기, 믿음의 계기를 의지하십시오. 이 말씀의 계기가 여러분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할 것이며, 오직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만 달려가도록 만드는, 전진하는 인생 만들 것입니다.
그 말씀의 계기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온전히 부여잡고 바라봄으로 멋지게 날아오르는 인생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상황을 바라보면 한숨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걱정입니다. 조건을 바라보면 근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닌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 말씀하십니다. 홍해바다 앞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렁대는 바다와 날선 애굽 군사의 창끝을 보며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 말씀의 계기를 의지하며 눈의 할례를 받고 열린 영안으로 바다 밑 마른 땅을 실상으로 선포합니다. 

여러분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여러분의 사업과 직장은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의 상황은, 우리 나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 세계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말씀하십니다. 

상황은 우리로 근심하고 절망케 만듭니다. 이때 우리 주님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조용히 입을 닫고 말씀의 계기를 바라보며 우리의 눈에 하나님이라는 안경을 써야합니다. 그리고 드러난 실상을 선포하라 말씀하십니다. 엄청난 골리앗을 넘어설 것을 바라며, 끔찍한 홍해를 갈라 마른 땅 걸을 것을 바라며, 절망에도 모나미 153의 기적을 바라고 믿음으로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는 전진하는, 멋지게 날아오르는 주님의 백성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 바라봄이 믿음입니다. 보이는 것 그래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의 계기에 의지하여 바라봄으로 이겨 사는 자들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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