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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처음 만났을때 (엡 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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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처음 만났을때 (엡 5:15~21)


지난 금요일에(2009년 4월 24일) 우리와 가까이 있는 4.19 삼거리에서 관광버스가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켜 7명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교통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청천벽력도 이런 청천벽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라는 주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다들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살지만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초청이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드리니 진지하게 경청해주십시오. 


이 자연계에는 살아가는 법칙이 있습니다. 
동물도 살아가는 법칙이 있고, 식물도 살아가는 법칙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농부가 김을 맬 때, 잡초를 뽑아 뿌리가 하늘로 향하도록 뒤집어 놓습니다. 
특히 생명력이 강한 잡초일수록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잡초는 죽습니다. 
왜냐하면 뿌리는 땅을 봐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地向性이라고 하지요. 뿌리가 하늘을 쳐다보면 죽습니다. 자연의 법칙입니다. 

이 자연계에 살아가는 법칙이 있듯이 인간에게도 살아가는 영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영적 법칙을 4가지로 정리합니다. 
사람은 이 영적 법칙을 잘 이해하고, 그 법칙을 따라 살아야만 제대로 살고, 구원을 받습니다. 
‘전교인 총력전도 주일’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교우들과 함께, 특별히 오늘 처음으로 교회에 발걸음을 하신 분들과 함께 이 영적 법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요3:16절입니다.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 

1. 첫 번째 영적 법칙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요3: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로 시작합니다. 
사랑해도 보통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는 구절에서 ‘이처럼’이란 말씀은 ‘이것처럼’이라는 뜻이 아니라, ‘매우’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God so loved.'입니다. 
어러분, 이 사실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냥 하는 소리거니 하지 마시고 귀담아 들으십시오. 
'아니,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다니........ 내 자신을 내가 잘 아는데......‘라고 우리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은 사랑할 수 없어!’라고 우리 스스로 고개를 도리질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 라는 말씀에 여러분의 귀가 번쩍 뜨이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 라는 말씀에 여러분의 가슴이 뭉클해지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 라는 말씀에 여러분의 온 몸이 전율하길 바랍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으면 변화됩니다. 
사랑받으면 삶이 달라집니다. 미국의 여자교도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여자 죄수들이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에서 풀려나면 금방 죄를 짓고 다시 들어옵니다. 
한 심리학자가 정부에 건의를 했습니다. 
‘여자 죄수들에게 얼굴 성형수술을 시켜주자’ 
그래서 원하는 여자 죄수들에게 얼굴 성형수술을 시켜줬습니다. 
그랬더니 달라졌어요! 
얼굴이 예뻐지니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남자의 사랑을 받으니 여자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요. 
그래서 다시 교도소에 들어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변덕스러운 사람의 사랑을 받아도 이렇게 삶이 변화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고지순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면 그 삶이 어떻게 될까요? 
상상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의 삶은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대학진학의 실패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냥 조용히 죽어버리겠다던 낙제생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책을 펴 학문에 성공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사업이 도산됨으로 집안 식구들에게까지 볼 면목이 없다고, 정처를 밝히지 않고 집을 떠났던 사업가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재기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여러분, K장로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사업에 실패하여 조용히 세상을 떠나려고 수면제를 한 알 한 알 모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광림교회에서 하는 민방위 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예전에는 예배당에서도 민방위 교육을 했어요. 
집에서 놀고 있는 줄 이웃들이 다 알고 있으니까 빠질 수 없어서 교육장에 나갔습니다. 
민방위 교육장인 광림교회에서 김선도 목사님의 도전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씀을 통하여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희망이 보입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자신감이 가슴에 벅차오릅니다. 
그는 실패를 딛고 재기하여 큰 사업가가 되어 오늘 기독교 TV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예는 수없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갈까요?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 영적 법칙은, 우리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장님도 죄인이고, 부장님도 죄인이고, 과장님도 죄인입니다. 
남편도 죄인이고 아내도 죄인입니다. 
할아버지도 죄인이고, 간난 아기도 죄인입니다. 
“에이! 그런 소리 하지 마!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 분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분이신데 저 분을 죄인이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되지........” 
그러나 그 분도 죄인입니다. 
“아니, 내가 남의 물건을 훔치길 했나, 남의 팔을 분질렀나, 왜 나를 죄인이라고 하는가?” 
그래도 죄인입니다. 

조금만 관찰해보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친구와 사이좋게 놀아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잠시를 못 참고 토닥토닥 다툽니다. 
선한 것을 가르치지만 그것을 못해요. 
반대로 “얘야,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욕심을 부려야 한다.”라고 한 번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이들 클 때 보면 하나 같이 욕심을 부립니다. 
아이들이 둘러앉아 함께 과자를 먹다가 접시에 하나만 남으면, 손에 든 것 얼른 입에 넣고 남은 하나를 덥석 잡습니다. 
악한 것을 가르치지 않아도 잘 해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선한 것은 가르쳐도 잘 못하고, 악한 것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잘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John Wesley는 ‘죄로 기우는 경향성’ (inclination)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죄로 기우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 하나 예외가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는데, 어떻게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낙엽이 지는 어느 날 석양 무렵에, 조용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십시오. 
나야말로 죄인 중의 괴수가 아닌지요? 
점잖은 체하지만, 내 속엔 음욕이 꿈틀거리고 있지 않는가요? 
선한 일을 하자고 말하지만, 내 속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들끓지는 않는가요? 
우리가 이런 마음의 상태를 ‘나는 아니야!’라고 부정할 수 있습니까? 

이 죄 때문에 삶이 혼란스럽습니다. 
이 죄 때문에 삶이 공허합니다. 
이 죄 때문에 우울합니다. 
이 죄 때문에 근심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 죄 때문에 이웃과 불화하게 됩니다. 
이 죄 때문에 죽음이 왔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 6:23) 

3. 세 번째 영적 법칙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입니다. 

요 3:16절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독생자’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해결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그토록 주장하는 핵심 내용입니다. 
롬5:8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의 사랑을 나타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①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②  ‘그 죽음을 해결하려면 누군가의 생명을 내주어야 한다.’ 

③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대신 줌으로 내 죄를 해결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한 구원의 길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4:12) 
구원받는 길은 그 길 밖에 없습니다. 

복음성가-내가 주를 처음 만난 날 

( 이 찬송의 가사 내용도 은혜롭고 곡도 영감이 넘칩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져요.) 

1,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외롭고도 쓸쓸한 모습 
   말없이 홀로 걸어가신 길은 영광을 다 버린 나그네 
   정녕 그 분이 내 형제 구원했나 나의 영혼도 구원하려나 
   의심 많은 도마처럼 물었네 내가 주를 처음 만난 날 
2, 내가 다시 주를 만났을 때 죄악으로 몹쓸 병든 몸 
   조용히 내 손 잡아 이끄시며 병든 자여 일어나거라 
   눈물 흘리며 참회 하였었네 나의 믿음도 뜨거웠었네 
   그러나 죄악이 나를 삼키고 내 영혼 갈 길을 잃었네 
3, 내가 이제 주를 만남으로 죽음의 길 벗어 나려네 
   변찮는 은혜와 사랑 베푸신 그 분만이 나의 구세주 
   주 예수 따라 항상 살리로다 십자가 지고 따라 가리라 
   할렐루야 주를 만난 이 기쁨 영광의 찬송을 돌리리.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네 번째 영적 법칙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요3:16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영접한다.’는 말입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기도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롬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중심을 알고 계십니다. 
이렇게 따라 기도하십시오.(이미 믿는 분들은 구원을 확증한다는 의미로, 처음 교회에 나오신 분은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로)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결과 다음 몇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간에,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간에 여러분의 삷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계3:20, 골1:27) 
여러분의 모든 죄는 용서 받았습니다.(골1:14)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1:12)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요5:24)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요10:10) 
그 풍성한 삶이란, 삶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문에 흐르는 온갖 저주에서 해방 됩니다. 
여러분을 옭아매는 사단의 속박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여러분을 억누르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늘이 주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샘솟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 위에 내리시는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됩니다. 
천국의 기업을 상속 받게 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란 책에서 오스왈드 스미드 목사가 쓴 글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축복기도를 하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기 전에 뒷자리에 앉은 한 젊은 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권하였지만 무슨 이유인지 응하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다 마치고 나는 차를 타고 베이(bay)를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나는 길에 많은 사람들과 여러 명의 경찰들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차를 세워놓고 그 곳에 가 보았습니다. 
바로 우리 교회의 뒷자리에 앉았던 젊은 부인이 교통사고로 죽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부인은 나의 권면이 마지막 권면일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 젊은 부인은 앞으로도 예수 믿을 기회가 많이 있으리라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생명의 불확실함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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